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58)
대기실로 돌아온 천세림의 낯빛은 좋지 않았다.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각자 검색을 통해 알게 된 팀원들의 곁에서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앉아 있던 천세림은 어떤 말도 쉽사리 꺼내지 못했는데, 그건 평소의 놈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전화를 한 건 소속사인가.’
한 아이돌의 언급 이후 이른바 ‘탈주러’가 특정되며 커뮤니티가 불타오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오늘 새벽의 일이었다. 천세림의 소속사 또한 팬들의 문의 전화로 상황을 알게 된 것이겠지.
이미 잡힌 스케줄에 따라 천세림은 에이넷 방송국에 도착해 있는 상황. 무대까지 다 소화해 놓은 마당에 미니 팬 미팅에 불참한다면 논란을 의식하고 있다는 인증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저희 이제 미니 팬 미팅 하러 이동할게요!”
“네!”
“…네!”
그런 만큼, 천세림은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함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려는 모습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라앉은 분위기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천세림의 뒤통수를 보며 로비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커뮤니티에 올랐던 이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스내치 김민호였던가.’
초성으로 적혀 있었지만, 단 한 번의 추가 검색 끝에 나는 에둘러 천세림을 언급하며 논란을 만들어 낸 아이돌이 누구인지에 대해 바로 알 수 있었다.
에이트 엔터테인먼트 출신의 2년 차 아이돌 그룹 스내치. 그중 리더를 맡고 있는 김민호가 바로 이 논란의 시발점으로, 나는 그놈이 어떤 인간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아, 무슨 이름도 못 들어 본 놈들이랑 같이 대기실을 쓰래……. 진짜 개X같네. 급 좀 맞추지?
-선배 보면 일단 머리부터 숙이고 봐야지, 존X 얼타고 서 있네…. 한 대 치고 싶게.
-이 좁아터진 대기실에 저놈들 들일 구석이 어디 있어, 그냥 내보내면 안 되나. 복도 널찍하고 좋잖아, 거기서 준비하지?
내가 회귀하기 전, 아직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 아이돌일 때 지방 공연에서 한 번 마주한 이력이 있는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연예계 서열질은 흔하지만, 개중에서도 그놈들이 제일 집요했던 것 같은데.’
안 팔리는 아이돌의 대우는 좋지 못하다. 그건 대중과 스태프들을 비롯해 같은 동료 연예인에게조차 그랬다.
결국 모두가 대중들의 관심을 목표로 하며, 그를 통해 얻어지는 인지도에 따라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기에 동종업계 종사자들은 유독 인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같은 나이, 같은 연차여도 인기에 따라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는데, 그중에서 연차도 낮고 소속사의 파워도 낮은 우리는 그야말로 그들이 거리낌 없이 까 내려도 좋은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다만 놈들의 서열질은 더욱 집요하고 질이 나빴다.
계속해서 말로 인신공격을 하다 못해 대기실 바깥으로 쫓아낸 데다, 무대 순서를 바꾸어 나중으로 예정돼 있던 자신들의 무대를 먼저 앞당겨 한 탓에 우리가 무대를 할 즈음에는 스내치의 팬들이 모두 빠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공연에서 인지도가 높은 그룹을 뒤로 빼는 이유가 있는 법인데, 결국 상도덕을 완전히 무시해 버린 스내치 덕에 라이트닝은 관중이 3분의 2가량 사라진 무대 위에서 초라하게 퍼포먼스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X발, 동정심 표로 인기 얻어 놓고 얻다 대고 잘난 척이야……. 한 놈 제물로 바쳐서 인기 얻어 놓은 주제에 재능으로 탑 먹은 척하긴.
문득 과거 라이트닝 멤버였던 권혁규가 중얼거렸던 말이 생각이 나,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게 여기서 시작된 거였나.’
당시의 스내치는 2군 아이돌로, 열정과 노력, 언제나 팬들의 사랑에 감격하는 겸손함을 셀링 포인트로 잡고 있었다. 그만큼 ‘짠 내 나는’ 일화들을 자주 풀어놓으며 팬들의 사랑을 얻었고.
그리고 아마 그 ‘짠 내 나는’ 이미지의 스타트를 끊은 게 바로 천세림인 모양이었다.
