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499)
499화
“와, 저기 에이든 얼굴 좀 봐. 대단한데.”
“내가 말했잖아, 이든은 유명하다고. 그거 못 봤어? 이번에 더 트렌타랑 한 두 번째 컬래버가 엄청나게 유행하고 있어서-”
“…….”
벤자민 해리슨은 친구들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눈앞에 자리한 건물을 바라보았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건물에는 에이든 리가 속해 있는 그룹과 투어의 이름, 그리고 일곱 명의 멤버들이 프린트되어 있는 현수막이 건물을 온통 뒤덮기라도 할 것처럼 걸려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즐거움으로 달뜬 얼굴을 한 채 에이든 리의 이름이 영어로, 혹은 그가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적혀 있는 슬로건을 든 채다.
그가 살아온 인생에 없던 이질적인 분위기, 낯선 공간. 그 모든 것들이 거슬렸지만, 그중에서도 벤자민 해리슨을 참을 수 없이 불쾌하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모든 것을 change
완성될 시간이야
“…….”
바로 어딜 가든 에이든 리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사실 말이다.
‘거절을 했어야 하는데.’
벤자민 해리슨은 주변을 구경하는 데 여념이 없는 친구들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후회를 씹어 삼켰다.
일의 발단은 에이든 리가 동행으로 제 팀의 멤버를 데려온 것부터였다.
-에이든! 세상에, 대체 언제 런던에 온 거야?
-뭐야? 에이든 리가 왔다고?
연주회가 끝난 후, 에이든 리는 제 팀의 멤버와 엘리노어 리를 데리고 자신과 동창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동창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의 등장에 반가워하는 한편, 그를 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다.
-졸업 후 처음 보는 거지? 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졸업식에서도 졸업장만 받고 사라져 버렸잖아. 네가 한국에 갔다는 소리를 듣고 다들 얼마나 놀랐다고!
그럴 법했다. 에이든 리가 피아노를 접었다는 사실은 그와 함께 음악을 했던 동창들에게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에이든 리가 누구인가. 전 세계적으로 확실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첼리스트 에밀리 다이앤과 승권 리의 아들로, 누나인 엘리노어 리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온갖 대회를 휩쓴 인물 아닌가.
영국에서 클래식을 하고 있다면 리 남매를 모를 수 없었고, 그건 그들과 또래일수록 더더욱 그랬다. 훗날 확실하게 프로가 될 남매를 가까이에서 지켜본다는 것은 축복인 한편 재앙이었던 것이다.
-에이든 리는 한 번도 시상대에 오르지 않은 적이 없네.
그건 그들과 또래인 이상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겨야 했음을 뜻했으니까.
때문에 남매를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언제나 둘로 나뉘곤 했다. 동경, 혹은 질투.
벤자민 해리슨은 명백한 후자였다.
‘기껏해야 부모 잘 만난 덕밖에 없으면서.’
실은, 그보다도 더 나아간 상황이었지만.
벤자민 해리슨은 시상대에 오르는 에이든 리를 볼 때마다 줄곧 그런 생각을 했다. 부모를 잘 만나 어릴 때부터 그 누구보다도 양질의 교육을 받고, 부모의 이름값으로 언제나 시상대에 오르는 녀석이라고.
자신 또한 그런 부모가 있었다면, 에이든 리만큼은 당연히 칠 수 있었을 거라고.
그러니 에이든 리와 자신이 다른 점은 고작 부모에 대한 운, 그 정도뿐이었을 텐데.
-벤자민, 난 네가 재미가 없어.
에이든 리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을 보며 그딴 건방진 소리나 지껄일 만큼.
어쩌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에이든 리가 시상대에 올랐던 날이었을까. 어느 날의 정기 연주회 날이었을까.
에이든 리는 언제나처럼 가장 많은 환호와 박수를 들었고, 그에 대해 겉치레 같은 축하 인사를 건넬 겨를도 없이 벤자민 해리슨은 제가 가지고 있는 반감을 에이든 리 앞에서 드러내 버리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만 아니었어도 난 내게 걸맞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을 거야!
