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18
01017 7. 외면하고 있었던 것. =========================================================================
“움, 움, 움, 움….”
적은 양의 액체가 좁은 목구멍을 넘어가는 소음이 들렸다.
소현이가 젖을 먹는 소리다.
그렇게 맛있는지 아니면 배가 고팠는지 정말 열심히 먹는다.
한소영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로 젖가슴에 달라붙은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윽고 한소영은 “옳지, 옳지.” 다독이며 젖에서 아이를 뗐다.
소현이는 더 먹고 싶은지 짧은 두 다리를 바동거렸지만, 어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쑥 들어 올려졌다.
난 아이의 등을 부드러이 쓰다듬는 한소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
“벌써 다 먹였어요?”
“젖이야 넘치도록 남았죠.”
“아직 배고파하는 것 같아서…. 더 먹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안 돼요. 전유도 후유도 충분히 먹였어요. 놔두면 한없이 먹다가 또 토할 거예요.”
똑 부러지는 목소리였다.
계속 소현일 보고 있자, 갑자기 한소영이 날 보며 미소 짓는다.
“그리고 아빠 몫도 남겨둬야 하니까.”
“아니요.”
농담인 건 알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남는 건 유축해둬요. 소현이는 금방 배고파하잖아요.”
새삼스러운 시선이 쏟아졌다.
“저 찌찌 돌이가 웬일이래….” 중얼중얼하는 말이 들린 순간 힘찬 트림 소리가 울렸다.
한소영이 아이를 내밀어 난 조심스레 소현이를 받아 들었다.
“아부아!”
밥을 먹으니 기분이 좋아진 걸까?
품에 안긴 소현이는 옹알이를 하며 포동포동한 양손을 뻗었다.
살짝 머리를 숙여주니 작고 부드러운 감촉이 내 얼굴 곳곳을 더듬는다.
“아브, 아브으으, 응, 으응!”
“그래그래.아빠 여기 있단다.”
“으으으응!”
“소현이는 아빠하고 있을 때만 활발해지네.”
짐짓 서운해하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한소영은 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턱을 괸 채 사랑스러운 눈으로 아이를 보고 있다.
꺅꺅 웃는 소현이를 양팔로 꼭 안으니 꼬물꼬물하는 간지러운 감각이 느껴졌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생명체의 움직임이다.
뼈다귀가 녹을 정도로 전해지는 뜨거움도 있다.
문득 눈시울이 시큰해져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아브으으…?”
내가 이렇게 눈물이 흔했던가?
불과 일이 년 전만 해도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자식이 생긴 뒤 무언가가 달라진 느낌이다.
그래, 확실하게 변했다.
말로 형언할 수 없지만, 지금 내 심장을 감싸는 이 기운은….
“아으.”
“으, 응?”
뭐, 뭐지?
방금은 우연이었을까?
팔을 허우적거리던 소현이의 손이 내 눈가를 느릿느릿 스치고 지나갔다.
꼭 눈물이라도 닦아주는 것처럼.
“누, 눈물 닦아준 거야? 아빠 울지 말라고?”
“우웅….”
소현이가 날 물끄러미 응시한다.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확실히 아이들의 성장은 순조롭다.
이대로만 자라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정도다.
…그러나 간혹 걱정되는 게 하나 있다면 아이들의 감정이나 정신적인 측면이었다.
소현이는 태어난 지 이제 겨우 사 개월 째다.
정상적이라면 부모에 애착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하고 조금씩 낯가림을 하는 시기일 터.
그런데 가끔 보면 소현이는 벌써 날 알아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뿐만이 아니라 반응과 감정 표현에도 굉장히 민감하다.
내 생각이 지나칠 수도 있지만, 꼭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
갈등이 생긴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 딱 한 번만 제 3의 눈을 활성화해볼까?
하지만 다시는 쓰지 않기로 다짐했었잖아.
예전처럼 S 랭크라면 모를까, EX 랭크를 찍은 능력을 사용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인간성을 되살리는 데 가장 걸림돌이었던 것도 바로 제 3의 눈이었다.
