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68)
슬럼프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노래를 부르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하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그러다 결국 대중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일상에 가까웠던 것이 한순간 아득해지는 때가 오면, 그때는 돌이킬 수가 없다. 완전히 수렁에 빠져 버리고 마는 거다.
‘1년 반… 정도였나.’
과거 내가 슬럼프를 겪은 이후 그걸 어느 정도 이겨 내게 된 게.
데뷔 이후까지 이어진 슬럼프는 어느 정도 활동을 겪은 이후에야 천천히 사라졌다. 물론 그때는 이미 라이트닝이 수면 아래로 묻혀 버린 뒤였고.
그때 슬럼프를 겪지 않았다 해도 라이트닝은 위로 떠오르지 못했을 테지만, 활동을 이어 가면서도 변변찮은 실적을 내지 못하던 활동 2-3년 차에는 그 탓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때 또 한 번 슬럼프가 찾아왔지.’
그리고 그 슬럼프는 남은 활동 기간 동안 지지부진하게 이어졌다.
결국 이어지던 슬럼프가 완전히 끝이 난 것은 아예 활동이 종료되어 버린 4년차 즈음에서였다. 그때는 이미 모든 것이 망해 버린 뒤였기 때문에, 오히려 슬럼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현진은 이미 한번 극복해 냈던 것처럼 보이는데.’
첫 등급 평가부터 지금까지 강현진은 단 한 번도 기대 이하의 실력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오히려 과거 [캐치 탤런트>에 나왔을 때보다도 더욱 발전된 춤 실력과 함께 보컬을 보여 주며 방송 초반부에 ‘봐’의 센터로 아이돌 메이커들에게 눈도장을 찍기도 했었고.
그런 강현진의 실력이 급작스럽게 떨어지기 시작한 건 이번 경연이 시작되고 난 이후부터였다.
지난 2차 경연과 더불어 촬영을 하지 않았던 한 달 간 어떤 변화가 놈에게 일어났다는 뜻이다.
“…흐름 끊어서 미안, 다시 연습하자.”
“형, 좀 더 안 쉬어도 괜찮겠어요?”
“내일이 중간 평가잖아……. 해야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온 건지, 얼굴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연습실로 돌아온 강현진은 경지원의 걱정 어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연습실의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자세를 잡았다.
그 뒤를 이어 다른 연습생들 또한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대형에 맞추어 각자 자리를 잡는 동안, 나도 대형에 맞추어 섰다.
“시작할게.”
시작된 강현진의 리드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는 동안, 나는 통찰안을 이용해 강현진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
그리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강현진』
세부 특성
특기(노래): C+(디버프: C-)
특기(춤): S-(디버프: B)
매력(외모): S-
매력(분위기): A
끼(표현력): S(디버프: C+)
끼(집중력): B-(디버프: C-)
체력(신체): A+
체력(정신): C(디버프: D-)
버프: (잠금)
상태: 압박(확인 가능)
→트리거(CHECK)
강현진의 현재 상태가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스텟이 최상위권인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수치에서 디버프를 받고 있다니, 생각한 것보다도 더 상황이 심각한 듯했다.
그리고 그 상태창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다시 한번 발이 꼬인 강현진이 순간 자리에 숨을 헐떡이며 멈추어 섰다.
그 순간.
『특기(춤): S-(디버프: B-)↓』
“잠깐 멈추죠, 저희.”
실시간으로 또 한 단계 내려가 버리는 강현진의 스텟을 보며, 나는 잠시 연습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 말에 강현진이 피로에 젖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해 시계 쪽을 눈짓했다.
“다들 지친 것 같고, 저녁 시간이니 밥 먹고 다시 연습 재개하는 건 어떨까요.”
내 말에 강현진의 심상치 않은 모습을 우려 섞인 얼굴로 지켜보던 팀원들이 바로 긍정을 표했다.
“아, 난 찬성~! 현진이 형, 우리 밥 먹으러 가요!”
“늦게 가면 또 애들이 밥 다 퍼 가요. 형, 저희 밥 먹고 다시 연습해요.”
