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11
01010 Omnibus – Queen Of Silhouette. =========================================================================
그물망.
현술사(絃術士)라는 시크릿 클래스 가진 늘설영을 중심으로 펼치는 살문 특유의 경계망을 일컫는 말이다.
늘설영의 주 무기인 현은 마력으로 발생하며 특이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생성한 실을 상대의 신체와 이으면 자기 자신이나 타인이 인지하는 정보를 전달하거나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직접 의사소통을 나누거나 시야 공유가 가능한 건 아니지만,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반응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말인즉 늘설영을 모체로 삼는 일종의 거미줄이라 봐도 무방하다.
암살자가 목표를 사냥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나 상대가 똑같은 암살자일 경우 취할 수 있는 수단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 살문이 크나큰 혼란을 느끼는 것도 이 부분이었다.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김수현은 거짓말처럼 모습을 감췄다.
어찌나 깔끔하게 사라졌는지 이후의 종적을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다.
암살자로서 정점에 선 살문이 고작 근접 계열 한 명의 위치를 잡지 못한다?
게다가 이 은신처는 살문의 홈그라운드가 아닌가?
그야말로 어불성설인 상황.
그러나 노련한 살문 로드는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김수현이 어딨는지 모르는 이상, 은밀한 추적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먼저 모습을 드러내 상대를 유도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 역할은 첫 공격 때 손목이 뜯긴 사내가 맡았다.
부상으로 제 실력을 낼 수 없으니 먹이 역할에 적합했으니까.
그리하여 미끼를 앞세워 펼쳐진 그물망은 은신처 전체로 퍼지며 살금살금 범위를 넓혀나가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자신을 훤히 노출한 채 소리 죽여 걷던 사내가 갑자기 멈췄다.
고통을 참던 얼굴이 한층 일그러진다.
방금 등에 연결된 현을 통해 하나의 정보를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실 하나가, 끊어졌다.
벌써 한 명이 당했다는 뜻이다.
미끼가 노려지지 않았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으나 늘설영을 의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은신처는 개미굴처럼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실이 끊겼던 지점은 이곳과 멀지 않다.
미끼 역할을 맡은 사내는 그늘 속으로 조심스레 몸을 숨겼다.
한쪽만 남은 손으로 단검을 움켜쥔 채 소리 없이, 그러나 신속하게 어둠을 밟으며 접근하기 시작했다.
끼기기긱.
문득 불쾌한 소음이 희미하게나마 흘렀다.
칼로 벽을 긁는 듯한 쇳소리.
이윽고 멈칫했던 걸음이 다시 움직이려는 찰나.
끼기기긱!
한층 강한 소리가 귀를 찔렀다.
이를 악문 사내가 반사적으로 주변을 경계하며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까와 다른 소리가 희미하게나마 귓전을 울렸다.
탁…. 탁….
가볍게 땅을 밟는 소리.
혹은 뭔가 부딪치는 소음 같기도 했다.
소리를 따라가던 사내는 코너가 나오자 벽에 몸을 밀착시켰다.
스리슬쩍 모퉁이 밖으로 얼굴을 내밀자, 어둑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공동의 중앙에는 두건을 쓴 남성이 허리 윗부분만 나온 채 땅에 파묻혀 있었다.
얼굴은 축 늘어졌고, 양 소매는 헐렁헐렁하며, 헤쳐진 가슴에는 핏물이 흥건하다.
잘린 두 팔은 땅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몹시 처참하게 당한 것이 방금 당한 동료가 분명했다.
살문 클랜원이 실수로 함정에 빠졌다고 볼 수는 없다.
은신처에 설치된 기관 장치는 모두 직접 장치한 것들이니까.
죽이고 나서 일부러 함정에 처박은 거라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놈의 함정인가?’
왜 굳이 기관 장치에 처넣었는지 생각해본다면 한 번쯤 의심해볼 법한 상황이었다.
탁…. 탁….
그때 예의 어렴풋한 소음이 재차 귀에 잡혔다.
상당히 느리지만, 주기적인 소리였다.
사내는 고민에 잠겼다.
꼭 일부러 소리를 내는 것 같은 게 함정일 거라는 생각에 무게가 실렸다.
최악에는 이미 노려지고 있을 수도 있다.
생각을 정리한 사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모퉁이 밖으로 몸을 노출했다.
아마 지금쯤 다른 동료들도 이곳으로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을 터.
그렇다면 자기는 자신의 원래 역할을 하면 된다.
일부러 먹이가 돼 김수현을 끌어낸다.
한 발짝, 한 발짝 이동하던 걸음이 중앙에서 멈췄다.
소리는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사내는 긴장한 눈으로 사방을 주시했다.
