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75)
“무슨 소리예요?”
“어제 3조 말이에요. 걔네 미쳤던데요.”
“잘했어요, 3조? 센터 바꿨나 봐요?”
“아뇨, 센터는 여전히 현진이고요.”
“…현진이가 잘했어요?”
제인의 놀란 되물음에 도민은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진의 컨디션이 무너진 후 가장 안타까워하더니, 이제야 한시름 덜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심사 위원들끼리는 암묵적으로 서로의 ‘최애’가 누군지에 대해 말을 삼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민의 원픽이 누군지 모르는 멘토는 없었다.
아직 신인이던 시절 함께 육아 예능에 출연했던 만큼 그가 강현진에게 가지고 있는 애정은 각별했던 것이다.
“난 현진이가 이겨 낼 줄 알았다니까.”
“신기하더라고요, 금세 되찾을 만한 컨디션은 아니었는데. 중심이 서니까 애들 대형도 몰라보게 잡혔고, 기대해도 되겠던걸요.”
댄서로서 강현진의 폼이 제대로 무너진 것을 확인하고, 그가 슬럼프를 이번 합숙 기간 동안 잡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던 리오가 뒤를 이어 말을 덧붙였다. 그 둘의 반응에 제인은 자연스럽게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을 가진 건 제인뿐만이 아니었다.
“3조라고 했죠? 강현진 연습생 있다는 조.”
“맞아. 아, 오키드 곡 커버했던 연습생도 그쪽에 한 명 있어. 이현이 네가 업로드했던 직캠 주인공.”
“원유하 연습생, 맞죠?”
큐시트를 보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고 그들의 대화에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저번 무대도 정말 잘했었는데, 기대되네요.”
데뷔 후 6년 차를 맞은 그룹 오키드의 센터, 백이현. 그는 이번 3차 경연에서 무대의 진행을 맡을 스페셜 MC로, 멘토들과 함께 모니터 룸에 들어와 있었다.
제인은 백이현을 흘긋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백이현이 눈짓으로 인사를 건네, 그녀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 맞인사했다.
‘처음 보네.’
보컬 트레이너로서 데뷔 이전 백이현의 트레이닝을 도왔다던 차미나, 가요계 선배인 도민, 오키드의 타이틀 곡 안무를 두어 번 만든 적이 있는 리오를 비롯해 시상식에서 몇 번 백이현을 마주한 적 있다던 브리디까지 현 멘토 중 대다수는 백이현과 연이 있었다.
그러나 제인은 단 한 번도 백이현과 협업해 작업을 해 본 적이 없는 만큼, 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상 자체가 없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제인에게 있어 백이현의 이미지는 그녀의 원픽인 원유하를 별스타로 서포트한 셀러브리티, 그리고 지금까지 업계에서 들어 온 소문 정도뿐이었다.
뜻밖에도 그 소문은 딱히 좋지는 못했다.
‘개미지옥 같다던데.’
백이현은 1군 아이돌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매력과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그는 중소 기획사에서 주최한 차기 데뷔조를 뽑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종 데뷔 멤버로 발탁되었다. 이어진 데뷔 후, 그가 소속된 그룹 오키드는 빠르게 1군 아이돌로 올라섰고 말이다.
그중에서 백이현은 그룹 내 다른 멤버들에 비해 수배의 차이가 나는 인기를 누리는 명실상부한 센터이자 인기 멤버였으며, 단 한 번도 구설수에 오르거나 실패를 겪지 않은 ‘운 좋은’ 연예인으로 불렸다.
상황은 언제나 백이현을 도왔다.
유행을 선도할 곡, 밈이 되거나 화제성을 탈 광고, 팬들과의 만남에서 일어나는 해프닝, 작게는 예능을 같이 출연하는 출연진들의 라인업까지.
백이현의 모든 활동은 순조로웠다. 그 모든 순간에서 행운이 따랐고 그 행운이 곧 백이현의 인지도가 되었다.
물론 그 모든 것들에 앞서 백이현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나 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긴 했다.
‘소재부터가 너무 좋긴 해.’
