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492)
492화
“여기 주문하신…….”
서빙되어 나온 음식을 상에 차리는 것을 돕기 위해 몸을 돌린 순간, 나는 시야에 꽉 차게 들어오는 거대한 무언가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깃털처럼 푹신한 쉬폰 시트 위 최고급 바닐라 무스 크림을 샌드하고, 그 사이 광맥 속 보석을 상징하는 다채로운 과일 콩피를 넣은 후 화이트 커버춰 초콜릿으로 매끈한 표면을 완성, 보물이 숨겨진 모험적인 겨울 산을 표현한 화이트마운틴 케이크입니다.”
“…이게 뭐예요?”
장소며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봤을 때 저절로 인지 부조화가 올 만큼 이질적이고도 거대한 케이크가 백숙 대신 거대한 쟁반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귀에 들려온 설명은 또 어떤가. 케이크를 서빙해 와 주신 종업원분 또한 약간 버거운 얼굴로 하얀 종이쪽지를 읽고는 다급히 쪽지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어 버리곤 뿌듯한 미소를 짓는 것에, 나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아하하!”
“유하, 표정 웃기다.”
“와, 이게 성공하네.”
그런 내 반응이 영 우스웠던 듯, 멤버들은 곧장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당혹을 감추지 못하고 케이크를 한 번, 멤버들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던 탓이었다.
떠오른 의문에 대한 답변은 유일하게 예상했던 놈에게서 나왔다.
“서프라이즈~!”
“…….”
“하, 이제야 속이 좀 시원하네.”
천세림이 즐거움에 환해진 얼굴로 다분히 연극적인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두 손을 뻗고 능청스럽게 케이크를 자랑하기라도 하는 듯한 포즈를 취한 후, 천세림은 소원 성취라도 한 얼굴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는 동안 종업원분은 “좋은 시간 보내세요.”라는 말과 함께 케이크를 상에 둔 채 뒤돌아 부엌 쪽으로 사라졌고, 당연히 장소와 맞지 않는 아이템의 등장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손님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은 이쪽을 향했다.
‘…이런… 기분은 진짜 오랜만인데.’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 것이야 직업 때문에 당연히 익숙한 일이지만, 오늘따라 그 주목에 묘하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그에 내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동안, 멤버들은 제각각 할 일을 이어 나갔다.
“초 몇 개 꽂아?”
“큰 거 두 개, 작은 거 세 개 꽂으면 돼, 이든아.”
“생일 축하 노래도 부를까요?”
“…그건 제발 참아 주라.”
그러다 이내 들려오는 말에 나는 더 이상 침묵을 잇지 못했지만 말이다.
내 반응에 장난스러운 얼굴로 박수를 치는 모션을 취하던 천세림이 손을 멈추는 것에,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뭔데?”
“뭐긴요, 언제나와 같은 서프라이즈 파티죠.”
“생일 지났잖아…….”
“생일 파티도 못 해 준 채로 지났잖아요. 자타공인 원디어의 서프라이즈 장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해서 어떻게든 해야겠더라고요. 날짜가 지난 건 아쉽지만, 덕분에 형이 엄청나게 놀란 모습을 보니 좀 보상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유들유들한 미소에 나는 가만히 생일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종업원분이 읽어 준 종이쪽지에 적혀 있던 거창한 설명대로 위용이 대단한 케이크는 조명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화이트… 마운틴이랬나.’
이름 그대로 설산의 모습을 딴 듯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라 있는 케이크의 모습에 나는 지끈대는 머리에 손을 올렸다. 이러려고 날 산에 데려갔던 건가 싶었던 것이다.
할 말이 많은 얼굴로 도지혁을 바라보았지만, 도지혁은 빙긋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일 뿐이었다. 이 계획을 짠 것은 자신이 아니라는 듯이.
때문에 나는 한숨을 쉬며 유일하게 답을 가지고 있는 놈에게 물었다.
“이건… 이 괴랄한 건 대체 뭐냐?”
“실례네요. 이거 이래 봬도 공수하기 정말 어려운 홀리데이 케이크인데. 입수하는 데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요?”
“말 나온 김에 우리 세림이 칭찬을 좀 해 줄까. 세림이가 이번 서프라이즈에 굉장히 애를 썼거든.”
“그래, 더 칭찬 좀 해 주시죠. 이번에도 정말 대단한 작전이었거든요.”
자신의 노고를 알아 달라는 듯 과장되게 눈물을 닦는 모션을 취하는 천세림의 옆에서 도지혁이 운을 떼 준 덕에 천세림은 천천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상황은 이렇게 돌아간 듯했다.