일부러 강현진의 실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활발한 투로 그렇게 말하며 박원효와 에이든 리가 강현진에게 다가갔지만.
“…미안, 나는 좀 더 연습하고 싶다. 너희끼리 갔다 와.”
“아, 형…….”
“…음, 조금 쉬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너희한테 안무 가르쳐 줘야 하는데 나조차도 지금 못 하고 있잖아. 너희 다녀오는 동안 어떻게든 숙지해 둘 테니까 다녀와.”
강현진은 그 둘을 피하고는 홀로 자세를 잡았다.
누구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는 그 단호한 모습에 결국 에이든 리와 박원효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다들 못내 찜찜한 듯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연습실을 나섰지만, 강현진은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 거울 속의 자신만을 직시할 뿐이었다.
우리가 저녁을 먹고 온 뒤에도 연습을 지속하고 있던 강현진은 그날 안무를 따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실수 없이 퍼포먼스를 끝내지는 못했다.
머리는 굴러가도 몸은 움직이지 않는, 전형적인 슬럼프였다.
* * *
“와, 이번 팀 등수도 화려하네. 확실히 3차 경연까지 가니까 다르긴 다르구나.”
“저는 개인적으로 DAZZLE 팀이 제일 기대됐잖아요, 유하랑 현진이 조합 너무 신선해서. 유하야, 어땠어요? 현진이랑 같은 팀 돼서 최선의 무대 만들고 싶다더니, 잘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튿날, 마침내 다가온 중간 평가를 위하여 우리는 멘토들의 앞에 섰다. 카메라가 즐비한 연습실 안에서 활발하게 멘트를 시작한 멘토단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여 의례적인 답변을 뱉어 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거 알지? 유하 네 말대로 ‘잘’돼야지.”
내 말을 받아 쏘아붙이는 댄스 멘토 리오의 말에 팀원들의 분위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대놓고 주어지는 압박에 허공을 맴돌던 팀원들의 눈빛이 한순간 강현진을 스치고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갔다.
팀원들 사이에 흐르는 불안한 기류를 이미 초반부터 감지하던 카메라가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집요하게 훑었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파악한 건 제작진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현진이는 몸은 괜찮은 거야? 얼굴이 좀 안 좋아 보이는데.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컨디션 관리 제대로 한 거긴 해?”
“…괜찮습니다. 그냥 연습하다가 잠을 조금 못 자서…….”
“잘하고 싶은 마음에 무리한 모양이네. 아이고, 현진아, 그러다 컨디션 망친다. 오늘은 꼭 잠 잘 자고, 평가도 파이팅하자.”
“…감사합니다.”
꼬투리를 잡은 듯 물고 늘어지는 댄스 멘토 제인의 말에 강현진이 어물거리며 답하자, 곧장 보컬 멘토인 도민이 커버하듯 걱정하는 투로 말을 끝냈다. 그에 제인이 눈총을 주듯 툴툴거렸다.
“아, 나 더 말할 거 있었는데 끊으면 어떡해요?”
“애들 아직 퍼포먼스 보여 주기도 전인데 그렇게 자신감 꺾으려 들면 어떡해요.”
“아니, 아직 현진이가 도민 씨랑 같이 예능 출연한 7살인 줄 아시는 것 같은데. 현진이 22살이거든요, 도민 씨. 계속 과보호하면 곤란해요.”
“제가 언제 과보호했다고 그래요? 그리고 현진이뿐만이 아니라 제 눈에 [디어돌> 연습생들은 다 애기예요. 제인 씨도 그렇게 보일 거면서 괜히 모질게 구시기는.”
“전 아직 젊어서 모르겠는데요. 그리고 애기치고는 지금까지 꽤 독설 날리신 것 같은데. 그렇지, 유하야?”
“와, 이렇게 저를 나쁜 놈으로 만드시겠다?”
