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501)
501화
공연이 끝난 후, 에이든 리는 자신을 찾아온 친구들과 함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벤자민은 먼저 돌아갔어. 할 일이 있대.”
그 무리에 벤자민 해리슨은 없었다.
“그래? 알았어. 재밌었어?”
“아, 너무 좋았어! 특히 이번에 너와 유하가 한 무대가…….”
“나는 현진의 독무가 좋았는데….”
에이든 리는 별달리 아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단지 즐거워하는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멤버들에게 그들을 소개시켜 준 후 되돌아와 한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아쉽다. 벤자민은 공연을 못 즐겼나 봐.”
“…….”
참 에이든 리다운 말이었다.
벤자민 해리슨이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 어떤지 대충은 알고 있을 텐데, 끝내 자신을 만나러 오지도 못하고 가 버린 놈에 대해 하는 말이 이런 것이라니.
놈다운 반응에 헛웃음을 흘리던 때였다. 나는 문득 놈이 뱉어 낸 물음에 움찔하고 말았다.
“유하는 만족했어? 화나서 초대한 거였잖아.”
“…알고 있었냐?”
에이든 리가 내가 어째서 벤자민 해리슨을 초대했는지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멀뚱히 날 쳐다보면서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벤자민의 연주를 듣고 기분 더러웠다고 했잖아, 유하가. 그다음에 초대한 거면 화나서 한 거겠구나 싶었어.”
“알면서 용케 안 말렸네.”
“말릴 이유가 없으니까? 벤자민이 공연에 초대해 준 건 맞고, 유하 말도 맞다 싶었어. 공연에는 공연으로 보답하는 거.”
벤자민 해리슨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자신에게 보여 준 것이라면, 그도 똑같이 해 주고 싶었다며 에이든 리는 씩 웃었다.
“그래서, 만족했어?”
“만족이고 뭐고… 그냥 분풀이였어.”
그리고 그 분풀이는 성공한 듯했다.
공연을 보고도 떳떳한 마음이 있었다면, 벤자민 해리슨은 에이든 리에게로 찾아왔을 것이다. 레스토랑에서 마주쳤듯 멤버들을 낮잡아 보고 에이든 리의 무대를 비웃어 주기 위해 왔겠지.
하지만 벤자민 해리슨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으로 알 수 있었다.
이 공연이 벤자민 해리슨에게는 충분히 징벌 같은 시간이 되었으리라는 것을. 그는 다시 에이든 리를 감히 비웃지 못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유하가 대신 화내 줘서 고맙다고 해야 되나.”
“…됐어, 스스로 유치한 짓을 했다는 감각은 있으니까.”
나는 장난스러운 에이든 리의 물음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연주회에서 벤자민 해리슨의 눈빛을 보고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아 냅다 벌인 일이긴 했지만, 이렇게 공연이 끝나고 나니 나름대로의 반성이 찾아들긴 한 상태였다.
‘결국 무대를 이용한 셈이니까.’
모두가 즐기는 와중에 나 혼자 다른 목적을 품고, 놈을 찍어누르기 위해 무대에 변주를 준 것이기도 하니까.
화가 난 이유는 명확했다. 나는, 누군가가 에이든 리의 선택을 바보 취급하는 걸 더는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놈을 쉽게 보는 것도 싫었고.
“그래도 덕분에 나도 내가 노력한 걸 보여 줄 수 있게 됐잖아. 친구들이 좋아해 주니까 뿌듯했어.”
에이든 리가 어떤 노력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나는 모르지 않았으니까.
에이든 리는 육 개월이라는 짧은 연습생 시간을 거쳐 데뷔에 성공했다. 그건 놈의 타고난 리듬감과 음악적인 능력, 독보적인 재능 덕분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끝없는 노력 덕도 있었다.
에이든 리는 티를 내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놈이었으니까.
