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00
00999 Omnibus – Seraph. =========================================================================
6. 아내들의 은밀한 성생활?
동이 트고 솟은 해가 하늘 중앙으로 걸릴락 말락 할 때쯤, 정하연이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눈을 떴다.
“응? 시간이 벌써?”
한때 칼 같은 시간 관리와 계획적인 생활로 명성 높던 그녀였지만, 아마 임신 칠 개월 차여서 그럴까?
최근 일어나는 시간 등 전반적인 활동 리듬이 조금씩 늦춰지는 걸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다.
애초 김수현의 엄명으로 임산부는 전원 업무에 손도 대지 못하는 중이라 시간은 너르고 널렸으니까.
이러한 까닭으로, 한가로운 여인은 가로되.
“오늘은 어떤 음악을 들을까~. 어머, 벌써 배터리가 다 됐네? 어디 보자. 예비 충전 배터리가….”
큼직한 헤드폰을 쓰고 흔들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지구에서 가져온 ‘태교 음악 100선’으로, 임신 후 하루도 빼먹지 않고 듣고 있었다.
그렇게 태교를 끝내고 세안까지 마친 정하연은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오늘은 뭘 하며 시간을 보낼까?’ 라는,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행복한 생각을 하며.
평소보다 약간 늦게 일 층에 도착한 정하연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왜냐면 복도에 흐르는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식당 문을 열어젖히자, 안에는 평상시 볼 수 없는 진귀한 풍경이 연출되는 중이었다.
주방과 연결되는 탁자에는 흐릿한 눈을 한 김수현이 앉아 있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까?
한숨을 푹푹 쉬거나, 가끔 힘없이 숟가락질하며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다.
한데 어쩐 일인지, 그 주변에는 여인 예닐곱 명이 붙어 김수현을 조롱하기 한창이었다.
“아유, 울 아가 오늘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밤에 나쁜 꿈이라도 꿨어요?”
“아뇨. 그냥 좀 복잡해서 그럽니다.”
“에이~. 어깨가 축 처졌는데? 무슨 일이야, 응? 우리 아기 젖 먹을까?”
“임한나, 너까지 왜 이래. 둘 다 애 취급은 관둬.”
고연주와 임한나가 번갈아 짓궂게 놀리니 김수현이 짜증을 냈다.
옆에서 생글생글한 얼굴로 보고 있던 제갈 해솔이 한 마디 했다.
“와, 웬일이래~? 우리 천하의 김 찌찌 돌이께서 젖가슴을 다 마다하시고. 진짜 무슨 일 있나 봐?”
“뭐요? 김 찌찌 돌이?”
빈정대는 말투가 거슬렸는지 김수현의 어조가 날카로워졌다.
어깨를 으쓱한 제갈 해솔은 동의를 구하는 양 한소영을 바라봤다.
한소영은 스리슬쩍 시선을 올리더니 일리 있는 말이라는 듯 끄덕끄덕했다.
“틀린 말은 아니죠. 잠자리할 때 간혹 내가 애 젖 먹이러 온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사방에서 깔깔 웃음이 터졌다.
사실 한소영도 반쯤 농담 삼아 한 말이라 입꼬리를 스리슬쩍 올렸다.
유쾌한 분위기를 탔는지 남다은도 까르르 웃으며 놀리는 데 일조했다.
물론 반대로 김수현의 부들부들은 한층 심해지는 중이었지만.
안 그래도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좀 심하다.’ 고 생각하고 있던 정하연은 김수현의 두 눈이 차갑게 식는 걸 보고 황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사내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를 넘었고, 숟가락을 탁 소리 나게 놓으며 한소영을 바라봤다.
“아, 그래요?”
그러더니 낮지만 분명한 음성으로 말했다.
“한 오줌싸개.”
웃음이 뚝 멎었다.
느닷없는 반격에 여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로 번갈아 봤다.
김수현이 아직 한소영을 응시하는 걸 확인한 고연주는 설마 하며 물었다.
“소영 씨? 혹시…. 요실금 증상이라도 있어요?”
“…아뇨?”
그게 뭔 말이냐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던 한소영은
“!”
왜인지 순간적으로 두 눈을 치뜨며 허벅지를 오므렸다.
이내 반사적으로 김수현을 노려봤으나 사내는 이미 고연주로 시선을 옮긴 뒤였다.
“고 노출.”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눈이 휘둥그레진 고연주는 갑자기 “끅!” 뜻 모를 딸꾹질을 했다.
“고…. 노출…?”
“오호, 노출?”
김한별이 고개를 갸웃하니 제갈 해솔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받는다.
성(性)에 의외로 해박한 지식을 갖춘 제갈 해솔은 김수현의 말뜻을 금세 깨달은 것이다.
“세상에…. 노출?”
고연주는 입 닥치라는 의미로 매섭게 쏘아봤지만, 애초 모두 까기 인형인 제갈 해솔이 멈출 리 만무하다.
특히 상대가 고연주라면 더더욱.
“이것 참, 별일이네요? 그 칭송받는 그림자 여왕님이 설마 그런 우아한 취향이 있을 줄….”
그러나 문제는 제갈 해솔도 김수현의 포격 범위에 있다는 거였다.
