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496)
496화
“하…….”
“오, 형. 왔어요?”
에이든 리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엘리노어 리에 의해 하얀 물감을 끼얹어진 게 영 화가 났는지,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추격전을 벌였다.
그러는 동안 엘리노어 리를 비롯해 온 집안에 흰 물감이 묻은 건 당연했고, 그것을 미소 짓는 얼굴로 가만히 바라보던 에이든 리의 어머니, 에밀리 다이앤은 둘이 체력적인 문제로 헉헉대며 추격전을 마치자 딱 한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다 놀았니? 그럼 이제 치우렴.
-…네, 엄마.
-…네, 엄마.
그건 꽤나 놀라운 경험이었다.
-지금 이든이 형이 아무런 말 없이 바로 걸레 가지러 간 거 봤어요?
-와… 이런 일이 다 있네. 그 이든이 형이…….
-이든이가 저렇게 조용히……. 원래였으면 억울하다고 했을 텐데…….
-낯설다…….
-정말 대단하신데.
-…좀 배우고 싶은데.
에이든 리가 누군가. 한마디를 하면 다섯 마디는 덧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놈 아닌가.
그런 에이든 리가 불평불만 하나 없이 주눅이 든 채 남의 말을 한 번에 들어먹다니, 이는 그래도 꽤 오래 놈과 지내 온 멤버들에게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우리들의 반응에 부엌에서 차를 내와 주시던 그들의 아버지, 승권 리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저런 일이 하도 많았어야 말이지. 에밀리는 두 명을 다루는 데는 도가 텄단다.
-혹시 전수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팀 운영에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으음, 이든이가 많이 말썽이죠? 회사에서 나오는 비하인드 영상으로 가끔 보긴 했는데, 아무래도 이든이가 그, 뭐였지? 승권. 그쪽 속담이…….
-청개구리?
-아, 그래요. 청개구리 같은 성격이잖아. 가끔은 머리를 쥐어박아 주고 싶을 정도로.
-네, 무척.
-유하야,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건 좀 그렇지 않…….
-물론 그렇게 하면 학대가 되니까 저는 그렇게 안 했지만요. 하지만 유하는 친구니까 괜찮지 않을까? 가끔은 때려 줘도 괜찮을 거예요. 나도 애들 키우면서 힘들었거든.
-…괜찮군요.
-유하 씨랑은 꽤 자주 연락하거든요, 우리도 엘리노어도. 이든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옆에서 가장 잘 말해 줄 수 있는 친구잖아요. 매번 연락 줘서 고마워요.
지난번, 한국에 방문한 세 사람과 연락처를 나눈 이후 나는 주기적으로 그들과 메시지를 나누곤 했다.
보통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따른 안부 인사나 축하 메시지 같은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나는 가끔 그들에게 에이든 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려 주기도 했다.
「발신자: 원유하
오늘 에이든이 예능 촬영에서 게임하다 사기를 쳐 놓고서는 나중에 걸리고 나니까 ‘무슨 수를 쓰든 이기라고 배웠다’고 변명했는데, 맞나요?」
「발신자: 에밀리 다이앤
그건 거짓말이네요. 난 이든을 그렇게 키운 적 없어요.
한마디 해 줄게요.」
…뭐, 고자질도 좀 했지만.
「발신자: 원유하
오늘 에이든 또 울었습니다.」
「발신자: 엘리노어 리
사진 있어요?」
「발신자: 원유하
(에이든 리가 울고 있는 사진)」
「발신자: 엘리노어 리
ok 죽을 때까지 놀려 줄게요」
…작당 모의도 조금 했고.
어쨌든, 에이든 리를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을 궁금해하는 우리에게 에밀리 다이앤은 빙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든을 잘 다루려면 하나만 알아 두면 돼요. 이든이 절대 반박하지 못할 사실들을 많이 알고 있으면 된답니다.
-오… 이를테면 어떤……?
-앨범부터 볼래요?
그렇게 우리는 말은 안 하지만 역시나 아들을 골탕 먹이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승권 리가 가져다준 앨범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었다.
“……! 그건!”
“형. 분명 어릴 땐 잘 안 울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으음, 이든이는 어릴 때 감수성이 풍부했구나.”
에밀리 다이앤이 시키는 대로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에 묻은 흰 물감을 지운 후 깨끗이 샤워를 하고 나온 에이든 리는 우리가 자신의 앨범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에 머리를 털고 있던 수건을 툭 떨어뜨렸다.
멤버들은 누군가는 숨죽여 웃으면서, 누군가는 대놓고 킬킬대면서 앨범을 뒤적거렸다. 어릴 적의 에이든 리가 엘리노어 리에게 머리를 붙잡혀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사진, 넘어진 에이든 리가 코를 훌쩍대고 있는 사진 같은 것이 앨범 가득 담겨 있었다.
“오, 내 컬렉션. 난 아직도 우울할 때면 그거 봐요.”
“누나!”
