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86)
하차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 건 권 실장과의 대화 도중이었다. 정확히는 KRM이 계획하는 일들에 내 의사 따위가 들어갈 여지가 없다는 걸 확인한 순간 말이다.
처음에는 충동처럼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나는 천천히 깨달을 수 있었다. 현실적으로 하차는 지금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걸.
현재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한들 나는 아직 데뷔도 하지 못한 일개 연습생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어떤 발언권도 없는 내가 회사 윗선이 벌이고 있는 일을 막을 수 있을 리 만무.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이야기를 없던 일처럼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런 나도 KRM에 엿을 먹이며 상황을 단번에 끝장낼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었다.
‘아예 판 자체를 뒤엎어 버리는 것.’
KRM이 굴리고 있는 이 판은 나를 말로 쓰며 돌아가고 있다. 대중은 내게 주목하며 내 과거를 소비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내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그러니, 내가 사라져 버린다면 판 자체가 흐지부지될 터였다.
내가 직접 [디어돌> 제작진 측에 하차 의사를 밝히고 KRM에서도 빠져나오게 된다면, 상황은 소강상태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당사자를 빼놓고 데뷔니 뭐니 하는 걸 진행시킬 순 없으니까.
즉, 하차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이자 방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생각에 확신을 더한 건 백이현의 인터뷰가 공개된 후 걸려 온 한 통의 전화였다.
[저, 죄송합니다. 막는다고 막았는데…….]발신자는 납골당의 직원이었다. 의아해하는 내게 그들은 부모님의 함이 담긴 납골함의 문이 열렸다고 고백했다.
[안에 있는 유골함은 무사합니다. 하지만 사진들이 사라졌어요.]내가 어떤 납골당에 방문했는지, 그 안에 자리한 납골함의 위치도 알려진 상황. 위험을 느끼고 납골당에 부모님의 유골함을 옮길 수 있도록 부탁을 드렸으나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아마 사진이 커뮤니티에 퍼지자마자 훔쳐 갔겠지.’
가장 최초로 사진을 찍은 사람일지, 아니면 사진을 보고 발 빠르게 찾아온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내가 느낀 건 단 하나뿐이었다.
후회.
[디어돌>에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깊은 후회와, 이 상황이 지속될수록 나는 점점 더 많은 걸 잃어 갈 것이라는 확신.그리고 더 이상의 고민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순간, 나는 시스템으로부터 부여받았던 퀘스트 창을 다시 한번 불러내 확인해 보았다.
『메인 퀘스트: [디자인 유어 아이돌> 데뷔를 향한 의자는 나의 것!』
[디어돌>의 1차 순위 발표식에서 데뷔권 의자에 앉은 당신.파이널의 관문, 3차 순위 발표식까지 파란 의자를 유지해 성공적인 데뷔를 이뤄 내세요.
성공 조건: [디어돌> 3차 순위 발표식까지 데뷔권(10위 이내) 유지
성공 보상: 운 수치 +50, 스텟 랜덤 해금
※단, 자진 하차 시 두 배의 페널티가 부과됩니다.
실패 페널티: 운 –100
운: 10
※운이 0이 될 경우 ‘원유하’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시스템이 날 사지로 몰아낸다 생각해 처음 받았을 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었지만, 기묘하게도 이제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상황은 이미 오래전에 내 손을 벗어난 후였으니까.
‘이번 3차 순위식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더 이상 확신이 불가능하다.’
3차 순위식에서 발표될 이번 투표가 진행된 기간은 내가 대중의 질타를 얻어맞고 있었던 때였다. 내 과거가 풀리기 시작하며 상황이 반전되었지만, 그때쯤 이번 투표는 거의 끝나 있었다.
그런 만큼 이번 순위식에서의 등수는 나조차도 쉽게 확신할 수 없었다. 폭로가 터지고 난 이후 며칠 동안 나는 나에 대한 비난만을 볼 수 있었으니까.
고정 팬덤도 당연히 흔들렸을 터, 투표수가 유지되었을 리가 없었다.
나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빠졌다. 지금 당장 내가 [디어돌>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하차하겠다고 말하면 내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은…….’
나의 죽음이었다.
자진 하차를 하는 순간 나는 퀘스트에 실패하게 된다. 그에 페널티가 지불되며, 현재 단 10포인트만이 남아 있는 내 운 수치는 0을 기록하겠지.