에이든 리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기는 데는 이미 신물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벤자민 해리슨은 또래 중에서도 손꼽히게 잘 쳤다. 에이든 리의 뒤를 이어 가장 많이 시상대에 오르는 인물을 꼽으라면 바로 자신이었을 테니까.
그런데도 에이든 리 때문에 그는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에서 한발 빗겨 나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건 그에게 언제나 들끓는 듯한 열패감을 안겨 주곤 했다.
만약 에이든 리가 좀 더 겸손한 놈이었다면 달랐을까.
에이든 리는 타인이 받을 주목까지도 모두 독차지하는 와중에도 주변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그런 점이 벤자민 해리슨을 더더욱 미치게 했다.
‘본인의 상대가 될 사람은 누구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기껏해야 제 부모를 통해 만들어진 천재인 주제에.’
그래서 끝내 참지 못하고 분노를 내뱉었지만, 그 고함에도 에이든 리는 고요했다.
-그래? 안됐다. 근데 그게 내 잘못이야?
그리고는 끝내 그딴 말이나 내뱉은 것이다.
어이가 없어 입만 벙긋대고 있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에이든 리는 그 뒤로 딱 한마디만을 덧붙였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을 재미없게 생각한다고.
그 말은 오래도록 벤자민 해리슨의 귓가를 맴돌았다.
-에이든 리가 피아노를 더 이상 치지 않는다고 했다고?
-그래, 아이돌을 하러 간대.
그래서 에이든 리가 그의 앞에서 사라졌을 때, 벤자민 해리슨은 비로소 해방될 수 있었다.
제 귓가를 괴롭히던 말에서. 제 앞을 가리는 그림자에서.
‘저 자식이 왜 여기에 있지?’
때문에 자주 가던 레스토랑에서 에이든 리를 보았을 때, 벤자민 해리슨이 느낀 것은 거의 공포에 가까운 경악이었다.
오래전 자신의 인생에서 사라졌던 놈이 아무렇지도 않게 런던을 돌아다니고 있다니. 뭣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피아노에 손을 올리고 있다니.
-에이든 리?
말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에이든 리가 다시 피아노를 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에이든 리는 제 가족과, 그리고 한국에서 같이 팀을 하고 있다는 동양인들과 함께였다.
그 얼굴들은 조금 낯이 익었다. 에이든 리가 한국을 떠나고, 웬 괴상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벤자민 해리슨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에이든 리의 소식을 찾아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굴조차 구분할 수 없는 동양인들이 떼거지로 몰려 나와 나이에 맞지도 않는 교복을 입고, 사람들에게 투표를 구걸하던.
그 고고한 에이든 리가 밑바닥으로 떨어져 사람들의 관심을 호소하던 모습.
겨우 저러려고 피아노를 포기했나.
벤자민 해리슨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던 대로 피아노를 쳤다면, 런던에서의 삶을 이어 나갔다면 이딴 꼴이 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약속되어 있던 빛나는 미래와 본인의 재능을 포기하고 먼 동양까지 가서 기껏 한다는 게 이딴 것이라니.
그때 벤자민 해리슨은 처음으로 에이든 리의 모습을 비웃어 줄 수 있었고, 그 이후 그의 소식을 다시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 나락으로 떨어진 에이든 리에게는 그럴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데뷔한 이후의 소식은 잘 보고 있었어. 난 네가 노래를 만들 수 있는지도 몰랐는데!
-세상에, 그리고 이쪽은… 맞네, 유하! 너희 팀 리더, 맞지?
-오, 알아?
-당연히 알지. 난 네 팬은 아니지만 이쪽의 팬이거든. 반가워요!
다만 그런 자신과는 달리, 에이든 리의 행적은 그의 친구들에게는 언제나 화제였던 모양이었다. 에이든 리를 따라온 동행의 얼굴마저 알아볼 만큼.
-반갑습니다. 원유하입니다.
구분하지 못하는 얼굴들 중 하나일 뿐이었던 인물이 입을 열며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런 그를 감탄하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친구들과 그의 대화가 이어지고, 원유하가 끝내 자신에게도 말을 건넸을 때, 벤자민 해리슨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공연에는 같은 값으로 보답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자신과 제대로 말을 섞을 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외부인이, 그를 자신들의 영역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심도 없는 공연을, 게다가 에이든 리를 보러 가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그가 거절하려 했을 때였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로 와 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오, 우리도……?