그에 뒤이어 나온 엘리노어 리가 킬킬대며 무리에 합류했다. 에이든 리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자, 엘리노어 리는 익살스럽게 혀를 내미는 것으로 가볍게 대응했다.
“에이든, 너.”
“……!”
“어릴 땐 안 울었다며?”
그리고 앨범을 함께 보고 있던 내가 한마디 덧붙이는 것으로 에이든 리의 인내심은 모두 닳아 버린 모양이었다.
“…OK. 엘리노어 울음 모음집을 세상에 내보낼 때가 왔나 봐.”
딱 한마디를 내뱉고 어딘가로 올라가 버린 걸 보면.
그리고 약 5초 정도 ‘저 자식, 뭔 소리를 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엘리노어 리는 곧 사태 파악을 한 모양이었다.
“에이든 리! 너 내 친구들 태그해서 SNS에 올리려고 그러지!”
“어!”
“당장 이리 와! 나에게는 사회적인 체면이 있어!”
“나한테도 있었지!”
바로 소리치며 에이든 리와의 2차 추격전을 하러 달려가 버린 것을 보면 말이다.
그 추격전에 에밀리 다이앤은 이번에도 딱 한마디만 했을 뿐이었다.
“15분 후에는 레스토랑 갈 거니까 그때까지 준비하고 내려오렴!”
“자, 차 좀 더 들어요. 아직 시간 있으니까.”
“오, 네.”
“혹시 이 사진들은 저희가 찍어 가도 되나요?”
“그럼요. 아예 가져가도 되고요. 그러라고 보여 준 거니까.”
우리는 남은 티 타임을 마저 즐겼고 말이다.
* * *
“나 아이돌인데…….”
“난 성악가야.”
“자, 그만. 집에서야 그렇다 치고 레스토랑에서까지 이러면 안 되지?”
“…네, 엄마.”
“…네, 엄마.”
결국 집안에서 엎치락뒤치락 싸우던 두 사람은 나란히 한 대씩 서로를 때려 주기에 이른 모양이었다. 에이든 리는 불퉁한 얼굴로 턱을 문지르고, 엘리노어 리는 이를 갈며 이마에 손을 올리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저거 붓지는 않겠죠? 며칠 후면 공연인데.”
“뭐… 괜찮겠지. 정 뭣하면 에이든이 전날에 라면을 좀 많이 먹었다고 둘러대는 걸로 가자.”
“왜 내 편 안 들어줘…….”
“들어주게 생겼냐? 말리고 뭘 할 새도 없이 싸워 댄 게 누군데.”
에이든 리가 불만스러워하며 투덜대는 것에 나는 혀를 찼다. 싸워도 좀 적당히 싸우지, 뭘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던 것이다.
“괜찮을 거예요, 저렇게 서로 싸워도 마지막엔 손에 힘을 빼거든. 다 엄살이랍니다.”
“그래요. 애들 어렸을 땐 진짜로 다친 줄 알고 얼마나 놀랐었는데, 아무리 서로 때려도 멍이 안 들더라고요. 애들도 적당히 힘 조절을 하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아, 그럼…….”
“물론 멍이 들어도 요즘은 메이크업이 있으니 다 괜찮을 거예요.”
“음. 아픔은 본인들이 알아서 책임져야 하고.”
“…….”
…역시 대단한 분들이군.
나는 사근사근 웃으면서도 역시나 에이든 리의 부모님답게 확실한 태도를 보여 주는 모습에 끝내 웃고 말았다. 멤버들 또한 반은 신기하다는 듯, 반은 재미있다는 얼굴을 한 채였다.
“저는 이든이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을지 정말 궁금했거든요. 이든이 저렇게 독특… 좋은 인재로 자라난 건 부모님의 세심한 가르침이 있었던 덕분 같네요.”
“콘텐츠에서도 봤었지만, 지혁 씨는 참 말을 잘하는 사람 같아요. 이든과 잘 놀아 줘서 고마워요.”
“뭘요, 이든이 같은 인재와 같은 팀이라 저는 항상 기쁘죠. 항상 이든이에게는 신세 지고 있습니다.”
“높은 확률로 이든 쪽이 더 신세 많이 질 테지만, 고마운 말로 받아들일게요.”
“혹시 아버님, 어머님, 저랑도 번호 교환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도 가끔 이든이 형 이야기 나눠 보고 싶은데… 알고 싶은 사실이 많아서요.”
“당연하죠. 오히려 기쁜 제안이네요.”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혹시 이든이 형이 앞뒤 다 잘라먹고 알아들을 수 없는 본론만 꺼내는 건 예전부터 그랬나요?”
“아, 그건 예전부터 그랬어요.”
“역시!”
“…….”
“너 지금 네가 인생 잘못 살았나 되돌아보고 있지?”
“…이런 경우 좀 드문데, 나. 좀 그런 생각 들어.”
