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st RAW novel - Chapter 11
10. 불가결
“우리 차 이사랑 차 마셔 본 지가 꽤 된 거 같은데.”
“그래 봤자 일주일 전 아닌가요.”
“네가 워낙 바쁘니 그렇지.”
연석은 전화가 오다 끊긴 핸드폰을 보았다. 나연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윤 회장과의 대화가 따분해져 가고 있는 참이었다.
“전 그럼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만나는 여자가 있다는 소린 들었다. 그래, 그 여자 만나러 가는 게냐?”
“그럼 즐거운 자리 보내십시오.”
“녀석도.”
연석은 윤 회장을 향해 고개를 숙이곤 회장실을 나왔다. 성식이 다급한 얼굴로 다가왔다. 그답지 않게 얼굴까지 시뻘게진 채로 초조해하고 있었다.
“석도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송나연 데리고 있으니 살리고 싶으면 오라고요. 이사님, 송태성이 석도로 들어간 듯합니다. 그래서 송나연을 쉽게 유인한 것 같습니다.”
“송나연 마킹하던 놈들은.”
“송나연을 실은 택시가 우리 애들 따돌리느라 교통사고까지 났다고 하는데, 택시는 그대로 도주했습니다.”
남자의 얼굴에 잔혹하도록 찬기가 돈 건 순식간이었다.
“위치는.”
“예전, 석도 오른팔 대가리 땄던 그 창고입니다. 저 그리고….”
성식이 뒷말을 잇지 못하는 짧은 사이, 저벅저벅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석훈이었다.
“이런 일에 날 빼면 섭섭합니다, 형님.”
“잘됐네, 총이라도 쏘면 나 대신 죽을 사람이 필요했는데.”
“또, 또. 말씀 무섭게 하신다. 우리 전무이사님. 어차피 형수는 우리 때문에 이렇게 된 거 아닙니까. 깊은 책임감을 느껴서요.”
키득거리며 웃는 석훈이 차가운 총구를 만지작거렸다.
“형님이 이성 잃어서 걔들 죄다 벌집 만들어 놓을까 봐 따라가는 겁니다, 나. 간 김에 형수님도 한번 보고. 겸사겸사. 약사시랬나?”
그렇게 말은 했지만 석훈은 짙은 피 냄새를 감지했다. 평소에 이성을 잃었다 해도 앞뒤 안 가리고 덤빌 만큼 감정적인 사람이 아닌 연석이지만, 이번만큼은 옆에서 누군가가 그를 제어해야 할 만큼 위험해 보였다.
어디로 향하는 걸까. 나연은 묶인 손목을 들썩거리며 차창 밖을 보았다. 택시는 모르는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야?”
“곧 있으면 재문 이사 만날 거야. 얌전히 있어.”
주로 이런 작당 모의를 하거나 사람을 해할 때 썼던 공간으로 가겠지. 창고나 폐공사장이나. 운전을 하며 시시껄렁하게 껌을 씹고 있는 태성의 팔목을 보았다. 한쪽 팔에 의수를 하고 있었다.
“그건 어쩌다가 그랬어?”
“뭐, 이거? 재문 이사께서 더 잘 아실 거야. 만나거든 물어봐.”
나연은 더 묻지 않았다.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자 지금의 상황이 신이 난 태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그래도 네 오빠라고 많이 봐줬더라? 네 이름 들먹이면서 그래도 하나 있는 가족이라고 추하게도 빌었지, 시팔.”
앞으로 묶인 채 테이프를 둘둘 말아 놓은 손목을 빤히 내려다봤다. 다리 사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팔다리가 자유롭지 못해 무엇 하나 시도해 볼 수도 없었다. 태성의 눈을 가리고 교통사고가 나면 도망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러려면 교통사고가 크게 나야 한다. 태성이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크게.
이리저리 머릿속으로만 실행하지 못할 계산을 하고 있는데 곧 차가 멈추더니 그녀의 옆자리에 시커먼 사내 하나가 탔다. 태성과 짧은 인사를 주고받는 것을 보아 그와 한패 같았다. 감시자가 하나 더 늘었다. 이것저것 머릿속으로 세워 두었던 계산도 다 틀렸다는 소리였다.
하긴 그렇게 쉬울 리가 없지.
