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62)
만약 천세림이 김영신의 거부에도 일을 키울 생각이라고 했으면 나는 번호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아이템의 사용 여부도 다시 한번 재고해 봤겠지.
‘그렇게 되면 김민호랑 다를 게 없으니까.’
어떻게든 화제가 되어 보고자 천세림을 걸고넘어진 김민호, 상황을 타개하고자 김영신을 입에 담는 천세림. 둘 다 똑같은 놈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상황을 악화시킬 바에야 애초에 사과문 자체를 올리지 못하게끔 하는 게 낫고.
하지만 천세림은 그러지 않았다. 김영신이 거부한다면 확률 높은 타개법이라도 미련 없이 버리겠다고 말한 것이다.
-데뷔 막바지에 탈주한 건 후회 안 해요. 지금 그때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할 거고요. 근데 영신이 형이 도와 달라고 했을 때 제가 했던 말들, 그건 앞으로도 후회할 것 같아요.
덕분에 나는 천세림에게 김영신의 번호를 줄 수 있었다.
“받아 줄 줄 몰랐는데.”
그리고 다행히 김영신은 천세림의 연락을 받아 주었다. 그와 함께 사과문의 게재를 허용해 주었고.
“일이 잘 해결돼서 다행이네.”
김영신이 천세림의 연락을 받아 줄 것이란 확신은 있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천세림의 과거에서 본 김영신의 말투나 태도를 봐서는 천세림의 연락을 그냥 거부할 것 같이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수를 위해서든, 또 다른 기회나 아니면 과거 천세림과의 연을 위해서든 김영신은 높은 확률로 천세림이 사과문을 게재하는 것을 허용해 주었을 터였다.
무엇보다도 상황이 그렇게 굴러가지 않을 거라면 시스템이 애초에 내가 천세림을 돕도록 허용하지도 않았을 테고.
즉 내 조력은 애초부터 성공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형 아니었음 이런 일 없었겠죠.”
하지만 천세림은 시스템의 존재를 모르는 만큼 최근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기적처럼 여기고 있는 듯했다. 천세림 입장에서는 생각보다도 더 상황이 잘 풀렸기 때문일 것이다.
왠지 천세림이 답지 않게 감상적인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했기에, 나는 슬쩍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일어나기나 해. 이제 이동한다.”
“흠, 부끄러워요?”
나는 장난스러운 천세림의 말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새 스태프들이 연습생들을 한명씩 호명하고 있었다.
나와 천세림, 에이든 리는 소속사별로 입장하는 것에 맞추어 줄을 섰다. 연습생들이 스태프의 호명에 따라 입장문을 통해 세트장으로 들어서고 있는 동안, 차례를 기다리던 천세림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스내치 폭로자가 제가 처음이 아니더라고요.”
“응? 세림이 말고 누가 먼저 얘기했어?”
“아, 덧글로요. 커뮤니티 쪽에 먼저 이야기가 풀려서 제 사과문 올라오기 전에 한참 난리였다고 하던데…….”
천세림은 작게 침음하듯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마치 떠보기라도 하는 양.
“김민호랑 에이트 엔터가 처음 폭로 덧글 쓴 사람 잡으려고 혈안이 됐었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첫 폭로자 잡으려고 했는데 아무리 뒤져 봐도 그 폭로자 신상을 못 캐냈다는데, 아이디 자체가 없다고.”
“…그래?”
내가 모르는 척 그렇게 답하자, 천세림은 눈가를 살짝 좁히고는 은근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작성자 캐 보니까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IP였다고 했던가.”
“으, 뭐야. 유령?”
그 말에 에이든 리가 드물게 질색하는 얼굴로 말했다. 저놈이 저렇게 질색하는 분야가 있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그보다는 해커 같은 거 아닐까요? 스내치 멤버들 피해자 중에 해커로 전향한 사람이라도 있나.”
…이상한 부분에서 날카롭네.
아이템 이름에 ‘해킹’이 들어가긴 했기 때문에, 나는 순간 조금 찔린 마음을 감추고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같은 소속사 연습생들과 함께 걷고 있는 유찬희와 마주했다.
“아, 먼저 가요.”