원래 내 생일에 따로 파티를 준비해 놓았었던 천세림은 그날 뜬 논란 때문에 파티를 진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근데 어떻게 소중한 멤버의 생일을 그냥 넘길 수 있었겠어요.”
그리고 그 자체로 놈은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 같았다.
매년 멤버의 생일 파티를 준비해 주고, 생일자가 기뻐하거나 놀라거나 감동받는 모습으로 기력을 충전받곤 했는데 해의 마지막에 있는 생일을 의도치 않게 실패해 버린 셈이니 못내 불만스러웠다는 것이다.
때문에 천세림은 굳이 아쉬움을 참으려 하지 않고 또 다른 생일 파티를 준비하게 되었다는 듯했다. 이번에는 정말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끔 은밀하게.
“그 와중에 보상 심리가 좀 들어서 생일 케이크로 플렉스해 봤죠. 처음이었어요, 디저트를 계산하면서 손이 떨린 건.”
…그럴 만한 사이즈긴 하다.
나는 여전히 시야를 꽉 채우는 케이크를 보며 플렉스를 했다는 천세림의 말에 조용히 납득했다. 이 정도 사이즈에 아까 전의 설명을 생각해 보면, 평소에는 절대 먹을 일이 없는 류의 케이크일 터였다…….
“케이크를 입수하고 난 다음에는 장소를 세팅하는 데 애를 좀 썼지. 유하, 널 데려갈 만한 산을 알아보고 그 주변에 있는 가게를 물색해서 양해를 구한 후 미리 케이크를 가져다 둬야 했거든.”
“위에서 챌린지를 찍은 것도 시간 끌기의 일환이었어요?”
“아, 그건 진짜 즉흥이었어요. 뭐, 결론적으론 식당이 오픈할 때까지 시간 끌기가 되긴 했으니 이득이었죠.”
“그런데 유하, 이번엔 진짜 몰랐던 거 같더라.”
“지난번에도 지혁이 형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등산을 데려갔던 전적이 있어서 그랬나……. 솔직히 갑자기 무슨 등산이냐고 의문스러워하거나 따라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었지.”
“응. 올라가는 내내 유하가 혹시 쓰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스럽긴 했지만…….”
“그게 진짜 복병이긴 했죠. 형이 견뎌 줘서 다행이다. 물론 난 천세림 계획이 너무 얼토당토않아서 형이 눈치챌까 봐 그게 더 걱정이긴 했지만……. 이게 되네, 진짜.”
“이게 바로 의표를 찌른다는 거지. 생일이 지났다고 생각하고 완전히 형이 긴장을 풀고 있던 덕에 평소보다 더 배가 되는 놀라움을 안겨 줄 수 있게 됐잖아. 나도 새해부터 기분 좋아지고.”
거들먹대던 천세림은 곧 초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여전히 미소 지은 채, 그러나 조금쯤 차분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계속 신경 쓰였었거든, 형이 이번에 초 못 분 거.”
“…….”
“이대로 지나 보내기도 싫었고, 형 생일.”
그에 나는 얼굴을 쓸어내리던 것을 멈추고 가만히 천세림을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여전히 장난기가 어려 있었지만, 나는 천세림이 직전과는 다른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는 양. 이 파티에는 실은, 다른 의미도 있다는 듯이.
그런 예감 속에 천세림은 말을 이었다.
“형. 우리는 날짜를 감각하기도 애매하고 특별한 날에도 온전히 기뻐하거나 즐길 수 없는 일을 하고 있긴 하잖아요. 근데 난 그래서 더 축하해야 하는 날은 축하해 주고 싶거든요.”
“…….”
“그래야 기대감을 가지고 살지. 공적인 걸 제외하고 그날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제대로 감각할 수 있고.”
그러니까 본인이 중요한 날을 놓치는 일은 없고, 축하하고 기념해야 하는 일을 흘려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천세림은 선언하듯 말했다.
그리고.
“그러니까 형도 쉽게 포기할 생각은 하지 마요, ‘어떤’ 스케줄에 치이든.”
“……!”
조용히, 어떤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말을 꺼냈다.
“스케줄을 하다 보면 너무 바빠서 놓칠 수도 있고, 비행기 안에서 생일을 보낼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단념하고 있지는 말란 거예요. 스스로 놓아 버리지도 말고.”
뭣보다 희생할 생각은 절대 하지도 말고, 천세림은 꾹꾹 눌러 담듯 그렇게 덧붙였다.
“스쳐 보내도 어떻게든 기억해서 챙길 거고 형이 뭘 놓으려고 하면 주워다 다시 쥐여 줄 테니까. 생일뿐만이 아니라, 그게 뭐가 됐든지 형이 놔 버려도 우리가 붙잡아 줄 수 있는 거라면 꼭 그렇게 할 거니까요. 알겠죠? 이런 거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해.”
