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482)
482화
“…….”
다른 데에서 얻어맞고 와선 왜 애먼 데 화풀이인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김태석을 본 순간 내가 떠올린 생각은 그뿐이었다. 꼴을 보아하니 대표실에서 뭔가 일이 있었던 듯한데, 얼빠진 얼굴로 나오다가 왜 나를 보자마자 화를 쏟아 내나 싶었던 것이다.
어찌 됐든, 저 꼴을 보아하니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쫓겨났군.’
오늘을 기점으로 김태석의 얼굴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말이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으시다면 비켜 주셨으면 합니다. 들어가 봐야 해서요.”
그렇다면 굳이 말을 섞을 이유도 없다. 그런 판단하에 내가 고개를 까닥이며 김태석의 뒤로 돌아가려 했을 때였다.
“모른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주단우인가 하는 게 팬들을 위해서랍시고 허울 좋은 말을 나불거린 것도 다 네 생각이잖아. 네가 그놈 약점 덮으라고 준비시켰지? 이쪽에서 정보 어떻게 빼 갔어? 안 팀장도 네가 구슬렸나? 언제부터 알고 준비했냐고!”
“…….”
나는 들려오는 김태석의 고함 소리에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굳이 상대할 필요도, 해명할 이유도 없지만.
“…듣자 듣자 하니 좀 웃겨서 그런데. 억울하기라도 하십니까?”
“뭐?”
되는 대로 지껄이는 말을 듣다 보니 좀,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이 상황이 여간 억울한 게 아닌 듯해 보여서요.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이 상황을 초래한 건 결국 김태석 본부장님이지 않습니까.”
“……!”
판을 만든 것도, 일을 여기까지 끌어 온 것도 김태석 본인이면서 왜 이제 와 이렇게까지 분하다는 듯 구는지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었으니까.
나는 이제 거의 새까맣게 변해 버린 김태석의 얼굴을 보며 삐딱하게 선 채 물었다.
“제가 뭘 했단 겁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었는데요?”
“…다큐멘터리 쪽으로 먼저 손을 쓴 것도, 안 팀장을 꼬드겨서 2팀을 염탐한 것도, 2팀 소속 아티스트들을 꾀어낸 것도 다 너 아니야!”
“아니요, 저는 딱히 손을 쓴 게 없습니다.”
“뭐?”
그에 잠깐 당황한 듯하다가도 이내 분노한 투로 말을 쏟아 낸 김태석의 앞에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이번 일에서 내가 한 건 별것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김태석이 쉽게는 대표실 문앞에서 비켜 주지 않을 듯해서.
무엇보다도 여전히 본인이 더없이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듯, 기막혀하고 있어서.
“하나씩 말해 볼까요. 안 팀장님 쪽을 제가 꼬드겨 정보를 빼내어 간 게 아니냐고 말씀하셨는데, 그 추측은 틀렸습니다. 먼저 2팀이 뭘 꾸미고 있는지를 알려 준 건 안 팀장님이셨으니까요. 심지어 그 시기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이후였고.”
“……!”
나는 굳이 안 해도 될 짓을 하기로 했다. 그의 말을 하나하나 반박해 주기로 한 것이다.
-우리 쪽 본부장이 지금 기자랑 접촉했다. 조만간 주단우와 관련된 단독 기사가 터질 거야.
안 팀장이 우리에게 말을 해 온 건 콘서트가 막 끝이 났을 즈음이었다. 주단우의 과거를 캐 나가던 김태석이 확실한 단서를 손에 넣고 안 팀장에게 진 기자와의 연락을 일임한 뒤, 안 팀장은 당연하단 듯 이쪽에 연락부터 해 온 것이다.
‘당연히 우리 잘되라고 알려 준 것은 아니었지만.’
실은, 안 팀장만큼 우리가 제대로 망해 주길 바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팀장이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든 이쪽을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러니까 제발 추라이와의 대화 내역 좀 파기해 줘. 이번에는 제대로 했잖아.
우리가 망하면 본인도 같이 몰락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원디어의 자체 콘텐츠를 기획할 당시, 안 팀장이 표절 사건을 여럿 일으켰던 추라이를 의도적으로 로드 엔터로 데려왔다는 증거가 이쪽에 남아 있으니까.