천세림은 유찬희를 보자마자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곤 놈에게 다가갔다. 유찬희는 천세림을 보며 잠깐 움찔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삐졌네.’
“찬희, 삐졌어?”
“음, 뭐.”
에이든 리가 그렇게 말하는 것에 나는 대강 긍정했다. 이유는 아마 본인으로서는 걱정해서 꺼낸 말을 천세림이 잘라 냈기 때문일 터였다. 상황은 알겠지만 어쨌든 천세림이 그간 친근하게 대한 것에 반해 너무 단호함을 보였으니 서운한 마음이 든 거겠지.
역시나 천세림이 뭐라 말하는 것에 대해 유찬희는 계속해서 외면만을 유지했다. 그러다 천세림이 씩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자 결국 짜증스러운 얼굴로 놈을 쭉 밀쳐 내고 말았지만.
‘잘 노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에이든 리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현재 에이든 리의 소속사 연습생들은 놈을 제외하고는 남아 있지 않아, 우리는 각자 한 명씩 차례로 입장하게 되었다.
그렇게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에이든 리는 조금 섭섭한 투로 말했다.
“단우 형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역시 형 너무 아까워.”
에이든 리는 뛰어난 실력을 보여 줬던 주단우의 탈락이 아쉬운지, 지난 레벨 재평가 이후 생성된 네 명의 단톡방에서도 지속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주단우는 자신 또한 아쉽다고 말하면서 그 말을 적당히 흘리고 있는 중이었고.
“그런데 형 무슨 일 있나, 요즘 연락이 안 되잖아.”
“바쁘겠지.”
줄곧 이어지던 답은 최근 며칠 동안은 전혀 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적당히 추측하고 있는 바가 있었다.
“다음, KRM 엔터테인먼트 소속 원유하 연습생! 입장하실게요!”
“먼저 간다.”
스태프의 말에 따라 먼저 안쪽에 입장한 후, 나는 먼저 자리에 앉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위를 나타내 주는 세트장 아래에 자리한 간이 의자들의 수를 세어 본 것이었다.
‘40개.’
현재 남은 연습생들은 총 30명. 즉, 열 개의 의자가 남는다.
그 의자들을 확인한 나는 마침내 줄곧 추측하고 있던 것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다.
‘달라지지 않았군.’
방송국은 세트를 허투루 준비하지 않는다. 여유분으로 의자가 준비될 일은 없고, 그런 만큼 의자를 채울 인원수는 정해져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눈치챈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뭐가 더 있네?”
“네.”
입장해 옆자리에 앉은 도지혁이 그렇게 말하는 것에 나는 적당히 긍정했다. 도지혁은 흠, 작게 침음하더니 말했다.
“현진이를 놔줄 것 같진 않았지…….”
그리고 놈은 씩 웃으며 내게 말했다.
“좀 아쉽나? 1등할 기회였잖아.”
나는 슬쩍 우리가 찬 마이크를 바라보았다. 이런 말이 마이크에 다 담겨도 괜찮겠느냐는 뜻이었다. 그에 도지혁이 적당히 손으로 마이크를 덮고는 말했다.
“이런 말까진 안 나가. 중대 발표 전에 먼저 연습생 대화 나가면 방송 재미 떨어지잖아.”
“…그래도 조심하죠, 무슨 말이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데.”
방송국 놈들이 출연자들의 사소한 대화들을 모두 모아 두었다가 자신들이 원할 때 이상한 방향으로 짜깁기해 쓰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그러니 애초에 건덕지 자체를 안 만들어 주는 게 낫다.
도지혁은 내 말에 적당히 긍정하듯 웃고는 여유로운 어조로 내뱉었다.
“좋아, 그럼. 근데 너무 긴장하진 마. 어차피 이다음에도 힘들어질 것 같은데 벌써부터 그러면 피곤할걸.”
“…왜요?”
“[디자인 유어 연습생> 연습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뜬금없는 도지혁의 말에 내가 그렇게 반문한 순간이었다. MC가 입장하며 하는 말에 대화가 끊겨, 우리는 고개를 돌려야 했다.
입장한 MC는 자리를 채운 연습생들을 바라보며 활발한 어조로 진행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자, 오늘 이렇게 2차 순위 발표식의 날이 밝았는데요. 근황이 궁금한 연습생들이 여럿 있지만, 그 전에 먼저 한 가지 공지 사항을 발표하겠습니다.”
