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80)
그 방송을 본 이후에는 다른 연습생들한테까지 연락이 왔었다.
「발신자: 주단우
유하야,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당분간은 인터넷 안 보면 좋을 것 같아 우리는 네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 있어 리더로서 책임감 짊어지고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우린 모두 알아 방송을 왜 저렇게 만드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하 너는 잘못한 게 없고…… (더보기)」
「발신자: 천세림
이번엔 형이 걸렸네요 생방 직전인데 제작진 진짜 가지가지한다
그냥 다음 편은 보지 마요 그게 더 속 편할 듯
아니면 저랑 이든이 형이랑 같이 볼래요?」
「발신자: 에이든 리
유하 퀵으로 장어 젤리 보내줄까」
일단 이 세 명에.
「발신자: 강현진
미안해 내가 더 똑바로 행동했어야 했는데 내 행동이 모자라서 네가 피해 입게 된 것 같다 어떻게든 해명할 수 있으면 해명할게」
똑같이 예고편으로 팔려 자신이 내게 당하는 피해자 롤을 맡았으리라고 짐작한 강현진.
「발신자: 박원효
야.. 괜찮냐? 술 사줄까….? 술 먹긴 하냐?」
「발신자: 경지원
형은 잘했어요」
같은 팀을 했던 놈들에 더해.
「발신자: 쯔쉬안
형 괜찮아요???ㅠㅠ 나 이해 안돼요 형 잘했는데 왜 그랫지
아냐 혹시 몰라 그냥 예고편만 저렇게 했을지도 몰ㄹㅏ요」
「발신자: 유찬희
형 멘탈 꽉 붙잡아요 형 알아서 잘할 거 같긴 한데 그래도 괜히 흔들리지 마요 딴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형 XX 잘했다고 들었어요 생방 얼마 안 남았잖아요 여기서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독기 품고 제작진 한방 먹여요 꼭 형 떨어질 일 절대 없으니까」
「발신자: 도지혁
현진이랑 밥 한번 먹어
되도록 홍대 가서」
…마지막으로 지난번 같은 팀을 했던 세 놈에게까지.
‘도지혁은…… 아예 솔루션을 제시해 줬지.’
참 놈도 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정말 악편에 맞서기 위한 최적의 수라 좀 헛웃음이 튀어나왔고.
‘굳이 사람 다 지켜보는 데서 보여 주기 식으로 강현진과 밥 한 끼 먹을 생각은 없지만.’
어차피 악편은 예상한 바다. 굳이 큰 충격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 등수가 떨어질 것은 이미 예상했고, 떨어져 봤자 예측상으로는 데뷔권 안쪽을 지킬 수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욕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딱 그만큼 방송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유하가 생각만큼 절박하진 않나 보네, 하고.
순간 머릿속으로 백이현이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가볍게 그 말을 흘려 버렸다.
백이현이 말하는 ‘절박함’과 나의 ‘절박함’은 애초에 무게감이나 가치부터가 달랐기 때문이다.
‘백이현은 내가 1등에 목매달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내 목표는 1등이 아닌 생존이다. 백이현은 데뷔 이후의 인지도, 영향력을 위해 내가 1등 자리를 고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애초에 내게는 1등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퀘스트는 내게 10등 안쪽, 3차 순위식까지 떨어지지 않기를 주문했을 뿐이고 나는 생방까지 그 퀘스트만 착실하게 지켜 나가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절박함의 무게는 내 쪽이 더 무겁지만, 한편으로 나는 자유로웠다. 쓸데없이 1등에 집착할 이유는 없으니까.
“방송이잖아,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어. 한 번 맞고 끝날 테니까. 그동안 쌓아 왔던 캐릭터도 있으니 제작진도 나름대로 선은 지키려고 들 테고.”
“하필 생방 문턱 직전에…….”
“정말 괜찮다니까. 그보다 물어볼 게 있어서 보자고 했는데.”
“응?”
나는 현지오와 내가 틀어박혀 있는 연습실의 바깥을 흘긋 바라보았다. 복도를 지나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공연히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백이현, KRM으로 이적해?”
“……!”
내 말에 현지오의 눈이 커졌다. 그 반응이 바로 대답이 되었다.
“…하.”
나는 어이가 없어져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예상이 맞아떨어진 게 이렇게도 기분이 나쁠 수가 없었다.
그런 내 반응을 살피던 현지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났어? 이현 선배님.”
“어, 특별 MC로 와서 불러내던데. 한솥밥 먹게 될 거라고.”
“혹시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물어봐도 될까.”
나는 잠시 현지오를 바라보았다.
현지오와는 4년간 함께 연습생 활동을 해 오며 웬만한 이야기는 전부 공유한 사이였다. 거의 하루 종일을 붙어 살며 같은 연습실을 쓰고 같은 방에서 살았으니까.
LON의 데뷔조가 확정될 때까지, 그리고 내가 부모님의 사고로 숙소를 나설 때까지 함께 산 만큼, 현지오는 이미 내가 보육원 출신인 걸 알고 있었다.
‘한 번 입양 기회가 좌절되었다는 사실은 모르겠지만.’
