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31
01030 Omnibus – Sovereign Of Sword. =========================================================================
덜컹, 덜컹덜컹!
문은 벽 끝까지 부딪쳐 덜렁덜렁 흔들렸다.
크게 열린 틈으로 뜨거운 공기가 물씬 밀려 들어왔다.
문밖에는 아무도 없다.
오직 방문만이 끼익, 끼익 간헐적인 소음을 내며 한들거릴 뿐.
이건 또 무슨 변고인가.
멍하니 쳐다보던 김수현의 안색이 문득 그늘졌다.
활성화된 오감으로 심상찮은 감각이 물 흐르듯 전해졌기 때문이다.
쿵쿵 부딪치는 소음, 누군가의 비명, 거대한 마력, 그리고 미세한 피 냄새….
예측이 빗나갔다.
전쟁의 낌새가 보이는 게 아니라, 이미 전쟁 중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온몸을 구속하던 족쇄가 뚝뚝 조각나며 바스러졌다.
가볍게 기지개를 켠 김수현은 이윽고 전력으로 성을 빠져나갔다.
예상대로였다.
내 도시는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사용자가 보이기 시작한 건 네 개의 외(外) 도시 중 남 도시로 진입했을 때였다.
시시각각 오감을 자극하는 진원지도 남 도시 성벽 바깥이었다.
옷자락이 휘날릴 만큼 달리는 사용자들은 오로지 한 곳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성벽이 무너진 지점이었다.
안 그래도 낡은 벽은 뭔가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 시원스럽게도 뻥 뚫려 있었다.
아니, 성벽 전체가 덜덜거리는 중이다.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막아! 막아아아!”
“으아아아, 으아아아!”
거의 발악에 가까운 고함과 비명이 사방에서 오고 간다.
“이, 이스탄텔 로우와 해밀에서 지원 요청입니다!”
“뭐? 지원은 아까…!”
“모르겠습니다! 연락이 끊어졌어요! 그보다 머셔너리가 적의 군세에 포위돼서…! 칠 대 악마 중 한 놈도 출현했다고 합니다!”
“그럼 여기는 어쩌고! 여기 방어선이 뚫리면 전부 끝이라고!”
중간에 이상한 말이 들린 것 같았지만, 김수현은 일단 성벽으로 가볍게 뛰었다.
워낙 급한 상황인 만큼 누구도 제지하지 않아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곧 성벽 위로 착지한 김수현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불타오르는 대지.
곳곳에서 뭉게뭉게 솟구치는 시커먼 연기.
성 밖은 그야말로 치열한 전쟁터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란 건 무너진 성벽으로 개미 떼처럼 몰려오는 병력이었다.
시종일관 담담하던 김수현의 얼굴빛에 진한 의구심이 서렸다.
그것은 분명히 마족이었다.
어마어마한 수를 자랑하는 마족이 괴성을 지르며 돌격해오고 있다.
사용자들도 위험을 무릅쓰며 필사적으로 지키는 중이었지만, 방어선은 금방이라도 뚫릴 것처럼 위태로웠다.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김수현도 저렇게 처절한 전투를 겪어봤었다.
갖은 고생 끝에 애틀랜타 원정에 성공했으나 기다렸다는 듯이 뒤통수를 친 연합군 덕분에 눈물을 머금고 물러나지 않았었는가?
어떻게든 지키려 애는 썼었지만, 공략이 막 끝난 상황에서 만반의 준비를 한 적을 상대하는 건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애초 이럴 거라 예상은 했다.
문제는 적의 정체가 사용자로 이루어진 인간이 아니라 마족이라는 점이다.
김수현도 그 당시 악마가 연합군 뒤에서 수작을 부렸을 거라 추측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거니와, 어쨌든 악마는 전면에 나서지 않았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러할진대.
현재 애틀랜타를 공격해오는 건 몇 번을 봐도 악마의 피조물이었다.
