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17
01016 외전 6. 수나의 폭발. =========================================================================
외전 6. 수나의 폭발.
햇살이 황금처럼 흐르는 맑고 조용한 아침이었다.
차소림을 끝으로 아홉 명의 출산이 끝난 지 어언 석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머셔너리 캐슬은 새로운 식구들에게 한창 익숙해져 가는 중이었다.
갓 태어났을 때야 작고 빨간 원숭이를 보는 것 같았지만, 이 주라는 시간이 흐르며 점차 생김새가 잡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 개월 가까이 지난 지금, 아홉 명의 아이는 각자 개성적인 매력을 뽐내며 머셔너리 전원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중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어디에나 예외는 있듯이 아기의 탄생을 썩 달갑잖게 여기는 이도 분명히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 중 아마 수나를 가장 좋은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아유, 우리 똑똑이. 눈 깜빡깜빡하는 것 봐. 아빠랑 놀아주느라 지쳤지? 엄마가 잘 쫓아냈지?”
“으으으응.”
“그렇구나. 우리 똑똑이 졸리는구나? 그럼 이제 코할까?”
“으응….”
성 내 어느 방 안, 한동안 어르고 달래던 정하연이 빙긋 웃으며 안고 있던 아이를 조심스레 요람에 눕혔다.
곤히 자는 모습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지켜보더니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때? 좀 괜찮아?”
구석에서 수유 중이던 김한별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옷매무시를 가다듬더니 아이를 옆의 요람에 눕히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요.”
“여전해? 젖이 많이 안 나오니?”
“모르겠어요. 그런데 애도 제 성에 안 차나 봐요. 방금도 빈 젖만 계속 빨다가 잠들고…. 가슴 작은 제 죄죠. 한나 언니가 부럽네요.”
“얘는. 모유 양이랑 가슴 크기는 전혀 관련이 없어. 오히려 유선과 관련이 있지.”
위로하듯 말을 건네던 정하연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까부터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싶더니 방 밖에 서 있는 누군가를 발견한 것이다.
맵시 있게 묶어 양 갈래로 늘어트린 풍성한 용암 빛깔 머리카락, 핏빛을 발하는 큼직하고 동그란 두 눈동자, 작고 어여쁜 붉은 입술….
방 안을 흘겨보는, 꼬리 같은 눈썹을 치켜세운 주인공은 이제 서너 살쯤 돼 보이는 굉장히 귀여운 여아였다.
무언가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는 걸까?
“윽.”
수나를 보자마자 김한별은 약간 과할 정도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요람을 가렸다.
여차하면 자기는 죽을지언정 내 새끼는 지키겠다는 태도였다.
심상찮은 기류를 직감했는지 정하연이 선웃음을 지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아, 수나 왔네? 이제 누나도 됐고, 동생들 보고 싶어서 온 거야?”
“…흥.”
평소였다면 ‘누가 누나야!’ 또는 ‘함부로 말 걸지 마!’ 라고 외칠 법도 한데, 수나는 짧은 코웃음만 쳤다.
진심으로 비웃는 듯한 눈초리.
그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다는 방증이다.
불편한 침묵이 흐르고, 수나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쿵쾅쿵쾅, 점차 멀어지는 신경질적인 발소리를 들으며 두 여인은 동시에 안도한 기색을 비쳤다.
“왜 그랬어. 그렇게 대놓고 싫다는 티 내면 어떡하니.”
정하연이 핀잔을 줬으나 김한별은 찌푸린 이맛살을 펴지 않았다.
“쟤 좀 이상해요.”
“뭐가 이상해?”
“저도 처음에는 살갑게 굴었는데 거들떠보지도 않더라고요. 아니, 애 보기 싫어하는 거야 자기 마음이긴 한데, 가끔 죽일 듯이 노려본다니까요? 무섭게.”
“음….”
짚이는 바가 있었는지 정하연은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한참이 지난 후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그이의 관심을 독차지하다가 갑자기 소외당하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거야.”
“한두 명도 아니고, 아홉 명이 생겼으니 관심이 분산되는 건 당연하잖아요.”
“모르겠다. 그이가 알아서 하겠지. 아무튼, 애도 재웠으니 우리 일 층에서 커피나 마실까?”
“네. 좋아요.”
안 그래도 새벽 내내 아이에게 시달렸던 터라, 김한별은 냉큼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후, 문이 조심스럽게 닫히는 소리가 났다.
“…….”
정하연의 예상대로 수나의 기분은 저조의 극치를 달리는 중이었다.
마르가 ‘하늘 왕후’로 성장한 이후 딸의 포지션은 수나만 남은 게 사실이었다.