어딜 가서 입을 싸게 놀릴 놈이 아니란 것쯤은 내가 더 잘 알기에, 나는 선선히 놈과 나의 관계를 밝혔다.
“백이현이랑 나, 같은 보육원 출신이야.”
“……! 아, 그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관계는 절대 아니고.”
나는 눈을 굴리는 현지오를 바라보다가 한 가지를 더 묻기로 했다.
“현지오, 지금 권 실장님이 나랑 백이현 관계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게 맞아?”
“…….”
“백이현 이적 명분 얻자고 실장님이 지금 내 과거사 풀 준비하고 있냐고 묻고 있는 거야.”
그 생각은 백이현의 말을 들은 순간 바로 머릿속에 떠오른 가능성이었다.
백이현은 솔로가 아닌 그룹 멤버다. 게다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그룹의 센터이자 인기 멤버, 그리고 당시에는 중소 회사였던 놈의 소속사를 중대형급으로 끌어 올릴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탑급 연예인.
그런 놈이 그룹 멤버를 버리고 회사를 옮겼을 때, 어떤 말도 따라붙지 않을 리가 없다.
‘최소 기회주의자에서 배신자 정도로 불리겠지.’
백이현은 아마 개인 활동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회사를 옮기기로 결정했을 터였다.
오키드는 명실상부한 1군 아이돌이었으나 K팝 팬들을 제외하고 대중성을 가지고 있는 멤버는 백이현이 유일했다.
게다가 팬덤 또한 백이현의 팬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 오키드라는 그룹 내에서 백이현의 존재감은 너무도 컸다.
그 와중에 백이현은 개인 활동의 지원이 허술한 현 소속사 대신 다른 소속사로의 이적을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계약 만료와 함께 아무런 잡음 없이 이적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룹 내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멤버가 홀로 소속사를 이적한다면 탈주자니 배신자니 하는 뒷말이 붙기 마련이니까.’
그렇기에 놈은 구설수를 상쇄시킬 명분을 필요로 했던 거다.
그게 나고.
‘더할 나위 없었겠지. 또 한 번 과거사 팔아먹으면 될 테니까.’
백이현의 과거사는 놈의 초기 인지도를 쌓는 데 큰 역할을 한 만큼 다수의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 와중에 백이현이 과거 보육원에서 가족처럼 친하게 지낸 동생이 있고, 그가 KRM에 있다고 말한다면.
또 한 번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소속사를 옮긴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저 말 맞추기식이란 걸 알아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감정적으로 반응하겠지. 어느 정도 구설수가 가라앉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게 바로 백이현과 권 실장님의 의도인 거다.
“…하.”
백이현의 침묵에 나는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바로 현지오를 지나쳐 문고리를 잡았다. 당장 권 실장님에게 갈 생각이었다.
“유하야, 모르는 척하자.”
“…뭐?”
하지만, 그런 내 움직임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멈추고 말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냥 가만히 있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가라앉은 얼굴로 현지오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얼굴로, 놈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장은 안 풀린다고 들었어. 네 의견 고려해서 아마 [디어돌> 끝난 후, 이번 연도 말에 이현 선배님 이적 날짜 가까워졌을 때쯤 공식으로 풀릴 거야. 그럼 그때 한번 이현 선배랑 사이좋은 척하면 돼.”
잠시 동안 나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현지오가 내뱉는 말들은 모두 한 번도 내가 놈에게서 들을 거라 생각한 적 없던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동안에도 현지오의 말은 유려하게 이어졌다.
“잠깐 불쾌한 거 참으면 유하 네가 원래 가졌어야 할 거 다 가질 수 있어.”
“뭐?”
“…실은 네가 데뷔했어야 되는 거잖아.”
현지오는 반사적인 내 되물음에 실소하며 답했다.
“넌 나보다 잘했을걸. 네가 잘하는 거 모르는 사람 KRM에 없어. 슬럼프 겪어서 실력 떨어졌어도 왜 권 실장님이 널 [디어돌>에 내보냈겠어. 널 그대로 놓기 아까워서였잖아.”
“무슨…….”
나의 당황에도 아랑곳않고, 현지오의 말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말을 이제야 한다는 것처럼.
“LON에도 더 좋은 메인 보컬 됐을 거야. 빠르게 실력 인정받고 상도 싹쓸이했겠지. 우리 연습생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 들어왔던 말이잖아, 넌 분명 잘된다고. 넌 분명 데뷔한다고.”
“…….”
“나는 그냥 운 좋게 네 자릴 훔쳤을 뿐이야.”
그리고 놈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던 나는 현지오의 그 말에 얼음물을 뒤집어쓰기라도 한 것처럼 단번에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운이라고?’
그 한마디가 일축시켜 버린 수많은 것들 때문이었다.
부모님의 사고와 내가 겪었던 슬럼프, 현지오가 데뷔를 위해 버텼던 4년간의 세월 같은 것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돌아다녔고.
“너는 예기치 않은 사고 때문에 잠깐 고꾸라진 것뿐이야. 그럼 그냥, 또 한 번 예기치 않게 잘되면 돼. 잠깐만 참으면 훨씬 수월하게…….”
