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483)
483화
“…….”
“그 두 팀의 말을 조금이라도 들어주는 시늉을 해 주셨다면 또 모르겠지만, 눈에 뻔히 보이는 다른 길이 있는데 왜 그 둘이 굳이 나쁜 선택을 하려 들었겠습니까.”
만약 로드 엔터테인먼트 내부 분위기가 김태석이 고수하는 방향과 비슷했다면, 그 둘은 침묵했을 것이다.
그들을 관리하는 사람이 바뀌어도 처우는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판단이 내려졌을 테니, 굳이 밉보이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었겠지.
하지만 그 둘이 먼저 나를 찾아와 김송하 본부장과의 연결을 부탁했던 건, 이미 눈에 뻔히 보이는 ‘더 유리한 선택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하승혁은 원디어를 통해 제 지향점을 드러낸 바 있으니까.’
하승혁은 철저한 능력주의였다. 즉, 누가 낸 기획이든 가능성만 충분하다면 조건 없이 채택해 주곤 했던 것이다.
때문에 뭣도 없는 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디어는 스스로 활동을 꾸려 나갈 수 있었고, 이는 직원과 아티스트끼리의 연결이 더 공고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잦은 대화와 회의를 통해 팀의 색깔과 방향성을 함께 만들어 나가다 보니, 모두에게 책임감이 생김과 동시에 팀으로서의 결속도 더 깊어진 것이다.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고 추가적인 의견을 덧댐으로써 더 좋은 기획을 만들어 나갈 수도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원디어는 로드 엔터 내부에 확실히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활동 또한 어떤 후회나 모자람 없이 이어 나가고 있고.
“김태석 본부장님을 선택하면 침묵한 채 갈 수밖에 없죠. 그 과정에서 기회란 없었을 겁니다. 어떤 식으로 이용당하고 의견을 묵살당하든, 끝내 다른 팀에 밀려 돈을 벌어 오는 캐시카우로 전락하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런 걸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허… 이토록 변화가 빠른 시장에서 그 팀이 가진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맞는 활동을 만들어 주는 건 직원의 의무야, 친하고 가엾다고 해서 돈이 되지 않는 팀을 그대로 살려 둘 순 없다고. 난 당연한 선택을……!”
“김태석 본부장님.”
이어지는 김태석의 발악을 나는 다시 한번 잘라 냈다. 들어줄 가치가 없었기 때문도 있지만.
“개소리 좀 하지 마시죠. 그냥 귀찮았을 뿐이잖아요.”
“……!”
슬슬 화가 났기 때문도 있었다.
“말 한마디 들어 주지 않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묻지 않았지. 선택지조차 주지 않았어. 활동 가능성을 먼저 제한했을 뿐이잖아, 굳이 깊게 고려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진짜 직무 태만을 한 게 누군데, 이제 와서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듯 구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팔리지 못하는 아이돌을 계속해서 살려 둘 수는 없다는 데는 동의한다. 아이돌 활동만큼 자본을 잡아먹는 장사는 없으니, 유력한 팀을 밀어주는 게 당연하다는 것도.
하지만, 적어도 기회는 주는 게 마땅했다. 그게 남의 인생을 팔아먹는 사람들이 할 최소한의 도리니까.
어떻게 하고 싶은지. 어떤 방향성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뭘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주고 마지막 기회라도 주는 게 옳았던 것이다.
“당신은 로드 엔터에 들어오자마자 넥스트원과 라이저스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봤죠. 라이저스의 지원을 줄이고 그걸 넥스트원에 몰아주다가도 그 두 팀을 이용해 원디어를 억제하려고 들었지. 그게 어떻게 최선이 될 수 있지? 그냥 상황에 따라 써먹었을 뿐이잖아.”
그러나 김태석은 그 최소한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애초에 두 팀의 말을 단 한 번도 들어 준 적이 없지 않나.
