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78)
“섭섭했어?”
섭섭?
나는 안쓰럽다는 듯 그렇게 답하는 백이현의 말에 또 한 번 어이가 없어졌다.
사람을 골방에 가둬 놓고서는 섭섭이라.
“…바뀐 게 없으시네요.”
상황을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는 것하며 벌여 놓은 일에 대한 책임감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게, 딱 내가 아는 백이현다웠다.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 자신’만 알고 있는 꼴이.
“그건 유하, 너도 마찬가지인 것 같더라. 하는 걸 보니까.”
뼈 있는 말에도 백이현은 그렇게 답할 뿐이었다. 그게 뭘 뜻하는지 몰라 대답 없이 놈을 바라보고 있으니, 백이현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강현진이었나, 그 연습생 도와줬어?”
“…….”
“그 연습생 숏 폼 촬영 때까지만 해도 거의 재기 불능 수준으로 컨디션 망가져 있었다던데. 그 덕에 숏 폼 때는 센터로 나서더니, 무대에서는 양보한 모양이더라.”
“…현진이 형만큼 센터 잘 표현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 형이 가져간 건데요.”
“하하, 무슨 소리니……. 너도 잘할 자신 있었으면서. 그게 아니었으면 너희 숏 폼이 그렇게까지 화제를 탔을까. 센터가 너였어도 너희 팀 무대는 좋았을걸.”
어이가 없다는 듯 가볍게 미소 지은 백이현은 정말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파트도 마찬가지야. 너 지금 1등이잖아, 그런데 왜 메인 보컬도 센터도 네 몫이 아니었어? 심지어 서브1도 다른 연습생이 가져갔던데, 너는 뒤로 빠지고.”
“그걸 제가 선배님께 설명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아, 물론 설명할 이유는 없지. 근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
“유하가 생각만큼 절박하진 않나 보네, 하고.”
그렇게 말하며 웃는 꼴에 나는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한순간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또 버릇이 나오는구나 생각이 들었어. 네가 어릴 때 그대로 계속 놓치기만 하고 있길래.”
“…놓친다고요.”
나는 가만히 놈이 한 말을 읊조렸다. 놈이 내 행동을 ‘놓친다.’라고 표현하는 것, 그 이유에 대해.
그러다 문득 나는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말마따나 백이현의 말대로 내가 안타깝다고 해도, 저놈 말로 치면 내가 ‘놓쳐 버린’ 걸 냉큼 주워 간 저 새끼가 저런 말을 하는 건 어딘가 이상한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백이현은 다시 한번 대수롭지 않은 일을 이야기하는 투로 말을 이었다.
“양보하고, 놓고, 애초부터 욕심 안 내고… 그건 어릴 적부터의 네 안 좋은 버릇이었잖아. 이번 무대도 마찬가지였겠구나 싶었어. 가져야 할 거 못 가지고 뒤로 계속 빠지는 게.”
“그걸로 이득 보신 분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이어진 백이현의 말에 내가 빈정대듯 중얼거리자, 백이현은 시원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얼굴 위로는 어떤 악의도 없어 더욱 질리는 기분이 들었다.
“하하, 맞아. 그걸로 내가 제일 이득을 보긴 했지. 지금도 너한테는 고마워하고 있어.”
“고마워하실 이유는 없죠, 그건 제가 양보한 게 아니라 쟁취하신 거였잖아요.”
“…쟁취라.”
내가 툭 꺼낸 말에 백이현의 표정에 처음으로 변화가 갔다. 상냥한 웃음은 사라지고 잠시 고민하는 듯한 얼굴이 된 백이현은 나를 바라보며 선선히 시인했다.
“그렇지, 그건 네가 양보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좀 고민하긴 했어, 그때 너를 두고 그냥 가는 게 맞나 하고. 그런데 네가 너무 일찍 나와 버리면… 부모님이 혹시 또 마음을 바꿀지도 모르잖아.”
“…….”
“널 정말 마음에 들어 하셨거든. 몇 번이나 네가 골방에 틀어박혀 있느라 그분들을 보러 나오지 못해도 여러 번 기회를 줬잖아. 끝내 나를 데리고 보육원 떠나는 날까지도 끝까지 뒤돌아보셨고.”
“하.”
나는 그 말에 더는 참지 않고 웃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옛날 추억 따위나 이야기하는 것처럼 놈의 말투가 너무나도 평이했던 것이다.
기억한다.
놈을 데리고 간 양부모가 나를 정말 마음에 들어 했던 것, 일찍이 나를 입양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그들이 선물을 들고 보육원에 찾아올 때마다 놈이 했던 말 같은 것들.
-유하야, 형 말 잘 들을 수 있지.
그리고 익숙하게 가둬지던 골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틈은 없었다. 나는 입양 희망자가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들이 오는 날이면 골방에, 그 속에 있는 벽장에 갇혀 있었다.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벽장 속에서 숨바꼭질하듯 몸을 숨긴 채 적막과 어둠 속에서도 기다린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오래 기다렸지. 이제 가자.
