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518)
518화
“오셨어요? 선배님.”
“드문 일인데. 이현 씨가 나를 부르다니.”
강석호는 백이현이 잡아 둔 식당의 프라이빗 룸에 들어서며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두었다. 자신의 취향에 들어맞는 단란한 규모의 방에 절로 만족감이 일었다.
‘이렇게 마음에 드는 후배도 잘 없는데.’
함께 작품을 하면서 몇 번이고 느낀 것이지만, 백이현은 확실히 업계에서 인정받을 만한 센스를 가지고 있었다.
주변을 잘 관찰해 본인을 순간순간의 상황과 사람들에게 잘 맞추면서도 자신을 쉽게 낮추지는 않는다. 동등한 협력 관계를 만들어 오히려 본인의 위치를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유지할 뿐인 것이다.
그건 확실히 연기자로 데뷔한 지 이제 겨우 5년 차가 되었을 뿐인 신인이 취할 태도는 아니었다. 실수 하나로도 나락까지 굴러떨어지는 이 업계 내에서 사람을 조심하지 못해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굴러떨어진 후배가 몇이던가.
그런 와중에 간만에 발견한 ‘완벽한’ 후배다.
본인의 센스와 위치를 십분 이용해 확실하게 자신의 위상을 유지하고 높여 나가는 신인이라니. 거기에 본업까지 잘한다면, 연을 이어 두지 않을 이유가 없다.
‘며칠 전엔 좀 껄끄러운 일이 있었긴 하지만, 그건 서로 잊어도 되는 일일 테니.’
백룡예술상에서의 일을 머릿속에서 가볍게 지워 버린 강석호의 입가에 어느덧 친근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에 맞추어 자신에게 마주 미소 지어 보이던 백이현은 이내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병을 집어 들곤 천천히 기울였다.
“작품을 하는 내내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제가 따로 감사 인사를 드린 적은 없었으니까요. 한 번쯤은 이렇게 따로 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현 씨는 연기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잖아. 내가 해 준 게 있기는 한가 싶은데. 이번 상도 온전히 본인의 힘으로 타낸 걸로 보이고. 오히려 내가 사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축하해 줘야 하는 건 내 쪽 같은데.”
“그러니 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실은, 이후에는 제가 조금 바빠질 것 같아서. 제 스케줄에 맞추게 부탁드린 듯해 죄송하지만.”
“뭘 그런 걸, 나도 시간이 되어서 나온 걸. 잠깐 머리를 식히고 싶기도 했고.”
백이현이 따라 주는 잔을 받아 든 강석호는 빙긋 미소 지었다. 신인 배우상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연기 커리어를 시작한 백이현은 어느새 연기자로서도 완전히 자리를 잡은 듯해 보였다. 당장 백룡예술상에서도 드라마 부분 주연 배우 상을 받지 않았나.
그렇기 때문에, 강석호는 조금쯤 아쉬운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바빠지는 건 솔로 콘서트 때문인가?”
“네. 슬슬 저희 리더 형이 제대를 할 때가 됐는데, 그 후에는 다른 두 명의 멤버가 먼저 군입대를 하게 되어서요. 그 전에 완전체 컴백을 해야 하는데, 일정을 맞추다 보니 여름밖에는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쯤 새로 촬영 들어가는 걸로 아는데.”
“병행해야죠.”
“아쉽게 됐군. 쓸데없이 체력을 다른 데 써야 하는 셈이 됐으니.”
백이현만 한 재능을 가진 연기자가 온전히 연기라는 분야에 온 힘을 쏟지 못하는 것이 말이다.
‘연기로 커리어를 시작했어야 하는데. 내가 먼저 발견하기만 했어도.’
강석호는 짧게 혀를 찼다. 아무리 생각해도 백이현이 아쉽게 느껴진 탓이었다.
그는 현재 소속되어 있는 기획사에서 이사급의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신인 연기자 발굴에도 힘을 쏟고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백이현만 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아쉬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출중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백이현이 어째서 아이돌 따위를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지.
아이돌로 일하기 위해 어째서 배우로서의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지.
“쓸데없이요.”
“그래. 연기 하나만 해도 심력과 체력을 얼마나 많이 쏟아부어야 하는지 모르지 않는데, 다른 일 때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워져서.”
“그런가요?”
“그래. 젊을 때 할 수 있는 경험을 해 보는 것도 좋지. 하지만 아이돌이라는 건 휘발성 강한 직업이잖아. 누군가에게 쉽게 즐거움을 주지만, 그것으로 끝이 나는. 그렇다면 굳이 힘을 쏟을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하는 게 솔직한 내 마음이라.”