그러다 끝내 다시금 농담이라도 하는 듯한 말투로 너스레를 떨었지만, 나는 천세림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알고 있었군.’
김태석이 내 생일에 단독 기사를 터뜨릴 생각임을 내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
내가 이번 연도의 생일을 그냥 스쳐 보낼 생각으로 입을 다물었다는 걸, 천세림은 눈치챈 거다.
때문에 천세림은 이야기하게 된 듯했다.
“그러니까 혹시 비슷한 상황이 와도 미리 체념하고 있지 마요. 더 완벽한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과정일 테니까. 난 쉽게 재미 포기할 생각 없어요.”
그런 짓은 다신 하지 말라고. 그건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고.
“…….”
눈앞에서 타오르고 있는 촛불을 보며 나는 잠시 침묵했다.
‘잘못한 건가.’
그리고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멤버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이야기해 봤자 얻는 게 없기 때문이었다.
김태석은 우리가 그쪽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걸 몰라야 했고, 단독 기사가 터지는 날짜로는 크리스마스이브만 한 게 없었다. 그러니 날짜를 조정할 순 없었다.
팬분들도 의미를 가져 주시는 날인 만큼, 생일을 좋지 않은 기억으로 얼룩지게 하는 것이 미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생일은 언제든 있는 것이고, 이 정도는 포기할 수 있었으니까.
한 해의 생일을 흘려보내는 것으로 김태석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으면 못할 것도 없다 여겼고, 실은 그건 옳은 선택이기도 했다.
그건 천세림도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상황에 맞는 선택이었다는 것쯤은. 그게 가장 최소한의 리스크를 짊어지는 방법이었다는 건.
“이번에 형 생일 그냥 놓쳤으면 난 일 년 내내 서운했을 거라고요. 다행히 또 다른 서프라이즈 파티에는 성공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지만……. 내년엔 절대 안 놓쳐요.”
하지만, 한편으로 천세림은 당부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이런 일은 좀 만들지 말자고. 그래 봤자 누구든 눈치채고 붙잡아 줄 테니, 나도 그렇게 좀 하라고.
쉬운 방법이라 해도 희생은 누구도 원하는 바가 아니라고.
그런 은근한 질책과 우려를 담은 당부가 느껴졌기 때문일까. 아주 잠깐, 머릿속으로 또 한 번 온갖 생각들이 몰아쳤다가 사라지고.
“…그래.”
나는 끝내 그렇게만 대꾸했다. 지금은 그것밖에는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겠다’는 말만은 해 줄 수 없었으니까.
‘당연히 쉽게 희생할 생각은 없지만.’
만약 내가 무언가를 포기함으로써 팀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내가 스스로 포기할 수 있는 무언가를 놓는 것으로 더 큰 것을 지킬 수 있다면 나는 또 그렇게 할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일을 만들 생각은 없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당연히 멤버들에게 상의할 테고, 되도록 함께 일을 해결할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하는 게 팀을 위해서도 낫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만약 그렇게 해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닥친다면.
어떻게든 희생이 불가피한 상황이 온다면…….
“고맙다.”
…그러면, 나는 스스로 그 결과를 감당하고 싶었다.
생일 파티를 준비해 준 놈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더없이 이기적인 말이자 또 한 번 괜한 걱정을 안길 것임이 분명하기에 앞으로도 차마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 해도, 나는 그 결과를 감당하는 걸 훗날에도 딱히 후회할 것 같진 않았다.
“…그럼 부탁해 볼게, 내년도.”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어떻게든 붙잡으러 올 놈들이 있다는 걸 다시금 감각하게 됐기 때문일 터였다.
그 때문일까. 여전히 머릿속이 복잡하다 해도 속은 조금쯤 편안했다.
답지 않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유하야, 초 불어. 소원 빌고…….”
“형. 근데 진짜 무슨 소원 빌었는지는 영영 안 알려 줄 셈이에요? 아직도 형이 생일마다 무슨 소원을 비는지를 모르겠네.”
“소원 밝히면 안 이루어진다며. 이루어지면 알려 줄게.”
“초 뺄게요!”
“오, 케이크 맛있겠다.”
“잘라서 옆 테이블도 나눠 드리면 좋을 것 같은데.”
“좋은 생각이다, 현진아. 그릇 좀 더 달라고 해야겠네. 아, 백숙 오네.”
“그런데 이거 안에 딸기는 없는 거 맞냐?”
“아, 형. 날 뭘로 알고. 당연히 딸기 없는 케이크로 준비했죠.”
근거 없는 예감이지만, 훗날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을 것 같다는.
분명 괜찮아지리라는 그런 생각이 갑작스럽게 떠올랐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