무심한 시선이 조용히 옮겨간 게 그 방증이었다.
“제갈 스팽킹(Spanking).”
팔짱을 끼고 얄밉게 깐족거리던 제갈 해솔이 움찔 몸을 떨었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화난 듯한 기색이 차차 번졌다.
그때 눈치 없는 비비앙이 끼어들었다.
“있잖아, 스팽킹이 뭐야?”
“아주 좋은 질문이에요. 비비앙.”
어느새 신색을 회복한 고연주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자, 잠깐만요! 당신…!”
“SM 플레이 중 하나로, 때리다 라는 뜻의 성적인 의미가 다분한 체벌이에요. 보통 손바닥으로 궁둥이를 사정없이 때리는 걸 말하는 경우가 많죠.”
제갈 해솔이 서둘러 방해하려 했으나 늦어도 한참 늦었다.
고연주는 전부 들으라는 듯 매우 또렷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거기다 “와, 그 자존심 높은 최고의 마법사께서 설마 그런 고상한 취향이 있을 줄….” 이라고 똑같이 돌려받기까지.
아무리 천하의 제갈 해솔이라도 차오르는 수치심에 뺨이 붉어지는 건 숨길 수 없었다.
친절한 설명을 들은 비비앙이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는 가운데, 김수현은 조용히 다음 타깃을 응시했다.
임한나는 펄쩍 뛰었다.
“너, 너어! 또 임퇘지라고 하기만 해봐!”
사뭇 비장하게 엄포를 놨으나 김수현은 싱겁게 웃을 뿐이었다.
“그래, 임 피어싱(Piercing).”
“피어싱? 피어싱은 또 뭐야?”
비비앙의 상기된 음성이 주위를 울렸으나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단지 하나같이 임한나로 우르르 눈을 돌릴 뿐.
“진짜, 진짜로? 했어요?”
“얘 좀 봐. 어디다 했어? 한 번 봐봐.”
“보, 보기는 뭘 봐요!” 임한나는 흠칫 몸을 빼며 자기도 모르게 두 손으로 가슴과 소중한 곳을 가렸다.
그러나 놀라 입을 가리는 남다은을 보고 곧 실수를 알아차렸고, 양손을 맥없이 떨구며 좌절했다.
“남….”
이윽고 김수현은 남다은을 바라봤지만,
“…아니, 넌 됐다.”
바로 김한별로 넘어갔다.
남다은과 가졌던 평소 잠자리를 생각하니 떠오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은근히 기대하던 남다은은 입을 삐쭉 내밀었고, 김한별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휘휘 흔들었다.
“오빠!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알아, 항별아.”
“네…. 네?”
“안다고. 문별아.”
식당은 어느새 조용해졌다.
폭로로 주변을 평정한 김수현은 잠시 후, 또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식당을 나가는 사내의 등을 보며 제갈 해솔이 치욕에 젖은 음성으로 외쳤다.
“뭐예요! 기운 없어 보이길래 힘내라고 애교 좀 부려줬더니 삐쳐서! 남자가 좀스럽게…!”
조용히 보고 있던 정하연이 ‘애교는 무슨. 완전히 신 나서 놀렸으면서….’ 라고 생각하며 쓰게 웃었다.
그때였다.
“아…?”
“아…!”
넌 짖어라 난 간다는 듯이 걷던 걸음이 문득 멈췄다.
건너편에는 공교롭게도 막 식당으로 들어오는 세라프가 있었다.
정확히는 문 앞에서 가만히 서 있는 채였다.
두 남녀는 동시에 반대로 시선을 돌렸다.
“…….”
“…….”
한참을 머뭇거리며 서 있더니 결국에는 김수현이 어색하게 헛기침하며 옆을 지나쳤다.
세라프는 완전히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애타는 빛으로 뒤를 돌아봤다.
갑작스러운 감은 있지만, 아까와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에 여인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뭐야? 뭔데 갑자기 아련해?”
“둘이 싸운 게 아닐까요?”
“그런 것치고 왠지 핑크핑크 하지 않아?”
“확실히 뭔가 이상한데….”
냄새가 풍겼다.
기실 일전에 세라프를 초대한 일로 약간 켕기는 게 있던 터라, 고연주는 살그머니 제갈 해솔을 흘겼다.
제갈 해솔도 모종의 감을 잡았는지 턱을 괸 채 얼굴을 감싸 쥐는 세라프를 응시하고 있었다.
고연주가 입을 열었다.
“좀 껄끄러운데, 한 번 그이한테 스리슬쩍 물어보는 건 어때요?”
“내가요? 싫어요. 여기서 더 건드렸다가 뭔 꼴을 당하려고…. 아무튼, 우리 쪽에서는 감당 못 하니 그쪽에서 알아서 해요.”
단호한 거절이었다.
고연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왜요. 화내면 누구는 엉덩이도 맞을 수 있고, 좋잖아요? 그이도 분명히 기뻐할 거예요.”
“글쎄요? 그보다 기분 전환도 할 겸, 누가 알몸으로 정원이나 산책하자 하는 게 그 사람도 기뻐하지 않을까요? 하는 김에 개 목걸이도 차고, 꼬리도 달고. 음, 딱 좋네.”
제갈 해솔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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