그 누구의 귀도 없는 프라이빗 룸이다. 강석호는 말조심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강석호는 배우의 과거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돌 출신이라는 건 그에게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기만 잘한다면. 현재를 모두 연기에만 할애한다면.
‘현진이도 지금이라면 다시 돌아올 수 있어. 연기만 확실하게 배우면 못할 게 없겠지……. 아무리 그대로 희연이와 내 아들인데.’
그에게 중요한 건 현재이자 미래, 그것을 뒷받침할 재능이었으니까.
때문에 강석호는 지금이라도 강현진이 돌아온다면 모든 것을 용서해 줄 수 있었다.
제 스스로 헛된 꿈을 선택한 것도, 동생들에게 괜한 악영향을 끼친 것도, 자신들에게 반항한 것도 전부.
하지만.
드륵-
“……!”
“현진이 형이 들으면 꽤 애석해하겠어요. 아들의 직업을 거기까지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계시다니.”
자신의 아들이지만, 강현진은 정말이지 구제 불능인 듯했다.
주변인까지도 잘못 사귀는 걸 보니.
“…이건 또 예상하지 못한 경우인데. 현진이가 보냈나?”
순식간에 즐거웠던 기분이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듯한 기분에 강석호는 들고 있던 잔을 거칠게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무성의하게 내려놓은 잔 바깥으로 흘러넘친 술이 곧장 테이블을 적셨다. 그럼에도 아랑곳않고 당당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원유하는 백이현의 옆자리에 앉아 입을 열었다.
“현진이 형은 모를걸요. 제가 회사에 간 줄 알고 있겠죠, 드림엑터스를 어떻게든 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드림엑터스를 움직이는 건 선배님이시잖아요.”
그 후 능청스럽게 말을 잇던 원유하는 잠시 멈칫한 후, 아주 과장스러운 태도로 고개를 기울였다.
“아… 이렇게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연기자도 아닌데.”
“…이현 씨가 불렀나?”
명백한 빈정거림에 강석호는 곧 불쾌감에 일그러진 얼굴로 백이현을 돌아보았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후배에게 화가 치민 탓이었다.
그러나 평소에는 장점이라 생각했던 그의 성격대로 백이현은 쉽사리 굽혀 주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불청객을 끌어들인 주제에 사죄는커녕 여유롭게 이렇게 답한 것이다.
“부르진 않았고, 어디서 술을 마실 예정이라고 알려 주기는 했죠. 제가 술자리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서 걱정돼 찾아온 모양이네요. 아무래도 동생이다 보니 쫓아내기에는 제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합석시켜도 괜찮을까요?”
모든 것은 우연의 일치라는 듯, 변명 같지도 않은 소리를 늘어놓음으로써 끝내 그를 기가 차게 만들어 버렸으니까.
‘…아니, 차라리 잘됐나.’
하지만, 강석호는 곧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당장 백룡예술상에서는 원유하가 건방을 떨어도 보는 눈이 많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터다. 강현진이 엇나간 데에는 주변인의 탓도 있을 테니, 이 기회에 제대로 말을 해 보는 것도 좋을 듯했다.
그는 흘러 넘친 술에 젖은 손을 가볍게 닦으며 말했다.
“호칭은 마음대로 해요. 선배님이라고 불러도 좋고. 이현 씨 동생이라면 언젠가 이쪽 길로 들어올 수도 있을 테니, 호칭은 통일해 놓는 게 좋겠지.”
“그렇다면 아버님 정도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연기를 할 생각이 조금도 없어서요.”
“그래? 확신할 수 있나? 나중에 나이가 들고 더 이상 아이돌을 하지 못하게 되면 분명 이쪽으로 오려고 할 텐데. 당신네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잖아. 이 일이 마지막으로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유지할 방법이라는 것처럼 뒤늦게 발을 들이밀지, 불쾌하게.”
강석호는 그런 아이돌들을 자주 봐 왔다.
실력은 조금도 없으면서 과거의 영광을 무기 삼아 멋대로 배역을 꿰차는 것들. 딴따라 짓을 하며 쌓아 둔 인지도로 고개를 쳐들고 말도 안 되는 연기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배우들 사이에 자리를 잡으려 드는 것들.
“나는 연기에 진심이라서 그런 것들을 보면 역해져. 내가 좋아하는 걸 대안으로 삼는 놈들을 인정할 수 있을 리 없잖아. 이해하겠지, 유하 씨도.”
