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51)
어찌 됐든 6명을 모두 채웠으므로, 나는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유찬희와 함께 트랙의 시작점에서 만나 서로 어깨동무를 했다.
“…가요.”
“…그래요.”
그리고 어색하게 발을 맞추어 걷기 시작했다.
유찬희와 나는 키가 거의 비슷한 덕분에 2인 3각을 하는 것은 쉬웠다. 우리는 순조롭게 트랙을 돌아 다시 시작점으로 되돌아왔고, 곧 바구니에 들어 있는 풍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유찬희는 내 어깨에 둘렀던 손을 떼고 슬쩍 시선을 피한 그대로 말했다.
“형이 주머니 차고 코끼리 걸음 해요.”
“음, 네.”
나보다 덩치가 있는 유찬희를 안아 들 수는 없으니, 이렇게 역할을 분담하는 게 제일 합리적일 터였다.
나는 유찬희의 말에 긍정하며 발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코끼리 코를 한 채 허리를 숙이고 열 바퀴를 빙빙 돌았다. 순식간에 시야가 이지러지며 머리가 핑 돌았다.
그렇게 발이 수없이 꼬일 뻔한 것을 참아 가며 열 바퀴를 돌고 자리에 멈추어 선 순간.
“어.”
철푸덕.
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와하하!”
“으하학!”
“아악! 유하 형!”
“유하야!”
그것도 아주 대차게.
“…으.”
나는 영 진정이 되지 않는 시야를 바로잡으려 애쓰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한번 넘어져 버리고 말았다.
…모래주머니에 발이라도 붙잡힌 사람처럼 아주 볼썽사나운 모양새로.
“와하하하!”
“으하하하!!”
“아아, 4조~! 의외의 고전입니다!!”
다른 연습생들이야 개그라도 보는 것처럼 웃고 난리가 났지만, 그와 반대로 나는 실은 심각한 상태였다.
‘…아니, 미쳤나.’
진짜 모래주머니 무게를 못 견딘다고?
나는 어리벙벙한 얼굴로 주저앉은 채 숨만 헐떡거렸다. 진짜 미쳤나 싶을 정도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어나야 해.’
이대로 일어나지 않으면 분위기가 폭망한다. 그러면 방송 분량도 망하고.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바닥에 손을 짚고 힘을 주었다.
그때였다.
“줘요.”
찌익-
“……!”
나는 유찬희가 내 발에 달린 모래주머니를 뜯어 가는 것에 겨우 고개를 들어 놈을 바라보았다. 유찬희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모래주머니를 자기가 대신 차고 있었다.
놈은 나를 슬쩍 바라보고는 능청스럽게 타박하는 투로 말했다.
“아, 형! 제가 그러니까 밥 많이 먹지 말랬죠! 형이 멀미 난대서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그래도 되죠?”
“아, 유찬희 연습생~! 흑기사인가요~! 빛나는 전우애, 좋습니다! 한 명에게 미션을 몰아 주는 것도 허용입니다!”
유찬희는 그 말에 씩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후 곧 코끼리 코를 돌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조금 더 몸을 진정시키고는 단숨에 다리에 힘을 줘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그러는 동안 유찬희는 코끼리 걸음을 끝낸 후 바구니에서 풍선을 꺼내어 불고는 정확하게 조준해 풍선 위에 주저앉아 풍선을 터뜨려 냈다.
그러고는 내게 다가와 몸을 굽혔다.
“타요!”
“…….”
나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그의 등에 업혔다. 유찬희는 빠르게 달려 트랙을 통과했고, 곧 우리는 시작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유찬희의 등에서 내려와 스크린을 확인했다.
우리의 등수는 9등이었다.
* * *
오전 시간을 막간 코너로 시간을 보낸 후, 우리는 점심을 먹고 다시 한번 연습에 착수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는데.
“…그래서 이 부분은 어떻게 하면 돼요?”
“…음, 여기는…….”
아까 전과는 달리, 이제 유찬희의 눈치를 보는 건 내 쪽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심경 변화지.’
나는 유찬희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짚어 주면서도 어쩐지 복잡한 마음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아까 전의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유찬희는 나를 돕지 않았어야 했다.
‘내가 제대로 못 움직이고 허우적대면 유찬희는 좋을 일이지.’
어차피 막간 코너인 만큼, 이미지나 분위기를 망치면 그건 고스란히 나만의 피해로만 돌아올 뿐이었다.
시청자들한테 저 새끼 또 체력 안 좋은 척한다고 욕을 먹든 팀원들한테 민폐를 끼친다고 눈총을 받든 유찬희는 그냥 관망만 하면 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유찬희는 굳이 날 도왔다. 내가 허우적대면서 시간만 까먹으면 꼴찌를 할 것 같아서 그랬나, 하기에는 우리가 꼴찌할 일이 없었다는 걸 유찬희도 알고 있었을 터였다.
‘3조가 자기 팀원들 사진을 모두 못 찾았어.’