체계화된 정보가 머릿속에 실시간으로 전달되니 고역도 그런 고역이 없었다.
하지만 내 자식이라면….
“소현아.”
낮게 부르자, 어느새 웃음을 그친 소현이가 두 눈을 깜빡거린다.
티 없이 맑은 두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빠가 뽀뽀 한 번 해도 돼?”
소현이는 계속 나와 눈을 맞추며 작달막한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 순간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제 3의 눈을 활성화했다.
1. 이름(Name) : 김소현
2. 클래스(Class) : –
3. 소속 국가(Nation) : –
4. 소속 단체(Clan) : –
5. 진명 • 국적 : 神血(1/66536) • 애틀랜타
6. 성별(Sex) : 여성(0)
7. 신장 • 체중 : 64.42cm • 7.1kg
8. 성향 : 질서 • 순수(Lawful • Pure)
* ‘신의 그릇’ 김수현과 ‘철혈 여왕’ 한소영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입니다.
* 아버지의 핏줄을 이어받았으며 향후 성장 정도에 따라 1/4(Quarter God)의 힘을 지닌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각성할 수 있습니다.
* 어머니의 능력 중 ‘초감각’을 물려받았습니다.
* 학습 능력은 물론, 감정 인지 및 형성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발달했습니다. 육아에 주의를 필요로 합니다.
“뭐?”
생소한 정보가 시야를 가득 채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자, 잠깐만.
쿼터 갓?
반신반인?
육아에 주의를 요한다고?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바아.”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봤다.
숨을 색색 내쉬는 소현이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다.
이윽고 눈을 지그시 감더니 턱을 젖혀 작디작은 입술을 앞으로 살짝 내밀….
…어?
“소, 소현아?”
다음 순간, 한소영이 기함한 얼굴로 황급히 아이를 뺏어갔다.
그런데 소현이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눈썹을 있는 대로 찡그리더니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듯 바동거리기 시작한다.
심지어 팔을 내젓거나 다리로 마구 발버둥 치기까지.
“이제 엄마랑 있자. 응?”
“으으! 부으으으!”
“자꾸 이렇게 떼쓰면 못 써. 아빠는 엄마 거야. 소현이 것이 아니야.”
“으앙.”
결국에는 울음을 터트렸다.
어쩔 줄 몰라 하던 한소영은 날 힐끗거리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이내 도망치듯 급히 자리를 벗어난다.
엉엉 우는 소리가 점차 멀어지고, 나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한소영은 방금 초감각으로 어떤 정보를 느꼈던 걸까?
난 허공에 출력된 메시지를 하염없이 응시했다.
*
“짠! 이유정 특제 부대찌개 완성이요!”
한편, 식당에서는 서너 명의 여인이 한창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밥때는 지났으나 식사 준비에도 여념이 없었는데, 특히 이유정의 활동이 가장 활발하다.
하기야 당연한 일이었다.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던가?
애도 낳았겠다, 산후 조리도 끝났겠다.
이제 무엇이 두려우랴.
쿵.
커다란 냄비를 탁상에 올려놓은 이유정이 침을 흘리며 손바닥을 싹싹 비볐다.
“햐~. 내가 이걸 얼마나 먹고 싶었는데~.”
“맞아요, 맞아요.”
김한별도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마구 끄덕거렸다.
둘을 보던 세라프는 잔잔히 미소 지었다.
“하기야 수현이 어지간히 간섭했으니까요. 두 분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암, 진짜 고생했지…. 그런데 세라프 씨는 왜 남 일처럼 말하고 그러실까?”
숟가락을 문 이유정이 으흐흐흐, 괴상한 웃음을 흘렸다.
세라프는 고개를 갸웃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왜 모른 척하고 그래. 오늘 아침에도 거하게 한 판 했잖아? 이제 곧 아냐?”
그제야 말귀를 알아들은 세라프는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말했다.