백이현은 가지고 있는 서사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이미 연습생 때부터 곱상하고 수려한 외모와 더불어 처연한 분위기의 얼굴을 뒷받침하는 애잔한 사정으로 팬들의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현재 번듯한 집안에서 선생님을 직업으로 하는 부부의 아들로 듬뿍 사랑을 받고 있다지만 과거 보육원 출신으로 열둘이라는 뒤늦은 나이에 입양된 케이스라고 했다.
고생을 모르고 자랐을 것 같은 귀티 나는 얼굴과는 다른 과거에 팬들은 몰입했다.
그리고 당시 데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어째서 아이돌이 되고 싶냐’라는 질문에 백이현이 한 대답은 그들이 백이현에게 표를 던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사랑받는 직업이잖아요. 사랑을 받고, 베풀고. 그게 어린 저에게는 가장 큰 꿈이었으니까. 그 꿈이 이뤄진다면 절 봐 주시는 분들, 그리고 저 자신까지도 실망시킬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높은 인지도와 화제성을 가지고 데뷔한 이후 백이현은 당시의 발언대로 사생활 관리를 깔끔하게 해내며 ‘팬들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 그리고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로 여겨졌다.
그러나 본인과는 달리 백이현과 엮인 인물들은 하나같이 재수가 좋지 못하다는 평이었다.
크고 작은 실패, 뜻하지 않은 슬럼프, 예기치 못했던 사고들. 마치 주변의 운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백이현의 주변은 언제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저 사람한테는 안 통하는 말 같아.’
하지만 주변인들이 하나둘 터져 나가는 동안에도 백이현만은 언제나 무탈했다. 그리고 그 차이가 백이현을 ‘어딘가 찜찜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백이현은 마치 알고 있다는 것처럼 사고를 일으키거나 커리어가 무너지기 직전 상대방과 연을 끊음으로써 ‘깨끗한’ 사생활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런 백이현이 공과 사가 뚜렷한 사람이자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누군가는 백이현이 제 악운을 주변에 뿌리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렇기에 백이현은 깨끗한 자신의 이미지와는 달리 업계 소문은 좋지 못한 편이었다.
그게 백이현의 인기에 타격을 입힐 일은 전혀 없었지만.
“이현이 너는 역시 유하가 원픽이야?”
“잘하더라고요, 원유하 연습생. 저 정말 ‘same and different’ 무대를 감명 깊게 봐서. 그렇게까지 커버해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유하가 행동력도 있고 기획력도 좋은 편이긴 하지, 성장도 빠르고. 첫 레벨 평가 때랑 비교하면 진짜 좋아졌어. 게다가 어떤 콘셉트든 소화를 정말 잘해서, 난 솔직히 이번에 현진이 무너진 거 보고 유하를 센터로 밀었거든.”
“숏 폼 영상은 봤어요, 잘하던데요. 원유하 연습생을 그대로 센터로 밀었어도 잘됐을 것 같은데.”
“그런데 현진이는, 뭐랄까… 걔는 진짜 어나더 레벨이거든. 컨디션 무너졌을 땐 말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 오늘 무대 보면 알겠지만, 아마 그쪽 멤버들 다 현진이한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노력 좀 해야 할걸.”
“와, 기대되네요. 으음, 특별 MC니까 사심을 드러내면 안 되겠죠? 개인적으로 저희 곡 커버해 준 친구들 한 번씩 만나 보고 싶었는데.”
“진행 전에 한 번 만나 볼 수는 있을 거야. 시작 전에 연습생들 모두 모아 놓고 촬영하니까, 특별 MC 소개도 해야 하고. 오키드가 롤 모델이라는 친구들도 많으니까 응원 한번 해 주면 되겠다.”
“그럼 저희 이동할까요? 연습생들 준비도 다 된 것 같던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멘토들은 모니터 룸을 나섰다. 헤어와 메이크업을 마치고 무대 의상을 갖추어 입은 연습생들은 아직 아이돌 메이커들이 입장하기 전인 세트장에 자리해 있었다.
“모두 잘 잤어?”
“네!!”
기합이 바짝 들어가 있는 연습생들에게 활기찬 인사를 건넨 멘토단은 연습생들 앞에 나란히 섰다. 제인은 자리를 잡고 서며 흘긋 한 줄로 늘어선 3조를 바라보았다.