안 팀장은 본인의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원디어를 도와야 했단 거다. 우리가 지금까지처럼 무탈히 있어 주어야만 제 과거 기록이 풀리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것조차 안 팀장의 업보고.’
김태석 본인이 안 팀장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도 있을 터였다. 안 팀장이 김태석을 배신한 건 그를 완전히 믿지 못한 이유도 있으니까.
김태석은 본사로의 길을 마련해 둔 채 안 팀장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려 했다. 그러니, 실은 안 팀장은 우리를 배신했어도 됐을 터였다.
이전과는 달리 돌아갈 길이 생긴 거니까. 본사로 가게 되면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된 팬분들의 질타는 무시해도 될 터였고.
하지만 안 팀장이 끝내 우리 쪽을 찾아온 건, 그렇게 될 경우 자신에게는 단 하나의 선택지만 남게 되어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갈 곳은 있지만, 그곳을 제외하곤 어디도 갈 수 없게 될 테니까.’
추라이 사건에 이어 이번 정보 유출의 책임까지 뒤집어쓰게 될 경우, 안 팀장을 써 줄 회사는 없어진다. 몇 번이고 관리 소홀에 따른 ‘실수’를 저지른 직원을 쓸 곳이 어디 있겠나.
그리고 그걸 KC ENM의 모든 직원들 또한 알게 되겠지.
‘본사로 돌아간들 더 나은 환경을 꿈꿀 순 없게 될 거다. 오히려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게 되겠지.’
KC ENM이 아니고서야 어디도 써 주지 않을 직원을 데리고 있는데, 굳이 귀하게 대우해 줄 일이 뭐 있나.
어떤 식으로든 험하게 쓸 테고 쉽게 잘라 낼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하기도 쉬워지겠지.
“안 팀장님이 어떻게 김태석 본부장님을 믿겠습니까. 지금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잘라 내는 사람이 본사로 가서 똑같은 짓을 하지 않을 거라 어떻게 믿고요.”
“……!”
윗선의 잘못을 뒤집어쓴 채 몰락해 줄 희생양으로 안 팀장만 한 인간은 없어 보일 테니까.
로드를 벗어나 KC ENM으로 돌아가는 건 안 팀장이 스스로 도구로서의 삶을 받아들인다는 것과 같았던 것이다. 스스로 본인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셈이 될 테고.
즉, 안 팀장은 어떻게든 하승혁에게 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진짜로’ 자신의 살길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안 팀장에게는 본사로 돌아가 언제 잘라 내질지 모르는 삶을 사는 것보단 깨끗한 기록을 토대로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다른 회사로의 이직을 노리는 것이 더 유리하다 생각되었을 거란 거다.
“…….”
“그리고 아티스트들에 대해선… 글쎄요, 이것도 제 책임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먼저 넥스트원과 라이저스를 차별한 건 김태석 본부장님이시지 않나요.”
“난 최선을 다했어!”
직후, 발악하듯 김태석이 고함을 지르는 것에 나는 어떤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는 심산으로 입을 다물었다.
“아티스트들의 등급을 나누는 건 당연한 일이야! 더 많은 수익을 내리라 기대되는 쪽에 자본을 몰아주는 건 어느 회사든 하는 거라고. 난 최선을 다해 각 팀에 맞는 활동 방향성을 잡아 줬어. 그런데 그것들이 뭐가 더 좋은지를 모르고 배신을 한…….”
“뭐가 더 좋은지를 왜 김태석 본부장님이 판단하냐는 겁니다. 당신이 뭘 안다고요.”
그러다 결국 더 이상 들을 필요성을 못 느껴 말을 잘라 내 버리고 말았지만.
“각 팀에 의견을 구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기획이든, 활동 방향성이든. 한 번도 없었지 않나? 그간 김태석 본부장님은 원디어를 견제하기 위한 말로 두 팀을 써먹었을 뿐이었습니다.”
“뭐, 무슨…….”