밤이면 백이현이 나를 찾으러 왔으니까.
-내 동생.
누구도 형제가 없고 누구도 가족이 없는 보육원에서 나를 형제라고 부르며 소중하게 대하듯 굴었던 놈이, 내가 그 놀이를 하길 바랐으니까.
보육원에서의 백이현은 언제나 내게 상냥했지만, 내가 그 놀이를 끝내고 나면 놈은 한층 더 다정해졌다.
-같이 입양을 가서 진짜 형제가 되면 좋겠다. 이현이, 유하, 이름도 비슷하니까, 성만 같아지면 우리 둘을 진짜 형제로 볼 텐데.
-입양이 안 되면?
-그럼 형이 어른 돼서 유하 찾으러 오면 되지.
어린아이에겐 꿈에 불과한 말을 늘어놓으며 자신이 먼저 어른이 되어 보육원을 나가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나를 찾아 주겠다고 이야기해 주었으니까.
그 때문이었다. 그딴 기묘한 놀이를 반복한 건.
결국 누군가가 나를 찾으러 올 거라고 생각했기에. 백이현이 결국 문을 열고 나를 꺼내 데려갈 테니까.
‘하지만 안 왔지, 결국.’
반복되던 놀이는 끝내 방치로 끝났다. 누구도 데리러 오지 않는, 잠겨 있는 방 안에서 나는 기약 없이 놈을 기다려야 했고.
마침내 골방에서 나왔을 때 백이현은 입양을 간 후였다.
남겨진 건 백이현이 그를 데려간 부부로부터 받아서 내게 준 장난감 몇 개. 백이현이 깔끔하게 버리고 간 자신의 물품들.
그게 전부.
설마 잊었나, 하는 생각이 든 건 그 때문이었다.
사람 탈을 쓰고 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그래서 동생이라고 부르던 어린애를 이틀간 골방에 가두셨다…….”
그래서 꺼낸 말에, 백이현은.
“아, 이틀 동안 있었어? 음, 그래도 떠나면서 다른 애한테 너 어디 있는지 얘기는 해 줬는데, 아무래도 선생님께 제대로 전달이 안 됐나 보네.”
그렇게 말했다. 고생했겠다, 불 건너 강 구경하는 듯 관조적으로 덧붙이며.
‘…한 대 치고 싶은데.’
그 대답에 마음속으로 아주 비이성적인 생각이 찾아든 건 당연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어린 시절, 자길 따르는 여섯 살짜리 동생을 가두곤 입양 기회를 강탈해 간 새끼가 이제 와서 저런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
주먹에 잠깐 힘이 들어간 것도 잠시, 나는 작게 심호흡을 하며 어깨에 붙은 긴장을 떨쳐 냈다. 지금 저 자식을 칠 수는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까마득한 선배를 주먹으로 친 연습생으로 매장당할 순 없지.’
저 새끼 때문에 인생 망치는 건 한 번으로 족하다.
나는 목 끝까지 차오르는 욕설과 충동을 참아 내고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뭔지나 말해 주시죠, 왜 부른 건지.”
“그냥 인사차 부른 거야, 앞으로 자주 얼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이젠 선후배 관계가 될 테니까 남은 경연 동안 방법이 있으면 도와주고도 싶고.”
“도와? 뭘 도와요?”
“글쎄, 우선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팔아 볼까? 너랑 내가 같은 보육원에 있었다는 걸 말하면 바로 유의미한 표로 붙을걸.”
하지만 놈이 그렇게 말한 순간, 내 인내심은 완전히 닳아 버리고 말았다.
“닥쳐. 그딴 짓 하기만 해. 골방 이야기도 다 까발려 버릴 테니까.”
“…….”
백이현은 차마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라도 보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이즈음에 공격적인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이라도 하지 못했다는 듯한 기색이었다.
감탄하는 말이 따라붙은 건 바로 그다음이었다.
“유하, 너 설마 제작진 쪽에 아무 얘기도 안 했어?”
“…….”
“아, 설마…….”
이렇게까지 바보 같을 줄은.
그 말로 놈을 버티는 데 쓰던 신경 줄은 모두 닳아 버렸다. 더 이상 존댓말을 써 줄 심력조차 남아 있지 않아, 나는 더 이상 체면 같은 걸 차리지도 않고 쏘아붙였다.
“이제 와서 이딴 소리 하는 이유가 뭔데. 돕고 말고를 떠나서 이제 와서 날 찾는 이유가 뭐냐고.”
“너는 날 정말 믿지 않는구나, 우연찮게 너를 봤고 내가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어릴 적에도 서로 돕고 살았던 것처럼.”
도와? 일방적으로 강탈한 게 아니고?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고 나는 분노를 눌러 가며 물었다.
“좋을 대로 말하는 건 그만두지? 이제 슬슬 짜증 나는데. 네가 그럴 만한 인간이 아니라는 건 그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아. 목적이 뭔지나 말해.”
