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87)
“…같이 무대에 서자고 했잖아.”
주단우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망설이듯 말을 꺼냈다.
“내가 과연 데뷔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 하지만 [디어돌>이 끝났을 때, 만약에라도 내가 최종 멤버에 들게 된다면… 꼭 너와 같은 무대에 서 있었으면 좋겠어, 유하야.”
“형, 전요. 형이 여기서 포기하는 건 별로 안 보고 싶거든요?”
주단우의 말이 끝나고, 천세림은 지체 없이 바로 이어 말했다.
“개인적으로 형한테 빚진 것도 있고 형이 같이 일하기 편한 사람이라서도 있는데, 여기서 형이 하차하면 제가 계속 형을 아까워할 것 같아요.”
“…뭐?”
“그러니까 그냥 하차 안 하면 안 돼요?”
그럴 이유도 없으면서 부탁이라도 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놈이 내게 이럴 이유는 없었으니까.
“저 별로 후회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이왕이면 형이 최선을 다해 줬으면 좋겠어요.”
“…내가 최선을 다해서 너한테 이득 갈 게 뭐가 있는데? 오히려 내가 사라지는 게 너희가 데뷔권에 잔존할 가능성도 높아질 건 확실하잖아.”
솔직한 어조에 나는 순간적으로 치고 올라오는 거부감을 참지 못하고 툭 내뱉고 말았다.
누가 들어도 다분히 공격적인 반박이었으나, 그건 천세림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 것 같았다.
“아, 나쁠 건 없죠, 어쨌든 경쟁자니까. 근데 저 너무 과소평가하시는 거 아니에요? 전 형이 있든 없든 데뷔할 자신 있는데.”
놈이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 치며 그렇게 맞받아쳤기 때문이다.
그니까 쓸데없는 조력할 생각하지 말라며 천세림이 핀잔을 주는 동안,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근데 유하, 하차는 왜 하려고 하는 거야?”
그때 뱉어진 에이든 리의 순진한 물음에 나는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멀뚱멀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에이든 리는 별생각이 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내가 왜 하차를 하려고 하는지 천세림이나 주단우는 대충 감을 잡았기에 딱히 그에 대해 묻지 않았을 테지만, 에이든 리는 아예 생각조차 못 하고 있는 듯했다.
“…[디어돌>만 하차하려는 게 아냐. 아예 KRM에서도 나갈 생각이니까.”
그에 나는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디어돌>을 하차하려는 이유를.
“상황이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여. 그럼 소문의 대상자가 없어지는 게 유일한 방법이겠지.”
내가 아이돌이 되어 활동을 하는 내내 과거는 내 뒤에 따라붙을 거다. 그리고 대중은 끊임없이 돌아가신 부모님을 언급하고 그들을 탓하려 하겠지.
그렇다면 그 주제가 되는 대상이 사라지는 것만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터였다.
현재는 이 이상의 방법이 없었다. 내게는 대중의 반응을 전환시킬 힘이 없고, 룰렛을 돌릴 수 있는 운 수치 또한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이전에 보상으로 얻었던 운이나 아이템들을 좀 아껴 두었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아니다.’
그 모든 운과 아이템들은 적재적소에 들어갔다. 그 이상으로 잘 쓸 순 없었다.
이건 그냥, 말 그대로 ‘운’인 거다. 내게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단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된 건.
그러니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조용히 사라지는 것뿐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어떤 식으로든 이슈는 후발 주자로 터지는 사건들에 밀려 가라앉게 되어 있다. 그러니 나의 경우도 같을 터였다.
하지만 내가 계속해서 방송에 얼굴을 내밀고 다니면 과거는 계속해서 언급되게 된다. 그렇기에 완전히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내가 없어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내 설명은 에이든 리에게 가 닿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왜 해결책이야?”
에이든 리가 고개를 갸웃대며 그렇게 물었기 때문이다.
그 질문에 천세림과 주단우의 표정까지도 기묘하게 변했다. 에이든 리가 이렇게까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 듯했다.
“…음, 이든아. 그러니까 유하가 말하고 싶은 건…….”
그에 주단우가 애매한 듯 말을 흐리며 놈에게 설명을 하려 들었지만.
“으응, 아니, 이해는 했어요.”
“응?”