‘천세림을 언급함으로써 피해자 이미지를 챙기기 시작했을 거고,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극복 서사로 이미지 메이킹을 시작한 거겠지.’
연민과 피해자 코스프레가 ‘팔린다’는 걸 알게 되었을 테니까.
현재의 버즈량만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나. 아마 스내치는 앞으로도 천세림을 지속적으로 언급할 테고, 결국 천세림은 버티지 못하고 [디어돌>에서 하차하게 되는 수순을 밟아 나가게 될 터였다.
놈의 멘탈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미니 팬 미팅에서부터 확연하게 드러났다.
“안녕하세요, 아이돌 메이커님들! [디자인 유어 아이돌> ‘네맘열쇠’ 팀입니다!”
“와아아아!”
에이넷 로비에 도착한 후 우리는 플래카드나 카메라를 들고 있는 수많은 [디어돌>의 팬들 사이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사방에서 터지는 플래시와 더불어 열띤 응원 소리에 맞추어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MC의 말에 맞추어 몇 가지의 질의응답을 하면 되었다.
“…그럼 이번에는 ‘네맘열쇠’ 팀의 센터로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냈던 천세림 연습생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센터로서 ‘내가 이것만은 꼭 살린다!’ 생각했던 게 있다면요?”
“아, 저는…….”
천세림이 마이크를 받아 들고 대답을 하려 할 때였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말자?”
“미친X아!”
사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 가운데 누군가 장난처럼 말한 것은.
비교적 가까운 자리에 있는 팬에게서 들려온 것인지, 그들의 목소리는 함성 속에서도 유독 또렷하게 우리의 귀에 와 박혔다.
나를 비롯해 다른 팀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천세림은 더욱 상황이 나빴다.
“…….”
그토록 말을 잘하던 놈이 순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얼어 버린 것이다.
순간적으로 기묘한 침묵이 흐르자, 팬들이 이상을 감지한 듯 장내에 수런거림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기색을 예민하게 느낀 MC가 빠르게 상황을 포장하려 들었다.
“천세림 연습생이 긴장했나 보네요! 아무래도 센터로서 부담감이 컸겠죠, 오늘 이렇게 아이돌 메이커님들 앞에서 또 무대도 선보였고요.”
“…아, 네… 죄송… 합니다. 음, 저는 그냥… 노래를 잘 살려야겠다, 그런 마음만 있었던 것 같아요. 너무 멋진 팀원들이라서… 센터로서 한 명 몫은 다해야겠다, 그런 마음만…….”
곧 어색한 미소를 지은 천세림이 말을 이었지만, 목소리는 어딘가 공허했고 평소와는 달리 생기가 완전히 빠져 있었다.
그 후로는 다행히 더 이상의 이죽거림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천세림은 미니 팬 미팅이 진행되는 내내 멘탈을 제대로 붙잡지 못하고 있는 기색이 강했다.
“괜찮냐?”
그 때문에 결국 걱정을 참지 못한 듯, 미니 팬 미팅이 끝나고 대기실로 이동하자마자 유찬희가 천세림에게 물었다.
“어, 뭐.”
천세림이 옷을 갈아입다 말고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지만, 대답을 들었음에도 유찬희는 탐탁지 않아 하는 얼굴이었다. 일견 차분해 보이는 목소리에 비해 천세림의 얼굴은 누가 봐도 멀쩡해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혹시 못 버티겠으면 지금이라도…….”
“유찬희.”
명백히 의례적인 대답에 유찬희가 뭐라 덧붙여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천세림이 자르듯 내뱉은 호명에 유찬희가 얼결에 입을 다물자, 놈이 일갈했다.
“괜찮다고. 별일 아닌 것 가지고 유난 떨지 마.”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잘라 내는 태도에 유찬희는 잠시 욱한 모양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었기에 결국 말없이 물러났다.
그런 반응을 보인 천세림에게 더 말을 걸려 하는 연습생은 없었다. 다음 스케줄을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연습생들 사이에는 침묵만이 감돌 뿐이었다.
그에 나는 잠시 동안 내가 이번 미션을 통해 얻은 결과물에 대해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이 내게 주었던, 또 한 번의 ‘알 수 없는’ 보상을.
