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30
01029 Omnibus – Sovereign Of Sword. =========================================================================
쿵, 땅이 푹 파일 정도로 강하게 부딪치는 동시에 낙하의 충격이 김수현의 몸을 뒤흔들었다.
물론 엄청난 내구 능력치를 갖춘 만큼 아프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창졸간 벌어진 사태에 정신이 혼란스러운 건 별개의 일이었다.
“아야야야…. 젠장….”
앓는 신음을 흘리는 김수현이 찡그린 얼굴로 손을 휘휘 저었다.
충돌의 여파로 일어난 흙먼지는 상당했으나 신기하게도 서너 번의 손짓에 모조리 휘날려 걷혔다.
잠시 후, 주위를 둘러본 김수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긴…. 애틀랜타?”
북 대륙의 새로운 개척지 애틀랜타.
주 무대로 삼고 있는 곳이니만큼 단번에 알아보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도 미묘하게 끝말을 올린 건 주변 풍경이 김수현이 기억하는 애틀랜타와 적잖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수현이 애틀랜타 원정을 떠난 건 이 회차를 시작하고 삼 년 차에서 사 년 차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공략에 성공하고 수 년 동안 대규모 개축 공사를 거친 결과, 바바라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의 위용을 자랑한다.
한데 지금 눈에 보이는 애틀랜타는 몹시 낙후됐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꼭 원정 중 막 발견한 애틀랜타를 보는 듯했다.
“운석이라도 맞은 건가?”
시답잖은 말을 중얼거리며 일어나 상의를 툭툭 털던 김수현은 갑자기 퍼뜩 한 곳을 바라봤다.
적잖은 인원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다.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자, 아니나 다를까.
“저곳, 저곳입니다!”
“어어? 저기…!”
“이상한 놈을 발견했습니다!”
“누구냐! 진영을 밝혀라!”
스물 남짓한 인원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순식간에 김수현을 에워싸 무기를 겨눴다.
코앞까지 겨누어진 뾰족한 창끝을 응시하며 김수현은 멍하니 볼을 긁었다.
‘진영을 밝혀라!’ 라는 말이 여간 낯설었기 때문이다.
소속 또는 정체를 밝히라는 말이었다면 또 모를까?
두 어감은 묘한 차이가 있었다.
이십 년 가까이 홀 플레인에서 살아온 사용자만이 알 수 있는 간극이랄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세상에서 진영이라는 단어는 일 회차 춘추 전국 시절 말고는 거의 쓰이지 않았었다.
또 분명히 무시할 수 없는 폭음이 울렸지만, 수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신속하게 포위한 사용자 무리도 범상치 않다.
거의 군대를 연상케 하는 행동이었다.
한편으로는 김수현을 둘러싼 사용자들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수상한 자라는 건 둘째치고서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태연자약한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주변을 무시하는 모양새요, 자기 처지를 잊은 듯한 태도였다.
거기다 행색도 이상하다.
흰색 일색인 반소매 티셔츠에 낡은 청바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신발조차 신지 않았다.
갓 홀 플레인으로 소환된 지구의 백수나 한량을 연상케 하는 차림새였다.
“신규 사용자가 아닐까요?”
“아니. 최근 넉 달간 시작의 여관은 조용했다.”
리더로 보이는 듯한 창을 겨냥한 사내가 창대를 꽉 움켜쥐었다.
“어디, 소속이지? 진영을, 밝혀라.”
말소리는 어절마다 뚝뚝 끊어져 나왔다.
여차하면 당장에라도 찌를 듯한 기세였다.
그제야 시선을 든 김수현이 두 눈을 깜빡거렸다.
“아, 저는 머셔너리….”
“머셔너리? 거짓말! 너 같은 클랜원은 본 적도 없어!”
말을 단칼에 자르는 외침에 김수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현재 서 있는 곳이 다른 세계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이 세상의 김수현이 다르게 행동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하지만 머셔너리 클랜이 존재하면서 김수현을 모른다?
너 같은 클랜원은 본 적도 없다는 말은 머셔너리 클랜이 그만큼 유명하다는 뜻이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첩자가 확실하군. 삼 초 안에 대답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하나!”
지레짐작한 사내가 큰소리로 숫자를 외쳤다.
김수현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둘!”
그러면서 스리슬쩍 한쪽 발을 들었다.
“셋!”
이윽고 사내가 힘껏 창을 내지른 것과 김수현이 강하게 대지를 밟은 것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꾸웅!
