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502)
502화
미주 투어에 이어 유럽 투어까지 끝이 난 후, 아시아 투어를 대비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남은 일주일. 우리는 예정돼 있던 리얼리티 촬영을 위해 서로가 원하는 지역을 꼽았다.
원디어의 해외 리얼리티가 촬영되는 장소는 세 국가였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스위스.
“와아아…….”
그중 내가 고른 장소는 에이든 리의 고향인 영국이었다.
영국, 그것도 런던이 홈그라운드인 놈을 어떻게 ‘놀라게’ 만들며, 또 만족시키고, 무엇보다도 본인을 위한 것임을 적당히 숨기느냐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았다.
때문에 나는 이번에도 일종의 블러핑을 쳐 보기로 했다.
“형들! 저기, 저기부터 가 보면 안 돼요? 저 유니폼 살래요!”
“……! 같이 가자, 찬희야. 나도 하나 사고 싶어.”
“찬희야, 단우야, 인파가 너무 많으니까 단독행동 하면…… 음, 이미 떠나 버렸네.”
“단우 형 저렇게 흥분하는 거 처음 보네요.”
“단우는 스포츠 좋아하니까. 찬희도 오늘 경기하는 축구 팀의 오랜 팬이라고 했었고.”
“하긴. 신기하긴 하네요, 이렇게 경기를 보러 오게 되다니…….”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명확히 특정할 수 없는 일정을 끼워 넣음으로써 오늘의 여행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기 어렵게 하는 수를 쓴 것이다.
예상대로, 웸블리 스타디움에 도착하자마자 축구를 좋아하는 멤버들은 흥분한 채 주변을 둘러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주단우, 유찬희는 멤버 중 제일 눈을 빛내고 있었고, 가끔 스포츠 경기를 보곤 하는 다른 멤버들 또한 흥미가 가득한 눈을 하고 있었다.
“오, 잘됐다. 나 트레이닝복 필요했는데 여기서 하나 살까.”
다만 에이든 리는 축구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영국인답지 않게 그 어떤 팀도 응원하지 않고 있는 탓이었다.
액티비티나 문화생활은 좋아하지만, 스포츠 종류는 즐겨보지 않는다는 에이든 리는 흥분한 멤버들 사이에서 여유롭게 운동할 때 입을 옷이나 쇼핑하고 있었다. 오늘의 일정이 본인을 위한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다만, 놈도 적당히 즐기고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우리 이걸로 단체복 하나 맞추자. 경기 볼 거니까 다 같이 입으면 좋잖아~.”
온 김에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려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여기저기 입고 다닐 만큼 범용성 좋은 디자인인 데다, 팀 내에 극성팬이 두엇 있다 보니 의견 일치는 쉬웠다. 분위기를 타고 에이든 리의 제안은 쉽게 받아들여져, 멤버들은 모두 한 팀의 유니폼을 맞춰 입고 기념품 숍을 나오게 된 것이다.
“와아아…….”
“이걸 내 눈으로 보다니… 너무 신기해…….”
그다음에 우리가 들른 곳은 따로 마련된 전시회장이었다.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치르는 팀들의 트로피나 유니폼 등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전시장은 또 한 번 축구를 좋아하는 멤버들에게 신기한 감상을 안겨 준 모양이었다.
“…….”
물론, 나는 그 기록을 보라고 전시회 투어 일정을 여행 플랜에 끼워 넣은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반짝대는 눈으로 축구 팀의 기록을 구경하는 멤버들 사이, 한가롭게 걸음을 옮기던 에이든 리는 어느 한쪽에 멈추어 섰다. 그곳에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한 팝 가수와 밴드, 팀들의 포스터와 그들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 기념품 등이 자리해 있었다.
“나도 이거 봤었는데.”
그중 에이든 리는 한 팀의 이름이 적혀 있는 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나는 가만히 놈의 옆으로 다가서 물었다.
“네가 처음 본 콘서트라고 했나, 저게?”
“응, 어릴 때 가족끼리 갔었어.”
에이든 리가 보고 있는 것은 영국 출신의 유명 팝 밴드의 포스터와 전시 물품이었다. 반갑다는 듯 얼굴에 미약하게 미소를 머금은 에이든 리는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당시를 되짚듯 눈을 굴렸다.
“진짜 충격이었는데. 저런 음악도 있다는 거.”
어릴 때부터 줄곧 피아노를 쳐 왔던 에이든 리에게 익숙한 건 클래식이었다.
