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94)
팀에 변화가 일어난 건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후였다.
“영오야, 우리 조금만 더 빠르게 해 볼까?”
연습 3일째의 오후, 각자 수정한 동선대로 대형을 맞춰 보던 와중 들린 목소리에 팀원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입을 연 도지혁은 곤란한 듯 미간을 찌푸린 채였다.
“…뭐가요?”
“후렴 들어갈 때 대형 엇갈리는 부분에서 약간 타이밍이 늦는 것 같아서. 혹시 조금만 더 빠르게 맞춰 줄 수 있을까?”
“…일단 알겠습니다.”
황영오는 거칠게 숨을 내쉬고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답했다. 그 모습을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도지혁은 곧 다시 시작한다는 말과 함께 음악을 재생시켰다.
“음, 영오야. 그 부분은 조금 더 몸을 낮춰서 움직여 주면 좋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
하지만 이번에도 황영오의 움직임이 불충분하게 느껴졌던 건지, 도지혁은 곡이 끝나고 그렇게 말했다.
“나름대로 해 본다고 해 본 건데.”
“…….”
타박하는 듯, 한숨을 쉬는 듯한 도지혁의 말투에 황영오는 그렇게 대꾸하며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을 뿐이었다. 그 피로에 찌든 얼굴과 묘하게 무기력한 태도를 보며 나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불안한데.’
아무래도 도지혁의 솎아 내기가 완벽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 * *
황영오의 무기력한 태도는 그날 하루 동안 계속해서 지속되었다.
‘오히려 이 며칠이 신기한 거였지.’
문제점이 이상할 정도로 발견되지 않는 팀 연습이라니,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그런 게 가당키나 한가.
포지션 선정 때나 약간의 의견 다툼이 있었을 뿐, 1조는 연습 내내 모든 과정에서 평탄함을 유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지혁이 꾸린 팀은 말 그대로 [디어돌>의 드림 팀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1조는 대다수 순위가 높은 상위권 멤버들로만 구성돼 있었다. 게다가 그렇게 뽑힌 연습생들은 각자 포지션별로 메인을 노려 온 연습생들이었고.
그에 따라 이미 지난 경연들에서 한 번씩은 각자 원하던 포지션을 해 본 경력이 있기도 했으니, 능력치는 2조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열정 또한 남달랐다. 데뷔권과 가까운 등수들이 모여 있는 만큼 다들 높은 의욕을 갖고 있는 데다, 비교적 등수가 뒤떨어지는 연습생들조차도 분위기를 타고 [디어돌>의 마지막 경연에 최선을 다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열정이란 게 모두에게 계속 이어질 리가 없다.
“아니,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잘, 맞은 거 같은데요.”
“…아니야, 반박 느려. 다시 해 보자.”
도지혁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와 반대로 목소리만큼은 묘하게 무미건조해지고 있었지만.
황영오는 도지혁의 지적에 따라 거울을 보며 그가 말한 동작을 재현해 보았다. 유심히 황영오를 지켜보던 도지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아냐. 팔 각이 안 맞아. 여전히 박자도 느리고.”
“…벌써 몇 번이나 하고 있는데 좀만 쉬다 하면 안 될까요.”
“…그래. 그럼 5분만 쉬자.”
도지혁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황영오는 냉큼 연습실 구석으로 가 앉았다. 그걸 물끄러미 지켜보던 도지혁은 말없이 고개를 돌리곤 다른 팀원들이 연습하고 있는 쪽으로 향했다.
서브4를 맡게 된 황영오는 오늘 연습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어딘가 지지부진한 모습이었다. 연습실 구석에 앉아 있는다거나 가사지를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 모습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포기했군.’
메인 보컬을 놓치고 서브1마저도 경지원에게 빼앗기더니, 이제는 연습에 대한 의욕조차도 잃어버린 듯했다. 어느새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는 듯한 분위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이 의외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황영오에게 이 팀에서 열심히 하는 건 전혀 메리트가 없게 느껴질 테니까.
도지혁이 꾸린 팀은 현재 [디어돌> 내 최강의 드림 팀이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경연을 치르기에는 불리한 팀이기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연습생 한 명 한 명이 너무 튀어.’
빠지는 연습생이 없다. 다 메인 포지션을 노려 온 연습생들인데다 열정조차 차고 넘친다.
나쁘단 건 아니었다. 각 멤버의 기량이 뛰어나면 퍼포먼스의 완성도 또한 높아지고 관객들이 주목할 부분도 많아지니까.