그러다 건너편 모퉁이 너머로 시선이 닿았을 때였다.
“!”
아까 있던 위치에서는 사각지대였던 터라 보이지 않았다.
탁탁 소리의 근원 또한 저곳이었다.
반신반의하며 두어 걸음 옮긴 사내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한 인영이 채찍에 목이 묶여 천장에 매달려 있다.
휘늘어진 몸은 그네처럼 앞뒤로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중이다.
앞으로 갈 때마다 발끝이 벽에 닿아 탁, 탁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무엇보다 양팔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까지 인지했을 때였다.
“……?”
아차 한 사내는 땅을 쳐다보기도 전, 돌연히 발목 부근이 화끈해지는 걸 느꼈다.
그와 동시에 시야가 기우뚱하고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무…!”
그가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헐렁하던 소매가 빳빳해지며 손이 튀어나온 것.
이어서 두건을 벗어 던지는, 함정 속에 파묻혔던 남성이 차갑게 웃는 얼굴이었다.
*
또 실이 끊어졌다.
각각 반대 방향에서 나타난 두 남자는 허탈한 숨을 뱉었다.
찾은 거라곤 천장에 목 매달린 시체 한 구.
쇠창살에 꽂힌 시체 한 구.
정작 김수현은 이번에도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확실히 포위했다고 확신했건만,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었다.
두 명은 심원한 눈으로 쇠창살에 꽂혀 있는 동료를 관찰했다.
살아 있는 동안 둔부가 관통당했는지 안 그래도 거친 낯짝이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정보는 네 가지.
살해당한 동료는 농락당했다.
정면으로 붙어서는 승산이 없다.
상대는 기관 장치를 이용할 줄 안다.
어떤 목적인지 몰라도, 죽인 후 시체는 일부러 전시하듯 걸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찰나, 갑자기 주변 온도가 내려갔다.
공기가 팽팽해지며 털끝이 쭈뼛쭈뼛 일어난다.
감지되지 않지만, 그동안 축적해온 경험이 경종을 울린다.
생각은 길었으나 결정은 빨랐다.
서로 바라본 두 사내는 같은 방향으로 서둘러 몸을 날렸다.
판단은 나쁘지 않았다.
귓가를 씽씽 스치는 바람에 날카로운 파공음이 섞인 듯했으니까.
하지만 결단이 나쁘지 않았다고 해서 결과가 좋으리라는 법은 없다.
붉은 불빛이 번쩍하더니 약간 앞서서 달리던 이의 등에서 선혈이 치솟는다.
달리기 시작한 지 일 분도 안 돼 일어난 일이었다.
‘원거리 공격?’
뒤에서 달리던 살문 클랜원이 가일층 가속하며 고꾸라지는 동료를 지나쳤다.
사내는 암살자가 된 이후 오랜만에 똥줄이 타는 기분을 느꼈다.
제발 정보가 전해졌기를….
그리고 늦지 않기를…!
그 순간 또 한 번 예리한 파공음이 스치며 대기가 요동쳤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사내는 허리를 힘껏 숙였다가, 있는 힘을 다해 땅을 박찼다.
뛴 방향에는 굳건한 벽만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이어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창졸간 발생했다.
약간 떨어진 앞쪽에서 갑자기 한 여인이 스르르 나타나더니 땅이 움푹 팰 정도로 세게 밟는다.
그그그긍!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아무것도 없던 벽에 커다랗고 네모난 금이 생기더니 회전문처럼 빙그르르 돌아간다.
뛰어오던 사내가 회전하는 벽 틈으로 쏜살같이 들어가고, 바짝 쫓아오던 거무스름한 인영이 튕기듯 뒤따라 들어간 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다음 순간.
그러니까 회전문이 도로 닫히기 직전, 앞서 들어갔던 사내가 용케 빠져나왔다.
쿵!
다시 문이 닫히자마자, 여인은 곧장 발을 뗐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쇳소리.
“끄아아아아아아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벽 안쪽에서 비참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검정 단발을 한 여인이 새침하게 비웃었다.
“멍청이. 제 꾀에 제가 빠졌어. 우리라고 역이용 못 할 줄 알았나 봐?”
“젠장, 현우가 당했어. 나도 거의 죽는 줄 알았다고.”
사내는 십 년 감수했다는 듯 이마를 훔쳤다.
여인이 눈을 찡긋했다.
“그럼 확인해볼까?”
“잠깐만. 혹시 모르니까….”
그러나 사내가 말리기도 전에 여인은 멋대로 움직였다.
다시 발을 놀렸다가, 중간쯤 떼니 회전하던 문이 덜컹 멈춘다.
