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498)
498화
“티켓 받아 왔어. ……응?”
건물 안쪽으로 티켓을 받으러 들어갔던 에이든 리가 한가로운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것에 엘리노어 리와 나의 대화는 곧장 중단되었다.
다만, 방금 전의 대화에서 나와 엘리노어 리의 목표는 완전히 일치될 수 있었다.
“뭐야? 또 나 욕하고 있었어?”
“잘 아네. 티켓 줘.”
“나도 줘.”
벤자민 해리슨이란 놈이 왜 에이든 리를 초대한 것인지 알아내고, 뭘 꾸미고 있든 어떻게든 에이든 리를 놈과 떼어 놓는 것 말이다.
엘리노어 리와 내가 제 손에서 빼앗듯 티켓을 한 장씩 가져간 후 먼저 연주회가 열리는 홀로 걸음을 옮기자, 에이든 리는 뒤따라오며 툴툴거렸다.
“유하 팀 멤버는 난데. 왜 엘리노어랑 놀아?”
“허, 가슴에 손을 얹고 네 행동을 되짚어 봐. 애초에 네가 유하 씨한테 믿음을 준 적이 있기는 해? 사고뭉치보다는 내가 낫다고 유하 씨도 생각하는 거지.”
“왜? 나 되게 믿음직한 멤버인데. 유하가 말해 줘.”
“진짜 내가 말해 줄 거라고 생각하고 요청한 거냐, 지금?”
홀로 이동하는 내내 에이든 리는 자신이 얼마나 믿음직한 멤버인지에 대한 열변을 토해 냈다. 물론 그건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에이든 리의 불평을 한 귀로 흘리며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벤자민 해리슨이라는 놈이 속해 있는 음악원은 영국에서도 손꼽히는 곳이라고 했는데, 그 명성을 증명하듯 홀 안쪽은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엘리노어 리? 에이든 리?”
“대체 얼마 만이야!”
“잘 지내고 있나? 저번 공연은 정말 좋았는데-”
“에이든, 언제 런던에 온 거지? 아예 돌아온 건가?”
그러다 보니 완전히 실내로 들어서자, 에이든 리와 엘리노어 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게 됐다. 두 명과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듯,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던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진 채 두 명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그러고 보면 두 명은 꽤 유명인이라고 했던가.’
이미 부모님부터 명성이 자자한 데다, 두 명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배우며 확실하게 커리어를 쌓아 올라간 타입이라고 했던 것 같았다.
엘리노어 리의 경우 한국에 방문했을 당시까지만 해도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최근 졸업한 후 떠오르는 신예 성악가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 같다.
에이든 리 또한 피아노를 치던 시절 꽤 촉망받는 인재였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가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냅다 한국에 와 버리는 선택을 해 버린 것에 충격을 받은 사람이 꽤 됐다고.
그렇듯 놈이 피아노를 치던 시절 이른바 꽤 ‘날렸기’ 때문일까,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지금도 꽤 많았다. 덕분에 놈이 아이돌이 됐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던 사람도 제법 있는 듯하고.
‘생각해 보면 에이든 리의 이력은 [디어돌> 때부터 화제였지.’
아쉬울 것 하나 없는 놈이 대체 왜 한국까지 와 아이돌에 도전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이다.
그때 [디어돌>에 참여한 연습생들이 호기심과 더불어 일종의 질투심을 담아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과 비슷하게, 놈을 알아본 사람들 또한 비슷한 말을 했다.
다만 그 안쪽에 담긴 감정은 그 당시 연습생들과는 좀 달랐다.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되기 전에 돌아오는 게 좋을 거야.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으니까.”
“지금도 잘하고 있는 건 소식을 들어 알고 있지만, 나는 아무래도 네 재능이 너무 아까운 것 같아. 줄곧 피아노를 쳤으면 에이든 리, 너는 정말 빠르게 성장해 지금쯤 프로가 되었을 수도 있는데-”
그들은 정말 아쉬워하는 마음에 에이든 리에게 당부를 전하고 있었으니까.
공연이 시작되기 전 홀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몇 번이나 건너 듣게 되었기 때문일까, 나는 그제야 에이든 리가 한 선택의 무게를 체감할 수 있었다.
‘정말 쉬운 일은 아니었던 거군, 한국으로 온다는 건.’
에이든 리가 두고 온 과거가 어떤 것인지 말이다.
“오, 저 돌이킬 생각 같은 거 조금도 없어요. 돌아올 생각 없으니까 안 기다려도 돼요.”
“응? 내 소식 전해 듣고 있었어요? 고마워요. 그럼 알겠네, 나 재밌게 하고 있는 거. 오히려 난 지금이 더 좋아요. 누구보다 빠르게 프로가 됐잖아, 원했던 대로.”