남자를 태우고도 한참을 달리던 차는 인적이 드문 길로 들어섰다.
사실은 너무 무서워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었지만 겁먹은 티 내지 않으려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녀의 옆에 앉아 나연을 힐끔 쳐다본 남자가 피식거리며 웃었다. 손바닥에 땀이 흐른다. 웃는 남자의 입꼬리가 접힌다 싶었던 순간이었다.
“꺄악!”
남자는 순식간에 칼을 꺼내 태성의 가슴팍에 내리꽂았다.
한순간에 차선을 이탈한 차가 나무를 정면으로 들이박았다. 머릿속이 핑핑 돈다. 이명처럼 아득히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으십니까?”
희미하게 멀어지는 정신 줄을 붙잡은 건 그녀의 어깨를 붙드는 남자의 목소리 때문이다.
차 보닛에선 연기가 나고 있었다. 남자는 그녀를 안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어둑어둑한 어둠 한가운데에선 어디가 어디인지 무엇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누구, 세요?”
나연은 아득하게 멀어지는 귓가로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남자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예. 지금 제가 모시고 있습니다. 예, 이사님.”
차 트렁크를 짚고서 겨우 버티고 서 있는데 차 한 대가 불빛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앞까지 다가와 멈춰 선 차 문이 열렸다. 전화 통화를 마친 남자는 그녀를 차 뒷좌석으로 안내했다.
“곧 있으면 석도에서 사람들이 올 겁니다. 아직까진 저들이 저를 믿고 있으니 벌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전에 여길 나가셔야 합니다. 뒤처리는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어서 타십시오.”
재문이 석도에 심어 놓은 첩자인가.
“태성 오빠는… 죽었나요?”
“어서 가셔야 합니다.”
목적지를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차가 멈춰 섰다. 여길 빠져나가야 했다. 나연은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태성을 두고 차 뒷좌석으로 올랐다.
연석은 무사한 걸까. 그녀는 핑계일 뿐이다. 송나연이 있으면 쉽게 그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이지 그녀가 없다고 해서 그를 죽이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끝도 없이 불안하다.
차는 재문으로 향하는 길을 잡았다. 그리고 이 도로를 벗어나려던 찰나였다.
쾅!
귓전이 찢길 듯한 굉음과 함께 퍽, 몸이 앞좌석 시트에 부딪혔다. 뭐가 어찌 된 것인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배트가 창문을 깨기 위해 마구잡이로 날아들었다.
“뭐 해, 아가씨 모셔!”
귓가를 흔드는 어지러운 목소리들이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곧 희미해져 가는 정신과 함께 몸이 넘어갔다. 그녀를 찢어 죽일 듯 덤벼드는 유리창이 깨부숴지는 소리가 멀어져 갔다.
나연은 가물거리는 눈을 비비며 어두운 산속의 밤을 걷고 또 걸었다.
뒤에서 처박힌 차의 상태는 멀리서 보아도 제 모습을 찾기 어려울 만큼 처참했다. 고의적인 교통사고였다. 그녀를 보좌하며 길을 뚫은 남자의 팔에도 핏자국이 선연했다. 물론 남자의 칼날에 죽은 석도파 목도 셀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무사히 교통사고 현장을 빠져나와 이렇게 걷고 있는 것이겠지. 이미 너덜너덜해진 치맛자락 아래, 구두를 신은 새끼발가락은 핏물이 맺히다 못해 흘러내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불평할 수 없었다.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는 이 남자들은 자신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 물론 차연석의 명이니 그러하겠지만 연석을 위해 그리고 그녀를 위해 목을 내놓은 사람들이었다. 태성은 죽은 걸까.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처참히 피를 흘리고서 쓰러진 얼굴이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곧 재문에서 모시러 올 겁니다.”
연석은 어떻게 됐을까. 그 남자를 죽이려고 석도의 인력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
남자는 도로 앞을 막아선 석도를 뚫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고 있지만 곧 구하러 올 것이니 너무 걱정 말라 그녀를 달랬다.
“이사님께선 어떻게 되셨을까요?”
“이사님께선 본진을 치고 계십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본진을 치고 있다면서 걱정하지 말라니.
나연은 흙투성이가 된 손으로 남자의 팔을 콱 움켜잡았다.
