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92)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뜬 시스템 창. 마치 내 행동을 반기기라도 하는 것 같은 창에서 시선을 떼고 나는 가사지를 바라보았다.
‘최종 경연곡의 이름은… SPARK.’
경쾌하고 힘 있는 락 비트를 기반으로 한 퓨전 팝 장르의 곡으로, 전체적으로 에너지가 돋보이면서도 거칠다기보다는 트렌디한 느낌이 강했다.
어느 쪽으로도 튈 수 있는 장르인 만큼, 노래의 분위기는 표현하는 보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였다. 아마 그 해석이 메인 보컬을 결정할 것 같고.
“저부터 할게요.”
잠시 가사지를 들여다보다 가장 먼저 테스트를 시작한 건 경지원이었다.
경지원은 잠시 목을 가다듬고는 자신 있는 고음을 내지르기 위해 후렴구의 브릿지를, 그중에서도 한계를 모르고 올라가는 듯한 고음을 선택했다.
“환히 빛나는 순간, 우리 함께한 시간 절대 잊을 수 없게-”
점진적으로 올라가다가 급격하게 하늘을 찍는 듯한 고음. 기교를 담아 화려하게 끝처리를 해낸 경지원의 노래에 듣고 있던 연습생들이 가만히 박수를 쳤다.
표정 변화 없이 신중한 도지혁의 시선이 곧 황영오에게로 옮겨졌다. 황영오는 기교로는 경지원을 당해 낼 수 없을 것임을 예감한 듯 목소리의 톤을 살리는 데 더 집중했다.
“우리 함께한 시간 절대 잊을 수 없게-”
거친 느낌을 살려 최대한 목소리를 꾸며 내는 데 집중한 황영오의 고음은 약간은 불안정하지만 끝내 정점을 찍었다.
다만 황영오는 잠깐 음 이탈이 날 뻔했다는 걸 인지한 듯,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가사지를 내렸다.
“시작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다가와, 나는 잠시 동안 숨을 들이마셨다.
동기화가 끝났다는 건 이제 노래를 회귀 전과 비슷하게 할 수 있다는 뜻.
‘내가 어떤 식으로 노래를 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어떻게 소리를 내야 하는지는 기억보다도 습관으로 남아 있는 듯했다.
“환히 빛나는 순간, 우리 함께한 시간 절대 잊을 수 없게-”
가볍게 목을 타고, 끝내 내가 만족스러워할 만한 소리가 튀어나왔으니까.
“와…….”
“유하야, 진짜 대박이다.”
“형, 무슨 도핑한 거 아니에요? 사람이 또 실력이 왜 이렇게 늘었어?”
장난스럽게 나를 툭 치는 천세림의 말에 얼결에 입을 다물면서, 나는 스스로도 당황을 느껴야 했다.
‘…처음인데.’
회귀 이후 이렇게까지 노래가 내가 원하는 대로 나온 건.
의도한 대로 튀어나오는 목소리는 새삼스럽게도 낯설었다. 전체적인 능력치 디버프를 당한 후, 나는 [디어돌>에 참여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원하는 수준으로까지 노래를 끌어 올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준치는 회귀 전에 맞추어져 있는데, 회귀 이후에는 그만한 수준의 노래를 내보낼 수 없어 답답함을 느끼는 것도 여러 번.
오늘은 달랐다.
그리고, 이제야 뭔가가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번 경연에서 절대 메인 보컬을 놓칠 순 없겠다고.
그리고, 놓치지 않을 수 있겠다고.
“세 명 모두 수고했어. 그럼 이제 투표할까?”
대책 없는 자신감이었지만,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몰표네.”
* * *
“형한테 준 영양제들이 이제야 빛을 발하나 봐.”
“…무슨 소리야?”
“아니면 KRM에서 형한테 하드 트레이닝이라도 시켰어요?”
“서로 눈치 보고 있는데, 지금은.”
내 말에 천세림은 씩 웃고는 준 영양제들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먹으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 직후, 옆에 붙어 식판에 음식을 퍼 넣고 있던 주단우가 은근슬쩍 내게 물었다.
“무리하는 건… 아니지?”
“네.”