정작 에이든 리는 그런 아쉬움 속에서도 여전히 태연했지만 말이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당부와 충고, 꾸중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내는 에이든 리의 태도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옆에서 듣고 있는 나 또한 놈이 포기한 것의 무게가 느껴져 눈치가 보일 정도인데, 정작 당사자는 한가롭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내 동생이지만 진짜 밉상이야…….”
“오, 자랑스러운 동생을 잘못 말한 거지?”
한마디도 지지 않는 에이든 리의 모습에 말을 걸던 사람들이 누군가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누군가는 정말 변하지 않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 사라지는 동안 엘리노어 리는 옆자리에서 기가 차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이없어하는 한편 안심하는 듯한 그 얼굴에 에이든 리가 씩 웃으며 능청을 떠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는 이내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작한다.”
“오, 기대된다.”
“벤자민인가 하는 놈은 언제 나오지, 프로그램이…….”
어느새 객석 쪽이 어두워지고,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 * *
인터미션 시간이 돌아올 때까지도 벤자민 해리슨은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에이든 리는 이어지는 무대에서 자신의 학교 친구들을 꽤 많이 발견한 모양이었다.
“다들 잘 치더라. 학교 다닐 때랑 많이 달라져서 놀랐어.”
“당연하지, 졸업한 이후 진학해서 아예 본격적으로 연습만 했을 텐데. 애초에 이 학교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는 네가 가장 잘 알 것 아니야.”
“음, 그렇지. 나도 어릴 때는 이 학교 들어오려고 했었으니까.”
프로그램 북을 뒤적이던 에이든 리는 엘리노어 리의 대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프로그램 북 뒤쪽에 실린 얼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흘리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생각보다 더 차이가 나겠는걸, 나랑.”
“당연하지. 일, 이 년도 아니고 졸업 후 4년이야. 그 정도면 어디까지 달라질 수 있는지 모르는 게 아니잖아? 이제 저쪽은 전문적으로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인 거라고.”
“나도 전문적인데.”
“바보니? 필드가 다르잖아. POP이면 모를까, 이제 클래식은 더 이상 네 분야가 아니라구. 그런 상황에서 이든, 네가 네 동창과 맞먹으려 드는 건 욕심이야.”
“흐음.”
에이든 리는 엘리노어 리가 쏘아붙이는 말에 그런가, 하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고는 조용히 입을 다문 채 무언가를 생각하듯 눈을 내리깔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나는 놈에게 물었다.
“물어보는 걸 깜빡했는데, 벤자민 해리슨과는 어떤 사이였어?”
“벤자민? 그냥 같이 피아노 치던 사이였는데.”
“…그래, 그건 아는데. 굳이 그쪽이 널 연주회에 초대할 정도면 뭔가 또 다른 인연이 있는 거 아닌가 싶어서 묻는 거야.”
에이든 리는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듯 잠시 눈을 굴렸다. 그러더니, 잠시간의 침묵 끝에 끝내 간단하기 짝이 없는 말을 내뱉었다.
“…연습실에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이?”
또 한 번 본인을 제외하곤 누구도 단번에 알아먹을 수 없는 대답을 내놓은 것이다.
“네가 귀신을 봤다는 그 연습실?”
“으, 귀신 이야기는 하지 마. 하지만 맞아, 그 연습실이야. 항상 벤자민과 내가 가장 오래 남아 있었어.”
“…….”
여전히 부족한 설명이었지만, 엘리노어 리로부터 벤자민 해리슨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얻어 들은 덕분에 대충 에이든 리와 놈이 어떤 관계였는지는 알 것 같았다.
매번 에이든 리의 뒤에서 놈을 죽일 듯 노려보고, 그와 함께 가장 오래 연습하던 사이.
“높은 확률로 저쪽이 널 싫어했을 것 같은데.”
확실하게 경쟁한 사이다. 태도를 보면, 벤자민 해리슨이 일방적으로 에이든 리를 견제했던 듯하고.
“응, 맞아.”
“…….”
그런 판단 끝에 내뱉듯 던진 말에 에이든 리는 선선히 긍정했다. 그에 내가 놈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에이든 리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을 내내 싫어하던 놈을 만나러 온 게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넌 그런 놈이 널 초대하는데 순순히 응해 준 거고?”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나도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이 자식은 전쟁터에서도 남이 깔아 둔 함정을 알고 밟아 줄 놈이군, 정말로.
보통은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피하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이 의문스러운 제안을 건넨다면 더더욱.
그런데도 그저 ‘궁금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걸어 들어와 한가롭게 무대나 기다리고 있다니.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물었다.
“벤자민 해리슨에 대해 너는 딱히 가지고 있는 감정이 없어?”
놈의 대꾸는 여전히 간단했다.
“응, 없어.”