그리고 운 수치가 0을 기록하는 순간 ‘원유하’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고, 시스템은 나의 회귀 초반부터 그렇게 경고해 왔었다.
나는 이미 한 번 죽었던 사람이다.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건 시스템에 의한 것으로, 그마저도 시스템은 이번 생의 내 목숨을 담보로 잡고 계속해서 나를 퀘스트에 밀어 넣고 있던 상황이었다.
내가 시스템에 반기를 들고 아예 나를 과거로 회귀시킨 자가 짜 놓은 틀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더 이상 자비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 내게 주어져야 했던 운명대로 죽게 되겠지.
‘아니면, 다시 회귀하려나.’
내 기본 특성인 ‘회귀’를 타고, 게임 캐릭터처럼.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 해도 지금 같은 일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 그런 걸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시스템이 내게 어떤 페널티를 주든, 이제 그런 건 어떻게 돼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단 한 가지, 상황을 어떻게든 마무리 짓는 것이었으니까.
-대중의 주목이 꽂힌 순간부터 사생활이란 건 없어. 네 얄팍한 비밀은 절대 감춰질 만한 종류가 아니었단 거야.
권 실장이 지껄여 댄 건 하나같이 개소리였지만, 그 말만은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알려지기를 선택한 순간부터 나는 사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건 과거사도 마찬가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모든 것은 콘텐츠로서 상품화되고, 그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내가 선택한 건 그런 길이기 때문이다.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우리 유하는 할 수 있어. 엄마는 믿어.
-우리 아들 아니면 누가 연예인 되겠어? 유하 네가 못 할 거 없다고 본다, 아빠는. 우리 아들은 멋진 가수 될 수 있어. 아빠가 장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 낼 수 있지 않을까, 멍청하게 난 그런 생각이나 한 거다.
적어도 부모님의 말이 부끄럽지 않은 아이돌이 되는 걸 목표로 했던 때도 있었으니까.
‘모르셨겠지, 내가 알려진 것 때문에 도리어 본인들이 공격당하실 거란 걸.’
돌아가신 후에도 평안히 쉴 수 없게 되리라는 걸 끝내 모르셨을 거다.
-유하야, 같이 갈래?
자신들이 손을 내밀었던 열두 살 어린애, 사랑으로 기른 아들이 이런 식으로 그분들의 가장 큰 후회가 될 줄은.
-우리 유하만큼은 끝까지 책임져야지.
-미안해, 우리 유하. 엄마 아빠가 행복하게 해 주려고 데려왔는데, 이렇게 고생시켜서.
그래서 예전에는 어떻게든 아이돌이 되고 싶었다.
고난의 순간에도 나를 먼저 챙겨 주셨던, 그리고 다정하게 보듬어 주셨던 말을 잊지 못해서. 그때의 나는 부모님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누가 봐도 잘나가는 아이돌이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어렸다. 그래서 그 생각이 얼마나 철없던 건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같은 상황을 바라지 않았던 건데.’
나는 이미 실패했고 내 짧고 서툴렀던 생각의 대가를 충분히 맛봤다.
하지만 나는 결국 또 한 번 빌미를 내어 줌으로써 이런 상황을 자초하고 말았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실책이었다.
‘이미 한 번 겪었는데도… 이번엔 뭔가를 해 볼 수 있겠다고 착각이라도 했던 건가.’
나는 픽 웃었다. 이미 본 한계를 딛고 이번엔 다른 미래를 꾀했음에도 지금과 같은 흐름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게 어쩐지 우습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덕분에 이제 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애초부터 아이돌 같은 걸 꿈꿔선 안 되는 놈이었다는 걸.
적당히 양보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양보하기 싫은 건 정말 죽어도 양보하고 싶지가 않아서 나는 안 되는 놈인 거다.
그거 하나가 딱 내게 남은 유일한 거니까. 그걸 포기해 버리면 난 나 자신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서.
그러니 다른 걸 포기할 수밖에.
내가 그 생각으로 휴대폰을 들었을 때였다.
[……♩]“……!”
순간적으로 울리는 휴대폰 벨 소리에 나는 흠칫 놀라 화면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천세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조용히 휴대폰이 꺼지기만을 기다렸다. 한참을 울리던 휴대폰은 곧 천천히 사그라들었고, 나는 도착한 연락을 무시하려 했다.