외향적인 성격임에도 언제나 작업실에 틀어박혀 원디어를 위한 곡을 만들고, 짧은 연습생 기간 덕에 연습생 시절 배우지 못했던 동작이 나오면 그게 몸에 익을 때까지 수천 번을 움직인다.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한들, 놈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빛을 발할 일은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기분이 나빴나.’
뭣도 모르는 놈이 에이든 리를 운 좋은 놈 취급하는 게. 아무 생각 없이 제 커리어를 내던진 놈 취급한다는 게 난 싫었던 거다. 놈이 나를 비롯해 멤버들과 함께 보낸 시간을 낮잡아 보는 것도.
뭐, 까도 내가 깐다는 마음도 있긴 했겠지만.
“오랜만에 피아노도 쳤고. 난 좋았어. 런던에서 다시 피아노를 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생각을 이어 나가던 중, 나는 문득 들려온 말에 에이든 리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주 잠깐, 내뱉어도 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때문에 나는 그대로 침묵할지, 입을 열지 조금 더 고민을 이어 나갔지만.
“…넌 정말 안 아쉬워? 피아노 말이야.”
끝내 그렇게 묻고 말았다. 혹시 모를 부분을 헤집는 게 아닌가 싶은 한편, 에이든 리의 태도에 호기심이 인 탓이었다.
에이든 리는 공연장에서 제 친구들의 연주를 보며 ‘이제 나와는 차이가 나겠다’고 말했다.
얼굴은 덤덤했지만, 한때 자신이 탑을 달렸던 분야에서 빠져나와 멈추어 선 자신을 앞질러 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는 게 유쾌한 기분을 주었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 에이든 리는 그 누구보다 경쟁심 많은 놈이 아닌가.
아주 잠깐이라도 후회를 하거나 아쉬움을 느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물은 말이었으나, 그에 대한 놈의 대답은 담백하기 짝이 없었다.
“별로.”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에이든 리는 단번에 그렇게 대꾸한 것이다.
그 단호한 대답에 내가 잠시 할 말을 잃자, 에이든 리는 이번에는 친절하게 뒷말을 덧붙여 주었다.
“나는 지금 재밌게 음악하고 있잖아. 그거면 된 거야, 나는. 오히려 계속 영국에서 피아노 치는 게 더 빨랐을걸.”
“…뭐가?”
“그만두는 거.”
“…….”
“그렇게 스스로 질려서 그만뒀으면, 아마 평생 어떤 식으로든 안 쳤겠지.”
그때에 비하면 훨씬 나은 거야, 냉막한 얼굴로 그렇게 대꾸한 에이든 리는 곧 백스테이지 쪽으로 들어오는 본인의 가족을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그쪽으로 가 버렸다.
‘…저놈은 절대 후회를 안 하는군.’
그에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소파에 앉았다.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에이든 리의 가볍되 뒤끝 없는 태도에 별수 없이 안도가 든 탓이었다.
나는 벤자민 해리슨에 의해 에이든 리가 후회를 할까 봐 걱정했던 거니까.
혹시나 한국으로 떠나온 자신의 선택을 되돌아보게 될까 봐.
…런던을 떠나왔듯,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혹시나 원디어를 떠나갈 마음을 먹게 될까 봐.
하지만, 나는 에이든 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말고 문득 그 생각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연습을 하다가 생각했어요. 난 여기까지라고. 피아노를 치는 건 즐겁지만, 더 이상은 아니라고. 이 이상 하면 정말 끝나 버릴 것 같다고요. 즐거우려면, 난 더 나아가야겠다고.
뒤늦게 에이든 리가 다큐멘터리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 탓이었다.
무엇이 에이든 리에게 그런 감정을 이끌어 낸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에이든 리가 피아노를 사랑했다는 거였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피아노를 그만두지 않기 위해, 더 나아가 음악을 관두지 않기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니까.
-나는 같이 즐기고 싶었거든요, 많은 사람들과. 그래서 지금에 만족해요. 음악에 질리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거야.
