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511)
511화
“…….”
그날, 강현진은 결국 강현아를 만나러 가지 못했다.
다만 얼굴까지 아예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강현진과 만날 약속을 해 두었던 강현아가 대기실로 찾아와 결국 불편한 대면이 이루어진 탓이었다.
강현아는 원디어의 대기실 문을 가로막듯 서 있던 제 부모를 보고는 얼굴을 굳혔다. 그 대치를 보고 이야기를 들을 필요도 없이 바로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그럴 법했다.
-저랑 이야기해요. 오빠는 아무런 관계 없으니까.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우리가 대체 어떻게 그 말을 믿겠니. 네게 악영향을 미칠 사람이 우리 집에 현진이 말고 더 있어?
-악영향이요. 꼭 오빠가 잘못된 일이라도 하고 있다는 것처럼 구네요, 언제나 그랬듯이.
강현아는 이미 강현진이 그런 식으로 제 부모에게 압박당하는 광경을 수도 없이 지켜봤을 테니까.
빈정거리듯 나온 딸의 목소리에 강석호와 윤희연의 얼굴에는 어이없음이 들어찼다. 그들은 강현아가 화를 내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는 듯, 엄한 투로 말을 이었다.
-차라리 잘됐어, 매번 전화를 피하는 통에 현진이와도 한동안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잖아. 너희 둘 모두―
-여기서 제가 소리를 지르면 그때나 따라와 주실 생각이세요?
-…뭐라고?
그 고압적인 태도는 곧 강현아의 강경함에 수그러들고 말았지만 말이다.
-엄마랑 아빠가 그렇게나 중시하시는 체면, 제가 아주 제대로 구겨 드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꼭 소란을 원하는 것처럼 행동하시는 것 같아서요.
제 부모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듯, 강현아는 차분하게 제 부모를 협박했다.
그리고 그 협박은 두 사람에게는 아주 잘 먹혀든 모양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무슨 문제로 싸우고 있는지가 알려지면, 당장 내일자 기사가 꽤 재미있게 나겠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
강석호와 윤희연은 본인의 체면을 목숨만큼 소중히 여기는 ‘공인’이었으니까.
기가 차다는 얼굴로 대기실 안쪽의 강현진과 그들을 불러내는 강현아를 번갈아 바라보던 두 사람은 결국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겼다.
-현아야, 잠깐만……!
그런 둘과 함께 사라지려던 동생의 뒤를 강현진은 다급히 따라붙었지만.
-나중에 내가 따로 연락할게, 미안해. …실례했습니다. 오빠를 잘 부탁드려요.
강현아는 부드럽게 그를 물러나게 만든 후, 자신의 부모를 데리고 복도 끝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많이 걱정되세요? 형.”
“…조금.”
때문에 숙소로 돌아가는 차에 타고서도 강현진은 착잡한 듯 창밖만 바라보고 있게 된 것이었고.
유찬희가 조심스럽게 묻는 것에 강현진은 지친 얼굴로 수긍했다. 강현아가 [디자인 유어 아이돌>에 출연하려고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들은 바가 없었던 듯, 그는 충격과 더불어 염려를 느끼고 있는 듯했다.
“분명 좋은 말을 듣지는 못했을 거라서.”
그중에서도 제일 걱정되는 점은, 강현아가 그렇게 홀로 제 부모를 데리고 가 놓고서는 호된 질책을 듣게 된 게 아닐까, 하는 것인 듯했다.
“…또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가 않아. 따라갔어야 했었는데…….”
강현아는 강현진 이후의 자식으로 태어난 탓에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더 큰 압박을 받아 왔다는 것 같으니까.
강현진이 연기와 관련해 그럴싸한 재능을 보여 주지 못하고 이른바 ‘엇나가기’ 시작한 탓이었을까. 강석호와 윤희연은 강현아가 제대로 말을 떼기도 전부터 일찍이 딸의 장래를 결정해 버렸다는 것 같았다.
“현아가 어릴 때부터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어린 시절을 빼앗기고 반강제적으로 내내 연기 활동에만 몰두하게 될 정도로 말이다.
강석호와 윤희연은 어린 강현아를 계속해서 현장에 데리고 다녔다는 것 같다. 별다른 휴식기도 주지 않은 채 아역으로서 수많은 작품에 출연시켰고, 강현아는 그것을 묵묵히 감내하게 된 거다.
강현아에게 연기자로서의 재능이 있었다는 건 행운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그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자신의 재능을 피워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결정된 장래에 제 의사 따윈 조금도 없었다는 것.
무엇보다 제 부모가 스스로 훌륭한 신인을 발굴해 냈다 여기며 이후 막내인 강현민까지 옭아매고, 그 반대로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오지 못한 강현진을 더욱 배척하고 억압하게 됐다는 점에서는 불행이 되었을 것이다.
제 부모의 기준을 맞춰 주기 위해 허덕대는 것은 물론, 칭찬받는 자신들과는 달리 내내 짓눌리는 형제를 바라볼 때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동생분에게는 [디어돌>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들은 게 없어? 현진아.”