“임신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아쉽게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갑작스러우면서도 충격적인 말이었다.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탁자 밑에 숨어 있다가, 몰래 기어 나오던 비비앙이 딱 멈출 정도로.
김한별이 작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세라프 씨는 저번에 오빠의 아이를 배겠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저의 소망이었지요. 물론 지금도 바라 마지않고 있습니다만….”
스리슬쩍 말을 흐리더니 쓰게 웃는다.
“애초 수현과 서로 저는 종이 다른 존재이니까요. 인간이 동물의 새끼를 수태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에…. 방법이 아예 없는 거야?”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 그럼 안솔에게 기적을 써달라 하면….”
“언니!”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이유정을 향해 김한별이 날카롭게 말을 끊었다.
세라프는 괜찮다는 듯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기적은 확실히 대단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세계에 국한한 능력입니다. 상위 차원까지 아우르는 법칙까지 건드리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그렇게 말한 세라프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음. 글쎄요…. 수현이 인간을 벗어난다면 또 모를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과 진배없었기에 두 여인의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김한별이 왜 괜한 말을 꺼냈느냐고 탓하듯이 노려봤다.
머쓱해진 이유정은 아직 엎드린 비비앙의 엉덩이를 괜스레 걷어차기만 했다.
분위기가 다운된 걸 알아차린 세라프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아, 아니에요. 세라프 씨 잘못이 아녜요. 언니 입이 문제죠.”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우리 천사는 인간의 임신 과정과 매우 다르게 진행됩니다. 입덧이나 배가 불러오는 현상 등은 같지만, 길어 봤자 두 달입니다.”
“와, 그건 엄청나게 부러운 이야기네요.”
“예. 오히려 요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요. 배 속에서 한 달 동안 알의 형태로 잠들어 있다가, 세상으로 나와 제가 전해준 지식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 시간이 약 한 달가량 됩니다.”
“그래서 두 달이라는 거군요.”
화제를 돌리려는 낌새를 느꼈는지 김한별이 활짝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사이 이유정은 국자로 음식을 듬뿍 푼 그릇을 세라프에게 내밀었다.
“자자, 그 얘기는 그만들 하시고.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을걸?”
“으윽. 기름 둥둥 뜬 것 좀 봐….”
“너 먹지 마.”
“누가 안 먹는 대요?”
세라프는 또 다투기 시작하는 두 여인을 흐뭇하며 바라보며 그릇을 받아 들었다.
매운 냄새가 확 풍겨오는 게 약간 꺼려져 숟가락으로 국물을 살짝 떴다.
그렇게 입으로 가져가려는 찰나.
“우욱!”
느닷없이 세라프가 헛구역질을 했다.
그러자 김한별이 이것 보라는 듯이 핀잔을 줬다.
“봐요. 언니는 너무 맵게 먹는다니까?”
“아…. 다대기를 너무 많이 넣었나?”
“죄, 죄송합니다.”
“뭐, 됐어. 힘들면 억지로 안 먹어도 돼.”
약간 화난 듯한 목소리에 세라프는 서둘러 국물을 다시 떴다.
그리고 재차 입술 사이로 밀어 넣으려 했으나.
“우욱, 우우우욱!”
이번에도 여지없이 헛구역질이 나왔다.
좀 전보다 곱절은 강한 강도였다.
손으로 반사적으로 입을 가리는 모습을 두 여인이 멍하니 바라본다.
“이, 이게…?”
자기 자신도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세라프의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역력해졌다.
“세라프 씨…. 설마….”
김한별도 당혹한 빛으로 말을 맺지 못하자, 이때까지 조용히 있던 비비앙이 탁자 아래에서 마저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그리고 한 마디 툭 던졌다.
“왜 자꾸 웩웩거려? 꼭 임신한 사람처럼.”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어떻게 빨리 업데이트할 수 있었네요.
다음 회부터는 옴니버스 안솔 편이 연재될 계획입니다.
2월 안에 끝내려면 못해도 3, 4회 안에는 끝맺어야 할 텐데…. 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