쾅쾅쾅!
“……!”
“있는 거 다 알아!”
“나와!”
“얘들아, 좀만 조용히…….”
…문밖에서 떠들썩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만은 무시할 수 없었지만.
* * *
집으로 찾아온 천세림과 에이든 리, 주단우는 무턱대고 거실에 자리부터 잡고 앉았다.
-실례할게~!
-들어가요~!
-유하야, 미안해…….
들여보낼 생각은 정말 조금도 없었는데, 문을 열자마자 놈들이 발부터 들이밀고 본 탓이었다.
‘주소를 괜히 알려 줬군.’
지난번 천세림의 닦달에 넘겨준 주소를 토대로 찾아온 모양이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으면 끝까지 숨기는 건데.
나는 세 놈의 앞에 앉았다. 가뜩이나 머리가 지끈거리는 마당에 누군가를 상대하고 싶지가 않아, 나는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조용히 가라, 지금 정신없으니까.”
“유하, 하차할 거야?”
“…….”
그리고 그런 내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오는 에이든 리의 말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눈치 빠른 새끼.’
이 새끼는 역시 선택적으로 눈치 보며 사는 놈인 거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쉰 후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하차할 거다.”
“왜?”
“…내가 그 이유까지 말해야 하냐.”
“응, 우리 한 세트잖아.”
“…….”
나는 그 말에 또 한 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지난번 과거사와 관련해 대충 이야기를 해 준 것도 그 때문이었고.
“…상황은 잘 정리됐을 텐데. 이제 너희한테 악영향 미칠 일은 없잖아.”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내게 씌워진 이미지가 이제는 동정론으로 바뀐 만큼, 더 이상 이 셋이 피해를 입을 일은 없을 터. 내가 하차를 하든 뭘 하든 이제 이 세 명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형, 우리끼리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그에 더 상대하지 않고 이 셋을 어떻게 하면 문밖으로 쫓아 보낼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천세림에게서 들려온 소리에 내가 그쪽을 바라보자, 놈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저, 이 넷은 무조건 데뷔할 거라고 보거든요.”
“…….”
나는 굳이 거기에 반박하려 하지 않았다. 아직 3차 순위식도 전인 마당에 오만한 말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천세림의 말은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든 리와 천세림, 주단우는 각자 고정적이고도 두터운 팬덤을 가지고 있었고, 방송의 서사에 따라 후발 주자들이 치고 올라올 때에도 굳건히 상위권을 지키며 인지도를 안정적으로 이어 오고 있었다.
이미 데뷔권은 어느 정도 정해진 것과 다름없으니, 이후 갑자기 [디어돌> 제작진이 마음을 바꿔 이 세 명에게 악편을 주거나 뒤 순위에 있는 연습생에게 카메라를 몰아주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의 등수 역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 오고 있는 이 셋을 비롯해 현재 상위권을 차지한 연습생들의 데뷔 확률이 높고, 상황 파악이 빠른 놈답게 천세림은 이미 머릿속으로 대강의 [디어돌> 데뷔조를 예상해 놓은 것일 터였다.
거기에는 나를 포함해 이 자리의 네 명이 모두 들어가는 듯하고.
“전 이 관계도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조건 함께 가고 싶고요.”
“나 하나 빠진다고 너희가 가지고 있는 서사나 관계성이 망가질 일은 없다 보는데.”
“아뇨, 밸런스가 무너지죠. 이 네 명 조합은 각자 역할이 있어서 한 명이 빠지면 시너지가 확 줄어든다고요.”
한가롭기 짝이 없는 말에 나는 지끈대는 머리를 꾹 눌렀다. 천세림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놈이 아닌데.’
이런 말을 들어 줄 정도로 내가 여유롭지 않다는 것쯤은 알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껄이는 말에 신경이 더욱 곤두서는 것 같았다. 관계도니 뭐니, 하차만 하면 그딴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데.
“그딴 말은 집어치우고 용건 말해. 세 명이서 작당해서 찾아온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이게 용건인데요?”
“뭐?”
나는 그 말에 결국 참지 못하고 날카롭게 되물었고.
“하차하지 마, 유하야.”
직후 주단우가 토해 낸 ‘용건’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