사내는 급히 물러났으나, 곧 자세를 바로 했다.
드러난 내부 광경은 끔찍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참혹함의 절정이었다.
가시처럼 빽빽하게 돋친 쇠 창끝으로 인간의 살점으로 보이는 게 흐드러지게 묻어 있다.
위쪽에는 가슴 위만 간신히 남은 남성이 갈기갈기 찢겨 걸려 있었다.
장기를 주렁주렁 늘어트린 채로.
“봤지? 성공했잖아.”
여인은 조심조심 걸어가 검지로 시체의 턱을 젖혔다.
이내 까뒤집힌 눈을 한 얼굴을 확인하고 헛바람을 들이켜고 말았다.
왜냐면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형우라고 불렸던, 같이 뛴 사내 중 한 명이었다.
“아, 아까 당했다고…?”
뿌드드득!
대답은 살짝 이상한 형태로 뒤쪽에서 들렸다.
바로 뒤를 돌아본 여인의 입이 딱 벌어졌다.
방금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의 목이 백팔십 도 돌아가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꾸득꾸득 소리 내며 서너 바퀴를 추가로 돌더니 종래에는 목째로 뜯겨 바닥으로 떨어진다.
“저 안으로 집어 던진 거. 네 동료였어.”
멍하니 보고 있자, 킬킬거리는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때까지 살아 있었지.”
어느새 나타난 김수현이 핏물로 진득한 손을 탁탁 턴다.
위치는 아까 여인이 나타났던 자리였다.
더는 놀랄 틈도 없었다.
이윽고 김수현이 똑같이 바닥을 짓누르는 걸 보자마자, 기겁한 여인이 투명화를 사용하며 빠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타이밍이 너무 어중간했다.
“까악…!”
쿵, 힘차게 회전한 육중한 벽 문이 절반쯤 빠져나오던 여인의 몸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재수가 없게도 딱 낀 것이다.
그그그긍, 끄그그긍!
중간에 낀 이물질이 마음에 안 드는지 문은 원 상태로 돌아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조금씩, 조금씩 틈이 좁혀질수록, 끼인 여인의 몸도 으스러지며 세로로 꾸겨진다.
“끄으…. 히으으윽…!”
찢어지라 커진 눈이 미친 듯이 떨리며 상대를 응시한다.
그 애처로운 눈초리에 김수현은 살그머니 발을 뗐다.
물론, 떼기가 무섭게 다시 꽉 밟아 눌렀다.
벽 문은 재차 매섭게 회전했다.
쿵!
“끼아아아아아아악!”
세로로 짓이겨진 부분이 또다시 찍히자, 결국 참지 못한 여인이 괴성을 질렀다.
쿵!
“꺼륵, 꺼어어억!”
쿵!
“끄르르륵…!”
쿵!
“끅…!”
정확히 다섯 번의 굉음이 울리고 나서 여인의 비명도 잦아들었다.
몇 번이나 돌에 찧어 다져진 신체는, 오직 남은 절반만이 면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피식 웃은 김수현은 곧바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같은 시각.
“…….”
모체로서 중앙에 홀로 남은 늘설영의 심기는 썩 좋지 못했다.
그물망은 확실히 유용한 진이었지만, 단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나는 현의 길이가 무한정하지 않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연결한 실이 끊기면 별다른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 분 전, 세 개의 실이 추가로 끊겼다.
두 개가 절단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다섯 개나 끊어진 것이다.
살문의 인원을 생각해보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물론 현의 연결 해제가 무조건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보를 전달한 후 지금껏 돌아온 신호는 시체를 발견했다는 것밖에 없었다.
이러니 시시각각 모종의 불안감이 커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도대체 뭣들 하는 거야?”
늘설영이 나직한 음성으로 투덜거렸다.
그러나 갑자기 현이 또 하나 추가로 끊겼다는 신호가 전해졌다.
“또?”
툭.
일그러지던 눈매가 불현듯 빠르게 깜빡여졌다.
늘설영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다.
방금 잘못 느낀 게 아니라면, 현이 연속으로 끊긴 걸 느꼈다.
그 순간이었다.
툭툭, 툭툭툭툭…!
느닷없이 현이 중구난방으로 뚝뚝 끊어지기 시작한다.
“아…?”
살짝 처졌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마력으로 연결한 실은 하나씩 속절없이 떨어지는 중이었다.
“뭐…. 뭐…?”
늘설영의 안면에 처음으로 경악과 공포의 빛이 스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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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간신히…. 지켰읍니다….
ㅇ>-<
PS. 다음 회는…. 상단에…. 경고 메시지가 있을 예정이오니…. 독자님들께서…. 꼭 참고를…. 해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