그게 한계였다.
“현지오.”
“…어?”
더 참을 수 없어진 건.
“입 다물어.”
“……!”
“못 참겠다, 더는. 네가 개소리하는 거.”
나는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더 이상 놈의 말을 들어 줄 이유가 없었다.
하는 말이라곤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를 돌게 하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 * *
현지오와의 대화를 끝낸 후에도 나는 권 실장님을 만날 수 없었다. 그가 지방으로 출장을 갔기 때문이었다.
짤막하게 용건을 문자로 넣어 봤지만.
[부를 때까지 기다려.]…이런 대답이나 돌아올 뿐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찝찝한 심정으로 권 실장님의 복귀를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휴대폰을 닫기 전 또 한 번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지만, 나는 발신자의 이름을 보고는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휴대폰을 꺼 버렸다. 문자를 보낸 사람이 현지오였기 때문이다.
-미안해, 이건, 이건 네 자리였는데…….
“…….”
머릿속으로 떠오른 건 LON의 데뷔 멤버가 모두 확정된 날, 집까지 찾아와 용서를 구하듯 오열하던 현지오의 모습이었다.
그때는 그저 제대로 겨루지 못하고 데뷔 멤버로 확정된 데 대한 아쉬움이나 친구로서의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지오는 정말로 자신이 내 것을 도둑질했다고 생각한 거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아마 내가 회귀하기 이전에도.
‘…멍청한 새끼.’
사고는 사고일 뿐이다. 그건 운도 뭣도 아니고 그냥 일어난 일일 뿐이었다.
현지오는 내 부모님의 사고를 통해 어떤 득도 본 게 없으며, 놈이 LON의 메인 보컬이 된 건 그냥 현지오가 그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나는 데뷔조에 들었을 무렵에도 단 한 번도 현지오가 떨어질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현지오는 재능 있는 연습생이었고, 나는 놈과 연습생 생활을 하는 4년 동안 녀석이 쏟은 노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었다.
그런 만큼, 그놈의 데뷔는 ‘운’ 따위일 리가 없었다. 그건 놈이 정당하게 얻어 낸 결과물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현지오의 말은 어이가 없다 못해 순간적으로 핀트가 끊어질 정도로 나를 분노하게 했다.
나는 애초에 그딴 일방적인 부채감 따위로 내게 득이 되고 실이 되고를 따지라고 허락한 적이 없었으니까.
“…하.”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버스의 창밖을 바라보았다. [디어돌>에 매달린 지 수 개월, 어느새 날은 완전히 여름이 되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나는 휴대폰으로 백이현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백이현이라는 이름 석 자를 쓰자 곧 수없이 많은 연관 검색어와 기사들이 떴다. 그러나 아직 놈이 KRM으로 이적한다는 기사는 뜬 게 없었다.
“…….”
솔직히 말해서 이제 와서 백이현을 증오한다거나 하는 마음은 없었다.
놈의 인간성에 질려 버렸기에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 뿐, 이제 와 복수를 하고 싶다거나 하소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우리랑 같이 갈래, 유하야?
…전적으로 그 이후의 내가 양부모님을 만났기 때문이었고.
“…….”
나는 버스에서 내려 모자를 꾹 눌러쓴 채 발걸음을 옮겼다. 포장해 온 꽃을 든 채, 마스크를 잘 올리고 건물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동안 여러 명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다행히 알아보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그 덕에 나는 수월하게 목표하던 지점으로 갈 수 있었다.
딱 중간 즈음의 위치에 부모님은 고이 모셔져 있었다.
유리 벽 안쪽에는 입양 직후 찍은 사진과 함께 내가 연습생으로 들어가던 즈음에 함께 찍은 가족 사진이 놓여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 앞쪽에 들고 온 꽃을 내려놓고 착잡한 마음으로 사진을 바라보았다.
‘…3년 만인가?’
데뷔한 이후 3년 정도는 부모님의 기일을 꼬박꼬박 챙겼지만, 죽기 직전의 2년은 단 한 번도 납골당을 찾은 적이 없었다. 부모님을 볼 낯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응원해 주었는데 말 그대로 ‘망돌’이 돼 버려서, 얼굴을 볼 염치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부모님의 기일을 챙긴 건 정말 3년 만이었다.
깔끔한 유리 벽과 안쪽에 새겨진 부모님의 이름을 보며 나는 문득 입이 쓴 것을 느꼈다.
‘관리라도 했어야 했는데.’
부모님은 사업이 망한 후 일가친척과 모두 연이 끊겼다. 그들이 이제 와 부모님을 찾고 관리를 해 줄 리가 없었다.
그럼 내가 찾지 않은 2년간, 부모님은 버려져 있던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내가 죽은 후에는…….
“…….”
그 사실을 떠올리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때 그렇게 쉽게 포기해 버리면 안 됐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되돌릴 수 없는 잘못을 해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은 게… 기회이자 징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내가 그렇게 부모님의 사진을 두고 우두커니 서 있을 때였다.
찰칵!
“……!”
문득 들려와서는 안 되는 소리가 들린 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