단, 그건 이게 서바이벌이 아닐 경우에만 해당되는 일이다.
‘이 팀은 경쟁에 나빠.’
한 팀에서 모든 멤버의 기량이 뛰어나 보이면 자연히 그만큼 자신이 받아야 할 관객의 시선을 빼앗기게 되어 있다. 한 표가 소중한 서바이벌 경연에서 그만큼 나쁜 일은 없고.
그렇기에 황영오는 이런 라인업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든 메인 포지션을 타내려 했다. 하지만 원했던 메인 보컬도 센터도 차지하지 못한 채로 보컬조차 서브4로 밀려나 버렸다.
황영오는 멍청하지 않다. 오히려 상황을 잘 파악하고 거기에 자신을 맞출 줄 아는 연습생이다.
‘그래서 더 의욕이 떨어졌겠지.’
현재의 라인업과 포지션을 보고 자신의 한계점을 봤을 테니까.
황영오의 현재 등수는 11등. 데뷔권에 바짝 붙어 있지만 파이널 경연에서 황영오가 지금 이상의 등수를 올리긴 어려울 터였다. 황영오는 더 이상 ‘돋보일’ 기회가 없으니까.
‘만약 적당히 주목받을 수 있는 구성원에, 카메라의 초점이 맞춰질 만한 포지션을 타낼 수도 있었을 2조였다면 상황은 또 달랐겠지만.’
지금 이 팀에는 황영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할 만한 연습생이 없다. 그러니 황영오는 자연히 점점 더 불성실해질 터였다.
“후…….”
그리고 그건 도지혁이 원하던 바와는 전혀 다른 방향일 테고.
나는 지친 듯 뻐근한 목을 풀며 숙소로 들어온 도지혁을 바라보았다. 도지혁은 연습실에서 내내 관리하고 있던 무표정함 대신 약간은 짜증스러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영오 형은요?”
“모르겠는데, 아까 연습실 나가고 안 들어와서.”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물기를 닦던 천세림이 알만하다는 얼굴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하루 동안 이어진 황영오의 불성실한 태도를 모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저녁 연습하겠다더니.”
“장면은 다 땄으니까.”
도지혁은 그렇게 답하고는 천세림이 나온 화장실로 들어갔다.
오늘 도지혁은 안무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황영오를 위해 저녁 시간까지 반납하며 놈의 전담 코치처럼 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황영오는 잠시 쉬고 오겠다는 말과 함께 연습실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카메라에는 도지혁의 제안을 수락하고 연습을 진행한 것처럼 담겼을 테니, 그만하면 연습을 농땡이 쳤다는 식의 편집거리는 되지 않을 터였다. 도지혁이 연습 중간에 황영오가 탈주했다고 스태프에게 말하지 않는 이상에야.
“영오 형 좀 찾아볼까요? 아마 2조 팀원 방이나 빈 연습실 같은 데 들어가 있을 것 같은데.”
“됐어, 그런다고 더 연습하진 않을 거야.”
이번 마지막 경연을 위한 합숙에서 나와 천세림, 도지혁, 황영오는 같은 방에 배정돼 있었다. 그러니 도지혁을 따돌리고 튄 만큼 황영오는 느지막이 방에 들어올 터였다.
씻고 나온 도지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침대에 앉았다. 그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타이밍만 잡아 놓을까.”
“놓으려고요?”
“뭐, 방법 없지.”
그 말을 들은 천세림이 묻자, 도지혁이 답했다. 그 짧은 대화로 나는 도지혁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황영오를 포기하려는 건가.’
오늘 하루 동안 황영오의 의욕 부진에 따라 놈을 전담 마크하듯 굴던 도지혁은 점점 한숨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내 열심이던 표정 관리마저 허술해질 정도였으니까.
그런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아지기는커녕 이제는 연습에서 튈 정도니, 상황 판단이 빠른 놈답게 도지혁은 향후 황영오의 처우에 대한 판단을 모두 마친 모양이었다.
지난 3차 경연에서 도지혁은 의욕 없는 팀원들을 데리고 대형과 동선을 맞추는 데는 성공했다.
각 연습생들마다의 디테일은 떨어졌지만, 그 덕에 가까스로 오합지졸처럼 보이지 않게끔 무마하는 데는 성공했고. 아마 동일한 방법을 쓰려는 거겠지.