김태석은 로드 엔터테인먼트에 들어와 어떻게든 하승혁을 흠집 낼 생각만 했을 뿐, 진정으로 그 두 팀을 위한 적이 없다. 그 두 팀은 김태석의 가장 큰 의도에 따라 휘둘리기만 한 거다.
“그딴 인간한테 인생을 맡길 아티스트가 어디 있어. 단 하루도 당신과 더 일하고 싶지 않았겠지.”
“……!”
그러니 둘이 김태석의 손아귀를 빠져나오려 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건 배신이라는 이름도 붙일 수 없었던 것이다.
김태석은 애초부터 그들을 ‘관리’해 준 적이 없으니까.
그나마 김태석에게 유망주 취급을 받았던 넥스트원조차 그에게서 탈주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김태석의 기준에 맞지 않는 실적을 보이거나 후발 주자가 올 경우 어떻게 될지, 그들은 같은 팀의 라이저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뭣보다 아티스트의 약점을 붙잡고 그걸 터뜨려 버리는 인간이라면 더더욱.”
그가 주단우를 과거를 터뜨리는 걸 본 후, 박원효와 최해솔은 제 팀을 지켜야겠다 생각하게 됐을 테고.
주단우에게 쓴 방법을 자신들에게도 써먹지 않을 거란 확신이 없지 않나.
모르긴 몰라도 머릿속에 비상등이 켜진 것 같았을 거다.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그리고 멤버들의 약점을 잡고 제 심기가 거슬려졌을 때 휘두를 무기로 삼을지 알 수 없었겠지.
가까이에 둬 봤자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에, 그들은 움직이기로 한 거다. 로드 엔터테인먼트 내부에는 더 좋은 선택지가 충분히 있으니까.
“다큐멘터리 쪽으로 넘어가 볼까요. 허울 좋은 말… 그래, 당신 기준에서야 우리가 한 말들이 전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변명으로 들릴 수밖에 없긴 했겠죠.”
이후, 나는 주먹을 꽉 쥔 채 나를 노려보는 김태석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게 나쁜가?”
“뭐?”
스스로 느끼고 있던 의문을.
“그게 변명이 되었든, 고백이 되었든 우리에 대해 판단해 줄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설명하는 게 뭐가 나쁜지 모르겠어서, 난.”
“하……!”
“틀린 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봐서요. 우린 정말 팬분들 덕분에 그런 이야기까지 할 수 있게 된 거니까.”
그 변명은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돌의 본분은 뭘까.’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기. 언제나 웃어 보임으로써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틀린 말은 아니다. 정말 기본적인 의무이기도 하겠지, 그건.
하지만, 한편으로 그보다 더 중요시되는 건.
“우리가 해야 하는 가장 최우선의 일은 어떤 방식으로든 팬분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게 아닌가 싶은데.”
바로 어떤 형태로든 팬분들 앞에서 실망스러운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는 것일 터였다.
활동에 대해서도, 사생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돌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팬분들 앞에서 언제나 적정선을 지켜야 했다.
“그걸 위해선 우린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고.”
“……!”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제나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야만 했다.
질타의 말도 애정 어린 말도, 우리가 아이돌로서 팬분들의 눈길이 닿는 곳에 있을 때에나 들을 수 있는 것이니까.
당장 우리가 사라지게 되면, 우리를 지지해 주던 사람들의 마음은 갈 곳 없이 허물어지고 마니까.
즉, 오래 살아남는 건 우리의 최우선 사항이었다.
-이게 맞는 걸까. 이 고백이… 팬분들께는 내 잘못을 덮어 달라는, 이해해 달라는 말로 들리게 될 것 같아서 걱정이 돼.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팬분들을 이용하는 것 같아서….
-그 뜻도 있긴 하죠. 우린 그 당시 우리를 알아 달라고 유어원에게 과거를 공개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이건.
-…어?
그래서, 나는 주단우에게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유어원이 아니면 누가 우리 말을 들어 주겠어요.
-……!