『업적 달성 완료!』
당신은 [디자인 유어 아이돌> 2차 경연에서 전체 성적 1위, 팀 내 성적 2위를 얻어 내며 한 발자국 성공적인 데뷔에 가까워졌습니다.
보상 : 스텟 선택 상승권(1회), 화이트 해킹: 진실 생성기(1회권)
지난 1차 경연 이후 받았던 업적 보상과는 하나가 달랐다. 그리고 새롭게 얻어진 ‘보상’은 또 한 번 이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얻은 붕붕드링크도 이후 내게 일어났던 일들과 깊게 연관되어 있었으니까.’
붕붕드링크를 통해 부실한 체력을 이겨 내고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된 나는 그를 통해 예상치 못했던 인지도 상승을 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유찬희와의 관계 개선도 붕붕드링크 덕분이었지.’
강제적으로 페널티를 얻게 된 탓에 매일 연습실에 상주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더 이상 유찬희를 피하지 않고 행운 룰렛을 통해 얻은 통찰안으로 유찬희의 속마음을 들은 후 놈과 직접적으로 대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장기적으로 볼 때 모두 시스템이 나를 데뷔시키기 위한 목적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일들만이 일어난 만큼, 이번에 얻게 된 진실 생성기 또한 시스템이 설정한 ‘운명’과 관계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나는 조용히 눈치를 살피며 상태창을 열었다. 그리고 스텟 바로 밑에 자리하고 있는 물음표 모양의 아이콘을 눌렀다.
그때였다.
“……!”
우리를 태우고 달리던 버스의 진동이 멈추고, 흐르던 모든 것들이 정지한다.
나는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두운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천세림, 각자 조용히 상황을 살피고 있는 팀원들. 모두가 눈 하나 깜빡하지 못하고 석상처럼 굳어 버린 후였다.
나는 이 상황을 이미 한번 겪어 본 적이 있었다.
처음 회귀했을 때, 김민기가 나를 밀치고 내가 그 ‘운명’을 피하기 위해 운명 확정권을 썼을 때와 동일한 상황이었으니까.
‘…그 뜻은.’
이 진실 생성기라는 것이 운명을 직접적으로 바꿀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뜻일 것이다. 누구의 방해도 허용하지 않는, 강제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
나는 어느새 내 앞에 나타난 모니터와 함께 시스템 창을 바라보았다.
『화이트 해킹: 진실 생성기(1회권)』
단 한 번, 원하는 진실을 제한 없이 모두에게 알릴 수 있습니다.
조건: 사용자가 명확한 진실을 알고 있을 경우.
‘…진실을 모두에게 알릴 수 있다, 라.’
소문에는 진실과 거짓이 중요하지 않다. 선점만이 중요할 뿐이다. 거짓말이 퍼진 후 진실이 퍼지더라도 한번 낙인찍힌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게다가 이후에 퍼지는 진실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급하게 지어낸 거짓말 정도로 취급되는 경우도 잦았다.
하지만 시스템의 힘을 이용한다면, 그런 상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 경우도 같았으니까.
‘김민기는 무슨 상황이 벌어진 건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
그날, 김민기와 나의 위치가 바뀌어 나 대신 놈이 계단 아래로 떨어졌을 때.
떨어져 잠시 정신을 잃었던 김민기가 정신을 차렸을 때, 놈은 어떻게 해서 자신이 계단 아래로 떨어지게 된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유하랑 대화를 하고 있던 것까진 기억나는데, 아…….
권 실장님과 함께 정황에 대한 설명을 위해 병원에 찾아갔을 때, 놈은 상황을 명쾌히 설명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정확히 김민기는 ‘나를 밀치려 한’ 것까지만 기억하는 듯했다. 어떤 경위로 위치가 바뀌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고, 내가 어쩌다 몸을 피해 얼결에 굴러떨어졌다는 식으로만 알고 있는 듯했으니까.
그런 만큼, 진실 생성기를 사용한다면 이번 상황 또한 비슷하게 돌아갈 터였다.
‘천세림이 가지고 있는 진실이라는 것이 퍼지고 ‘탈주자’ 혹은 ‘민폐’라는 인식은 사라지게 되겠지.’
그렇다면 천세림은 이전과는 달리 운명을 피할 수 있게 될 터였다.
바로 그것이 시스템이 원하는 바일 것이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