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82)
나는 내가 이번 순위 발표식에서 등수를 지킬 수 없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머글 표는 머글 표대로 이번 3차 경연 당시 분량이 많았던 연습생, 아마 높은 확률로 강현진에게로 이동하고, 이번 방송에서 얹어진 빌런 서사 때문에 또 일정 수의 표가 갈려 나갈 테니까.
하지만 그뿐, 이번 방송으로 고정표가 움직이진 않을 터였다.
만약 이 빌런 서사가 초창기에 붙었으면 위험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나를 비롯해 살아남은 연습생들에게는 팬덤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빌런 서사는 그 팬덤을 흔들 만큼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걸 알기 때문에 이제 와 내게 서사를 붙인 거겠지만.’
어느 정도 이미지를 깎아 자극적인 서사를 만들어 내도 괜찮다고 판단했을 거다. 막상 당하는 나나 팬분들의 입은 쓰겠지만, 방송사가 그런 걸 고려할 이유는 없다.
이번 경연의 희생양이 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디어돌>은 초창기부터 강현진과 내 대결 구도를 계속해서 별러 왔고, 내가 너무 훌륭하게 그 떡밥을 던져 준 셈이었으니까.
무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어찌 됐든 이번 빌런 서사는 내가 자초한 바였다.
‘…만약 그 상황에서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때에는 무능한 리더 꼬리표가 붙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어떤 쪽으로 대응했든 아마 악편의 타깃이 되는 건 피하지 못했을 거다. 강현진과 한 팀이 된 순간부터 어느 정도 내가 손실을 입을 거라는 건 예상한 바였으니 이제 와 씁쓸해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연습생들은 다른 모양이었다.
* * *
“짜증 나.”
“…….”
“짜증…….”
“그만해라.”
나는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서 계속해서 툴툴거리는 에이든 리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조용히 경고조의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에이든 리는 잠시 동안 입을 다물었지만, 곧 억울하다는 것처럼 나를 흘겨보고는 물었다.
“유하, 안 억울해?”
“억울할 게 뭐가 있어, 방송인데.”
오히려 나보다도 더 흥분한 것 같은 에이든 리를 달래기 위해 덤덤하게 뱉은 말에도 에이든 리의 씩씩거림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유하 아니었음 우리 팀 망했는데.”
“음~. 그건 진짜 동감이다, 방송 보니까 중간 평가 완전 죽 쒔었잖아요.”
“…유하는 강현진 연습생한테 하루 더 말미도 줬는데, 그건 또 방송에서 빠져 있었어. 너무 심해.”
“그렇죠? 유하 진짜 할 만큼 했는데.”
“아무래도 그때 나도 어떻게든 말을 했어야 했던 것 같아……. 괜히 조용히만 있었어. 그거 때문에 안 좋은 포커스가 다 유하한테만…….”
흥분한 에이든 리에 이어 이번에는 주단우가 끝도 없는 자책에 빠질 기미가 보였기 때문에, 나는 다급하게 입을 열어 놈들의 삽질을 막기로 했다.
“다 지난 얘기 그만들 좀 하죠, 오늘 그런 얘기 하려고 만난 거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두 명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다른 연습생들도 걱정스럽다는 듯 문자를 더 보내기는 했지만, 이 두 명은 아무래도 지난 경연에서 같은 팀이었던 탓에 이번 방송에 더 마음을 쓰는 듯했다.
“진짜 괜찮아요. 이번 방송에 저 아무 유감도 없습니다.”
“왜? 있어야지!”
…아니, 없을 수도 있지.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버럭 외치는 에이든 리의 모습에 나는 떨떠름하게 말을 이었다.
“어차피 현진이 형이랑 저랑 붙여 놓은 것부터 보였잖아요, 이런 서사 낼 거라는 거. 이미 마음의 준비 다 끝난 상황에서 경연한 거고 이 일로 인해 크게 손해 볼 것도 없어요. 그럼 된 거죠.”
“하지만 반응이…….”
내 말에도 찝찝함을 지울 수가 없었던 건지, 두 사람은 또 한 번 삽질을 시작하려 했다. 그런 두 명을 막은 건 천세림의 지원 사격이었다.
“그래도 유하 형 말도 맞아요. 형 패는 사람도 있는 만큼 두둔하는 사람도 많던데?”
천세림은 그렇게 말한 후 나를 바라보고는 의미심장하게 씩 웃었다. 그에 내가 영문을 몰라 미간을 찡그리고 있자니, 놈이 은근하게 입을 열었다.
“형, 또 다른 별명 생긴 거 알아요?”
“별명?”
지난밤 서치를 하면서 거기까지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되묻자, 천세림은 재미있다는 듯 답했다.
