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98)
경연을 대비한 합숙이 모두 끝이 난 것은 파이널 무대를 단 이틀 남겨 두었을 때였다.
“잘 가!”
“이틀 뒤에 봐요!”
데뷔 여부와는 관계없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숙소에서 짐을 뺀 연습생들은 서로에게 짧은 인사말을 남기곤 빠르게 차에 올라탔다.
나 또한 각 연습생들을 픽업하기 위해 즐비하게 늘어선 차량 번호를 확인해 가며 한쪽으로 향했다. 곧 눈에 익은 남자 한 명이 손을 들고 반갑게 알은체를 해 왔다.
“갈까? 짐은 다 챙겼고?”
“네.”
나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지난번 권 실장에게 소개받았던 LON의 로드매니저 중 한 명이었다. [디어돌>이 끝날 때까지 나의 케어를 맡게 된 그에게 짧게 인사한 후, 나는 바로 차에 탑승했다.
“참. 유하야, 집에는 들러 봤는데 별문제는 없는 것 같아, 누가 침입한 것 같지도 않았고. 번호 키를 좀 만진 티는 났지만.”
부드럽게 출발한 차가 연수원을 빠르게 멀어져 가는 것을 창밖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건네진 말에 나는 차 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 확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에서 따로 뭐 챙길 건 없고? 이대로 회사까지 갈까?”
“괜찮을 것 같아요. 이대로 회사까지 부탁드립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집을 비운 지 벌써 2주를 훌쩍 넘긴 상태여서 걱정하긴 했지만, 다행히 누가 집 내부까지 들어가진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번호 키를 누군가가 만진 티가 났다는 것은 역시 집 근처가 그리 안전하지는 않다는 뜻이겠지. 아무래도 집을 나온 건 옳은 선택이었던 듯했다.
-당분간은 짐 챙겨서 연습생 숙소 쪽에 들어와 있어. 지금 너희 집은 보안이 취약하니까.
내가 짐을 들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살았던 KRM의 연습생 숙소로 다시 들어간 건 마지막 합숙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쯤으로, 정확히는 내가 권 실장과 나름의 조율을 이뤄 낸 이후부터였다.
권 실장은 [디어돌> 마지막 합숙이 시작되기 전과 후, 즉 내가 데뷔해 숙소를 얻어 나가기 전까지는 연습생 숙소 쪽에 머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일어난 사건과 관련해 내 신상은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졌으며, 집 근처에 사생이나 자극적인 기사를 써 내릴 생각이 가득한 기자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였다.
-연습생 관리 소홀로 몰아가면 골치 아파진다. 집은 돌아가며 한 번씩 확인하게 할 테니까 웬만해서는 다시 돌아오렴. 너도 자다가 깼는데 모르는 사람과 눈 마주치고 싶지는 않을 거 아니니.
-…….
집을 관리하고 감시할 사람이 없어진다는 것이 조금 걱정스럽긴 했지만, 권 실장의 말은 타당했다. 말마따나 보안이 취약한 만큼 사생활 침해 등을 당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집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사생에게든 기자에게든 더 이상의 빌미를 잡히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나는 조용히 집 내부를 정리하고 짐을 싸 연습생 숙소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런데 유하야, 혹시 지오 만날 생각은 없니?”
“…지오요.”
다만 KRM 엔터테인먼트와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그만큼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로드 매니저는 내 떨떠름한 반응에 머쓱한 듯 말을 이었다.
“이번에 안부 전해 달라고 하더라, 너 픽업하러 간다고 하니까. 시간 괜찮으면 한 번 만나 줬으면 한다던데. 응원하고 싶대. 오늘은 스케줄 빌 텐데 한번 연락해 볼래?”
지난번의 언쟁 이후 나는 현지오를 만난 적이 없었다. 현지오는 현지오대로 스케줄이 있었고, 나는 멘탈이 터진 관계로 한동안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멘탈이 수습된 이후 연습생 숙소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현지오와는 쉽게 마주칠 수 없었다. 비활동기라 한들 쉬는 건 아니었기에, 현지오도 본인의 스케줄로 바빴던 이유도 있지만.
“…네, 한번 연락해 보겠습니다.”
내가 놈을 마주하고 싶지 않지 않았기 때문도 있었다.
현지오는 그 언쟁 이후 나한테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며 잘못한 게 있다면 사과를 하고 싶다는 말을 건네 왔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이 사과를 받을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화를 내지 않을 만한 일도 아니었지만.’