어머니인 에밀리 다이앤이 켜는 첼로 소리, 아버지인 승권 리가 치는 피아노 소리, 누나인 엘리노어 리가 부르는 성악에 익숙했던 그는 어느 날 승권 리가 틀어 놓은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클래식 이외에도 장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 아빠가 나 목마 태워 줬었어. 착각일 수도 있는데 눈도 마주쳤었던 거 같아.”
그리고 승권 리는 팝에 흥미를 보이는 아들을 위해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팝 밴드의 공연을 보러 가게 된다.
에이든 리는 승권 리의 목마를 탄 채 팝 밴드의 공연을 보았고, 그 이후 밴드의 팬이 됨과 동시에 팝에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공연을 보러 다녔다는 것 같았다. 그러다 투어를 온 한국 아이돌 팀의 무대를 보고 나서는 K-POP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러고 보니 작년에 열린 공연에는 못 갔네. 그건 좀 아쉽다.”
때문에 에이든 리에게 있어 그 팝 밴드는 영원한 아이돌로 자리 잡았다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 최초의 팀이니까.
그렇기에 열리는 콘서트에는 매번 가곤 했다는 에이든 리는, 아이돌로 데뷔한 이후에는 단 한 번도 밴드의 공연을 보지 못했다며 뒤늦은 아쉬움을 토해 냈다. 해당 팀은 아직까지 한국에는 내한 공연을 오지 않았기에, 앞으로도 볼 길이 요원하다는 거였다.
“뭐, 별수 없지. 나도 일해야 되니까.”
“…….”
그에 혀를 차면서도 끝내 발길을 돌리는 에이든 리를 먼저 보내고, 나는 잠시 전시 물품과 포스터에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는 놈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 * *
“화이팅!!”
“힘내라!!”
관람이 끝나고 저녁 즈음이 되었을 때, 우리는 나란히 유니폼을 갖추어 입은 채 경기장 안쪽에 들어와 있었다.
사람들로 가득 찬 경기장은 엄청난 환호성으로 꽉 채워져 있었는데, 멤버들이 팀을 응원하느라 바쁜 한편 에이든 리는 다른 이유로 부산해 보였다.
“흠, 소문대로 진짜 맛없네.”
“넌 맛없다는 걸 알면서 왜 굳이 그걸 사 먹냐?”
“경험이지, 경험~ 나 원래 이런 거 좋아해. 맛없는 건 맛없는 맛으로 먹는 거야.”
한가득 사 온 경기장 음식을 먹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눈앞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나 주변의 상황에는 영 관심이 없다는 듯, 에이든 리는 맛없기로 소문난 음식들을 하나하나 평가하느라 바빠 보였다.
그러면서도 눈은 느긋하게 경기장을 훑고 있었는데, 축구에 집중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에이든 리의 목적은 다른 데 있는 듯했다.
“공연 열리면 여기까지 소리 닿을까?”
에이든 리는 ‘공연장’으로 변모하기도 하는 경기장의 크기를 가늠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리는 어떻게 울려 퍼지고, 선수들이 뛰고 있는 저 필드에는 어떻게 무대가 세워지고, 사람들은 그때 어떻게 환호하게 될지 궁금하다는 것처럼.
그때 무대에 서 노래를 하게 되면, 공연장의 맨 끝까지도 소리가 제대로 닿을지 미리 파악해 두고 싶다는 듯이.
“형은 진짜 공연밖에 관심이 없네요. …으, 뭐야. 이런 걸 대체 왜 먹고 있어요?”
“재밌는 맛이잖아~. 어쨌든, 미리 알아 두려고.”
그에 옆자리에서 축구를 보던 천세림이 에이든 리가 사 온 감자튀김을 하나 주워 먹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곧 반 입밖에 못 먹은 감자튀김을 그대로 종이 그릇에 내려놓고 말았지만.
“나 언젠가는 여기서 공연하고 싶거든. 저번에 유하랑도 약속했었어.”
“그땐 반쯤 일방적이었지만.”
“하하, 말은 그렇게 하면서 유하 너도 이제 완전 진심인 것 같던데? 이번에 런던 공연 하면서 유어원 앞에서도 약속했잖아. 런던의 가장 큰 공연장에서도 공연을 할 수 있게끔 더 잘해 보겠다고.”
듣고 있던 도지혁이 빙긋 미소 지으며 능청을 떠는 통에 나는 말을 줄였다. 또 한 번, 이번 런던 공연에서 내가 객기 어린 짓을 했다는 감각 때문에 현타가 찾아든 탓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반응을 이놈들이 놓칠 리 없었다.