“흠, 그럼 다행이고. 난 또, 형이 감금이라도 당하고 노래 수련만 하다 온 줄 알았잖아요. 원래 잘 부르긴 했지만 아까 전에는 형 목에 기름칠이라도 한 것 같았다니까. 연습 열심히 했나 봐요?”
나는 천세림의 말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곤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장난기 섞인 말들이었지만 천세림과 주단우가 뭘 걱정하고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내가 KRM 측에 어떤 불이익을 당하진 않았는지, 더한 강요를 받진 않았는지 걱정하는 거겠지.’
세 명을 집 밖으로 쫓아낸 이후, 나는 한동안 그들과 연락을 하지 않았다. 상황을 정리하는 데 이어 다음 경연을 위한 연습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내가 반항을 접고 KRM이 제안한 것을 받아들였다 생각하기라도 한 건지, 권 실장과 나는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의 타협을 이뤄 낼 수 있었고.
-이현 선배님과 제 과거를 엮는 것은 좋습니다. 이현 선배님 이적 후 인터뷰든 뭐든, 어디에 출연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도 따를 거고요.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뭘?
-저희 부모님에 대해 쓰인 악플은 관리를 해 주세요. 공지를 올려서 무분별한 비방이나 루머가 퍼지지 않게끔요.
그 말에 권 실장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권 실장에게는 부모님이 끝까지 무책임한 사람으로 남아, 내가 더 가여운 인물이 되는 게 이미지적으로는 좋아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불편한 티를 내기는 했지만 권 실장은 결국 나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든 내 과거와 연관되어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도는 만큼 악플에 대한 관리는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가 백이현과 관련해 순조로운 협조를 해 주길 바라고 있기도 하고.
‘아마 이번 연도 말쯤 본격적으로 이용해 먹으려 들겠지.’
현 소속사와 백이현의 계약이 만료되고 [디어돌>이 끝났을 때쯤 KRM은 본격적으로 나를 써먹으려 들 것이었다. 그러니 그 전까지 최대한 날 잘 다뤄 보려 하겠지.
그 덕에 나와 KRM은 현재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상태였다.
KRM은 또 내가 중간에 그랬던 것처럼 이상한 쪽으로 튀지 않을까 우려하며 감시하고 있었고, 나는 어떻게 해야 KRM의 뒤통수를 잘 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 중이었다.
다만 속마음이 어떻다 한들 최근 나와 KRM의 사이는 평화롭다 볼 수 있었다. KRM도 나도 [디어돌>을 잘 헤쳐 나가 데뷔를 이루어 내는 것에 대해서는 공통의 목표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뷔 이후에는 좀 달라지겠지만.’
그건 그때의 일이었다. 지금은 데뷔가 먼저니까.
“흠, 그쪽 팀 나도 가고 싶었는데.”
그때 불퉁한 얼굴로 옆에 앉은 에이든 리가 중얼거려, 천세림이 킬킬거렸다.
“찬희가 형 놓치기 싫었다잖아요.”
“찬희랑 하는 것도 재밌고 지금 팀 노래도 좋아. 근데 그냥 그쪽 팀이 더 재밌어 보여. 유하가 뭐 어떻게 한 건지도 궁금해.”
에이든 리는 우리 팀의 연습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고 있는 듯했다. 같이 앉은 넷 중 유일하게 다른 팀으로 떨어진 탓에 상황을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재밌다기보다는 박 터지는 거 아니고요? 어후, 우리 포지션 싸움 어떻게 했는지 형이 봤어야 했는데.”
천세림은 드물게 질색하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말에 주단우 또한 약간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메인 보컬이 결정된 이후 벌어졌던 상황에 대해 다시 떠올렸다.
-그럼 이제 서브 포지션들을 정해 볼까?
메인 포지션이 정해진 후 남은 건 서브 포지션들뿐이었다.
남은 연습생은 총 일곱. 뒤로 갈수록 앞으로 나서는 파트의 분량이 적어지는 만큼 서브 포지션 싸움은 치열하게 이루어졌다.
다만 그런 와중에도 도지혁은 다른 연습생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포지션 싸움을 해, 나는 또 한 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워낙 실력이 좋은 만큼 서브2를 가져가긴 했지만.’
하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유리한 조건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팀을 짤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이런 ‘박 터지는’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 그 의문을 저버릴 수 없었으니까.