하여 김수현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와중 느닷없이 새 생명이 우르르 태어났고, 발길이 뚝 끊겼다.
엄밀히 말하면 전혀 신경 써주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예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러니 수나가 서운함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문제는 그 감정이 단순히 서운함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희가 뭔데.’
수나의 고사리 같은 작은 주먹이 꼭 쥐어졌다.
수나를 사용자 정보화했을 때 진명은 ‘엘렉트라 콤플렉스’로 확정될 만큼, 근래 느끼는 상실감은 지대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리고 상실감은 자연스레 탓으로 이어졌다.
‘너희만 아니었다면…!’
그 순간 쿵쾅쿵쾅 내려가던 걸음이 뚝 멎었다.
휙 뒤를 돌아보는 수나의 눈동자가 위층을 날카롭게 쏘아본다.
그러기를 수 초.
수나는 느닷없이 나는 듯 계단을 도로 올라가, 아까 보고 있었던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때 공교롭게도 한 층 더 위에서 내려오던 고용인은 문을 열고 기웃기웃하는 수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며 지나쳤다.
수나는 가는 눈으로 방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여자들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오직 두 아기만이 요람에서 곤한 숨소리를 내고 있을 뿐.
“…아무래도 거슬려. 한 번 제대로 확인해 봐야겠어.”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말하더니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수나로서는 석 달 만에 처음 제대로 마주하는 새 식구였다.
이윽고 훌쩍 뛰어올라 요람을 내려다본 순간이었다.
“!”
찰나의 순간, 수나의 몸이 움찔 떨렸다.
젖도 배불리 먹었겠다, 세상 모르고 자는 아이들의 표정은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아무 근심 걱정 없는 편안한 얼굴.
뭣보다 둘 다 사내아이여서인지 어딘가 김수현을 닮은 구석이 있어서 수나는 엉겁결에 시선을 빼앗겼다.
흔들리는 눈빛이 아기의 구석구석을 관찰한다.
“…앗.”
수나가 정신을 차린 건 살금살금 뻗은 검지가 갓 구운 흰 빵 같이 부분 아이의 볼을 콕 찔렀을 때였다.
“내, 내가 방금 뭘 한 거지?”
드물게도 당황한 수나는 황급히 손을 치웠다.
“고, 고작 새끼 인간 주제에! 조, 조금밖에 안 닮은 주제에! 좀 말랑말랑하다고 내가 봐줄 줄 알아?”
거기다 벌컥 성까지 낸다.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지만.
“우웅.”
어쨌든 크게 소리 지른 탓에 통통한 젖살을 찔렸을 때부터 눈을 찡그리던 남아는 기어코 눈을 뜨고 말았다.
“우으으으…. 마아….”
한창 달게 자던 중 방해받은 게 서러웠는지 입이 삐쭉삐쭉 내밀어 지고 눈망울도 그렁그렁해졌다.
하지만 곧 울음을 멈추더니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깜빡하며 위를 올려다봤다.
요람 위로 웬 작고 붉은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꺄아.”
모빌로 착각이라도 한 걸까.
느릿한 속도로 팔을 뻗더니 치렁치렁 흘러내린 붉은 갈래 머리 중 한쪽을 덥석 붙잡았다.
“이, 이익! 놔!”
기함한 수나가 급히 떨쳐냈으나 허우적거리던 손은 다시금 용케 소매를 잡는다.
“이이이익! 감히 내 몸에…! 안 놔? 지금 한 번 해보자는 거야?”
상대가 부들부들 떠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남아는 방긋방긋 웃기만 한다.
“이, 이 요망한…!”
차마 말을 잇지 못하며 “끅!” 숨을 삼킨 수나의 뺨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이와 눈을 맞출수록 숨소리나 턱의 떨림이 기하급수로 거칠어진다.
“흐, 흥!”
하지만 역시 수나는 수나였다.
왕으로 태어난 아이답게 품위 있게 소매를 떨치더니 평정을 되찾았다.
“흥! 흥! 고작 이런 새끼 인간이 뭐가 귀엽다는 거야?”
방 안에 아무도 없는 걸 재차 확인한 후, 수나는 스스로 최면을 걸듯 말하며 몸을 돌렸다.
그러나 미처 뒤돌아보기 전에 아이의 손은 또 한 번 타오르는 듯한 갈래 머리를 꼬옥 쥐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걸까.
“이…!”
이를 악문 수나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겼다.
*
탁!
무언가 단단한 게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두어 번 눈을 감았다가 뜬 게헨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앞을 응시했다.
게헨나의 시야로 그녀의 이마에 닿은 숟가락을 쥔 채 웃는 아이와, 난처한 얼굴을 한 고연주가 차례로 보였다.