3조의 가장 앞에 서 있는 것은 리더인 원유하였다. 그리고 원유하의 바로 뒤에는 강현진이 붙어 서 있었는데, 제인은 그 둘의 모습을 본 순간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 좋네?’
예상외로 원유하와 강현진의 분위기가 훈훈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원유하는 [디어돌>에 참여하는 내내 딱히 모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며 무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신경전을 벌이는 연습생이 둘 있었다.
하나는 원유하의 소속사 KRM의 라이벌인 DIO 소속 유찬희, 마지막은 어째서 원유하에게 적의를 불태우는 것인지 제작진들조차 알지 못하는 강현진이었다.
유찬희의 경우는 소속사 관계 때문이라는 식으로 어느 정도 설명이라도 가능했지만, 강현진이 왜 원유하를 견제하는지는 누구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높은 등수를 가진 데다 배경과 캐릭터마저 남다른 두 명의 갈등은 괜찮은 방송거리였기에, 제작진은 이 둘의 갈등 서사를 조금 더 살려 내고 싶어 했다.
‘중간 평가 때 센터 바꾸란 말도 반은 진심이었다지만 반은 제작진 주문이었고.’
리오의 멘트는 효과적이었다. 합숙 초반에는 나름대로 잔잔하던 두 명의 사이가 이후 급격하게 틀어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숏 폼 촬영의 센터까지 원유하로 바뀌고 난 이후, 제인은 저 두 명은 틀어질 일만 있지 관계 회복을 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3조의 분위기는 여유로워 보였다. 누구도 원유하와 강현진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저 둘도 서로의 존재를 편안하게 여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걸로 봐서는.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잘됐네.’
방송의 재미를 위해서라고는 해도 한참 어린 애들 싸움이나 붙여 놓는 게 그리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기에, 제인은 낙관적으로 생각하곤 3조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제인이 3조의 분위기를 살피는 동안 적당히 연습생들에게 응원의 말을 건네던 도민이 마침내 특별 MC를 소개한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자, 그럼 오늘의 특별 MC, 나와 주세요!”
“……!”
“헉……!”
“백, 백이현 선배님……!”
스테이지 뒤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백이현이 도민의 소개와 함께 세트장 안쪽으로 들어서자, 연습생들 사이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마도 현직 1군 아이돌이자 현 아이돌 지망 연습생들의 1순위 롤 모델인 백이현이 굳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MC로 등장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일 터였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
그리고 연습생들의 반응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제인은 그제야 의구심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로, 백이현은 ‘굳이’ [디어돌>에 나올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저 정도 급과 연차가 되는 연예인이라면.
‘리오와의 친분 때문에는 아닌 것 같은데.’
리오가 오키드의 타이틀곡 안무를 만들어 준 적이 있다 해도, 백이현은 굳이 리오가 멘토로 있는 [디어돌> 출연 제안을 수락할 정도로 그와 사석에서 친밀하지는 않았다.
현재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만큼 그룹 활동도 잠시 동안 멈추어 선 상태이기에 연말 무대니 뭐니 하는 식으로 에이넷과 딜을 해 볼 이유도 없을 터. 애초에 오키드 정도 되는 그룹이면 그런 딜 없이도 좋은 무대를 타낼 수 있기도 하고.
그렇다고 [디어돌>에 얼굴을 내밀어 조금이라도 더 인지도를 노려 볼 처지도 아닌 상황. 굳이 출연을 결심할 이유 같은 건 없다는 뜻이었다.
-개인적으로 저희 곡 커버해 준 친구들 한 번씩 만나 보고 싶었는데.
그렇다면 남은 이유는 백이현이 제 입으로 말한 단 하나뿐인데.
‘겨우 그런 것 때문에 출연하게 됐다고? 왜?’
“안녕하세요, [디자인 유어 아이돌> 연습생 여러분. 오늘 특별 MC로 참여하게 된 오키드의 백이현입니다.”
의문을 느끼며 제인은 연습생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백이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연습생들을 크게 한번 훑던 그의 시선이 어느 한곳에 고정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덩달아 고개를 돌린 후, 매우 뜻밖의 상황과 마주할 수 있었다.
“……?”
그 시선의 끝에는 부드럽게 미소 짓는 백이현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차갑게 굳은 얼굴의 원유하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