“걱정하지 말라니요? 다치기라도 했으면, 아니, 만약에 지난번처럼 카, 칼에….”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께서는 그분을 모르십니다.”
“예?”
“반드시 우리 앞에 나타나실 것이니 두고 보시면 알겠지요.”
무엇을 믿고 이렇게 태연한 건지, 나연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저희는 아가씨를 지켜 내라는 임무만 명받았습니다. 그러니.”
“네. 그분 바람처럼 무사히 살아서 돌아갈게요.”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가던 길을 걸었다. 어둠 속을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앞서가던 남자가 그녀에게 앉을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나연은 피투성이가 된 구두를 벗고 맨발로 다리를 폈다.
그와 떨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반나절이 천년만년처럼 느껴진다. 그가 모텔방에 쳐들어왔던 날이 떠올랐다. 아냐. 그 사람은 괜찮을 거야. 이 남자들 말대로 그는 강한 사람이니까. 꼭 자신의 걱정 따위는 우습다는 듯 다시 나타날 거다.
“저 괜찮아요. 다시 가요.”
힘을 내 다시 일어서는데 멀리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번쩍거리며 다가왔다.
그 뒤를 이어 여러 개의 불빛이 줄을 지었다. 차가 나연의 앞으로 와 정차했다.
곧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내려 고개를 숙인다. 성식과 함께 늘 연석의 곁에서 그를 보좌하던 수행 비서 중 하나였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두 사람 앞으로 검은 세단이 다시 줄지어 도착했다. 나연은 뒷좌석에서 내리는 연석을 발견했다. 보고 싶었던 그 얼굴에 가슴 안 어딘가가 울컥, 눌러 참았던 것들이 쏟아져 터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맨발로 그를 향해 다가갔다. 바닥에 내려 두었던 구두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지만 나연은 빠르게 걸어 그 품으로 답삭 안겼다.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수십 대의 차는 안중에도 없었다.
희미한 피 냄새가 그의 품 안에서 났다. 연석은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으니, 그의 것이 아니라면 그 속에서 뒤엉켰을 때 달라붙은 냄새라는 소리였다. 다행이야. 다행이다.
누군가는 또 목숨을 잃었겠지만 차연석은 아니야. 독하다 해도 안도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남자만 살았으면 그걸로 된 거야.
두 팔로 가득 그를 끌어안고 코를 박은 채 연석의 향을 들이켜고 있었다.
“혀가 잘린 거 같아.”
“네, 네?”
깜짝 놀라 가슴팍에 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지그시 웃고 있으면서 하는 말치곤 무시무시한지라, 눈을 크게 떴다. 나연은 다급히 검지와 중지를 그의 입 속으로 움푹 밀어 넣어 보았다. 그의 혀가 손가락으로 진득하게 감겼다. 나연은 손가락 사이에서 꿀렁거리는 혀를 밀어내고 넣어 둔 것을 뺐다.
“있는데…?”
“확인해 봐. 진짜 있는지.”
그제야 키스하라는 그의 속뜻을 알아차렸다. 정말 못 살아. 그래도 살아 돌아왔으니 키스가 대수겠는가. 나연은 황급히 그의 목을 당겨 와 손가락을 뽑은 자리로 자신의 혀를 쑤셔 넣었다.
쯔읍, 쯥, 쪽. 그는 오럴을 할 때도 그랬지만 키스할 때 역시 액체가 거칠게 엉키며 나는 소리를 좋아했다. 그에게 맞춰 길들여진 몸은 최대한 날 것 같은 키스를 하느라 안간힘을 썼다. 안에서 혀를 굴리고 그의 입술을 핥아 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쑤시던 것을 쑤욱 빼내는데 어쩐지 낯선 분위기를 감지했다.
“아….”
수십 대의 차 앞으로 나와 연석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수많은 남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석의 뒤에 선 남자가 흥미로운 얼굴로 싱긋 웃고 있었다. 턱에 튄 핏자국을 선연히 달고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꾹 누르고 있는 옆구리 사이로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다른 남자들과 달리 연석의 바로 뒤에 서 있는 걸로 보아 비슷한 위치에 있을 남자지만 연석의 뒤를 보며 서 있는 것으로 보면 연석보다 높은 위치는 아닌 듯했다.