“그렇게 꼬아서 받아들이지 마. 정말 친분, 그거 말곤 없으니까. 동생과 다시 돈독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뿐이야.”
“…….”
“어른이 되고 보니 알겠더라고, 그때 우리가 얼마나 돈독한 형제였던 건지. 다시 가족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을 뿐이야.”
“…하, 됐다.”
나는 그 말에 더 이상 대기실에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 정도면 적당히 상대해 주었으니 이 문을 나가 더는 이 새끼를 보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내가 바로 뒤돌아 문고리를 잡은 순간이었다.
“어차피 앞으로 한솥밥 먹게 될 거고.”
“…뭐?”
“아아, 아직 아무 이야기도 못 들었구나?”
내가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백이현을 바라보자, 그는 곧 눈꼬리를 휘어 웃고는 말했다.
“이제 너나 나나 서로 도움이 필요해질 거란 뜻이야. 가장 먼저 유하 네가 득 볼 것 같기도 하고. 알고 있잖아.”
“…….”
“너 이번 경연 완전히 죽 쒔다는 거.”
그 말과 함께 백이현은 큐 카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경연의 결과 발표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 * *
“이번 경연의 1등은… ‘국민괴도’ 팀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와아아아!!”
“대박, 대박……! 다들 너무 수고했어!!”
백이현의 발표와 함께 스크린에 우리가 받은 총득표수가 떠올랐다. 연습생들이 모두 얼싸안고 있는 가운데, 강현진은 어리벙벙한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총득표: 850표」
1위: 강현진(센터) 300표
총득표수 중 3분의 1이 넘는 표를 강현진이 모두 독식하며 팀뿐만이 아닌 전체 연습생 1위를 차지했으니 말이다.
경악스러울 만한 득표수였으나, 팀원들은 다들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다. 안무를 창작하는 것과 더불어 팀에 전체적인 색깔을 부여하는 데 강현진의 공이 컸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고.’
같이 무대를 한 팀원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지만, 막상 강현진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혀, 형?”
“아, 아…….”
갑자기 눈물부터 쏟아 내는 걸 보면.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게 자신도 당황스러웠는지, 강현진은 다급하게 고개를 숙이고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는 데 바빴다.
그런 강현진의 모습에 팀원들은 물론이고 [디어돌> 참여 연습생들은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 한 번도 강현진은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름 위에 떠 있는 셀럽.’
딱 그게 지금까지 강현진의 이미지였다.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쌓지 않고,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아쉬울 것도 부족한 것도 없는 완벽한 연습생이 팀 1위에 갑자기 눈물을 터뜨려 버렸으니 연습생들을 비롯해 제작진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강현진 연습생, 많이 놀란 모양인데요. 소감 말할 수 있겠어요?”
“아, 네, 네…….”
강현진은 울음을 멈추려는 듯 연거푸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떨리는 손으로 건네어지는 마이크를 잡고는 망설였다.
“…….”
잠시 믿기지 않는 것처럼 스크린을, 그리고 자신을 가운데 두고 서 있는 팀원들을 바라보던 강현진은 곧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먼저, 먼저 저에게 표를 주신 아이돌 메이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아……. 정말, 상상 못 한 등수… 여서.”
다시 한번 감정이 북받치는지 말을 멈춘 강현진은 곧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흘려 가며 심정을 토로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도 없었고 이번 경연을 마지막으로 정말 끝이 나나 하는 마음에 실은 합숙 내내 암담했었는데… 저희 팀원, 동생들이 기회를 줘서, 끝까지 해낼 수 있었습니다. 혼자였으면 절대 못 했을 텐데 모두가 믿어… 줘서.”
“형…….”
“형, 천천히 해요.”
숨을 헐떡대는 강현진을 바라보는 팀원들의 눈에도 눈물이 어리기 시작했다. 강현진이 경연 내내 한 고생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데다, 지금 강현진이 하는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아챈 탓이었다.
“…이 표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습니다. [디자인 유어 아이돌>은 제게 너무 절박하고, 소중한 기회여서… 끝까지 이 기회를 붙잡고 싶습니다. 그리고 꼭, 꼭 팀원들과도 같이 데뷔하고 싶습니다. 자만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현진의 말이 끝난 후 연습생들은 박수를 쳤다. 나는 스태프에게서 가져온 휴지를 강현진에게 건넸다. 소매로 얼굴을 닦고 있던 강현진이 나를 바라본 후 조용히 휴지를 들었다.
“그럼 모두 3차 경연 수고하셨습니다.”
백이현의 마지막 멘트와 함께 제작진으로부터 컷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세트장에서 천천히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연습생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올려 다시 한번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5위: 원유하(보컬3) 57표」
끝에서 두 번째인 내 표수를.
그리고, 나는 무대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백이현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줄곧 바라보고 있던 듯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백이현은 스크린 쪽으로 잠시 눈길을 준 후 미소 지었다.
그것 보라는 듯한, 짜증 나는 얼굴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