우리에 이어 꼴찌를 달리던 3조는 끝내 시간 내로 팀원들의 사진을 모두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니 릴레이에서 얼마나 시간을 끌었든 꼴찌는 3조의 것이었을 터였다.
유찬희는 계속해서 스크린을 보고 있었으니 그 사실을 알았을 테고, 그러니 나를 내버려 두어도 됐을 텐데.
‘근데 굳이 날 도왔다고…….’
유찬희가 대체 어떤 마음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찌 됐든 나는 내가 짚어 준 점을 신경 써 가며 브리지 부분을 불러 보는 유찬희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발성과 더불어 목을 쓰는 방법을 알려 주면서, 나는 몇 마디 더 유찬희에게 도움이 될 듯한 말들을 덧붙였다. 유찬희는 의외로 성실하게 내 말을 경청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식으로 연습하면 좀 더 쉬울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어제 내가 말한 게 효과를 보긴 했는지, 유찬희는 오늘 내가 다가서 보컬 연습에 조력해 주겠다는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발성과 더불어 노래를 몇 번이고 다시 시켜도 불만 없이 얌전히 해내는 모습에 나는 얼떨떨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놈이 이 정도까지 절박했나,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싫어 죽겠는 놈한테 도움을 받아 가면서까지 표정 한번 안 굳히고 잘 참고 있었으니까.
그 모습에 놀란 건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둘이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연습하는 유찬희의 곁에 다가온 황영오가 어깨를 툭 건드리며 어색하게 꺼내는 말에, 유찬희는 슬쩍 나를 바라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뇨? 별일 없었는데요?”
그러고는 누가 봐도 거짓말인 것 같은 말을 아주 어색한 투로 해 댔다.
‘…인터뷰 걸리겠네.’
지금까지 최대한 서로를 무시했으면서 이제 와 서로 협력이란 걸 하고 말을 나누고 있는 데다가 이런 속 보이는 반응까지. 이걸 캐 보지 않는 놈은 방송 만드는 재능이 없는 거다.
‘뭐, 어쨌든 됐다. 의도한 바는 이뤘으니까.’
나는 공격성이 사라진 유찬희의 태도를 보며 그냥 복잡한 생각을 좀 덜어 내기로 했다. 놈의 심경이 어떻고 저떻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이번 미션만 끝나면 서로 각자 갈 길 가면 되는 것을.
‘아마 유찬희도 이해한 거겠지.’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협조라는 걸 해 주는 걸 테고. 그렇다면 인터뷰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터였다. 갑작스럽게 다시 적대적으로 돌변할 리는 없을 테니까.
뭐라고 말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유찬희도 생각이란 게 있을 테니 대충 둘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음이 맞았고 적당히 친해졌다, 그런 식으로 넘기겠지.
나는 놈에게 조력을 해 주겠다는 최소한의 목표를 이뤘음으로, 이젠 적당히 내 스스로 연습을 할 생각이었다. 유찬희가 날 가르쳐 줄 리는 없었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내가 유찬희에게서 떨어져 랩 연습을 하고 있을 때였다.
“…거기서 숨은 왜 안 쉬는데요?”
“…네?”
나는 또 한 번 발음이 꼬여 멈춘 나에게 말을 거는 유찬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유찬희는 내 되물음에 잠깐 주저하더니 곧 자리에 쭈그려 앉아 내가 바닥에 놓아 두었던 가사지를 들었다.
“가사요, 호흡 주는 구간이 하나도 없잖아요.”
“…….”
“여기, ‘불안을 삼키면서 숨죽인 다음’, ‘아득한 심연으로 떨어져’ 이 부분이요. 여기 호흡 주는 구간이 하나도 없고 연결도 잘 안 되잖아요. 이럴 땐 말 조금 바꿔 주면서…….”
유찬희는 내 손에 들려 있는 펜을 빼앗고는 내 가사지에 찍찍 줄을 그어 가면서 손수 가사를 손봐 주었다.
나는 유찬희가 넘겨 주는 가사지를 들고 입 안에서 랩을 굴려 보았다. 그러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훨씬… 쉽네요.”
“그렇죠?”
그러자 유찬희가 약간 밝아진 얼굴로 그것 보라는 듯 말했다.
문장에서 겨우 한두 개 정도 음절을 바꾸었을 뿐인데, 지독하게 연습을 해도 붙질 않던 가사가 어느새 혀끝으로 굴려지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호흡 주는 구간은 여기랑 여기.”
“…….”
나는 유찬희가 짚어 주는 부분에 체크를 하고 다시 한번 가사를 굴려 보았다. 호흡을 주는 구간이 생기자 더욱 말맛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감사… 합니다.”
“…뭐,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막상 그렇게 도와줄 건 다 도와줘 놓고 유찬희는 갑자기 정신을 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씩씩거리곤 내게서 멀어져 갔다.
그러고는 내가 알려 준 방식대로 노래를 연습하는데,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 자식도 회귀했나.’