따라붙을 악플과 눈총이 염려되어서였다면 대충 어떤 부분에서는 득을 보고 어떤 부분에서는 양보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 도지혁은 득을 본 부분이 없었다.
“근데, 그만큼 재밌는 무대 나올 것 같아.”
그때 에이든 리가 한 말에 천세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건 그래요, 다들 뭐 하나라도 더 하겠다고 악착같이 달려드니까. 형네 조는 어때요?”
“음,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열심히 하고 포기한 사람은 잘 안 해.”
아무리 파이널이라고 한들 모두가 열심일 수는 없었다. 다들 자신이 데뷔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 가늠이 되는 만큼 누군가는 포기한 사람도 있겠지.
“그래서 좀 재미없어.”
그리고 에이든 리는 그것이 불만인 듯했다. 1차 경연 당시 에이든 리가 나를 어떻게 건드렸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지금 상황에서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겠지.
나는 말없이 부식으로 나온 음료수를 에이든 리에게 밀어 주었다. 에이든 리는 물끄러미 그걸 바라보고는 어쩐지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 * *
합숙 첫날의 마지막 연습은 센터 선정과 함께 이루어졌다.
낮에 배정되어 있던 연습 시간 동안 서브 포지션을 뽑느라 시간을 모두 날려 먹어, 저녁 시간까지 센터를 뽑지 못한 탓이었다.
“각자 센터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앞으로 나오고, 서로 투표를 해 볼까?”
카메라를 독점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센터 포지션을 욕심 내는 연습생들은 많았다. 무대의 가장 처음에 카메라의 원 샷을 독점하며 이미지 각인을 시킬 기회인 만큼, 생방에서는 포지션의 중요성이 더 높았고.
“유하도 센터 지원해?”
그러니 견제가 들어올 만도 했다.
“네.”
나는 가볍게 대답하며 몇 명이 나왔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센터에 지원한 건 나와 도지혁, 유민성, 쯔쉬안, 황영오, 천세림이었다.
“…메인 보컬인데 센터까지 하면 부담 크겠네.”
팀원 10명 중 반수 이상이 센터에 지원했기에 황영오는 견제하듯 그렇게 말했지만, 다른 연습생들이 묵묵히 상황을 지켜볼 뿐 제지를 하려 들지 않았기에 결국 입을 다물었다.
시작된 센터 투표는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지원자로 나선 연습생들은 각자 ‘SPARK’의 후렴구 안무와 함께 그에 맞는 표정 연기를 보여 주었고, 지원자가 팀원 중 반 이상이기에 각자 자신을 제외하고 가장 센터에 잘 맞다 판단되는 사람에게 표를 던지기로 했다.
가장 먼저 나선 천세림에 이어 쯔쉬안, 유민성, 황영오의 차례가 지나고.
“시작할게.”
마침내 도지혁이 테스트를 시작했다.
“사로잡아! 더 SPARK, 달아오른 네 마음에 찬란히 빛나는 불빛-”
그리고 놈은 역시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다른 연습생들이 흥얼거림 혹은 자리에 앉은 연습생들의 박수에 맞추어 춤을 춘 것과는 달리, 도지혁은 흔들림 없는 라이브를 이어 가며 동작을 선보였던 것이다.
‘역시 잘해.’
감탄이 이어지는 동안,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6년이나 무명이었던 데다 최근 2년 동안 군대에서 생활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다듬어진 실력이었다.
라이브는 흔들림이 없고 표정 연기도 능숙했다. 거기에 어떻게 해야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은 제스처까지.
‘[디어돌> 내에서 무대 매너로 따지면 도지혁을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재능 있는 놈이 이른바 ‘짬밥’까지 있으니.
어찌 보면, 도지혁은 이 때문에 굳이 포지션에 욕심을 내지 않았던 걸 수도 있었다. 이미 가진 실력이 충분해 굳이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지 않아도 충분히 주목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도지혁을 본 이후에는 센터 지원을 했던 연습생들과 함께 호기로운 표정을 지었던 천세림조차도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지혁의 능숙함은 현재로서는 차마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무대 경력이 상황을 정리한 것과 다름없었다.
“시작하겠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한들 기죽을 생각은 없었지만.
무대에서 구른 경험은 이쪽도 뒤지진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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