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491)
491화
해가 뜨는 걸 바라보는 건 생각보다 꽤 좋았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냥 숙소 베란다에서 바라봐도 되는 거 아닌가 싶긴 했지만.’
멤버들을 따라 일출을 보겠답시고 오기는 했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어디에서 보든 해가 뜨는 모습은 같지 않나 하는 생각 탓이었다. 해가 뜨고 지는 거야 매일 보는데 산 위에서 본다고 뭐가 다른가, 하는 삭막한 감상뿐이었으니까.
“…….”
하지만 막상 정상에 올라와 해가 뜨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왜 멤버들이 새해부터 해가 뜨는 걸 보러 가자고 그렇게까지 성화였던 건지.
‘생각이 사라지네.’
정상에 오를수록 점점 더 빛이 더해지던 하늘이 어슴푸레해지고, 이내 구름 사이로 새빨간 해가 떠오르는 것에 멤버들은 떠들던 것도 멈추고 조용히 일출을 바라보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직전까지도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엉켜 있던 생각들이 갑작스럽게 중단되고, 해가 느리게 움직이는 것에만 온 신경이 집중된다.
그래서일까, 수면 부족 탓에 내내 지끈거리던 머리까지도 가라앉는 느낌에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켰다.
올라오는 동안에는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체력 탓에 조금쯤 후회하기도 했고 지금도 추위 탓에 여전히 살갗이 에는 것 같았지만, 나는 이 몇 달간 가장 명료해진 정신에 끝내 편안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오길 잘한 것 같네.”
“…그러네요.”
그래서 나는 도지혁이 중얼거리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확실히 바람을 쐬러 오는 게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숙소에 있었다면 이 정도로 안정된 기분은 느낄 수 없었을 테니까.
기분이 산뜻해진 건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우리 챌린지 찍는 건 어때요?”
“……?”
갑자기 활력이 도는지 냅다 새로운 기획을 내던진 걸 보면 말이다.
“챌린지? 지금?”
“뷰도 딱 예쁘겠다, 조금 있으면 우리 더 트렌타랑 같이 한 신곡도 풀리니까요. 생각해 보니 지금 분위기랑도 잘 어울리는 노래기도 하니까 이 기회에 한 번 찍어 봐도 될 것 같아서요.”
에이든 리의 주도로 만들어져 더 트렌타와 내보내게 된 컬래버 싱글은 이번 주로 발매가 예정돼 있었다. 즉, 아직 대중에는 공개되지 않은 미공개 곡이란 뜻이다.
“촬영이야 괜찮지만… 공개를 지금 해도 되나? 챌린지용으로 찍으면 30초 이상은 들어가야 하잖아. 그게 허락이 될까. 안무도 없고.”
때문에 이야기를 듣던 멤버들 가운데 강현진이 먼저 우려를 표했지만, 천세림은 그렇기에 더더욱 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 공개를 하는 거죠. 저희가 더 트렌타랑 신곡을 낸다는 건 이미 몇 달 전부터 알려진 사실인 데다, 공개가 안 됐으니까 더 관심이 집중되기도 할 거잖아요. 딱 챌린지 각이 나왔는데 이 풍경을 놓친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그렇기 때문에 더 홍보로는 유리하다고 보는 듯했던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네.’
확신에 찬 천세림의 말을 듣고 나는 잠시 고민을 해 보았다. 확실히 대형 스포일러만큼 팬분들의 주목을 집중시키는 데 용이한 아이템은 없을 터였다.
이런 식으로 챌린지부터 풀고, 그다음에 음원을 발매하는 건 최근 들어 자주 써먹는 홍보 방법이기도 하니 문제될 것도 없었고.
“유어원도 엄청 좋아할걸요.”
뭣보다 이런 깜짝 콘텐츠만큼 팬분들을 기쁘게 하는 것은 더 없을 터였다. 현재 ‘기분 전환’이 필요한 건 팬분들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논란이 사그라들었다 한들 팬분들도 한 주 동안 내내 긴장감을 품고 속상해하셨을 터. 그런 와중에 맞이한 새해를 조금이라도 더 기쁘게 맞이하게 해 드릴 수 있다면 못할 건 없어 보였다.
“일단 우리 회사는 어떻게 한다고는 쳐도, 미켈레 쪽은? 더 트렌타가 허락 안 해 주면 공개는 불가능해. 이번 곡은 우리만의 곡은 아니니까.”
“으음,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현실적으로 넘어야 하는 게 있어 내가 그렇게 입을 열었을 때였다.