“젠장-! 일단 지켜! 지원은 지키고 난 다음이라고 해!”
귓가를 때리는 부르짖음에 김수현의 뇌리에 번쩍 번개가 쳤다.
이스탄텔 로우, 해밀의 지원 요청.
머셔너리의 포위.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나 하나는 확실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김수현은 대담하게도 성벽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빛살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전장을 가로질렀다.
단지 바람만이 스칠 뿐 사용자 중 누구도 이변을 감지하지 못했다.
심지어 마족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
새로운 대륙 애틀랜타.
성 밖 오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는 김수현의 생각대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둘러싸인 무리는 어떻게든 혈로를 뚫으려 밀어붙이고, 에워싼 군세는 상대의 탈출을 저지한다.
전황은 명백히 포위당한 쪽이 불리하다.
애초 숫자부터 너무 차이가 심하다.
소수의 사용자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놀라운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언제 그 힘이 다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반대로 수적 우위를 바탕에 둔 마족은 목숨까지 던져가며 막아서는 탓에 시간이 흐를수록 포위 층은 겹겹이 두꺼워지는 중이었다.
김수현이 도착한 것도 바로 그즈음.
원래는 찾는 데 시간이 걸릴 뻔했지만, 먼빛에서 뇌신의 발동을 확인하고 소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김수현은 약간 떨어진 곳에 선 채 창칼과 마법이 난무하는 포위망을 응시했다.
그리고 일 초 만에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다.
성벽을 공격하던 무리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곱절은 돼 보이는 마족의 수는 물론, 날개를 펼친 채 공중에서 달려드는 중급 이상의 마족도 부지기수였다.
상급, 아니 최상급 마족도 더러 보일 정도.
– 카카카카카카카카!
뭣보다 접전이 벌어지는 지점에서 키가 하늘에 닿을 듯한 거인이 난동을 부리는 중이다.
조용히 지켜보던 김수현은 끓는 신음을 흘렸다.
“아스모데우스….”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그 증오스러운 칠 대 악마 중 하나를.
거인으로 변한 아스모데우스의 키는 거의 십 미터는 넘어 보였다.
메타몰포시스(Metamorphosis)를 사용했다는 방증이다.
김수현이 있었던 세계에서도 아스모데우스가 같은 능력을 사용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고작 사 미터 남짓에 불과했다.
즉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 한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이 세계의 아스모데우스가 그만큼 힘을 회복했다는 뜻이다.
“응? 넌 뭐냐?”
그때 후방에 있던 마족 중 하나가 김수현을 발견하고 뒤돌아봤다.
등에 달린 날개와 이 미터에 달하는 신체, 그리고 두 손에 모인 마력은 최상급 마족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설마 벌써 지원이!? 아니, 그럴 리가…?”
화들짝 놀라던 눈매가 돌연히 비뚤어졌다.
황급히 주변을 휘휘 둘러보던 시선은 홀로 등장한 남자에게 고정됐다.
마족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뭐냐?”
그럴 만도 하다.
지원군이 온 줄 알았는데 고작 한 명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행색도 초라하다.
무기는커녕, 장갑 일부분도 보이지 않는다.
이 전장만 놓고 보면 미친놈이나 다름없었다.
“허 참, 놀랐네. 뭐, 죽어라.”
콧방귀를 낀 마족은 가볍게 왼팔을 뻗자, 왼손에 모여 있던 검은 구체가 김수현을 향해 쏜살같이 쏘아졌다.
그러나 마법은 상대의 몸에 채 닿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죽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마족의 눈동자가 이채를 뗬다.
놀랐다기보다는 흥미로운 기색이었다.
하기야 진짜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이 전쟁터에 저 차림으로 나올 리가 없다.
“암, 그렇지. 역시 한 가락 하는 놈이군.”
진정으로 즐겁다는 듯이 빙글빙글 웃더니 오른손의 구체를 꺼트렸다.