“설마… 형, 그냥 말한 건 아니죠? 우리 유어원 앞에서 약속한 건 꼭 지키기로 했잖아요.”
“유하야, 혹시 후회해? 아아, 난 그때 얼마나 감동했는데. 역시 원디어의 리더답다 싶어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우리를 이끌어 주겠구나 싶어서, 역시 리더를 잘 뽑았다고 얼마나 뿌듯했는데.”
“그때 형은 저한테 사기 치신 거잖아요. 다른 멤버들이면 몰라도 형은 저한테 그런 말하면 안 되죠.”
“섭섭하다, 유하야. 이거 멤버 차별이야. 이든이 땐 누가 멤버 낮잡아 본다고 그렇게 화내 주더니…….”
“…제발,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해 주시죠.”
그러다 벤자민 해리슨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 나는 나도 모르게 진심을 다해 애원하고 말았다.
-형, 이번에 벤자민 해리슨이라는 사람 불렀었다면서요? 이든이 형한테 이야기 다 들었어요.
-대단해, 유하야. 이든이가 많이 고마워하는 것 같았어.
-형… 대체 왜 연주회 같은 델 찾아가나 했더니 그것 때문에…….
-이쯤 되니 나도 감동인데, 솔선수범해서 멤버의 체면을 지켜 주는 리더라니…….
-…그, 꼬아 듣지 말고, 유하야. 정말 놀리는 게 아니라 내 일인데도 나도 되려 고마워져서 칭찬하고 싶더라. 그런데 놀림은… 감수해야겠더라.
-유하한테 박수, 박수~!
투어 중간에 에이든 리로부터 벤자민 해리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이미 몇 번이나 멤버들의 놀림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왜? 너무 리더다워서 나는 그때도 얼마나 감동했는데. 멤버를 지켜 주는 리더, 얼마나 아름다워.”
“맞아, 맞아. 나는 좋았는데. 유하가 나 지켜 주려고…….”
“넌 조용히 해라…….”
나는 미간을 짚으며 진저리를 쳤다. 그때의 행동을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그 사건이 언급될 때마다 실시간으로 존엄성을 잃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능청들이 또 한 번 끝도 없이 이어지려는 것에 내가 잠깐 자리라도 떠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할 때였다.
“어? 저거 우리 찍고 있나?”
“……! 오!”
“와, 손 흔들까, 얘들아?”
나는 곧 들려오는 말에 고개를 들었고, 곧 거대한 전광판에 뜨는 우리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팀의 유니폼을 맞춰 입은 채 주르륵 늘어앉아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전광판에 떠오르자, 멤버들은 여유롭게 손을 흔들었다. 그 와중에도 음식을 주워 먹으며 또 한 번 놀릴 타이밍을 재는 에이든 리의 시선은 이쪽을 향한 채였다.
물론, 내가 놈을 돌아보는 일은 그 후 절대 없었다. 에이든 리의 흥미를 떨어지게 하려면 관심을 주지 않는 게 답임을 이미 지난 사 년으로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 * *
“오, 마지막 코스는 여기야?”
경기가 모두 끝난 후, 우리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오늘의 투어, 마지막 장소는 에이든 리를 비롯해 우리 모두에게 한결 익숙한 곳이었다.
“하… 드디어 밥다운 밥을 먹어보겠네.”
“세림이 기준에도 이 식당은 합격이야?”
“네. 이든이 형 부모님들이 정말 맛잘알이시더라고요. 저 한국 돌아가도 여기 생각날 것 같아요.”
바로 에이든 리의 부모님들이 우리를 데려가 주었던 그 레스토랑이었던 것이다.
에이든 리의 부모님이 공언하고, 미리 경험해 본 대로 눈앞의 레스토랑에 영국에서 파는 그 어떤 것보다 맛있는 음식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멤버들의 얼굴에는 곧 화색이 돌았다.
그중 가장 레스토랑에 익숙한 에이든 리가 먼저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였다.
“마지막이니까 많이 시켜서 나눠 먹……, …어?”
에이든 리는 문을 열다 말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선 채 눈을 크게 떴다.
“…….”
“……? 왜 그래, 이든아?”
“형?”
그리고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뭐야?”
놈이 예상하지 못한, 그리고 그를 놀라게 만들 만한 것이 레스토랑 안쪽에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