“여보세요?”
“……?”
문득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고.
“미켈레, 새해 복 많이 받아. 그건 그렇고, 우리 챌린지 하나 찍어도 돼? 공개는 오늘 하고 싶은데. 응, 어떻게 하려는 거냐면…….”
“…….”
곧 컬래버 곡을 던졌을 때와 동일하게 어떤 예고도 없이 냅다 미국에 전화를 걸어 버린 에이든 리와 마주할 수 있었다.
* * *
“솔직히 찢었다. 그죠?”
“…그래.”
체력도 찢겼고.
달아오른 얼굴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천세림의 곁에서 나는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느덧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멤버들과 나는 이제 막 하산을 마친 상태였다.
올라가는 것에 비해 내려오는 것은 그렇게까지 힘이 들진 않았지만, 나는 다른 이유 때문에 기가 쭉 빨려 있는 상태였다.
-안무는 지금 만들어 볼까요? 해 다 뜨기 전에.
끝내 챌린지를 찍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에이든 리의 전화 한 통으로 미국에 있는 더 트렌타의 허락을 받아 낸 우리는 빠르게 회사의 허락까지 추가로 받아내 즉흥적으로 챌린지의 안무를 짜기에 이르렀다.
해가 완전히 하늘에 가 닿기 전 안무를 짜내고 챌린지까지 마치라니. [디자인 유어 아이돌>에서도 두지 않을 법한 극악의 시간 제한에 혀를 내두른 것도 잠시, 멤버들은 모두 머리를 맞대고 적당히 안무를 짜내기에 이르렀다.
-그럼 이제 촬영하죠. 촬영자는 제안한 제가…….
-미튜버야?
-…하는 걸로 하면, 어, 네?
직후 적당히 동작을 맞춰 본 후 챌린지를 찍으려던 우리는 곧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아까부터 꼬물꼬물 뭐 하는 거야?
-아이고, 가까이서 보니 더 잘생겼네. 뭐 찍게? 아까는 춤추더니. 동영상 찍으려고 춤춘 거였어?
곧 아까 전부터 이쪽을 호기심 있게 바라봐 주고 계시던 어르신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일출을 보러 온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 네. 저희끼리 동영상 하나 촬영해 보려고…….
-일곱 명이서 찍으려는 거 아니야? 사람 필요해? 도와줄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구석에서 조용히 안무를 만들었기는 하지만, 당연하게도 우리는 등산객들의 시선을 끈 모양이었다.
일출을 보러 온 등산객들은 나이대가 꽤 다양했는데, 그중에서도 많은 건 역시 중장년층이었다. 때문에 우리가 누군지를 알아보셨다기보다는 우리가 하는 행동이 시선을 끌어 말을 걸게 된 것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럴 만한 조합이긴 하지…….’
쪽수도 쪽수인데 모임 자체가 너무 특이해 보이지 않나.
한쪽은 패딩이니 목도리, 털모자 따위로 중무장을 하고, 누구는 편안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데 반해, 누군가는 절대 등산용이 아닌 코트를 입고, 한 명은 당장 대학에 입학해도 될 법한 바시티를 걸친 데에 이어, 아예 런웨이용이라고 봐도 무방할 패션을 갖춘 놈도 있으니.
호기심을 느낀 어르신분들은 우리를 구경하시다 먼저 다가와 주시게 된 것이었다.
-미튜버지? 맞지?
-아, 그 비슷한 거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미튜버들끼리 놀러 온 거야?
-하하, 네. 추억 좀 만들어 보려고요. 올라오니까 좋네요. 어르신도 일출 보러 오신 거예요?
-나는 맨날 와, 여기. 그래서 어떻게 사진 찍으면 가장 잘 나오는지도 알지. 저기 서 봐, 저기.
-뭘 모르는 소리. 그쪽은 안 좋아, 저쪽이 더 예뻐. 저쪽으로 가.
-이, 이쪽이요?
-그래, 빛 잘 들고 예쁘잖아. 휴대폰 이리 줘봐.
-저희가 해도 되는데…….
-어허, 일곱이서 왔으면 일곱이서 찍어야지. 추억 만들러 왔다며? 한 명 빠지면 섭섭하잖아. 여기 도와줄 사람 없는 것도 아닌데 사람 뒀다 뭐 해? 맡겨 봐, 나 잘 찍어.
그러다 우리가 한 명이 빠진 채 영상을 찍으려는 것을 보고 흔쾌히 도움을 주시게 되셨고 말이다.