“안녕하십니까, 형수님.”
나연은 뒤늦게 석훈을 힐긋 보았다. 꾸벅 인사를 하자 그쪽은 보지 말라는 듯 연석이 나연의 얼굴을 그의 가슴으로 묻어 당긴다.
“저런 못생긴 개랑은 말 섞는 거 아니야.”
석훈이 정말 개처럼 기웃거리며 꼬리를 살랑거리고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웃고 있는 남자라니. 저쪽도 제정신은 아닌 건 분명했다.
“자기 오른팔은 대가리 따다가 칼 맞아 다 죽어 가고 있는데 거 너무 찐한 거 아니요, 형님?”
“오른팔 같은 소리 하네. 근데 너 왜 맨발이야.”
“아, 발이 아파서요. 구두가 불편하기도 하고.”
“가. 만져 줄 테니까.”
그녀를 안아 올리려는 연석의 팔을 다시금 붙잡았다.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연은 그의 가슴에 정수리를 툭 얹었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에게 주는 선물처럼 고백했다.
“어서 집에 가서 샤워하고 싶어요. 같이.”
사실 그간 그와 몸을 섞어 온 바로는 파격적인 고백도 아니었지만 직접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처음이었다. 나연은 그 말을 꺼내 놓고도 쑥스러워 연석의 까만 구두만 깜빡깜빡 바라보았다. 피범벅인 석훈이 뒤에서 신음을 흘려 대고 있는데도 연석은 진지하게 읊조렸다.
“다음번엔 부스를 좀 좁게 리모델링해야겠어. 서서 할 만한 공간만 만들면 될 것 같은데.”
그가 그녀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아니면 자주 그 좁아터진 여관을 가거나.”
나연은 연석에게 안겨 곧장 차 뒷좌석으로 올랐다.
그의 무릎에 두 발을 올리고 손수건에 물을 적셔 발을 닦아 주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 우리 오빠 말이에요.”
“발기발기 찢어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여겨.”
“…….”
어두워지는 그의 안면을 두고 나연은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그녀의 발까지 닦아 줄 만치 다정하게 굴면서 타인에겐 눈곱만큼도 자비롭지 않은 남자였다.
나연은 그의 손안에 감겨 있는 가느다란 자신의 발목만 보고 있었다.
“시신만 찾아 주면 돼?”
나연은 낮은 한숨과 함께 조용히 묻는 그를 향해 고개만 주억거렸다.
고마워요. 그의 목을 끌어안고 그렇게 말했다.
에필로그
나연은 똑똑 비서실장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의 목소리에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폐공사장에서 갈비뼈가 나간 성식이 병원 신세를 지다 퇴원을 했다.
어차피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상 몸 어디가 부러지는 것 정도야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연석에겐 그저 그런 스쳐 지나가는 일상 중에 하나였지만 나연에겐 아니었다. 누군가가 죽고 다치는 것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다.
오빠 태성의 죽음 또한 그랬다.
성식은 이깟 일로 병원 신세를 진 것도 모양이 빠지는 낌새였다.
“병원에 있었을 때부터 오시는데 자꾸 오시면 형님께서 절 죽이실지도 모릅니다.”
“예? 아, 죄송해요. 이사실로 가던 길이었는데 오늘부터 출근하셨다고 하셔서 안부차요.”
출근을 시작했어도 당분간은 이른 퇴근을 하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몸 상태 때문에 회사 일에 지장을 줘 성식은 불편한 얼굴이었다. 그럼에도 일찍 퇴근을 하는 건 연석의 명령을 따랐을 거라 짐작했다. 연석의 명령이라면 끔뻑 죽는 남자니까.
“괜찮으니까 더 안 오셔도 됩니다.”
처음 만났을 땐, 이년 저년 죽이네 마네 하더니 이젠 더없이 고분고분해진 성식이 갈비뼈를 문지른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그의 눈초리가 사나웠다.
“꼭 누구 병문안을 가야 할 것 같은데, 갈 곳이 없어서요.”
그녀가 말하는 것이 태성임을 눈치챈 성식이 입을 다물었다.