에이든 리를 본격적으로 놀려 먹을 기회란 쉽게 오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에이든 리의 마이페이스에 [디자인 유어 아이돌>부터 적든 크든 한 번씩은 시달려 왔기 때문일까, 멤버들은 찾아온 기회를 마다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무슨 말을 하든 능청이나 떨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곤 하는 놈이 이렇듯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물론 그런 식으로 놈을 놀려 먹는 멤버가 있다면, 한편으로는 처음 만난 부모님에게 제대로 안부를 전하는 멤버들도 있었다.
“지난번에 보내 주신 찻잎은 감사했습니다. 이든이 나눠 줘서 가끔 같이 차를 마시고 있어요.”
“뭘요, 이든과 같이 티 타임 즐겨 주는 친구가 있다니 우리도 기쁘지. 아, 선물로 한국 차를 사 와 준 것도 고마워요. 한국 식재료도 고맙고요.”
“이든이 저번에 부모님께서 한국 음식을 좋아하신다고 하신 것 같아서… 너무 부족하게 준비하진 않았나 걱정이에요.”
“충분해요. 그보다 우리도 고맙단 인사를 전해야겠네, 항상 이든을 챙겨 줘서 고마워요. 형으로서도 멤버로서도 세심하게 케어해 주고 있는 거 알아요. 덕분에 이든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아, 아니에요. 저희야말로 이든이에게는 항상 고마운 일투성이라…….”
대표적으로는 강현진, 주단우 같은 멤버들 말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 자리에서 진정한 어른은 저 두 명뿐인 것 같기도 하고.’
엘리노어 리에게서 에이든 리의 흑역사를 전해 듣고 있는 다른 멤버들 사이,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나는 문득 느껴지는 현타에 잠깐 머리를 짚었다.
평소 에이든 리를 한 대는 때려 주고 싶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그 흑역사를 진심을 다해 귀담아 듣고 있던 자신을 발견한 순간 나 자신이 한심스러워졌기 때문이었다.
어찌 됐든, 그렇게 동상이몽처럼 두 쪽으로 갈려 진행되고 있던 대화는 음식이 도착함과 함께 끝을 맺었다. 긴 비행을 마치고 에이든 리의 집에서 차를 마셨을 뿐 내내 공복이던 탓에, 모두가 음식을 반겼던 것이다.
“……! 오, 맛있다.”
“헉, 솔직히 음식에 기대 없었는데…….”
“입맛에 맞다니 다행이에요. 실은 영국 음식은 정말 맛이 없어서 뭘 대접해야 하나 고민이 좀 컸거든. 여긴 이든과 엘리가 어릴 때부터 데려왔던 곳인데, 다행히 아직 맛이 괜찮답니다.”
에밀리 다이앤이 데려온 식당은 편안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이었는데, 예를 차려 식사를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단란하고 가볍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에 가까워 보였다.
격식을 차릴 필요도 없고 음식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종류였기에, 멤버들은 달갑게 식사를 이어 나갔다.
“오, 이거 오랜만이다. 맛있어.”
“으휴, 또 고기만 먹지. 이거나 먹어.”
“누나도 이거나 먹어.”
그러면서도 서로의 접시 위에 자신들이 먹기 싫어하는 음식을 올려놓기 바쁜 두 명의 모습에 멤버들은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고 말이다.
그렇게 식사 자리에서도 경쟁을 이어 가는 두 명을 보며, 에밀리 다이앤은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음식도 맛이 있는데, 여기는 손님이 직접 칠 수 있는 피아노도 있거든요. 어릴 때부터 엘리와 이든이 얼마나 경쟁적으로 저 피아노를 쳤는지. 두 명은 손님들의 박수의 크기로 누가 승자인지를 가리곤 했답니다. 대부분 이든이 이겼지만요.”
“나도 이긴 적 있어요. 그리고 지금의 이든이라면 내가 이길걸요? 쟤 손 굳었잖아요.”
“하, 누나가? 누나는 절대 나 못 이겨. 그리고 나 손 안 굳었어, 매일 건반 치니까.”
에이든 리는 거의 매일 회사로 출퇴근을 하며 작곡을 위해 작업실에 틀어박히곤 했다. 그러면서 작업실에 있는 건반을 계속해서 만지곤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엘리노어 리는 놈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정 뭣하면 지금 여기서 승부 내 볼까?”
“오, 좋지. 나부터 갈게.”
“해 봐, 어디.”
“이든, 그래도 밥은 먹고…….”
“내버려 둬요, 나중에 다 식어야 후회하고 다시는 그렇게 안 하죠.”
그에 에이든 리가 경쟁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비어 있는 피아노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에 승권 리는 그를 말리기 위해 입을 뗐지만, 곧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를 하는 에밀리 다이앤에 의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잘 보고 있으라는 듯 엘리노어 리를 쏘아보며 놈이 피아노 의자에 앉아 건반에 손을 올렸을 때였다.
“에이든 리?”
“……?”
막 연주가 시작되기 전,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놀란 목소리에 에이든 리를 비롯해 우리들의 시선은 모두 한쪽을 향했다.
“오랜만이다. 런던에 있었던 거야?”
“…벤자민?”
웬 낯선 사람이 에이든 리에게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