-우리를 이해해 주는 것도, 받아들여 주고 질타하는 것도 전부 팬분들이어야 하잖아요. 이렇게 우리가 입을 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것도 유어원이니까.
-…….
-우리가 우리를 받아들여 달라고 해명한다면, 그건 유어원이 먼저여야 해요. 우리에 대해 판단하는 건 팬분들의 권리니까.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해요. 입을 여는 것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까지.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설명하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누군가에게는 변명으로 들리겠고, 누군가에게는 애원으로 들리겠지. 그게 맞기도 하고.’
하지만, 그게 나쁜가.
누군가의 사랑으로 벌어먹고 사는 직업을 가진 놈이 떠나지 말아 달라고 말하는 건. 나를 이해해 달라고 애원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 약속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나.
그럼으로써 이쪽도 떠나지 않고 온전히 제자리에 남아 있으려 하는 건, 우리가 스스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지 않나.
-그러니까 형도 마음 정리 잘해요.
-…….
-뭘 말하든 앞으로 형은 형이 말한 대로 살아가야 해요. 형이 입을 연 순간 쏟아질 질타를 온전히 감내해야 하겠죠. 그것조차도 어려운 일이 될 거예요.
-…응.
-그래도 괜찮아요? 형이 처음으로 스스로 누군가를 실망시키게 되는 꼴이 될 텐데, 감당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의무를 다하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기에, 나는 다큐멘터리 촬영이 시작되기 전 주단우에게 물었다. 정말 괜찮느냐고.
본인의 가장 어두운 과거를 팬분들에게 꺼내서 보여 주고, 그에 따른 말들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만약 주단우가 주저하거나 물러났다면.
다시금 생각을 재고해 보는 티를 냈다면, 나는 ‘어떤 방법을 쓰든’ 다른 선택지를 고려해 보게 됐을 터였다.
운을 모조리 써 버리든, 누군가와 담판을 짓든, 어떤 쪽으로든 주단우가 본인의 과거를 밝히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찾아봤겠지. 주단우를 버리고 간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정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유하야.
-…….
-팬분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주셨으니까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 그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인 거잖아.
주단우는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그게 본인의 의무임을 알고 있다고.
그 질타를 감당하는 것도, 더 큰 노력을 통해 더 이상 팬분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도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일 거라고.
그렇기에.
“그러니까 되는 대로 지껄이지 좀 마시죠. 들어 주기 역겹습니다.”
“이게……!”
“온전히 피해만 끼친 게 누군데, 그런 놈이 이쪽 상황 다 알고 있다는 듯 구는 걸 들어 줄 만큼 성격이 좋지도 않아서요.”
뭣도 모르는 놈이 그런 노력을 폄하하는 걸 그대로 들어 주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솔직히 짜증 나거든요, 자격도 없는 사람이 떠들어 대는 꼴을 보고만 있는 건.”
이번 일을 통해 주단우가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나는 알고 있지 않나. 이번 사건이 팬분들에게 어떤 심적인 부담과 고통으로 다가갔는지 또한.
‘굳이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로,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 말은 단 하나도 거짓말이 없었다.
-유하 너는… 괜찮은 거야? 과거는 되도록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었잖아.
-그랬었죠. 근데, 괜찮아요. 오히려 이제야 좀… 실감이 됐거든요.
-응?
-제가 말하는 걸 팬분들이 있는 그대로 들어 주실 거라는 거요. …제가 제 부모님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시기가 됐다는 걸, 누구도 제 과거를 오해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어서.
나는 정말로 우리를 지금까지 지켜봐 준 팬분들 덕에 입을 열 수 있었던 거니까.
나를 불쌍하게만 보지 않을 거란 것도, 나의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함께 고마워해 주실 것 같아서요. 그렇게 알아주실 거라고 믿고. 내가 충분히 행복했다는 걸.
나는 마침내 솔직해질 수 있게 된 것이었으니까.
나를 그렇게 만들어 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걸 보고 싶지 않은 건, 정말이지 당연한 일이었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