“석도파의 양팔을 다 잘라 버렸으니 당분간은 쥐 죽은 듯이 숨어 지낼 겁니다. 어차피 대가리까지 거두는 것도 형님의 마음먹기에 달린 일일 뿐이죠. 송나연 씨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조직에게 형님은 처음이자 마지막과 같습니다. 큰형님보다 우리 형님께 목숨을 바친 놈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죠. 그 이유는 이번 일로 충분히 느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자기 사람이라 생각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고 마시는 분이니까요. 그런 분께 목숨을 내어 드리지 않을 놈이 누가 있겠습니까.”
나연은 퇴근을 위해 겉옷을 드는 성식에게 인사를 하고서 비서실을 나왔다.
“아흣, 응.”
구멍 깊숙이 들어차 있던 페니스가 희뿌연 흔적을 남기고 빠져나간 것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내내 사무실 천장을 향해 다리를 쩍 벌리고 섹스에 몰두하던 나연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사무실 창문으론 새카만 어둠이 내리비치고 있었다.
그와 이곳에서 얼마나 섹스를 했던 걸까. 두들겨 맞은 것처럼 엉망이 된 몸은 상체를 일으켜 세우는 것만으로 뻐근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팬티를 줍느라 엉거주춤 일어났다. 다리 사이로 정액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
당황한 얼굴로 책상 위 티슈를 바라봤다. 저기까지 가기엔 이미 다리 사이로 흐르는 정액이 상당량이다. 어찌해야 하지 싶어 큰 눈만 끔뻑거리고 있는데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쾌감을 느끼던 그가 그대로 벌어진 구멍부터 클리토리스까지 길게 핥아 댔다.
“아흣, 아앙. 연석 씨.”
연석의 머리칼을 움켜잡고 뒤처리까지 꼼꼼하게 해 주는 혓바닥을 오롯이 느꼈다. 그가 아직 페니스 크기대로 벌어져 있는 구멍 안까지 혀를 넣어 지저분한 아래를 정돈했다. 다리가 풀려 그에게로 풀썩 무너지자 그가 그의 입술을 핥으며 느른히 갈무리를 했다.
“비타민 잘 챙겨 먹으라니까.”
아무리 비타민을 섭취해도 당신이 짐승처럼 박아 대는 이상은 계속 이럴 거라고 말을 하려다 말았다. 그 시간에 빨리 옷을 주워 입는 게 나았다. 분명 그는 7시에 여기서 회의가 있다고 했다. 그러려면 입씨름할 시간에 몇 분이라도 더 환기를 시켜야 했다.
어서 뒷정리를 해도 모자랄 판에 그가 느긋하게 담배를 물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탁, 그의 구둣발이 탁자 위로 올라갔다.
“너 또 전성식한테 갔었지.”
“안 그래도 이제 오지 말라고 하셔서 안 갈 거예요. 그래도 걱정이 되어서요.”
그가 건네준 손수건으로 다리 사이 남은 잔여물들을 닦으려는데 등 뒤에서 두 다리를 확 잡아채 벌리는 그가 나연이 쥐고 있는 손수건을 뺏어 들고 음부 주위를 닦았다. 언뜻 거친 듯하지만 꼼꼼하게 닦는 손길은 세심했다.
“제가 할게요.”
“마주치는 거 싫다며. 그래서 빨리 끝내 달라고 보채 놓고서 어느 세월에 닦으려고.”
그는 나연의 다리 사이를 닦으며 익숙하게 담배를 물었다.
“돌아봐.”
돌아보라는 짧은 말에 나연은 꾸물거리며 그와 마주 섰다. 연석이 제 어깨를 잡으라고 톡, 그의 어깨를 치더니 가랑이 사이를 마저 닦아 준다. 이상하다. 이 문밖만 나가도 그가 무서워 벌벌거리는 사내놈들만 수두룩한데 여자 가랑이 사이를 이토록 다정하게 닦아 주는 그라니.
“무슨 생각을 하길래 닦아도 닦아도 계속 물이 나와?”
“아, 아니에요. 나머진 제가 할게요.”
나연은 그에게서 물러서 얼른 팬티를 주워 입었다. 그리고 소파 구석에 처박힌 스커트를 마저 입었다. 화끈거리는 얼굴로 퉁퉁 부은 눈두덩을 문지르고 환기를 시켰다.
