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95)
도지혁은 명실상부한 데뷔조다. 별다른 일이 있지 않는 이상은 아마 무난하게 데뷔에 성공하겠지.
그런 만큼, 파이널 경연은 도지혁에게 있어 ‘최선’에 도전해 보기 좋은 무대로 느껴졌을 것이다. 무언가를 잴 필요 없이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 테니까.
현재 어느 정도 상위권이 굳혀지며 데뷔조에 대한 윤곽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파이널 투표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 누구도 결과를 확신할 수 없었다.
이번 3차 순위식만 해도 상위권 내에서도 치열한 순위 싸움이 있었고, 황영오를 비롯해 몇 명의 연습생이 10위권 바깥쪽에 있다가 밀려난 연습생들 대신 위로 치고 올라오기도 했지 않나.
생방송을 지켜보며 실시간 투표를 할 대중의 마음이 누구에게로 흘러갈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으니, 도지혁은 제 미래의 동료들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을 터.
그게 도지혁이 이번 무대를 제가 원하는 ‘최선’으로 밀고 가 보자는 생각이 들게 했을 터였다. 데뷔 이후에는 좋든 싫든 고정 멤버들과 함께 5년간 그룹 생활을 해야 할 테니까.
‘그때가 되면 버릴 수도, 밀어낼 수도 없게 돼.’
지금과는 다르다. 할 수 있는 건 잘 타이르고 어떻게든 끌고 가 보려 애쓰는 것뿐이겠지.
그리고 그렇게 잘 타일러 가며 끌고 가야 하는 연습생들이 과연 도지혁이 원하는 무대의 수준에 맞출 수 있을까.
‘절대 아니겠지.’
도지혁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의욕 없는 멤버들을 끌고 무대를 꾸린다는 게 얼마나 맥 빠지는 일인지.
무대를 함께 하는 나 자신이 의욕이 높으면 높을수록 자괴감은 더욱 커진다. 무대를 끝내도 갈증은 가시지 않고 불만은 높아지지만 그걸 터뜨릴 수도 없다.
이미 마음이 뜬 놈은 어떤 말에도 마음을 돌리지 않고, 연이은 설득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 멤버가 탈주하면 팀에도 그 여파가 미치니까.
결국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체념하고 타협하는 일뿐이다. 도지혁은 그걸 겪었을 테고, 아마 그 과정에 신물을 느꼈을 거다.
‘그러니 멤버가 확정되기 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무대를 해 보려 하는 거겠고.’
데뷔조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인원으로 꾸려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고, 원하는 인선으로 함께 데뷔한다 한들 이후 그들이 활동하며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
한 번 데뷔를 한 후 팀이 망가져 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던 만큼 도지혁은 더 이후를 확신할 수 없을 테다. 그러니 [디어돌>의 마지막 경연을 기회로 삼아 보려 하는 거겠지.
[디어돌>의 연습생들이 어떤 성격과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경연을 이어 오는 동안 파악을 끝내 놓았을 테고, 데뷔 안정권에 자신이 안착해 있는 만큼 현 상황에서라면 욕심을 부릴 수 있으리라 판단했을 테니까.‘…나쁘단 건 아니지. 오히려 신기한 일이다.’
무대에 진심인 건 퍼포머로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도지혁이 이렇게 무대를 꾸리려고 하는 게 의외라고 생각되었을 뿐이었다.
적당히 데뷔만 목적으로 해도 되었을 텐데, 굳이 이렇게 자신에겐 어떤 득도 되지 않을 일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거다.
-또 한 번의 무대를 앞둔 지금, 그 무대가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언제나 노력하는 도지혁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차 순위식에서 한 말도 적당히 의례적인 말을 내뱉는 거라 생각했는데, 아마 그 공약은 허투루 뱉어진 건 아닌 듯했다.
어찌 됐든, 도지혁은 꽤 열심히 솎아 내기를 해서 지금의 팀원들을 모았다. 제 수준과 이상에 맞출 수 있는, 무엇보다도 자발적으로 굴 연습생들을 팀원으로 구성했겠지.
다만 사람 일이 원하는 대로만 흘러갈 순 없다. 도지혁은 애초에 자신이 생각한 베스트 팀을 모으지 못했고, 연습생들은 다 각자의 사정과 생각이 있으니까.
“조금만 더 쉴게요.”