그 옆으로는 비비앙이 손가락질하며 깔깔 웃는 중이었다.
“현주야. 그럼 못 써.”
고연주가 조곤조곤 타이르듯 말했으나 여아, 아니 현주는 까르르 웃으며 한 번 더 숟가락을 휘둘렀다.
딱!
좀 전보다 강해진 일격이었다.
“호오.”
졸지에 두 번이나 이마에 불의의 일격을 맞은 게헨나가 불현듯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다.
“고작 백 일도 안 된 핏덩이치곤 손놀림이 제법이구나.”
“어, 언니? 아직 애예요.”
“아니. 도전해온 이상 정면으로 받아주는 게 당연한 도리일 터.”
“으앙.”
그렇게 말한 게헨나가 휙 숟가락을 빼앗자, 깜짝 놀란 현주는 앙앙 울음을 터트렸다.
게헨나는 가소롭다는 기색으로 비아냥거렸다.
“하, 고작 그 정도 기개로 이 몸에 도전하다니…. 백 년, 천 년은 이르지 않느냐.”
“정말, 농담 좀 농담처럼 해봐요.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고연주가 살그머니 투덜거렸다.
그러자 게헨나가 정색하던 얼굴을 풀고 피식피식 웃으며 숟가락을 도로 쥐여주었다.
현주가 입을 삐죽거리자, 사방에서 가벼운 웃음이 터졌다.
“호호. 설마요. 게헨나 씨도 당연히 장난이었겠죠.”
“커피 가져왔어요~.”
주방에서 나온 정하연과 김한별이 김을 피우는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는다.
게헨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흠. 내가 좀 너무했나?”
“아니요. 너무하긴요. 저는 수나가 게헨나 씨 같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텐데요.”
걸신들린 듯 커피를 받아 마시는 비비앙을 보던 정하연이 별것 아니라는 것처럼 말을 흘렸다.
스리슬쩍 눈치를 살폈으나 게헨나는 불쾌해 하기는커녕 도리어 씁쓸한 기색을 비쳤다.
하기야 제 어미도 소 닭 보듯 하는데 다른 사람한테는 오죽하랴 싶었던 것이다.
수나는 가시 돋친 장미다.
규격 외의 존재이기도 하지만, 김수현이 워낙 싸고도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웃으며 대하는 클랜원이 대부분인 게 현실이었다.
“확실히…. 위험하지. 부왕에게는 이미 주의를 준 사항이기도 하고.”
혹시나 하던 정하연은 긍정하는 답이 돌아오자 얼굴이 어두워졌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그냥 하는 소리로 들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직 어리니까, 어떻게 잘 가르치면….”
“헛소리.”
조심스럽게 꺼낸 말을 단호하게 일축한다.
“태어날 때부터 왕의 운명을 짊어진 아이다. 그러할진대 너희가 안고 있는 것과 똑같이 생각하느냐?”
“…….”
“수나는 모든 판단을 자신의 주관으로 판단한다. 그 주관이란 왕으로서의 안목을 뜻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종종 불안해져서….”
말인즉 인간적인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소리였다.
결국에는 원론적인 문제가 나오자, 게헨나는 쉬이 답하지 못했다.
정하연은 속이 타는 기분을 느꼈다.
문득 현대에 있을 때 사이코패스에 관한 논문을 썼을 적이 떠올랐다.
수나가 사이코패스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인간을 벌레 보듯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위험하다 할 수 있다.
더욱이 그 벌레가 일신에 해를 입히는 존재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글쎄다…. 너희는 일개 인간에 불과하니 무시할 수 있다손 쳐도, 그것은 그렇지 않거든.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지만, 수나가 위협이 된다고 느낄 수 있어.”
그것이라 함은 아기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는 말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첫째가 둘째를 미워하는 일은 사실 흔하거든요.”
멋대로 받아들인 정하연이 가만히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게헨나의 말을 잘못 해석했다는 걸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당분간 그 핏덩이는 최대한 수나의 눈에 띄게 하지 않는 게 좋겠어. 일부러 보여줄 필요는 더더욱 없고.”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고연주가 영 내키지 않는다는 듯 반문했다.
수나가 얼마나 중증의 엘렉트라 콤플렉스인지 몰라서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게헨나가 진지하게 고민할 즈음이었다.
“저,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문득 주방으로 들어가려던 고용인이 걸음을 멈추고 말을 붙였다.
낯빛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나 님이라면 방금 방에 들어가셨는데….”
“방?”
“네. 아드님, 따님을 재우시는 방에….”
“무어라?”
게헨나가 의자를 박차며 일어섰다.
“제, 제 두 눈으로 똑똑히….”
“이 멍청한!”