그게 아니면 단 하룻밤 만에 이런 천지개벽이 일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웬 개소리인가, 싶어 금세 접어 버렸지만.
* * *
“형, 6조 편곡 바뀐 거 알아요?”
“뭐?”
나는 저녁을 먹다 말고 천세림이 건넨 말에 놈을 바라보았다. 천세림은 내 앞에 식판을 내려놓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단우 형이랑 그 팀 박우재랑 싸운 것 같던데요?”
“싸워……? 단우 형이?”
“뭐, 좀 일방적이었던 것 같긴 한데… 한쪽 언성이 높았으니 어쨌든 싸운 건 싸운 거죠. 방송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제작진들이 열심히 찍는 것 같았으니까 나중에 확인해 봐요.”
“…바뀐 편곡이 어땠는지는 들어 봤어?”
“잠깐요?”
천세림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씩 웃었다.
“바꾼 거, 아마 단우 형이겠죠? 훨씬 낫던데요. 단우 형은 프로듀싱 재능도 좀 있나 봐.”
“…그래?”
나는 그렇게만 답하고 다시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천세림의 말에 굳이 의문을 느끼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럴 만하지.’
들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이전보다는 훨씬 나은 방향으로 발전했겠지. 주단우가 의견을 냈다면.
지난 평가에서도 주단우는 콘셉트 구체화를 비롯해 다양한 부분에서 의견을 냈었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에이든 리에게서도 꽤 인정을 받았고.
다만 그 의견을 내는 방식이 소극적이고 찔러야 겨우 나오는 수준이어서 활약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었다면, 이번엔 주단우가 주도하고 직접 의견을 내 편곡과 콘셉트를 아예 바꿔 낸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연습 더 빡세게 해야겠는데.’
이제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 아닐 테고, 그러면 우리도 그만큼 더 열심히 연습해야 할 터였기 때문이었다.
“…저기요.”
“네?”
문득 나는 옆에서 날 툭 건드리는 것에 고개를 돌렸다. 의외의 인물이 내 옆에 서 있었다.
“저 이 부분 아직 잘 모르겠는데 좀 있다가 가르쳐 주실 수 있어요?”
유찬희였다.
놈이 내게 불쑥 가사지를 내밀며 퉁명스럽게 한 말에,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밤에 연습하시게요?”
“…해야죠.”
아까 전에는 피곤해 죽겠다고 하더니. 게다가 어제 밤새지 않았나, 이놈.
괜히 무리하는 건 아니겠지, 싶어 나는 슬쩍 언질을 주기로 했다. 괜히 그러다 경연 전에 몸살이라도 나면 큰일이니까.
“유찬희 님, 피곤하실 것…….”
“아, 그냥 찬희라고 부르세요.”
“네?”
유찬희는 내 되물음에 머쓱하다는 듯, 이젠 익숙한 짜증 내는 얼굴로 툭 내뱉었다.
“언제까지 님님 하시게요. 같은 팀인데 그냥 찬희라고 하시라고요, 존댓말도 그만하고.”
그렇게 말해 놓고서는, 유찬희는 더듬더듬 말을 덧붙였다. 마치 부끄러움이라도 타는 것처럼.
“그… 저도 근데 형이라고 불러야 할 거 같은데. 한 명만 님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니까.”
그 어색하기 짝이 없는 태세 전환에 나는 멍청하게 대답했다.
“…어, 마음대로 해도 됩… 아니, 돼. 음, 그런데 몸은 괜찮나. 어제도 밤새웠으면서…….”
“…그러는 자기는 합숙 첫날부터 밤새웠으면서 뭔 남의 걱정을…….”
…나야 우황청심환 쓰니까.
차마 그렇게는 대답하지 못하고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자 유찬희는 더 이상 이 어색한 분위기를 참을 수 없었던 건지 뜬금없이 화를 냈다.
“아, 어쨌든 저 먼저 가 있을 거니까 그렇게 아시라고요. 괜히 무리하지 마시고 힘들면 그냥 들어가셔도 되고.”
그러고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다시 한번 씩씩거리며 내게서 멀어져 갔다. 그에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놈 진짜 회귀한 거 아닌가?’
회귀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태세 전환인데.
그런 멍청한 생각을 하다가 나는 다시 밥을 먹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드물게도 천세림의 당황한 얼굴과 마주할 수 있었는데.
“……?”
천세림은 밥을 뜨던 수저를 그대로 멈춘 채 유찬희와 나의 대화를 바라보고 있던 듯, 나와 눈이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쟤 죽었다 깨어나기라도 했어요?”
“…….”
또 하나의 바보 같은 질문이었지만, 왜 저러는지 심정은 알 것 같았기에 나는 대답 대신 먹던 밥이나 마저 먹기로 했다. 좀 있다가 유찬희와 연습을 지속하려면 밥으로나마 체력을 보충해야 했으니까.
그렇게 은은한 혼란 속에서 남은 합숙은 빠르게 지나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