땅속 깊숙한 곳에서 나는 울림.
다음 순간, 진원에서 물결처럼 출렁거리기 시작한 대지가 원을 그리며 넘실넘실 퍼져 나갔다.
그 탓에 뒤로 넘어지는 사내의 창이 상대의 콧날을 허무하게 스치고 위로 쳐들려 졌다.
“어어어어?”
“으아아아!”
비단 사내뿐만이 아니었다.
에워쌌던 스무 명 전원이 균형을 잃으며 허둥거리더니 종래에는 엉덩방아를 찧는다.
기함한 사내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조차도 이룰 수 없었다.
돌연히 무거운 기운이 전신을 부드러이 짓눌러왔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움직이려 용을 써도 거대한 기운은 단단한 사슬처럼 온몸을 옥죄었다.
눈알만 간신히 굴리니 동료 모두가 같은 신세였다.
널브러지듯 주저앉은 채 사시나무 떨듯 몸만 떨고 있다.
“아, 실례.”
사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심에 선 남자를 올려다봤다.
“아무튼, 애틀랜타에 머셔너리 클랜은 있다는 거죠?”
잔잔한 얼굴로 내려다보는 의문의 사용자.
사내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끄덕거렸다.
김수현은 기특하다는 듯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안내를 부탁해도 될까요?”
*
당연한 말이지만 곱게 안내할 리가 만무했다.
거동 수상자가 하라는 대로한다면 그날로 사용자 실격이다.
하지만 김수현이 재차 습격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내는 상대에게서 감히 항거할 수 없는 위엄 같은 걸 느꼈다.
강해도 너무 강하다.
감히 닿을 수 없는 격이 몸속 깊숙이 새겨진 것이다.
그렇다고 순순히 안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한참을 고민하던 사내는 남자가 적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 한 발 물러섰다.
안내는 해주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일단 잡혀주지 않겠느냐고.
정중하기 그지없는 어조였거니와, 나름대로 일리 있다고 생각한 김수현은 망설이지 않고 허락했다.
몸을 구속하는 족쇄라고 해봤자 조금만 힘을 쓰면 부술 수 있고, 필요 이상으로 난리를 치는 건 본인도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렇게 김수현은 전신에 구속 족쇄를 더덕더덕 붙인 재 머셔너리 클랜이 있는 곳으로 연행됐다.
‘이건 좀 너무한걸.’
김수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독방에 갇힌 지도 벌써 네 시간이 넘게 흘렀다.
이미 보고가 들어가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그런데 머셔너리 클랜원은커녕 누구 한 명도 코빼기를 비추지 않는 중이었다.
가끔 복도를 뛰어다니는 소음이나 고함치는 소리만 들릴 뿐.
졸지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돼 버렸다.
아무리 완벽하게 구속했다고 해도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단, 딱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한다면.
‘뭔가 심상치 않아.’
사내는 김수현을 남 도시가 아니라 내 도시로 데려왔다.
오면서 곳곳을 면밀히 관찰한 결과,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녔다.
사용자야 꽤 많이 봤으나 대부분이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간혹 부상자가 보였으며 피비린내와 매캐한 연기 냄새도 적잖이 맡아졌다.
특히 도시 전체에 암암리에 내리깔린 음울한 분위기.
경험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김수현이 이 살 떨리는 기운을 모를 리가 없었다.
전쟁이다.
진영이라는 단어.
군대 같은 사용자들의 움직임.
이제 갓 발견한 듯한 애틀랜타의 풍경.
무엇보다 거동 수상자를 잡아왔는데도 신경 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
모든 정보를 종합하니 자연스레 가장 가능성 높은 한 사건이 떠올랐다.
‘뒤통수…. 인가.’
확신에 가까운 결론을 내린 김수현의 눈동자가 예리한 빛을 뿌렸다.
신 대륙 공략 직후 벌어졌었던 희대의 사건.
또한, 역대 최악의 전쟁으로 손꼽히는 애틀랜타 탈환 전투의 단초가 된 사건이었다.
그때였다.
김수현이 한참 상념에 잠겨 있는 와중, 굳게 닫혔던 방문이 느닷없이 벌컥 열렸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양이 좀 적습니다.
피로가 누적됐는지 저녁에 많이 늦게 일어났습니다.
이제 슬슬 오전 강의를 가야 할 준비를 해야 해서, 독자분들의 너를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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