일갈한 게헨나가 바람처럼 모습을 감췄다.
남은 네 여인은 멍하니 서로 번갈아 보다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특히 방에 아이를 재워놓고 온 김한별과 정하연은 눈물을 흘릴 기세로 식당을 빠져나갔다.
두근거리기 시작한 가슴은 방문 앞에 망연자실하게 멈춰 서 있는 게헨나를 발견했을 때 가일층 가쁘게 뛰었다.
이윽고 차례대로 도착한 고연주, 김한별, 정하연, 비비앙은 곧 게헨나처럼 급격히 다리를 멈추고 말았다.
이어서 똑같이 망연한 표정을 짓는다.
방문은, 열려 있었다.
그리고 문 안쪽에는….
“헤헤, 으헤헤헤.”
수나가 요람 위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꺄아, 꺄아!”
“으응, 그랬어? 그랬구나? 아이 귀엽다~. 아이 착하다~.”
“까르르르.”
“웃는 거야? 누나 보고 웃은 거야? 예쁘기도 하지~.”
평소라면 절대로 볼 수 없는 자비로운 얼굴로 즐거워한다.
수나가 김수현 외의 존재를 웃으며 대한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양쪽에서 번갈아 가며 갈래 머리를 잡아당김에도 불구하고, 수나의 입은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아, 아이 참. 싸우면 안 돼. 누나 몸은 하나란 말이야.”
“아으으으.”
“어휴. 어쩔 수 없네. 막무가내인 점은 울 아빠 똑 닮았어. 그래, 너도 답답하지? 그럼 누나랑 같이 밖으로 놀러 갈까? 응? 어때?”
“꺄아아아.”
격한 반응이 돌아오자, 수나는 실실 웃는 얼굴로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렸다.
그리고 룰루랄라 뒤돌아보는 찰나.
“!”
수나의 몸이 눈에 보일 정도로 흠칫했다.
반쯤 돌아가던 고개도 우뚝 멈췄다.
그 상태로,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
고요.
“…….”
정적.
“…….”
적막.
“…….”
침묵.
순식간에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오직 아이만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찰싹 안겼다.
잠시 후, 수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삐걱삐걱 돌아나가기 시작했다.
하나 신기한 건 여전히 방문 밖의 인원을 등진 채라는 것이었다.
…사실, 문 앞의 전원이 느끼고 있었다.
살기인지 압력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한 마디라도 하는 순간, 죽는다.
무조건 죽는다.
아무리 무디더라도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하물며 그 게헨나도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있는데, 다른 사람은 여부가 있으랴.
하지만 아까 말했던 것처럼 어느 일이든 예외는 있는 법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눈치가 없는 여인이 한 명 껴 있었다.
“푸헤헤헤헤헤헤헤!”
아주, 매우 방정맞은 웃음이 터졌다.
누구라도 할 것도 없이 비비앙의 음색이었다.
전매특허인 손가락질을 하고 죽겠다며 박장대소를 한다.
“이야! 저 꼬맹이 좀 보소! 관심도 없는 척하더니 시치미 뚝 떼고 있던 거였어! 우헤헤헤, 우헤헤헤!”
“비비앙! 비비앙!”
“아이고 나 죽는다! 웃겨 죽는다! 거기 동네 사람드~을! 여기 좀 보소! 수나가, 글쎄 수나가…!”
“비, 비비앙….”
수나의 고개가 느릿하게 들렸다.
달궈진 얼굴은 살짝 건드리면 당장에라도 폭발할 듯 빨갛기 짝이 없다.
끅끅 신음하는 앙다문 입술이나, 부끄러움에 겨워 일그러진 두 눈동자는 어마어마한 분노와 적의 또한 품고 있었다.
호르르르르르르르!
곧 어디선가 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린 순간 정하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물론 속으로 비비앙의 명복을 비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하하.
물론 저도 자취가 힘들고 불편할 건 각오하고 있습니다.
사실 조금 걱정이에요.
제가 겉보기에는 한없기 거칠고 흉폭한, 야성미 넘치는 신체 건강한 사내지만, 속으로는 의외로 겁이 많거든요.
그래도 독자님들 중에도 자취하는 분들이 많으실 테고, 또 온 세상으로 따져도 엄청나게 많을 텐데, 저라고 못 할까요.
이 심정으로 한 번 도전해보려 합니다.
그나저나 또다른 걱정도 생겼네요.
워낙 늦게 허락을 받은 탓에….
곧 개강인데 남은 방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 혹시 이번 화에서 뭔 이상한 걸 느낀 분이 계시다면 그냥 그러려니 해주세요.
외전을 끝내기 전에 김수현 무쌍은 한 번 찍어보고 싶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