에이든 리는 설명은 필요 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꽤 분명하게 상황을 요약했다.
“이슈에서 내려와서 이 일을 더 이상 사람들이 꺼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거잖아. 더 욕 안 먹게.”
기대하지 않았던 정확한 분석에 나는 더욱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상황을 다 이해했으면서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알 수 없었으니까.
“어… 맞아요. 형, 잘 이해했는데, 왜…….”
나와 동일하게 의문을 느낀 천세림이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으음~ 그건 해결책 아니잖아.”
“뭐?”
오히려 저 자신이 더 답답하다는 것처럼 말하는 에이든 리에게 내가 되묻자, 놈은 당연하다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
“그니까 그건 유하 부모님을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 그냥 두겠다는 거잖아.”
“……!”
“유하는 불쌍한 사람으로 끝나는 거고.”
“…….”
“내 말이 맞지?”
그 말에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에이든 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거봐, 유하도 알고 있잖아. 그거 실은 아무것도 해결 못 한다는 거. 근데 왜 하려고 해?”
더없이 천진한 어조였으나 명백한 비난이었다.
나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말에 대답할 의무는 없었고 이제 나는 이 셋을 더 상대할 만큼의 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그만 돌아…….”
“자신 없어?”
“뭐?”
그렇지만 에이든 리가 툭 던지듯 내뱉은 말에 나는 다시 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냥 그래 보여서.”
에이든 리는 바닥에 눌어붙듯 앉아 다리를 쭉 펴며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한가롭기 짝이 없는 말투로, 아주 효과적으로 사람의 신경을 건드려 대면서.
“유하는 끝까지 가는 것보단 여기서 포기하는 게 더 편한 거잖아.”
“…말 똑바로 해라.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최선 아닌 거 알고 있잖아.”
“그럼 여기서 상황 잠재우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데?”
지금 나는 도움을 구할 곳이 없다. KRM에 머리를 숙이고 놈들이 짜 놓은 판에 휘말려 들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내게는 빚이 있다. 부모님이 내게 손을 뻗은 순간부터 쌓인 그 빚은 어떻게든 갚아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빚을 갚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짐을 쌓고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상황을 바꿔야 했다. 무슨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순간 머리끝까지 치솟은 분노에 내가 그렇게 쏘아붙이자, 에이든 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리고 한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유하가 1등 하면 되잖아.”
그건 아주 단순한 방법이었다.
너무 단순해서 뜬금없다고까지 느껴지는 방법.
“뭐?”
내가 그 말에 얼어붙자, 에이든 리는 집 안을 휘 둘러보다가 이내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가족사진에 시선을 고정했다.
“유하, 부모님 어떤 분들이었어?”
“…….”
어떤 분들이었냐고?
나는 뜬금없이 건네진 에이든 리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단 한 번도 부모님에 대해 표현을 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의 정반대.”
내 안에 있는 부모님의 이미지는 아주 확고했으니까.
그분들은 무책임한 사람들도, 나를 불쌍하게 만든 사람들도 아니다.
열둘의 나를 가족으로 받아 준 이후부터 내가 부모님께 받은 건 사랑과 신뢰 말고는 없었다. 애초에 그 덕에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거고.
그러니 부모님은 아마… 내가 태어난 이후 가장 처음으로 만난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 터였다.
내 말을 들은 에이든 리는 씩 웃었다.
“그럼 그냥 그거 이야기하면 되잖아, 유하가.”
“…….”
“1등하면 사람들 믿어 줄걸. 더 멀리 유하 말이 퍼질 거고.”
그에 순간 맥이 풀려, 나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내가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방법이자.
‘…틀린 말은 아니야.’
놀라울 정도로 핵심을 꿰뚫는, 그리고 어떻게 보면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왜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나에 대해 의문이 들 정도로.
그리고 섬광 같은 깨달음이 머리를 스친 순간, 나는 무언가를 떠올려 낼 수 있었다.
‘아이딘의 센터는… 강현진이었지.’
그건 바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자 내가 회귀를 함으로써 이제는 사라진 미래였다.
이젠 없어진 미래에서 강현진은 [디어돌>의 1등을 따내고 데뷔한 후, 그룹의 센터 자리를 차지하고 활동 내내 [디어돌>의 최종 1위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그건 캐릭터이기도 했지만, 일종의 권력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1등에 주목하고, 그 주목은 곧 강현진의 말에 힘을 실어 주었으니까.