이번에도 기묘하기까지 할 정도로 담백한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왜?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쪽도 꽤나 했던 놈 같은데. 너랑 경쟁하던 사이 아니야?”
“경쟁하던 사이지. 그런데 그때도 별생각 없었어.”
“왜?”
경쟁에 대해서는 언제나 진심인 놈이 뒤를 따라붙었던 인간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다니. 그 이유를 묻는 내게 에이든 리는 천천히 한마디만을 해 주었을 뿐이었다.
“재미없었거든.”
“…….”
또 의문스러운 말이다. 내가 그 뜻을 묻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을 때였다.
짝짝짝-
인터미션 시간이 끝이 난 듯 객석이 다시금 어두워지고, 누군가가 무대로 걸어 나옴에 따라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에 나는 다시금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또 얼마쯤의 시간이 흘렀을까.
에이든 리가 반가워하는 얼굴이 몇 명 더 지나쳐 가고, 사람들이 이어지는 공연에 완전히 빠져들었을 때쯤.
“OK, 나왔네.”
마침내 기다리던 얼굴이 나왔다.
거의 마지막 순서. 엘리노어 리의 중얼거림 사이, 사람들의 박수를 들으며 무대로 걸어 나온 벤자민 해리슨은 피아노에 앉기 전 잠시 객석을 향해 인사했다.
“…….”
그 눈이 객석을 훑었을 때, 단번에 이쪽을 찾아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건 착각일까.
아주 잠깐, 스치던 시선이 확실히 한곳에 꽂혀 든 것 같다는 직감에 나는 옆을 바라보았다. 에이든 리는 가만히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벤자민 해리슨의 눈길이 자신을 향한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 혹은 별다른 생각이 없다는 듯.
짧은 인사 끝에 사람들의 잦아드는 박수 소리를 들으며 피아노에 앉은 벤자민 해리슨은 한차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모든 소음이 잦아들었을 때.
♬♩
건반을 치는 것으로 홀을 완전히 제가 내는 소리로 채워 나갔다.
“…….”
이어지는 연주를 들으며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딱 하나의 감각만 들었을 뿐이었다.
‘잘 치네.’
클래식과는 거리가 있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지만, 나 또한 소리의 질 정도는 분별할 수 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보다는 떨어질지 몰라도 스스로 판단은 내릴 수 있단 거다.
무딘 내 귀에도 벤자민 해리슨은 충분히 잘 쳤다. 학창 시절의 경쟁 상대를 연주회에 당당히 초대할 자신감을 내보일 만큼은 되었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나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우습지도 않은데, 이건.’
벤자민 해리슨이 왜 에이든 리를 초대하려고 한 것인지.
큰 경계를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벤자민 해리슨은 에이든 리를 해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놈은 딱히 큰 함정을 파 놓았던 게 아니었다. 에이든 리를 교묘하게 소외시키려 한다거나, 놈이 불리해질 상황에 밀어 넣으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나와 엘리노어 리가 그토록 경계를 하면서 이 자리까지 따라올 필요까지는 없었겠지만, 그렇다 한들 나는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 자리에 내가 함께 있지 않았다면, 나는 에이든 리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영영 몰랐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벤자민 해리슨은 에이든 리가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하지도 않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을 확실하게 ‘엿 먹일’ 어떤 상황을 연출하고 싶었던 듯하니까.
♬─
자신은 피아노를 치고 있고, 객석에는 에이든 리가 앉아 있으면서.
짝짝짝-
공연이 끝난 후에는 에이든 리가 자신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는 장면을.
그 위치를 연출해 본인이 어디까지 도달해 있는지를 알려 주기 위해.
“응, 잘하네. 좋았어.”
“…그래? 나랑은 다르네.”
그런 식으로 저열하게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고 싶어서.
“기분 더러운 연주였는데, 나한테는.”
그게 아니라면 저딴 시선을 보낼 리 없지 않나.
모든 연주가 끝이 난 후 노골적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여전히 낮잡아 보는 눈빛을 보낼 이유가.
에이든 리에게서 일방적으로 승리를 거둬 낸 것 같은 표정을 할 리가 없지 않나.
그래서일까. 나는 나답지 않은 짓을 해 보기로 했다.
“공연 잘 봤습니다. 말도 없이 일방적으로 따라와 죄송합니다만.”
“잘 보셨다면 됐죠. 그나저나 예상외로 영어를 하시는…….”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는 저희가 보답할 차례인 듯하네요. 에이든이 이런 데에 신경을 썼을 리 없으니, 이번엔 제가 초대해 보고 싶어서요.”
“…네?”
“공연이요. 궁금해하실 듯해서요.”
“…….”
“에이든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이번에는 우리 파티에 불청객을 초대해 보기로 한 거다.
의도는, 저쪽과 완벽하게 같은 이유로 불순했고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