“비운의 리더.”
“…….”
하나도 반갑지 않은 별명이다.
내가 그 별명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우리를 태우고 있던 택시가 멈추어 섰다. 그에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고,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
“와.”
“…우리 분명 오픈 전에 도착한 것 같은데.”
이미 오픈도 전인 이벤트 카페 앞에 벌써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서인 듯 양산을 비롯해 모자를 쓰고 빛을 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임박한 오픈 시간에 맞추어 카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와, 대기 줄 진짜 길다.”
“우리도 차례 서면 되나?”
그 열기에 우리는 잠시 택시 안쪽에서 머뭇거렸다. 분명 당초의 계획은 사람이 몰리기 전에 빠르게 인증 샷만 찍고 해산하는 것이었지만, 우리 생각보다도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이다.
“일단 내리자.”
어찌 됐든 여기까지 온 마당에 그냥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모자를 꾹 눌러쓰고 먼저 문고리를 잡았다. 어쨌든 마스크니 모자 같은 걸 쓴 만큼, 오픈 때까지는 적당히 꿍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문을 열자마자 후텁지근한 기온이 얼굴에 닿았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나, 에이든 리, 주단우가 조르르 내리는 것에 이어 앞자리에서 천세림이 내린 순간, 더위를 피해 부채질을 하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스치듯 우리에게 닿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했던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
“……!”
시선이 닿은 순간, 줄을 선 사람들로부터 소리 없는 경악 같은 게 잠깐 터져 나왔고.
“오픈합니다!”
…꽂힌 시선들은 카페가 오픈되었다는 소리에도 돌려지지 않았다.
* * *
“하…….”
“와.”
얼마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리는 완전히 땀에 젖은 채 한적한 동네의 카페 안쪽 구석진 자리에서 숨을 헐떡대고 있었다.
빠르게 지나간 방금 전의 일들이 벌써부터 꿈이라도 된 것처럼 아득했다. 우리가 조용히 침묵한 채 숨을 고르는 동안,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에이든 리였다.
“…신기하다.”
짧은 감상이었지만, 우리는 모두 그 말에 동의했다.
우리가 카페에 도착한 후, 잠깐 동안 이어지던 침묵이 깨진 건 줄을 서 있던 팬분들 중 한 분이 질문을 한 직후였다.
-혹시… 이든이?
-앗, 네~!
-허억……!
과도할 정도로 해맑은 에이든 리의 대답이 뱉어진 후, 우리는 거의 연행되듯 카페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아, 아니, 차례…….
-엇, 차례 안 지켜도…….
-더워, 얼른 들어가!
-열사병 걸려!
원래는 카페 바깥쪽에서 인증 샷만 찍을 예정이었지만, 얼결에 카페로 들어오게 된 이후 우리는 카페 안쪽에 마련된 포토 존에 서게 되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와중에 마스크와 모자를 벗고 인증 샷을 찍는 동안, 우리는 각자 손에 수많은 종이 가방들을 손에 들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들에 당황한 것도 잠시.
-팬이야, 유하야. 너 좋아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고마워, 진짜 고마워… [디어돌> 출연해 줘서 고마워…….
-무대 너무 잘 보고 있어. 이번에도 너무 수고 많았어! 다음 경연도 힘내!
그와 함께 전해진 수많은 응원에 나는 잠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에도 에이넷의 주도하에 지하철에 세워진 광고판을 보러 가며 팬분들을 마주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방송 촬영 때문에 빠르게 인증 샷만 찍고 해산했던 터라 어떤 제약도 없이 직접적으로 팬분들과 얼굴을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꼭 데뷔해, 유하야! 계속 응원할게!
팬분들의 표정은 어딘가 닮아 있었다.
간절한 듯, 그리고 벅차오른 듯한 얼굴들. 용기나 설렘을 담고 꺼내어진 말들.
팬분들은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있는 나를 보며 진심으로 내가 데뷔를 할 수 있기를, 그래서 오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할 뿐이었다.
그 응원의 말들과 기원하는 듯한 얼굴들을 보며 문득 떠오른 건 하나의 생각이었다.
이분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본능과도 같은 감각.
…이젠 아득해진 지난 생과는 달리.
‘그때는 너무 큰 실망이 될 수밖에 없었지.’
끝없이 이어지는 사건 사고들, 결국 그룹을 지키지 못한 무능한 리더였던 데다 무대에 더는 오르지 못하는, 망가진 상품이 되어 버리고 말았으니까.
고맙다고 말하는 팬분들의 말이 무겁게 느껴진 건 그 때문이었다.