“한 번도 없어. …잠깐, 생각해 보면 최근에 현아가 부모님과는 다른 소속사에 들어가고 싶다고 한 적은 있었던 것 같긴 한데.”
때문에, 강현아는 성인이 됨과 함께 차근차근 부모를 벗어날 준비를 해 왔던 모양이었다.
강현아와 강현민은 강현진과는 각각 네 살, 다섯 살 차이가 난다. 즉 강현아는 스물하나, 강현민은 스물로 이제 미성년자를 졸업하고 홀로서기를 할 자격이 갖춰졌다는 뜻이다.
“지금 동생분은 전 소속사랑은 계약이 끝난 거죠?”
“응. 이제 한두 달 됐나……. 지난번에 만났을 때 계약 만료 이후에는 새 소속사를 찾을 생각이라고 흘리듯이 이야기를 했었어.”
강현아는 스무 살을 기점으로 부모님과 함께 소속되어 있던 연기 쪽 엔터사와 계약을 마쳤다.
이후에는 다른 소속사로 터전을 옮기겠다고 통보를 했다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는 그들의 부모님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부모님은 현아가 연기 쪽으로 계속 활동을 이어 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나와 현민이도 똑같이 생각해 왔었고.”
“그럼 동생분이 아이돌에 도전할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는 건 가족 중 누구도 몰랐던 거예요?”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래.”
강현아가 단 한 번도 ‘엇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덕분이었다.
부모님의 요구에 고개를 끄덕이고, 주어지는 작품을 군말 없이 소화해 내고, 확실한 커리어를 쌓아 나가며 강현아는 그 누가 봐도 지속적으로 연기 활동을 이어 나갈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
제작사의 요청으로 참여한 OST 작업을 제외하곤 음악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티를 내지도 않았고 말이다.
때문에 강현아의 돌발 행동에는 모두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부모까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달려올 정도로, 그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던 것이다.
‘…똑똑한데.’
나는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강현아가 꽤나 치밀하게 준비를 해 온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대체 언제부터 아이돌을 희망한 건지는 모른다. 다만, 이 일을 최근에서야 결정한 것 같진 않았다. 아마 끊임없이 시기를 재고 확실한 조건이 갖추어지기를 기다렸겠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굳게 입을 닫고 있으면서.
‘최소한 부모가 안심하고 자신을 조금쯤 놓아줄 때까지.’
미성년자이기에 그 무엇도 할 수 없던 때를 지나, 지금 당장 부모를 만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경제권을 손에 넣고 정당하게 스스로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게 되기까지.
띵동-
“……?”
그것을 확신한 건, 그날 밤의 뜻하지 않은 방문 덕이었다.
숙소로 들어서 멤버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즈음 울린 벨 소리. 마침 거실 쪽에 앉아 휴대폰을 하고 있던 나는 우선 인터폰을 확인해 보았고.
“…강현아 씨?”
[죄송한데, 문 좀 열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누나… 나 정말 괜찮다니까.]곧 손에 짐가방을 들고 있는 강현아와 강현민 남매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아야? 현민아?”
“갑작스럽게 들이닥쳐서 미안해, 오빠.”
“누나. 밤중에 찾아오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형, 진짜 미안해.”
남매는 문이 열리자마자 바로 숙소 안쪽으로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멤버들이 의아한 얼굴로 거실로 나오는 것과 함께, 강현진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제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럽게 집을 뛰쳐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강현아와 강현민의 차림새는 정돈되어 있지 않았다. 손에 잔뜩 들고 있는 짐 또한 빠른 시간 내에 무작정 집어넣기라도 한 것처럼 허술해 보였고.
“아니, 미안해하진 않아도 되는데 대체 그 짐은…….”
그 생경한 모습에 강현진이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을 때였다.
“오빠, 시간이 없으니까 짧게만 말할게. 하루만 현민이를 데리고 있어 줄 수 있어?”
“뭐?”
“그 이후에는 내가 집을 얻어서 현민이 데리고 나갈 테니까, 그냥 잠깐만.”
강현아는 갑작스러운 폭탄 발언을 함으로써 제 형제의 얼을 빼놓았다.
머리를 싸매고 한숨을 내쉬고 있는 강현민. 굳건한 얼굴의 강현아. 다급히 뛰쳐나온 것만 같은 모양새.
그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도 강현진 또한 강현아처럼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부모님이랑 싸웠어?”
“정확히는 싸운 게 아니라 도망친 거지. 싸운다고 풀린다면 다투었겠지만, 오빠도 알다시피 나도 너무 잘 알거든. 우리 부모님이랑은 ‘싸울’ 수가 없다는 걸.”
끝내 제 동생들이 부모의 집에서 뛰쳐나왔다는 것을 말이다.
강현아는 신랄하게 강현진의 말을 정정해 준 후, 빠르게 자신의 이후 계획을 늘어놓았다.
“성인 되고 나서 따로 통장 만든 덕에 돈은 있어. 지금 당장 계약할 집 찾으러 갈 거고, 그때까지는 호텔 잡아서 현민이를 거기 재우려고 해. 하지만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하루만 부탁할게. 일단 지금 현민이 통장은 아직까지 엄마랑 아빠가 관리 중이라서…….”