“원디어부터 처리하고 난 후 두 팀을 성장시킬 생각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쉽게도 그 두 팀은 그걸 기다려 줄 만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저희가 언제 가만히 망해 줄 줄 알고 그걸 기다리고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집으로 가득 찬 말을 토해 내던 김태석이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는 것에 나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끝내 한심함을 숨기지 못하고 내뱉어 버리고 말았다.
“그 두 팀이 가장 필요로 하던 건 당장 그들을 이끌어 줄 사람이었단 겁니다. 그 두 팀은 단 한시도 낭비할 시간이 없으니까.”
“……!”
김태석이 놓치고 있었던 것을.
아이돌의 활동 시간은 짧다. 특히 프로젝트 그룹은 더하다.
짧은 계약 기간 내에 어떻게든 실적을 내야 하고, 그로 인해 팀을 유지시키든, 해체한 후 본인들의 소속사로 되돌아가든 결정을 지어야 한다. 그러니 단 하루도 허투루할 수 없었다.
‘우리도 그러니까.’
때문에 우리는 더 최선을 다해야 하고, 어떻게든 더 많은 것을 보여 주고 싶어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어떻게 팬분들의 앞에 서게 될지 모르니까.
그리고 김태석은 그 두 팀의 시간을 아주 최선을 다해 낭비해 주었다.
라이저스와 넥스트원에 걸맞는 활동 방향성을 잡아 주는 것보다는 원디어를 견제하기 위한 도구로 써먹었고, 앞으로도 한 업계에서 얼굴을 봐야 하는 선후배끼리 서로를 불편해하게끔 만들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게 몰아갔고.
‘심지어 같은 2팀에서조차 말이지.’
박원효의 앞에서 내내 저자세로 굴던 최해솔만 봐도 확실하지 않나. 김태석 본부장은 2팀 안에서도 경쟁을 시킴으로써, 결국 그 두 팀 전부가 괜한 신경전과 소모전을 겪게 한 거다.
-나는 우리 애들끼리 환경만 만들어진다면 정말 잘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처음에야 [디어돌> 출신이니 [비더돌> 출신이니 하며 삐걱댔지만, 같이 고초를 헤쳐 나가다 보니 슬슬 마음이 맞아 가고 있거든. 할 만해. 그래서 여기서 더 나빠지고 싶진 않다, 난.
-김태석 본부장님 뜻은 알겠지만, 저는 그걸 따르고 싶지가 않아서요. 쓸데없잖아요. 활동만 생각하기도 바쁜데 굳이 회사 내부 일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습니다. 애초에 따지자면 저희는 선배님들 제자기도 하잖아요. 굳이 얼굴 붉힐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끝내 두 팀 모두가 그렇게 입을 모을 만큼.
-단우 코치님 일… 2팀이 꾸민 거죠? 직원 유출이라고 벌써 소문이 나 있던데요, 회사에는.
-김태석 본부장이 한 일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지? 솔직히 김태석 본부장 아니면 그런 일을 할 만한 사람 없지 않아?
때문에 그 두 팀의 리더는 가요페스타가 끝나고 난 후 나를 찾아왔다. 가만히 활동에만 집중하기에는 주변이 쑥대밭이 되어 있어, 차마 무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걱정스러운 눈길로 주단우를 바라보던 두 사람은 이내 진지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지금 상황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현 상황을 말해 주었다. 김태석이 유출한 것이 맞고, 이에 따라 현재 김송하 본부장이 그를 해임시키려 하고 있다고.
그에 둘은 말했다.
-그럼 저번에 말했던 대로 할게.
-저도요. 그때, 유하 선배님이 그러셨잖아요. 어떤 쪽으로든 저희를 위한 선택을 하라고.
그들 또한 선택을 하겠다고.
-저도 저희 팀에 좋은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되는 대로 휘둘리다가 어느 순간 밀려나거나 버려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정도쯤은 저희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보니까.
-우리가 명분이 되어 주면 되는 거 맞지? 아티스트 스스로 본부장을 거부하면, 조금 더 그 해임 건의안에 힘 생기는 거 아냐?
그들도 그 정도쯤은 할 수 있으니까.
사람으로서 더 좋은 환경을 선택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 정도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