-어떡해, 나 티켓팅 실패했었는데! 고마워요, 유하! 무슨 일이 있어도 갈게요. 다들 갈 거지? 응, 벤자민?
원유하가 빙긋 미소 지으며 함께 있던 다른 친구들까지 함께 초대를 하는 통에, 벤자민 해리슨은 끝내 거부의 말을 내뱉지 못했다.
-꼭 와 주세요. 실망시켜 드릴 일은 없을 겁니다.
-아니, 나는…….
-자부하고 있거든요, 저희는. ‘볼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만족시켜 드릴 수 있다고.
-…….
그 ‘동행’이 자신을 그렇게 두지 않았으니까.
훑어보는 듯한 시선. 무엇 때문에 자신이 에이든 리를 연주회장으로 불렀는지 알고 있다는 듯, 사람을 우습게 보는 시선은 누군가를 꼭 닮아 있었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오래전, 자신만이 잘난 줄 알고 저를 하찮게 바라보던 에이든 리의 경멸을 띤 시선과.
“오, 자리 좋다.”
“나 진짜 눈물 날 것 같아……. 정말 보고 싶은 공연이었는데.”
“그 정도였다고? 언제부터 그렇게 이든에게 진심이었던 거야, 너?”
“미안한데, 이든에게 진심이라고 하지 말아 줄래. 내가 진심인 건 원디어야. 세상에, 너희들도 공연을 직접 보면 알 거야. 다들 얼마나 잘한다고.”
때문에 벤자민 해리슨은 제 친구들과 함께 거북한 기분을 감내하며 공연장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게 된 것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들은 공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그중에서도 평소 에이든 리, 정확히는 그가 속한 원디어의 소식을 지속적으로 찾아보았다는 친구가 흥분한 목소리로 열변을 토해 냈다.
“이렇게까지 마음이 잘 맞는 팀도 없어. 뭣보다 이든이 작곡한 곡들은 어떤데. 피아노를 잘 치는 것만 알았지, 난 이든이 그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니까.”
“작곡까지 잘하다니, 세상 참 불공평하네. 대체 에이든의 재능은 어디까지인 거야?”
“재능뿐이겠어? 이든은 그만큼의 노력도 하잖아. 학교 다닐 때에도 가장 오래 연습실에 남는 애였잖아, 그렇지, 벤자민?”
“…뭐? 아, 그렇지.”
벤자민 해리슨은 화제가 제게 돌려진 것에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연습실을 이야기하면, 벤자민 해리슨은 가장 먼저 다른 것이 떠올랐다.
♪♫
중요한 대회가 지척에 다가와 있던 때. 사람 없는 연습실에 울려 퍼지던 에이든 리의 피아노 소리.
그것을 듣다 못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 된 자신이 연습실을 떠나는 척 문을 열고 닫았던 것. 에이든 리의 피아노 소리를 흉내 내 몇 번이고 재생시킨 것.
어딘가로 뛰쳐 나가던 에이든 리의 발소리와, 도망친 에이든 리의 모습에 신나게 웃다 말고 2층 창문을 통해 건물을 빠져나가는 에이든 리를 바라보던 자신의 모습과,
숨을 새도 없이 뒤돌아본 에이든 리와 눈이 마주쳤던 그때.
그 숨막히던 침묵이.
“와아아아!”
“시작한다!”
“……!”
그때의 기억에 함몰되어 가던 벤자민 해리슨은 곧 주변이 뒤흔들리는 것만 같은 거대한 함성에 끝내 상념에서 깨어났다.
공연장이 어두워져 가고, 사람들이 손에 쥔 응원봉이 빛을 발한다.
♫
공연장으로 들어오는 내내 들었던, 귀를 이지럽히는 리듬이 흘러나오고.
“와아아!”
“…….”
벤자민 해리슨은 곧, 숨을 멈추었다.
무대를 향해 파랗게 비춰 들어가는 조명 사이,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선 에이든 리의 모습에.
‘…뭐야, 저건.’
순간적으로나마 압도되는 자신을 느꼈기 때문에.
잊은 줄 알았던 열패감이 목구멍을 타고 치솟아 오른 탓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