아이딘이 활동하는 기간 동안 가장 먼저 마이크가 돌아가는 것도, 이름이 호명되는 것도, [디어돌>과 아이딘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도 1등인 강현진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1등인 강현진은 아이딘의 아이콘이었고, 그중 가장 큰 인지도와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연예계는 그 힘을 척도로 돌아가게 되어 있어.’
지금 백이현의 말 한마디에 또 한 번 대중이 요동치고 나의 캐릭터가 ‘불쌍한 놈’으로 완전히 확정된 것처럼.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건, 그리고 발언권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건 결국 힘을 가진 놈인 거다.
그 사실을 깨달은 후 나는 어째서 내가 이런 방법에 대해서는 떠올리지 못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답은 간단했다.
‘…한 번도 팔려 보지 못했지, 나는.’
나는 ‘단 한 번도’ 힘을 가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예계에서 나는 갑의 위치에 서 본 적이 없다. 라이트닝은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망돌이었고 나는 그 리더였으니까.
수모를 겪으면 겪었지 대우를 받은 적은 없다. 지난 생에서의 과거도 그렇기 때문에 똑같이 나의 의사는 무시된 채 내 과거가 떠돌아다닌 거고.
그렇기에 떠올리지 못했던 거다, 이런 방법을.
하지만.
‘지금과 그때는 상황이 달라.’
원하지는 않았지만 대중은 현재 내게 주목하고 있다. 그 때문에 내 이미지가 불쌍한 놈으로 고정되기는 했지만, 만약 이 이미지를 딛고 1등을 이뤄 낸다면.
그리고 나 스스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이미지를 깰 수 있어.’
지금처럼 입지가 불안정한 연습생이 그런 말을 해 봤자 얻어지는 건 연민밖에 없다. 꿋꿋한 소년 가장 이미지나 더 강화되겠지.
하지만 이후, 누가 봐도 ‘잘 팔리는’ 아이돌이 되어 불쌍한 놈이 아닌 다른 캐릭터를 그 위에 덧씌우게 된다면.
끝내 부모님이 내게 불행이 아닌 행운이었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게 된다면…….
‘대중은 믿는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그건 에이든 리의 말대로 ‘정말’ 일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이 될 터였다.
“물론 1등을 그냥 뺏길 생각은 없어, 아직 경연 한 번 더 남았고 난 그때 꼭 메인 보컬 타낼 생각이라. 나 1등하고 싶거든!”
“아니… 1등 하라고 밀어주는 거예요, 라이벌 선언을 하는 거예요.”
“둘 다?”
내가 생각에 빠진 동안 자기들끼리 투닥거리기 시작하는 천세림과 에이든 리를 향해 나는 고개를 들었다. 에이든 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웃었다.
“오, 유하, 너…….”
“에이든.”
그리고 나는 뭘 더 말하려는 에이든 리의 말을 잘라 내고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에이든 리에게 나는 단호하게 요구했다.
“응?”
“이제 가라.”
“어?”
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천세림과 에이든 리의 팔뚝을 각자 붙잡고 질질 끌었다. 덩치가 산만 한 놈들이라 끄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지만, 미끄러운 바닥을 이용해 놈들을 현관 쪽으로 밀어 넣자 주단우 또한 얼결에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따라왔다.
나는 어리벙벙해하는 얼굴의 놈들 앞에서 조용히 문을 열었고.
“니들 원하는 대로 할 테니까 이제 가라고.”
마침내 얼굴이 환해진 세 명을 세 명을 내쫓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 * *
3차 순위식의 발표가 이뤄지는 날, 연습생들의 관심은 한쪽에 쏠려 있었다.
주단우는 메이크업을 받으며 흘긋 옆을 바라보았다. 연습생들의 시선을 덤덤히 견뎌 내며 옷을 정리하고 있는 원유하의 얼굴은 초연해 보였다.
-이제 괜찮아요.
원유하의 집에서 쫓겨난 다음 날 걸었던 전화에서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주단우는 걱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정말 괜찮은 걸까.’
최근 원유하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제정신으로는 견디기 힘든 것들뿐이었기 때문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