저는 벌써 뒷정리를 다 끝냈는데 그는 연달아 이어진 파정에도 아직 식을 줄 모르고 굳건히 심지가 서 있는 페니스를 넣을 생각도 없이 담배만 피워 대고 있었다.
7시에 여기서 회의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7시가 되기 15분 전인데. 나연은 그가 테이블 위에 벗어 놓은 손목시계를 가져와 보며 초조한 얼굴을 했다.
“그… 어서 넣어야….”
“뭐, 이거?”
그가 우뚝 솟은 페니스를 쥐고 내밀어 보인다.
그녀의 지스폿을 사정없이 때려 대던 그 흉측한 귀두가 그의 손안에 감겨 꺼덕거렸다. 남자의 커다란 손인데도 번들거리는 기둥이 꽉 찬다. 저렇게 큰 것을 자신의 몸 안으로 밀어 넣어 한참이나 박아 대고 구멍을 벌렸다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오금이 저렸다.
“왜 아직… 서 있어요?”
“나올 게 남았나 보지.”
“아직도요?”
“그러게. 시간도 남는데 자위나 할까?”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그가 아직 모자란다는 듯 자신의 고환을 뭉근히 주물렀다. 시간이 남는다니. 나연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곧 사람들이 들어올 텐데 시간이 남아 자위를 한다니. 나연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아연한 얼굴을 한 것을 즐기는 남자가 잔악하게 웃었다.
그는 페니스를 쥐고 슬쩍슬쩍 문지르며 기둥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토해 내고도 아직 묽은 액을 흘리는 요도를 곤혹스럽게 보았다. 이미 곧추설 대로 선 귀두는 삽입이라도 할 태세로 불거져 있었다.
본 체하지 않으려 애썼다. 높아지는 침음과 열에 들뜬 남자의 신음이 점점 짙어졌다. 그는 자위를 즐기면서도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일부러 저러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반응하지 마. 보지 마. 두근거리지 마. 나연은 바보처럼 아무것도 없는 벽만 바라보고서 그렇게 되뇌었다. 지금쯤 그의 성기가 어떤 상태에 도달했는지 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굵직하게 올라서선 손안에서 꿈틀거리며 욕정의 분출을 갈망할 테다.
“이리 와. 나연아.”
가지 않고 여전히 벽만 보고 있으니 그가 재차 불렀다.
“안 와? 그냥 싸?”
유혹을 하는 남자의 자태가 거부할 수 없이 섹시하다.
피하고 싶었지만 눈을 두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감의 크기였다. 남자의 성기는 이미 완전히 발기해 사정을 직전에 두고 있었다. 아까는 그녀의 구멍 안이었지만 이번엔 허공으로 정액을 뱉어 내려 한다. 이미 귀두의 갈라진 틈은 금방이라도 정액을 쏘아 댈 것처럼 뻐끔거리며 그녀를 유혹하고 있었다.
“너 없이 하려니까 흥이 안 나.”
그렇게 말하는 그는 천연덕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더 이상 시계 같은 건 보지 말라는 듯 그가 테이블 위에 놓아둔 시계를 가져가 손목에 채워 버린다.
어느새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수명이 다한 담배가 탁자 위로 지져졌다. 탁자 위에서 꼬여 있던 그의 다리가 바닥을 디뎠다.
“대신 빨리 싸야 해요. 사람들이 곧 온단 말이에요.”
“봐서.”
결국 그의 유혹에 굴복한 나연은 그의 위로 올라타 애써 정돈해 놓은 팬티를 벗고 질구에 성기를 맞추어 조준했다.
앞서 진탕 붙어먹어 말랑해진 질 입구로 귀두 끄트머리를 어렵지 않게 끼웠다. 여전히 버겁지만 야릇한 이 느낌, 나연은 제 손으로 침을 묻혀 슬쩍 구멍 주위를 문지르며 이어질 행위에 대한 준비를 했다.
“후응….”
살랑살랑 허릿짓을 해 가며 기분 좋게 넣으려는데 돌연 그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페니스를 안으로 찔러 넣으며 나연을 받쳐 들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다리가 그의 팔에 각각 걸쳐졌다.
“응, 아앗!”