현지오가 왜 내게 가만히 참고 있으라고 했는지는 알고 있다.
4년을 동고동락해 온 사이다.
나는 지인이나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지만, 그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을 떠올리라면 아마 현지오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게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면 현지오도 그럴 테고.
현지오는 내가 잘되기를 바랐을 것이고, 그에 따라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을 권유해 봤을 터였다.
그 마음 자체는 이해하기에 그 권유에 대해서는 화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용납할 수 없는 건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놈의 태도였다.
현지오는 내가 데뷔조에서 떨어진 시기를 기점으로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딘가 비굴하고 그늘진 듯한 얼굴, 뭐라도 해 주고 싶어 안달이 난 표정. 내게 배려니 도움을 주는 게 의무라도 되는 양 구는 꼴.
‘꼭 빚이라도 진 것처럼.’
현지오는 지극히 저자세로 나를 대하고 있었다. 자신의 데뷔를 ‘운’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유하야, 와 줘서 고마워.”
나는 현지오의 얼굴에서 다른 감정을 읽어 낼 수 있었다.
“…그래.”
동정.
놈은 부정하겠지만, 현지오는 나를 가엾어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내가 놈을 피하게 된 이유가 되었고.
“피곤하지는 않아? 바로 오늘까지도 촬영했을 텐데…….”
“그러는 너도 오늘까지 연습했다고 들었는데.”
“연습은 일상이니까, 뭐……. 으음, 생각해 보니까 좀 새삼스럽긴 하다, 연습생 시작했을 때부터 쉬어 본 적 없잖아, 우리.”
머쓱한 듯 그렇게 답한 현지오는 가볍게 웃었다.
이제 둘 다 얼굴이 알려진 공인이 되었기에, 우리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은 몇 없었다.
적절한 장소는 회사, 그중에서도 [디어돌> 파이널 경연을 위한 연습 목적으로 내가 빌린 연습실 정도뿐이었다.
“여기도 진짜 오랜만이다.”
연습생이 쓰는 연습실과 데뷔한 아이돌이 쓰는 연습실은 철저히 나뉘어 있어, 아마 현지오가 이 지하 연습실에 내려온 건 정말 간만일 터였다. 어딘가 낯설어하는 듯한 얼굴로 연습실을 둘러보는 현지오에게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매니저 형한테 말은 전해 들었어. 응원 고맙다.”
“아냐, 나도 웬만해서는 내일 현장까지 가고 싶었는데… 아쉽다. 네가 데뷔하는 걸 보고 싶었는데.”
“됐어, 백이현까지 오는데 너까지 거기 오면 상황 복잡해지니까.”
“아, 이현 선배님…….”
내가 꺼낸 말에 현지오의 표정이 흐려졌다. 잠시 동안 침묵이 돌았다.
현지오가 머뭇대는 것을 보며, 나는 놈이 지난번 백이현의 이적과 관련되어 말다툼을 벌였던 일을 생각하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곧 그가 결심한 듯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지금까진 고마웠어. 하지만 이젠 괜찮아.”
“…어?”
“이제 더는 날 도우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거야.”
나는 현지오의 말을 가로채며 먼저 본론을 꺼냈다. 또 한 번 듣지 않아도 될 사과가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 말에 현지오는 당황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곤 말을 이었다.
“[디어돌> 내내 너한텐 고마운 일이 많았지. 그걸로 충분해. 더 뭔가를 해 주려고 하지 않아도 돼. 네가 정도 이상으로 내게 신경을 써 줄 필요도 없고.”
“…내가 피해를 줬어?”
“아니, 오히려 도움이 됐지.”
현지오는 [디어돌>이 방영되는 내내 나름의 방식으로 내게 서포트를 해 주었다. 팬들과의 소통을 위한 U앱에서 은근슬쩍 내 이름을 꺼내기도 하고, 인지도 면이 아니어도 이런저런 면에서 내게 정보를 물어다 주는 식으로 도움을 주기도 했으니까.
현지오가 그런 식으로 나를 어떻게든 끌어 올리려 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디어돌>을 나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하지만 전에도 말했지만, 난 이제 괜찮아. 그때랑은 달라.”
무엇보다도, 가장 가까이에서 내가 망가지는 걸 지켜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의 내 상황이 남들 눈에 좋게 보이진 않았겠지.’