방송의 재미와 더불어 딱딱하게 굳은 분위기를 풀기 위해 만담하듯 말을 나누는 두 명의 모습에 팀원들은 각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어찌 됐든 잘해, 기대할게. 개인적으로 눈여겨보는 친구들이 많아서 잘했으면 좋겠어.”
“등수값들은 해야지, 다들?”
그런 식으로 이어지던 대화는 곧 평가를 기대하겠다는 말과 함께 끝을 맺었다.
“…3조 중간 평가 시작하겠습니다.”
이에 따라 센터인 강현진을 주축으로 삼아 대형을 맞춰 펼친 퍼포먼스 후, 멘토들의 반응은.
“어디 아픈 거 맞는 거 같은데.”
“…음.”
“무슨 일 있었나, 이 팀.”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이 팀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남았나, 할 것 같은데?”
가히 최악에 가까웠다.
“현진아.”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제인이었다.
제인은 골치가 아프기라도 한 듯 미간을 살짝 누르고는 한숨을 쉬듯 말을 이었다.
“너 무슨 일 있어? 왜 박자가 하나도 안 맞지?”
“…….”
“그뿐만이 아닌데? 지금 폼 다 무너졌잖아. 힘 제대로 못 잡고 있고, 각도 안 맞고, 대형도 안 맞아. 센터고 댄스 네가 리드하는 거면 중심에서 주축이 돼 줘야지, 주축이 흔들리니까 지금 너희 팀 다 흔들리고 있어.”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한 건 나한테 하는 게 아니라 너희 팀한테 해야 해. 지금 나, 너희 춤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다 따로 놀아서.”
제인의 독설에 강현진의 얼굴이 굳었다. 그 뒤를 이은 것은 리오였다.
“지금 문제가 한둘이 아니라 뭐부터 짚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너희 이 상태로 오늘 숏 폼 제대로 촬영할 수 있겠어?”
“…….”
“그리고 좀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는데. 일단 유하 나와 봐.”
리오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대형의 뒷줄에서 앞으로 나섰다. 리오는 자리에서 일어선 후 우리에게 다가와 각자 위치에 서 있는 연습생들의 자리를 조정해 주었다.
기존의 대형은 강현진을 주축으로 제일 춤 실력이 안정적인 에이든 리와 박원효를 중심으로 두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오는 나와 강현진의 자리를 변경한 것이었다.
급작스러운 변화에 강현진의 얼굴 위로 숨길 수 없는 당황이 번졌지만, 리오는 태연하게 스태프에게 지시했다.
“다시 한번 해 보자. 노래 틀어 주세요.”
얼떨결에 센터에 선 나는 곧 리오의 주문에 맞추어 바뀐 대형에 맞추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나와 에이든 리, 박원효를 주축으로 몇 번의 자리 이동이 오간 후.
“그만.”
리오의 컷 사인에 우리는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멈추어 섰다.
리오는 고뇌하듯 우리를 바라보다가 지금 팀에 있어선 거의 폭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말을 토해 냈다.
“너희 센터 바꿀 생각은 없어?”
“네?”
그 말에 숨을 몰아쉬고 있던 우리들은 불현 듯 고개를 들었다. 리오는 흠, 작게 침음을 내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춤 더 잘 추는 건 지금 에이든이랑 원효야. 근데, 흐름을 이끌어 가는 건 유하만 한 애가 없어 보이는데.”
“아…….”
“표현력도 좋아. 인트로에서 이미 한 번, 1절 마지막 즈음에 치고 나와 줄 때 눈빛으로 씹어 먹잖아. 처음부터 분위기 잡고 그걸 다음 타자한테 이어 주는 것도 중요하거든. 근데.”
마침내 리오의 시선이 우두커니 서 있는 강현진을 향했다. 황망한 얼굴의 강현진에게 리오는 숨김없이 뒷말을 토해 냈다.
“지금 현진이는 그걸 다 끊어 먹고 있어. 내가 제일 처음 레벨 평가 때 봤던 애가 얘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리고 그런 애가 센터가 되면 너희 팀 망해, 그래도 괜찮겠어?
이어지는 말에 우리 팀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