그러니 실은, 내가 한 걱정은 정말 쓸데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에이든 리는 이미 오래전에 결정을 내린 것이니까. 더 오래 음악을 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나는 에이든 리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어디까지 치열해지고 집요해질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내가 하는 건, 그런 에이든 리의 결심에 화답을 하는 것일 터였다.
“유하! 부모님이랑 같이 사진 찍자!”
“네 가족 중에 나는 없어? 왜 나는 쏙 빼고 말해?”
“어, 누나는 찍든지 말든지…….”
“유하 씨, 이 자식 빼고 우리랑만 찍어요. 엄마, 아빠, 우리 집 가족사진 이든 빼고 유하 씨랑 찍은 걸로 교체하면 안 될까? 나는 이런 동생 두기 싫어.”
“어, 나 이제 그럼 형제 있는 거야? 잘됐다. 나도 누나 말고 형제가 좋은데. 내가 생일이 빠르니까 형인가? 유하, 형이라고 불러 봐.”
“좋은 날에 욕하게 하지 마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 덕분일까, 나는 그제야 에이든 리를 ‘놀라게’ 할 방법을 떠올려 낼 수 있었다.
* * *
미주 투어에 이어 런던, 파리, 독일, 스페인을 거친 원디어의 유럽 투어가 이어지는 동안.
-원디어 보고 싶다
-월드투어 대체 언제 끝나는데요…..
-한국 대체 언제 다시 원디어 보유국 되는 거냐
-원디어 지금 뭐 하고 살까 물론 투어를 도는 건 알고 있고요 그냥 뭐 하고 사는지 궁금해서요
한국의 유어원들은 앓는 소리를 내며 죽어 가고 있었다.
월드 투어가 불러오는 원디어의 공백이 참을 수 없이 쓸쓸했던 것이다. 자고로 팬이란 매일 얼굴을 보는 게 아니더라도 같은 하늘 아래 최애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괴로운 법이었으니.
월드 투어를 떠나기 전, 원디어가 바쁘게 찍어 둔 자체 콘텐츠인 메큐원(a.k.a 레스큐 유어 원디어)가 주에 한 번씩 나오는 덕에 그나마 무료함을 달랠 수는 있었지만, 활동기와 연말 무대를 지난 후에 이어진 투어이기 때문일까. 공백은 더욱 큰 듯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원디어의 두 번째 단독 콘서트를 촬영해 편집한 영화가 개봉했다는 것이었지만, 영화를 통해 즐거웠던 단독 콘서트의 추억을 되새긴 유어원들은 오히려 한층 더 깊어진 그리움에 제발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혹시 새로운 소식이 도착하지는 않나, 유어원들이 손꼽아 공식 계정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이거뭐냐
-아니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진ㅉㅏ 뭐야…?
-원디어 얘네 지금 뭐 하는 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알게 될 거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는데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어원들은 공식 계정이 아닌, 새해에 이어 또 한 번 떠오른 ‘목격담’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찍어 올렸던 조악한 사진들에 비해 이번의 ‘목격 인증 샷’은 조금 더 고퀄이었다.
-얘네 왜 웸블리에 있냐
-아 ㅅㅂ외국 축구 경기 보다가 내 최애를 목격하는 팬이 있다?
-아 이 와중에 카메라가 자기 찍고 있는 거 알고 손 흔드는 거 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관중으로 잡혔는데도 어쩔 수 없는 >>아이돌력[[ 어쩔 거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치겠다 집중해서 축구 보는 사람들 사이 아무리 봐도 절대 그냥 관중이 아닌 미친 얼굴 일곱 명이 쪼르르 앉아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재 아이돌들은 축구를 보러 가도 카메라에 잡히는구나.. 이게 바로 스타성?
이번에 뜬 원디어의 목격담은 바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 팀들이 맞붙는 결승전이 열리는 웸블리 스타디움의 관중 캠에 포착된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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