그래서 강석호는 아이돌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무대 위에서 애교나 떨고 자신을 그대로 내보여 주던 것들이 이제 와 다른 사람인 양 점잔을 떨려고 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원유하는 이내 픽 웃었다.
‘웃어?’
순식간에 불쾌해진 강석호가 미간을 찌푸리자, 원유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 마음은 알 것 같습니다. 저도 제가 좋아하는 걸 우습게 보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실례인 걸 알고 있음에도 찾아올 수밖에 없었죠.”
“…….”
“아버님은 너무 이 일을 폄하하시는 경향이 없잖아 있는 듯해서. 현직자로서 불쾌하지 않을 방법이 없잖아요.”
“하.”
자신의 헛웃음을 마주하며 원유하는 말했다.
“아이돌에서 배우로 넘어가는 사람은 많죠.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도 있고. 하지만, 그건 아버님께서 불쾌감을 느낄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건가?”
“자격은 대중이 정할 테니까요. 연기력이 좋다면 대중들이 인정해 줄 테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되겠죠. 아이돌이 그렇듯 배우도 결국 대중의 수요로 이루어지는 거니까. 즉, 제 말은…….”
원유하는 고요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을 비웃듯, 혹은 같잖다 여기는 듯한 시선으로 뒷말을 이었다.
“…굳이 아버님께서 재능의 유무를 선별할 이유는 없단 겁니다. 배우로 남을지, 남지 않을지는 대중들이 결정할 테니까. 그리고 완벽히 낯선 분야에 도전하면서도 기존의 일을 병행할 수 있다는 건 그만한 담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 오히려 좋고요.”
“…….”
“그러니 당사자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면, 굳이 막을 필요는 없겠죠. 아이돌도 배우도.”
궤변이다. 본인이 아이돌이기에 할 수 있는 말. 아주 가상한 자기변호.
강석호가 제 말을 한 귀로 흘렸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원유하는 곧 주제를 바꾸었다. 곧 강현진에 대한 화제로 돌아온 것이다.
“어찌 됐든, 저도 현진이 형이 무대에만 쏟을 심력과 체력을 다른 곳에 빼앗기는 걸 그냥 두고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썩히고 싶지도 않고. 애초에 본인이 원하고 있지 않기도 하고요.”
때문에 강석호 또한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하든 현진이를 그냥 내버려둘 생각은 없으니 포기하지. 이건 집안일이니 끼어들지 않았으면 해서. 애초에 날 협박할 만한 카드도 없잖아, 유하 씨한테는.”
원유하는 지금, 자신을 어떻게든 막아 내기 위해 이곳에 찾아온 것이라는 걸.
‘쓸 수 있는 카드라는 건 기껏해야 내가 백룡예술상에서 정색한 장면 정도뿐이겠지.’
그때, 강석호는 처음으로 실수라는 것을 했다. 대중이 보는 앞에서 표정을 관리하지 못한 거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좋아하지 않지만, 강석호는 제 관점을 단 한 번도 티를 낸 적이 없었다. 대중이 어떤 식으로 자신을 몰아갈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장을 흔드는 리듬을 따라
우린
rush, rush, rush!
하지만 그때, 강현진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현재의 자신을 보라는 듯 그와 똑바로 눈을 마주쳤을 때는 차마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제 자식이 광대짓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근데 나만 좀 그런건가..? 현진이 아버님 표정 왜 그랬던거임..?;; 보자마자 나 소름 쫙끼쳤잖아 자기 아들을 누가 저렇게 증오하듯 바라보나 싶어서..
-나 아직도 강ㅅㅎ님 표정 궁예중임… 진짜 무슨 마음이셨던 걸까 자랑스러워한다기에는 노려보는 시선이었고 진지하다기에는 진짜 개빡친 얼굴이었는데.. 그냥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었고 그게 평소의 인자함과는 너무 달라서 충격받았다고밖엔 말 못하겠어
때문에 강석호는 생애 처음으로 잡음을 일으킨 상태였다.
‘곧 내려가겠지만.’
그와 윤희연이 쌓아 둔 ‘완벽한 가족’의 이미지는 여전하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단란하고 아름다운 가정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강현아가 자신들에게로 다시 되돌아온다면.
강현민이 괜히 엇나가지 않는다면.
강현진이 끝내 아이돌을 포기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길을 걸어 준다면.
사진 몇 장, 동영상 몇 개면 충분하다. 미디어에 단란함을 보여 주고, 자식들이 부모의 길을 따라 걷는 모습을 보여 주면 그들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완벽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연기자로서 걸을 수 있는 길을 모두 걸어 본 강석호와 윤희연의 마지막 꿈은 그것이었다. 그들이 누구나 선망하는 배우 가족의 이미지로 영원토록 남는 것.