실제로 멘탈도 체력도 모두 무너질 정도의 일이었고, 연습생들에겐 일생일대의 기회라 할 수 있는 데뷔를 놓쳐 버렸으니 현지오가 내게 신경을 쓰는 건 그럴 만했다.
직후 컨디션이 완전히 망가진 걸 확인하기도 했고, 내가 재기하지 못해 방출당할 거라 생각했다고 제 입으로 말하기도 하지 않았나.
그래서 현지오는 내가 [디어돌>을 놓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건 내가 잘되었으면 하는, 친구로서의 마음도 있겠지만.
“그러니까 죄책감 느끼지 마라. 넌 잘못한 거 없어.”
무엇보다도 현지오 스스로가 죄책감을 벗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
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답 없이 눈을 굴리는 현지오의 얼굴을 보며 내 예상이 적중했음을 깨달았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현지오의 달라진 태도가 놈의 죄책감에서 기인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현지오는 내가 아닌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향으로 내가 행동하기를 바랐다. 내가 그걸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고.
‘아니면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외면했거나.’
내가 제 말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리라는 것을 현지오는 분명 알고 있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그리고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해서도 알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오는 침묵했다. 나를 어떻게든 데뷔시키고 싶었으니까.
나는 그런 일방적인 죄책감을 원하진 않았다. 타인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향으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어. 모든 걸 예상하고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무슨 사건이 일어나든 내가 그냥 무너질 일은 없을 거야.”
그런 방향쯤은 스스로 정할 수 있고, 거기에는 누구의 개입도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내가 현지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단 한마디뿐이었다.
“이제 예전과는 다르지 않냐, 너도, 나도.”
“…….”
“그러니까 정말 괜찮아, 이제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더 이상 고꾸라질 일이 없으니 더는 나를 돌보려 들 필요가 없으며.
‘이번에는 안 놓쳐.’
누군가의 농간으로 얻은 또 한 번의 기회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전과 같은 미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것 말이다.
후자는 속으로만 중얼거릴 수밖에 없는 말이었긴 하지만.
* * *
“후…….”
원유하가 [디어돌> 파이널 경연 합숙에 들어가기 이전의 어느 날, 홈마는 수척한 얼굴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디어돌>의 프로그램 화면이 띄워져 있었고, 그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디자인 유어 아이돌> 데뷔 그룹의 그룹명을 디자인해 주세요!」
아이돌 메이커들의 사랑과 정성으로 끝에 도달한 [디자인 유어 아이돌>, 최종 데뷔 그룹의 이름을 정해 여러분의 그룹을 완성하세요.
“흠.”
홈마는 홈페이지의 댓글 창을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지만.
-그룹명: 퍼스널쇼퍼-당신을 위해 디자인된 만큼 당신만의 전문가가 되어주겠단 뜻
-탑티어돌즈 추천합니다~~! 연예계의 정상에 오르란 뜻이에요~! 1군의 정상에 올라 해이한 기강의 연예계를 씹어 먹는 1군돌이 되기를^^
-그룹 이름 T-YOUNG 추천합니다. 이유?
김태영 살려내
-피닉스는 어떤지?ㅎㅎ 이유: 주작전문 제작사가 만든 그룹이니까>[
그중 가장 많은 추천 수를 받은 댓글들이 이런 식의 드립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생각이 있으면 제작진이 이런 댓글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리가 없긴 한데…….’
그나마 좀 정상적인 그룹명들도 어디서 많이 봐 온 단어의 나열이라든가 무언가 뜻이 애매한, 정확히는 홈마의 마음에 차는 것들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적힌 덧글들 중 현재 가장 많은 추천 수를 받고 있는―정상적인―그룹명은 바로 아이딘이라는 이름이었다.
이상적임을 뜻하는 영단어 IDEAL과 프로그램명에 있는 단어 중 하나인 DESIGN을 섞은 합성어로, 이상적인 아이돌을 뜻한다고 했다.
뜻이나 발음 모두 나쁘진 않지만, 홈마는 어쩐지 그 이름이 탐탁지 않게 느껴졌다.
홈마는 전형적인 한국인답게 이름 따라 팔자가 정해진다는 속설을 아주 굳세게 믿고 있었고, 그에 따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 애는 일단 어떻게든 사랑받는 이름을 가져야 돼.’
원유하가 소속되어 있는 그룹에게 가장 좋은 뜻을 가진 이름을 안겨 주어야 한다고.
그 미신에 기대어 그녀는 원유하의 앞날을 빌고 싶었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