내가 [디어돌>에 참가하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임에도 불구하고, 팬분들은 너무나도 조건 없는 사랑과 고마움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하야, 나쁜 말은 듣지 말고 좋은 말만 들어. 우린 너 믿어, 그것만 알아줘. 끝까지 같이 갈게.
그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마주친 순간,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욱 굳건한 믿음에 고장 난 기계처럼 ‘고맙습니다.’라는 말만 몇 번이나 반복하고는 다른 연습생들과 도망치듯 카페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거의 쏟아지듯 받은 애정에 영혼이 나간 건 나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나 평생 들은 고맙다는 이야기 오늘 다 들은 거 같아…….”
“형, 얼마나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었던 거예요?”
“세림, 내 감동 깨지 마…….”
“하하, 장난, 장난. 근데… 저도 동의해요. 오늘 오길 잘한 것 같아.”
“…응.”
다들 어딘가 쑥스럽고 감동적이라는 듯한 얼굴로 손에 든 선물이니 편지 같은 것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아주 잠깐 동안 어제의 일이 떠올라, 지금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게 옳은 일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지만.
-자주 보자, 유하야! 꼭!
종이 가방 속에 담긴 편지들과 카페에서 만났던 팬분들이 하신 말을 떠올린 순간, 나는 휴대폰으로 서치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찾아낸 결과물을 세 명에게 내밀며 나는 말했다.
“몇 군데만 더 가자.”
그에 세 명의 시선이 내 휴대폰의 액정으로 꽂혔다. 내가 보여 준 건 우리 네 명의 지하철 광고판을 표시한 후 그것을 이은 약도였다.
* * *
“으……!”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숨죽인 비명에 자습을 하고 있던 한 학생은 질린 얼굴로 옆을 바라보았다. 휴대폰을 들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고등학생 팬은 거의 진저리를 치듯 끙끙 앓고 있었다.
“아, 또 뭔데?”
“…나, 나 조퇴할래.”
“미쳤냐?”
걱정스러운 마음에 고등학생 팬의 기색을 살피던 학생은 어딘가 돌아 있는 듯한 고등학생 팬의 눈빛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갈등하는 듯 끙끙대다가도 제 말이 말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아는 듯 자리에서 몸을 들썩이던 고등학생 팬은 다시 한번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설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여기 있어서…….’
단 10분이면 갈 수 있는 지하철역에 원유하가 떴다는데 왜 나는 여기 있는 거냐고!
아직 단 한 번도 생방에 당첨된 적이 없는 고등학생 팬은 원유하의 실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어서 [디어돌>이 끝나고 원유하가 데뷔해 정정당당하게 콘서트에서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이 옆 동네면… 진짜 10분이면 가는데.’
물론 그녀가 갔을 때 이미 원유하는 떠난 후겠지만, 학교 지척까지 자신의 최애가 왔었다는 사실에 고등학생 팬은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원유하를 비롯해 일명 ‘룸메즈’는 현재 실시간으로 지하철 광고판을 돌며 인증 샷을 찍고 있는 듯했다.
스타트를 끊은 건 4명의 합동 이벤트 카페였다.
이벤트 카페 안에서 모자와 마스크를 모두 벗고 수려한 얼굴로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원유하를 다시 한번 본 고등학생 팬은 다시금 앓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착실히 손은 사진을 저장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SNS에는 점점 원유하 목격 썰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 유하 진짜 개 젠틀하고 귀여워…. 계속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무슨 팬들한테 거의 폴더 인사 하면서 엄청 낯선 것처럼 뚝딱대면서도 눈빛은 개 상냥.. 내 생애 저런 꿀떨어지는 눈빛을 받아 본 적이 있나?.. 원유하 벤츠력에 나 지금 치였음…
-자기 이름 외치는 팬들 눈 다 바라봐 주려고 하고 팬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정중하게 안전 걱정하면서 거리 유지하게 하고 ㄹㅇ 본투비 아이돌… 원유하 미쳤어
-얼굴 진짜 무슨 일이냐 카르마 진짜 고맙다 원유하를 디어돌에 내보내줘서 고맙다 이런 얼굴이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모르고 죽었으면 한 남아서 구천을 떠돌았을 듯
-지금 이 순간부터 원유하와 나는 한몸이며 원유하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 어쩌구… 다 됐고 원유하 데뷔해
그녀와 동일한 심정인 원유하의 팬덤, 스밍단의 주접을 바라보던 고등학생 팬은 계속해서 업로드되는 새 글 속 원유하의 사진들을 저장하기 바빴다.
그리고.
“……?”
미소를 짓고 있는 원유하 목격 인증 샷 속, 이질감 넘치는 한 사진을 발견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