“누나, 말했잖아. 나는 그냥 친구들 집 가면 된다고―”
강현민은 곤란하다는 듯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밤중에 맏형의 숙소에 들이닥쳐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는 얼굴이었지만, 강현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이 네 친구들 번호를 모를 것 같아? 못 찾아갈까, 설마?”
“…그건.”
“너 저번에 한 번 너무 힘들다고 스케줄 빼고 탈주했을 때, 부모님이 네 친구들한테 싹 전화 돌렸잖아. 결국 걸려서 끌려갔고. 성인 됐다고 설마 똑같은 일이 안 벌어질까?”
“…….”
“엄마랑 아빠는 여기까진 못 찾아와. 알잖아. 이게 유일한 대안이야.”
강현아는 지금,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제 동생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남매가 일을 해 벌어들인 돈은 강석호와 윤희연에게 맡겨져 있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강현아는 성인이 된 후 소속사에 따로 말을 해 개인 통장을 새로 만들어 돈을 모을 수 있기라도 했던 것 같지만, 강현민은 아니었던 듯했다.
“일단 하루 여기서 자고, 그다음에는 나랑 같이 나가. 그리고 너도 지금 소속사랑 계약 만료된 다음에는 완전히 자립하는 거야. 그렇게 의견일치 본 거잖아.”
“…….”
자신의 입장을 다시금 깨달았다는 듯 곧장 시무룩해지는 남동생과, 다시 한번 부탁한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여동생의 모습에 강현진의 얼굴 위로 복잡함이 스쳐 지나갔다.
강현진은 추측해 보고 있는 듯했다. 대체 언제부터 동생들이 이 일을 준비해 온 건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그러나 그 모든 생각들을 일단 접어 두기로 한 듯, 흔들리던 강현진의 눈은 이내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 후.
“…알겠어. 일단 내 방에 짐 풀어, 현민아. 지혁이 형, 미안한데 하루만 같은 방에서 재워도 괜찮을까요.”
“괜찮지. 일단 오늘은 내가 다른 애들 방에 가 있을게, 둘이 그 방에서 자.”
강현진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달갑다는 듯이.
“잠, 잠깐, 그렇게까지 해 주실 필요는―”
“강현민, 짐 풀어.”
“누나!”
그에 강현민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 초면이죠. 현진이 동생이면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인데, 이 정도는 해 줘야죠. 마음 착잡해서 잠도 잘 안 올 텐데, 낯선 사람까지 같은 방에 있으면 아예 못 잘 테고.”
“도와드릴게요. 혹시 차 괜찮으실까요. 현진이가 사 둔 차가 있는데 따듯하게 한잔 마시면 좋을 듯해서…….”
“형, 그럼 짐은 제가 옮길 테니까 형은 차 만들어 주세요. 나이가 몇 살이라고요? 이제 스물?”
“진짜 노래는 못해요? 나 궁금하긴 한데. 어, 그거는 나 줘요. 나도 도와줄게.”
“그, 그렇긴 한데…….”
이후, 멤버들까지도 강현민에게 달라붙어 쉽게 발걸음을 못 옮기는 그의 뒤를 밀어주는 것에 그는 곧 얼떨결에 강현진과 도지혁의 방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고마워.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내가 너무 오래 있으면 문제될 것 같으니까…….”
“잠깐만, 현아야.”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현아가 빠르게 제 짐만 챙겨 숙소를 빠져나가려 했을 때였다. 강현진은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제 동생을 잡았고, 이내 물었다.
“…괜찮은 거야?”
“…어?”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이 가장 건네고 싶었을 말을.
[디어돌>은 왜 나가고 싶어진 건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건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자신은 뭘 해 줄 수 있는지.하고 싶은 말은 많았겠지만.
“힘들 것 같아서. …너도 그렇겠지만, 나도 부모님을 아니까.”
“…….”
“네가 무슨 말을 들었을지 너무 잘 알아서 묻고 싶었어. 정말 괜찮은지.”
강현진은 그것이 제일 궁금한 듯했다.
그는 ‘정말로’ 강현아가 무슨 말을 들었을지, 제 부모에게 어떤 꼴을 당하고 집을 뛰쳐나올 마음을 먹게 된 건지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을 테니까.
“괜찮지 않다고 해도 괜찮아. 도와줄게.”
“…오빠.”
“이제 나도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으니까.”
그에 강현아의 목소리에 점점 물기가 어리고 있을 즈음이었다.
두 명의 모습을 바라보다 내가 자리를 피해 주려고 했을 때.
띵동!
“……!”
문득 들려온 익숙한 알림음에 나는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고, 이내 말을 잃고 말았다.
『과거의 재현!』
당신의 ‘운’이 재현됩니다.
이번에는 ‘불운’을 ‘행운’으로 만들어 보세요.
또 한 번 예상하지 못했던 알림 창이 어느새 눈앞에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영국에서 본 강현진의 머리 위의 낮은 운을 설명할 수 있는 시스템 창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