그가 일어서는 추진력으로 인해 페니스가 단숨에 길을 찾아 들어섰다. 슬쩍 이음새 부분을 내려다보는데 꼭 짐승 대가리가 구멍 안으로 들어가려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그도 잠시, 이내 길고 단단한 것이 뿌리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의 음모가 그녀의 사타구니로 비벼져 엉킨 것만이 보일 뿐이었다. 앞서 싸 놓은 정액에 파묻힌 페니스가 쩍쩍거린다.
“아앙….”
방금 전까지도 하던 짓이었는데, 아니 벌써 앞 차례 세 번이나 정액을 쏟아 내고 나왔는데, 잠깐 그의 성기가 빠져나갔었다고 다시 질구가 악착같이 넓어지는 것이 버겁다. 그는 나른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이러는 게 어, 어디 있어요.”
“하여튼 요부가 따로 없지. 그렇게 좋아? 아예 꽂고 다닐래?”
“…흐응, 변태.”
“변태라서 뒈지게 좋은 건 아니고?”
“시간 안에….”
“너 하는 거 봐서 결정한다니까?”
그는 서로의 성기를 맞물려 끼운 채로 소파 뒤에 놓인 그의 책상까지 걸어갔다. 일부러 탁탁, 치골을 튕기면서 걷는 통에 그 반동으로 엉덩이가 튀어 올랐다가, 다시 바짝 당겨 안는 그의 악력에 가장 깊은 곳까지 이어지길 반복했다. 이러려고 일부러 책상까지 가는 거다. 사무실이 이렇게나 넓은 이유가 의도된 건 아니겠지. 나연은 제가 점점 미쳐 가는 기분이었다.
“나쁜, 응, 아! 아!”
그의 힘 한 번에 엉덩이 전체가 붕 떴다가 기둥뿌리가 깊숙한 지점까지 돌진한다. 귀두가 입구에서 애타게 비벼졌다 다시금 삽입되었다. 그러한 삽입 운동은 그가 책상까지 도착할 때까지 계속됐다. 모든 것이 난폭하게 이루어졌지만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깊은 애정으로 충만했다.
책상에 눕힐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책상을 지나쳐 통유리 창 앞에 섰다. 유리창 밑으로는 새까만 사람들의 뒤통수가 보였다. 설마 여기서 하겠다는 건가. 여전히 은밀한 아래쪽은 연결된 상태였다. 유리창 너머 사람들에게 쑤시고 박히는 성기의 결합을 보여 주기라도 하겠다는 것 같았다. 이 고층에선 보이지 않는 걸 알면서도 나연은 은근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 와중에도 잘생긴 남자의 두 눈이 그녀를 홀린다. 잘 빚어 놓은 콧날을 따라 시선을 옮겨 갔다. 누구보다 냉랭하지만 그래서 누구보다 배로 뜨거운 눈동자를 가진 남자라 좋았다. 제가 미쳐 가도 이 남자라서, 그래서 좋은 거다.
이럴 때가 아닌데 넋을 놓고 그의 미모를 감상하던 나연은 그 순간에도 안에서 불끈거리는 페니스를 직격으로 느꼈다. 그는 처음부터 자위만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처음부터 곧이곧대로 씨를 뿌려 줄 마음이 없었던 거다. 하긴 그는 사정을 목전에 두고도 원하는 만큼 추삽질을 하고 나서야 끝을 보곤 했으니까.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다.
곧이어 그의 팔에 걸쳐진 두 다리가, 몸이, 앞뒤로 전투적으로 흔들렸다. 모든 잡념과 걱정 따위는 상쇄시켜 주겠다는 듯.
“송나연.”
그가 불렀다. 무시무시한 삽입과는 달리 아주 달콤하게.
“키스해.”
“핫, 아읏! 천박하고, 음탕하게, 요?”
“그래.”
지난번처럼, 천박하고 음탕하게 키스를 하라고 해 놓고 그가 먼저 입을 맞춰 왔다.
나연은 뿌리치지 못하고 그를 마주 안았다.
훨씬 전부터 문밖에서 그의 부하들이 차마 제 형님께 인기척을 내지 못하고 두 사람의 음란한 짓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연석이 왜 웃는지도 모르고 나연은 쏟아지는 격정에 집중했다. 그들을 눈치챈 것은 그의 정액을 맛있게 받아먹은 이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