나는 눈을 돌려 도지혁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상태: 체념(확인 가능)』
정확히는, 도지혁의 달라진 상태를.
‘이 며칠 동안은 계속해서 안정으로만 적혀 있었는데.’
상황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황영오를 포기하겠다고 결정함에 따라 도지혁의 상태는 변화돼 있었다. 황영오가 도지혁을 따라올 마음이 전혀 없는 만큼, 그 결정은 가히 효율적인 판단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그가 이 드림 팀을 구성하기 위해 흔쾌히 감수했던 리스크를 생각하면 체념이 조금은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렇게 해도 괜찮겠어요?”
“응?”
“입이 좀 쓸 것 같은데, 형.”
내 말에 도지혁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무언가를 파악하는 듯 나를 응시하던 도지혁은 곧 조용히 미소 짓고는 선선히 시인했다.
“…좀 아쉽긴 하지. 근데 별수 없잖아. 아홉이라도 잡았으니 됐어. 나 좋은 대로 가는 건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고.”
“…….”
“여기서 누가 더 빠지면 그때는 좀 짜증 나겠지만.”
그래도 그때도 받아들이긴 하겠지, 하며 도지혁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답했다.
직후 천세림에게 방의 불을 꺼 달라고 말하며 침대에 눕는 도지혁을 보며, 나는 조용히 도지혁에 대한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러고 보면 도지혁도 그리 평탄한 길은 걸어오지 못했지.’
그 때문일까, 도지혁은 미묘하게 포기가 빨랐다. 정확히는 자신을 제외한 다른 것들에 고집을 부리지 못하는 듯했다.
상황을 조율해 보긴 하지만 어딘가 엇나간다 싶으면 뭘 더 해 보기보다는 바로 타협과 함께 상황을 종결해 버리는 게 익숙해 보인다는 뜻이다.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도지혁은 6년 차 아이돌이면서 동시에 망돌 출신이다.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대중에 의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본 적 없는, 활동조차 멤버들의 연이은 탈주와 사고로 불명예스럽게 중단해야 했던.
-그쪽 멤버들 다 이런저런 문제들로 터져 나가는 동안 지혁 형만 살아남았는데, 그런 멤버 구성으로 3년간 어찌 저찌 활동할 수 있었던 게 다 지혁 형 공이라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디어돌>의 극초반, 뮤직A에 송출될 ‘봐’의 무대를 연습하는 동안 천세림은 그렇게 말했었다.상황이 좋지 않으면 사람의 행동 방향은 셋으로 나뉜다.
한쪽은 상황을 어떻게든 헤쳐 나가려 노력하며 가지고 있는 열정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인데, 이건 극소수에 속하고.
또 한쪽이자 대다수의 사람들이 속하는 방향은 아예 상황을 놓아 버리는 것으로, 아예 판 자체를 깔끔히 접어 버리는 게 이쪽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세 번째 방향은 체념과 타협이었다. 도지혁처럼 말이다.
‘가지고 있는 것, 버릴 수 있는 것, 버릴 수 없는 것을 판단하고 그에 맞추어서 상황을 조절해 왔겠지.’
버리는 것에는 미련을 가지지 말고 가지고 있는 것에만 충실하기. 그렇게 되면 발전은 없다 해도 판을 접지 않고 상황을 지지부진하게나마 이어 갈 수 있게 되니까.
과거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 나는 멤버들과의 소통을 놨었지.’
공유한 게 조금도 없는 만큼 대화는 통하지 않았다. 1년 정도는 어떻게든 놈들과 뭔가를 해 보려고 노력했었지만, 그 모든 행동이 실패하자 나는 자연스럽게 세 번째 방향으로 태도를 달리하게 되었다.
판 자체를 엎을 순 없다. 판을 엎는다는 건 아이돌을 그만둬야 한다는 거니까. 그러니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든 조율해 보려 했다.
대화를 포기하고,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보다는 직후 상황을 어떻게든 무마시키는 데 힘써 가면서.
그러나 그건 결국 최선의 길이 아니다.
‘그래서 해 보려고 했던 거겠지, 말마따나 ‘마지막’ 무대니까.’
무언가를 조금도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만 해 보려고.
그게 도지혁이 이 드림 팀을 구성하게 된 이유였을 터였다.
그 때문에 1조는 조금이라도 포기하는 인원이 생긴다면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가 망가질 수도 있는, 아주 아슬아슬한 팀이 된 거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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