“…….”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순탄하게 나아가나 싶었던 팀에 다시금 브레이크가 걸린 만큼, 도지혁은 모르긴 몰라도 꽤 실망을 했을 터였다.
나는 물을 마시겠다며 정수기 쪽으로 가는 황영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도지혁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서는 말했다.
“5분 후에 다시 맞춰 보자, 딱 다섯 번만.”
“네.”
“네~!”
다른 연습생들이 대답하는 것에도 황영오는 묵묵부답이었다. 그에 다른 팀원들까지 황영오의 눈치를 보기 시작해, 나는 황영오의 태도가 본 무대까지 이어질 경우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도지혁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러기에는 영 걸리는 부분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팀 전체의 기량이 높고 모두의 의욕이 넘쳐 나는 팀의 경우, 단 한 명이라도 불성실하고 미숙한 퍼포먼스를 보이게 되면 유독 그 불안정성이 돋보이게 되곤 했다.
그건 결국 전체 퍼포먼스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게다가 팀원들의 사기 또한 떨어질 수 있었다. 분위기는 전염되기 쉽고, 현재 팀원들이 얼마나 열정적인지와는 관계없이 이후 팀원들이 황영오의 태도에 휩쓸리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좀 아깝긴 하지.’
도지혁이 작정하고 유찬희의 조에서 연습생들을 빼 온 만큼, 현재 1조의 포텐셜은 높았다. 그게 도지혁의 의도대로 ‘최선’의 방향으로 이어지게 되면 아마 전 경연을 통틀어 ‘역대급’ 무대가 탄생할 테고.
그러니 황영오의 태도는 개선될 여지가 있었다.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기에 포기하기엔 그 ‘역대급’ 무대가 만들어졌을 때 얻어질 결과물들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황영오를 설득하기도, 뭣보다 놈이 설득을 들어 먹을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
황영오가 남의 말을 들을 리도 없고, 그렇다고 본인이 갑작스럽게 마음을 고쳐먹으려 들지도 않을 터.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건 자기 자신뿐이니 결국 황영오가 스스로 행동을 바꾸길 바랄 수밖에 없는데…….
‘어쩔까.’
그 계기를 만들 수는 없나, 고민하던 것이 무색하게도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바로 제작진 측에서 말이다.
* * *
합숙 넷째 날이자 중간 평가를 하루 앞둔 전날, 우리는 스태프들에 의해 따로 마련된 방으로 불려 갔다.
“각자 [디자인 유어 아이돌>이 시작하기 전 찍은 영상을 보고, 이번에는 다른 영상을 함께 촬영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파이널 경연에 대비한 VCR 영상을 따기 위해서였다.
어두운 세트장 한쪽에서 다른 연습생들이 대기하는 채로, 우리는 각자 한 명씩 불려 가 따뜻한 주황색 조명이 켜진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간단한 책걸상과 함께 태블릿 하나가 놓여 있는 그 방에서 우리는 스스로 태블릿을 조작해 영상을 보게 되었다.
[…시작됐나요? 아, 네.]잠시 동안의 기다림 후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 나의 동영상을 틀었다.
동영상 속 ‘원유하’는 한여름인 지금과는 달리 목도리를 두르고 조금은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그건 [디어돌>이 시작하기 반년도 더 전, 참가 신청과 함께 찍었던 모든 연습생들의 말 그대로 ‘첫’ 영상이었다.
-미래의 자신에 대해 응원과 다짐의 메시지를 남겨 주세요.
참가 신청과 함께 찍은 영상은 간단했다.
제작진은 당시 마지막 경연까지 살아남은 자신과 대화를 하듯 영상을 찍으라고 지시한 것이다. 연습생들은 이후 자신이 살아남을지, 살아남지 못할지 알지 못한 상태로 미래의 자신에게 인사말을 건네게 되었고.
아직 해가 바뀌기 전이었기에 4년 차 연습생으로 자신을 지칭한 원유하는 현재와 비교했을 때는 조금 더 피곤하고 수척한 기색이 강해 보였다.
‘저땐 아직 체력 스텟이 D-였지.’
지금도 체력 스텟이 높지 않지만, 저때는 상황이 심각했었다. 연습 한 번에 근육통까지 겪었어야 했으니…….
얼마 전 현지오가 내게 건강해 보여 다행이라고 말한 이유가 있었다. 저 당시는 누가 봐도 그다지 건강해 보이진 않았던 것이다.