MC는 유려한 진행 솜씨로 수런거리는 연습생들을 진정시킨 후, 의미심장한 얼굴로 연습생들이 앉아 있는 구역의 비어 있는 의자들을 가리켰다.
“현재 지난 배틀 평가를 이겨 내고 살아남은 연습생은 총 30명. 하지만, 제 앞에는 이렇게 열 개의 의자가 남아 있습니다.”
“뭐야?”
“아, 그러네?”
대충 일이 어떻게 굴러갈지에 대해 감을 잡은 사람도 있지만, 아예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던 연습생도 있던 듯 다시 한번 세트장이 술렁였다. MC는 높아져 가는 연습생들의 궁금증에 지체하지 않고 바로 말을 이었다.
“이 의자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근황이 궁금한 연습생들, 그중에서는 좋은 무대를 보여 줬음에도 아쉽게 탈락을 해 이 자리의 동료 연습생들을 비롯해 많은 아이돌 메이커님들의 탄식을 자아낸 소년들도 있습니다.”
“뭐야? 설마…….”
“헉.”
“이대로 꿈을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던, 이 빈 의자를 채워 줄 주인공! 아이돌 메이커님들의 사랑으로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은 열 명의 연습생, 입장해 주세요!”
그제야 상황을 인식한 연습생들의 시선이 단번에 닫힌 입장 게이트 쪽으로 향했다. 직후 연습생들의 의문과 불안함, 기대 섞인 눈빛 아래로 곧 또 한 번 입장을 위한 문이 열리고.
“와아아아!”
그 안에서 2차 경연에서 배틀에 패하여 탈락했던 연습생 열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에 앉아 있던 생존 연습생들이 모두 기립해 일어서며 환호하고 박수를 치는 동안, 나는 선두에서 걸어 들어오고 있는 주단우와 눈이 마주쳤다.
‘역시 뽑혔군.’
나는 환하게 웃어 보이는 주단우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생각했다.
실은, 주단우의 부활은 이미 2차 경연 초기부터 예상되었던 바였다.
주단우는 제작진을 비롯해 대중 모두가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연습생이었다. 비주얼, 실력, 여기에 갈등을 이겨 내고 성장을 이뤄 낸 극복 서사까지 다 갖춘 캐릭터이니까.
‘뽑을 수밖에 없는 이유밖에 없으니, 패자 부활에 너무나 적격이었겠지. 보기도 좋고.’
회귀 이전, [디어돌>이 너무나도 투명한 꼼수로 방송을 입맛대로 주물렀음에도 약간의 항의만 받고 넘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너무나도 불공평한 배틀이기에 2차 경연에서 탈락한 각 팀에서 가장 많은 투표수를 얻은 연습생 두 명씩에게는 모두 부활의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무대에서의 모습만 보면 주단우는 아주 수월하게 그 두 명 중 한 명이 되었을 터였다.
“형!”
자신이 아까워했던 주단우가 부활 기회를 얻고 다시 연습생 사이로 합류하는 것을 본 에이든 리가 환호하는 것을 들으며, 나는 그가 연습생들 사이로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문득 빗겨 간 시선 너머로 나는 무조건 뽑힐 것이라 예상했던 연습생 한 명과 눈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아, 현진이. 마음고생 좀 했나 봐.”
그건 바로 부동의 1위였으나 지난 배틀에서 에이든 리의 조에 밀려나 탈락해 버렸던 강현진이었다.
강현진은 도지혁의 말대로 마음고생을 한 듯 지난번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수척해져 있었다. 아마도 조기 탈락이 꽤 큰 충격을 안겨 주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시선을 피하는 강현진과, 그런 우리를 집요하게 촬영하는 카메라를 보며 문득 도지혁이 내게 뭐라 말하려 했는지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돌아온 1위와 잔류한 2등, 절박해진 1등과 상승세를 유지하는 2등.
‘다음 라운드에서는 무조건 같은 팀이겠군.’
이 구도는 못 써먹는 놈이 바보였고, [디어돌> 제작진이 그 흥미로운 서사를 놓칠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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