처음에는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싶어 망설였지만, 우리는 결국 어르신들의 호의 아래 일곱 명이서 대형을 맞춰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다 찍었…….
-한 번 더.
-네, 네?
-한 번 더 해야지, 어디 원테이크로 끝내려고 해. 몇 번 더 하고 그중에 제일 좋은 거 가져. 자, 다시!
…실은 우리보다는 어르신들이 더 열정적이셨던 것 같기도 하지만.
너무 오래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아 한 번의 시도로 끝내려고 했지만, 우리는 엄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어르신의 진두지휘 덕에 시간과 공을 들여 정말 최선의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었다.
-…로드 엔터로 영입하고 싶다. 형, 우리 직원분들 정년 언제인지 알아요?
천세림이 그렇게 중얼거릴 만큼 완성도는 꽤 높았고 말이다.
-무슨 말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노래 좋네. 제목이 뭐야?
-오, 좋았어요?
-좋네. 어디서 나온 거야? 미국 노래야? 영어 같던데.
-네~ 맞아요. 저희 노랜데. 좋다니까 다행이다.
-으응? 노래도 만들어? 그냥 미튜버가 아니야?
-하하, 미튜버 비슷한 거 맞습니다. 노래는 겸사겸사 만들어요.
무엇보다도 생각지 못한 이득이었던 건, 음원이 발매되기 전 얻은 사전 반응이었다.
노래를 틀어 놓고 몇 번이나 춤을 춘 탓에 곁에 모여서 구경을 하시던 어르신들은 노래를 듣고 한두 마디씩 평을 해 주셨는데, 그 덕에 에이든 리는 지금도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노래에 있어서는 오히려 젊은 층보다 더 까다로운 취향을 가지고 계신 어르신들까지도 더 트렌타와의 컬래버 곡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 주신 것이다.
‘도지혁이 마지막까지 미튜버라고 거짓말하는 게 어이가 없긴 했지만.’
그러다가는 끝내 춤에까지 관심을 보이는 어르신들께 허락을 구해 단체 챌린지 촬영까지 마치고 단체 기념사진까지 찍게 되었으니, 새해부터 참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근데 이쪽은 얼굴이 어째 익숙한데… 응? 강현진… 아닌가?
-……! 아, 네!
-뭐야, 진짜 현진이라고? 그 애기? 세상에, 그 애기가 이렇게 컸어?
그러다 끝내 오래전 출연한 육아 예능으로 인해 어르신들에게 친숙한 강현진의 존재 덕에 그냥 미튜버가 아니라는 건 들켜 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 이후 강현진을 반가워하는 등산객분들의 인사가 이어져,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정상에 오래 머무른 우리는 해가 완전히 뜬 이후에야 하산을 마친 상태였다.
“배고프다.”
“아, 이제 식당도 좀 열었네. 차라리 늦게 내려와서 다행일지도.”
그렇게 차를 타고 산을 떠나기 전, 우리는 먼저 식사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등산을 하는 데 이어 위에서 안무를 만들고 챌린지 영상까지 찍느라 다들 출출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산 근처이니만큼 주변에는 든든한 음식을 파는 곳이 많아 보였다. 그중 백숙을 파는 식당에 들어간 우리는 구석 즈음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맛있겠다. 저 실은 지난번에 우리끼리 같이 등산하고 나서 먹은 백숙 맛을 못 잊고 있었거든요. 그리워서 스케줄 때 주문해서 먹었는데 그 맛이 안 나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주문해서 먹으면 그 맛이 안 나지. 뭣보다 그건 우리가 등산을 해서 맛있었던 거야. 즐거움에는 노력이 뒤따르는 법이잖아. 그래서 말인데, 우리 다음번에도 등산을…….”
“절대 안 갑니다.”
“…차갑다, 유하야. 나도 상처받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 봐. 나쁠 거 없잖아.”
그렇게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다 여전히 멤버 단체 정기 등산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은 듯, 백숙을 미끼로 또 한 번 다음 등산 일정을 잡으려는 도지혁을 최선을 다해 무시하고 있을 때였다.
“음식 나왔습니다. 여기 주문하신…….”
“그런 말은 됐고, 일단 밥이나 먹…….”
옆으로 들어오는 회색 쟁반에 나는 곧 고개를 돌렸고.
“……?”
곧 당황하고 말았다.
“…이게 뭐예요?”
정말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게 시야에 가득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