“뭔가 오해를 하신 듯합니다. 저는 그저 아버님의 말을 들어 보려고 왔을 뿐이에요. 순순히 형을 포기해 줄 생각이 있는지, 현아 씨를 놓아주실 가능성이 있으신지 보고 싶어서요.”
“다시 말할까, 집안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유하 씨에게는 권한이 없어. 나를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이현 씨를 예뻐한다지만, ‘동생’이 하는 무례를 더 참아 주지는 못할 것 같은데. 그만 일어나 봐도 되나?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진 않아서.”
할 말은 다 했다. 그는 제 마지막 남은 꿈을 포기할 생각이 조금도 없으니, 원유하와의 대화는 그에게는 필요가 없었다.
강석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백이현을 일별했다. 불청객을 만나고도 바로 자리를 뜨지 않은 것만으로도 후배의 체면은 충분히 세워 준 것이지 않느냐는 눈빛을 보내자, 그는 가만히 미소 지었다.
“선배님을 잡아 둘 순 없죠.”
“그럼 나는 이만―.”
백이현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여전히 본인의 위치를 유지할 뿐이었다. 우연히 합석한 제 ‘동생’과 강석호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애초부터 끼어들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에 강석호가 막 자리를 뜨려고 했을 때였다.
“권한이 없다는 말은 좀 상처네요.”
“……?”
“저는 나름대로 현진이 형의 일에 간섭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봐서. 서로 가족보다도 더 가족같이 살고 있거든요.”
“가족이 없는 사람이 그걸 판단할 수도 있나?”
순간 자신을 긁어내리는 듯한 말에 강석호는 신랄하게 쏘아붙였다. 제 불쾌감을 동일한 수준으로 원유하에게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가족을 언급하는 게 원유하에게 유효타로 먹히는 것을 지난번의 만남으로 확인했기에 꺼낸 말이었으나, 지난번과 달리 원유하는 동요하지 않았다.
“저에게도 절 위해 주는 가족은 있었거든요. 그래서 알 수 있죠. 아버님이 딱히 현진이 형의 가족은 아니란 걸.”
“…뭐?”
대신, 원유하는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자신은 핏줄이 이어진 가족을 가져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두 번이나 있었다고. 그래서 알 수가 있다고.
“핏줄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더군요, 가족이라는 건.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와 함께 있고 싶은지, 그걸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지도 ‘선택’할 수 있고.”
“대체 무슨 소릴…….”
“그러니까 조심하시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일종의 최후통첩이기도 하겠군요.”
의뭉스러운 말이다. 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 건지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없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말.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몰랐다.
“…….”
순간, 이유도 없이 괜스레 불안감이 찾아든 건.
경계할 필요 따윈 없다. 강석호의 가정은 누구보다도 단란하다. 강석호와 윤희연 모두 자신들의 이미지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고 노력해 왔다. 대중이 물어뜯을 지점 따위는 조금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무시해야 옳은데. 그렇게 해도 될 텐데.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
어쩐지 불안감이 찾아드는 기분에 강석호가 원유하를 향해 윽박지르기 시작했을 때였다.
“분명 제게는 아버님을 협박할 카드가 없지만, 다른 쪽에는 있을 것 같아서요.”
“……!”
강석호는 조근거리듯 이어지는 목소리에 곧 완전히 평정심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원유하가 감히 그가 흘려 들을 수 없는 말을 꺼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아버님께서 현진이 형에게 그러셨듯이,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지는 공격은 가장 치명적일 듯해서요.”
그러니까, 원유하는 지금 이 말을 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듯했다.
“경고하러 온 겁니다, 전. 아무래도 ‘아버님’이니 마지막으로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은 쉽게 막을 수 없을 거거든요.”
“…원유하 씨가 뭘 할 수 있다고?”
“카드는 없지만, 어떤 ‘분위기’ 정도는 제가 만들어 줄 수 있을 듯해서. 저도 제 ‘팀’을 지키기 위해서는 뭐든 하려고 하거든요.”
조심하라고.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어떻게든 마음을 바꾸라고. 그게 강석호와 윤희연을 위해 좋을 거라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는 알려 주려 온 듯했다.
“…지금 현진이 형이 선택한 건 우리니까.”
“…!”
누군가의 다짐을.
그가 내린 어떤 결정을 알려 주기 위해서.
“믿어 준 만큼의 값을 하고 싶거든요. 전 현진이 형이 스스로 원하는 걸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니까. …아버님의 ‘가족’과는 달리.”
그걸 위해 본인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또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