한여름인 지금과는 확연한 차이가 나는 사복 차림, 어딘가 묘하게 낯설고 서툴러 보이는 태도, 달라진 비주얼. 제작진의 의도대로 각 연습생들의 과거와 현재는 아이돌 메이커들에게 감동을 주게끔 잘 편집되어 삽입될 듯 보였다.
내가 화면 속의 나를 평가하는 동안, ‘원유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그에 씁쓸함을 느껴야 했다.
[7개월 후의 나. 음, 네. 잘… 지내고 있어?]…화면 속의 내게 영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만도 하지…….’
저때는 저 영상이 송출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애당초 목표가 빠르면 1차, 못해도 2차 경연에서는 무조건 탈락하자는 거였으니까.
‘…이렇게 생각해 보니 초기 목적은 조금도 달성한 게 없군.’
처음 목표는 주목을 피하고 성실하지만 재미없는 연습생을 목표로 하며 조기 탈락을 이뤄 내는 거였지 않나.
게다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목표는 악편을 피하는 거였는데, 내 스스로 악편을 부르기까지 했으니 초반 목표는 다 엎어진 것과 다름없었다.
[무대는 잘… 했는지 모르겠다. 네가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무대였기를 바라고.]낯설어하는, 그리고 떨떠름해하는 기색을 잘 숨겨 가며, 덤덤한 표정으로 화면 속 원유하는 말을 이었다.
[마지막 경연을 남겼다면 생각이 많겠지. 하지만 뭐가 되었든, 단 한 가지 목표는 달성한 상태였으면 한다. 그게 뭐가 됐든 후회하지 않게만 해. 그럼 성공한 걸 거야, 우리는.]화면 속의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고, 동영상은 곧 멈췄다.
저때는 그냥 적당히 제출용 영상이나 찍자는 생각으로 한 말이었지만, 나는 과거의 내가 하는 말을 보며 문득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5년 후의 자신이 앞에 있다면, 을 주제로 영상을 찍어 주시면 됩니다.”
황영오를 구슬릴 만한 단서를.
“…안녕.”
나는 눈앞에 있는 카메라를 조작해 녹화를 시작하고는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7개월 전에도 비슷했지만, 아무리 미래의 ‘나’라고 한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대화를 거는 듯한 느낌이 영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다.
“5년 후면… 아마 데뷔를 했을까. 만약 [디어돌>로 데뷔를 했다면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겠고 만약 아쉽게도 떨어졌다면… 글쎄, 뭘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음, 아마 죽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대에 서려고 하고 있을 것 같다.”
나는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금 이 영상은 카메라에 찍히면서 동시에 방 바깥쪽에 있는 스태프들에게 중계되듯 보여지고 있었다. 대기를 하는 동안 나도 다른 연습생들의 영상을 봤으니, 다들 지켜보고 있겠지.
“지금은 마지막 경연을 앞두고 있고 이후 내가 어떤 무대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할 말은 변함없어.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무대를 하길 바란다.”
그렇다면 그걸 이용하면 된다.
“그 무대가 쌓여서 이후의 내가 될 테니까.”
다만 아주 은근하게, 저격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필요했다. 만약 떠본다는 기색을 느끼면 황영오 같은 타입은 더 엇나가려 들 테니까.
“지금 하는 무대는 계속 남을 거고 그게 너라는 사람을 설명해 주게 되겠지. 그러니까, 또 한 번 목표를 세우고 가면 좋겠다. 언제나 후회하지 않는 무대를 하는 아이돌이 되는 걸로. 저번에도 말했듯 그게 우리에게는 성공일 테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카메라 녹화를 종료했다.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바깥으로 나서며, 나는 모여 있는 연습생들의 얼굴을 살폈다.
황영오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이전과는 달리 황영오의 시선에서는 약간의 불안감이 느껴졌다.
아마 내가 한 말로 대충 자신이 놓치고 있던 걸 떠올렸기 때문일 거다.
‘황영오는 눈치가 없지 않아.’
그러니, 마지막 경연 무대가 ‘평생’ 남을 거라는 걸 내 말로 인해 깨달았을 터였다.
기량 높은 연습생들, 열정이 가득한 무대, 거기서 자신만이 유일하게 뒤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후 대중에게 어떤 인상으로 기억될지에 대해서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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