그 대신 양손의 손톱이 길쭉하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저 정도의 마법 저항력이라면 마법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좋아, 좋다고. 뒤에서 마법만 쏘느라 지루했는데…. 어디 한 번, 놀아볼까!”
캭 외친 마족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무섭게 쇄도한다.
거리는,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바람을 가르는 다섯 개의 손톱이 사신의 낫처럼 무자비하게 내리쳐졌다.
그와 동시에 김수현은 무심한 얼굴로 오른손을 내뻗었다.
이윽고 꽉 쥐어진 오른 주먹이 마족의 흉부에 정통으로 직격하는 순간이었다.
뻐어어어어어어엉!
무시무시한 굉음이 일대가 떠나가라 울려 퍼졌다.
가스를 가득 채운 거대한 풍선이 한순간 폭발하는 듯한 폭음이었다.
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안간힘을 쓰며 길을 뚫던 사용자도, 끈질기게 방해하던 악마 무리도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을 정도였다.
온갖 소음이 어우러지던 전장이 한순간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 크, 크히?
한창 신 나게 날뛰던 아스모데우스는 바람 빠진 소리를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웬 사내가 뻗은 주먹을 중심으로 살점과 핏물이 분분히 흩날리고 있다.
분무기로 뿌린 물이 점점이 춤을 추며 허공으로 흩어지듯이.
하급도 아니고 최상급 마족이 주먹 한 방에 소멸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로 일어났다.
– 뭐, 뭐냐! 저놈은 누구냐!
모두의 시선이 한 남자에게 쏠린 가운데 아스모데우스가 버럭 외쳤다.
상투적이지만 당연한 물음이었다.
김수현이 슥 턱을 젖혔다.
이내 무감정한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아스모데우스는 자기도 모르게 두어 걸음을 물러났다.
하지만 곧바로 자기가 뒷걸음질을 쳤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아직은 까닭 모를 공포보다 오만한 자존심이 우선이었다.
– 이 미천한 벌레 놈이…!
쿵쿵거리며 걸어가는 그대로 비대한 몸집이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틀어졌다.
몸은 곧 힘차게 원래대로 되돌려지며 가히 미사일과 견줄만한 오른팔이 추락하듯이 떨어진다.
김수현을 향해서.
꽈앙, 세찬 소음과는 다르게 진동은 크지 않았다.
오직 휘말린 바람이 자욱한 흙먼지를 휘날리게 할 뿐.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연기조차 가라앉자, 곳곳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터졌다.
당장에라도 짜부라질 것만 같던 남자가 오연히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왼손 하나.
아니, 검지 하나로 수십 배는 될 법한 주먹을 견디고 있다.
물론 가장 놀란 건 아스모데우스였다.
– 크으으으, 크으으으으으으윽!
아무리 용을 써도 주먹이 전진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씩이지만 뒤로 밀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더 미치겠는 건 상대는 아주 약간의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애 손목을 비트는 것처럼 가지고 노는 듯하다.
– 크라라라라라라라!
다음 순간 아스모데우스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거칠게 날갯짓을 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으로 빠르게 솟구친다.
당혹스러운 와중에도 공중으로 올라간 아스모데우스는 입을 쩍 벌려 필사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자기 자신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단지 저 남자를 한시라도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불안함이 쉴 새 없이 머릿속을 울리고 있었다.
잠시 후, 돼지처럼 몸이 뚱뚱해진 아스모데우스가 입을 쩍 벌린 채로 아래를 바라본 순간이었다.
– !?
남자가, 보이지 않는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라고 생각한 찰나, 아스모데우스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정수리를 간질이는 바람의 흐름을.
등 뒤로 느껴지는 서슬 퍼런 기척을.
급히 뒤돌아본 아스모데우스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잘 가라.”
어느새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온 김수현이 내지르는 주먹이었다.
– 뭣…!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장대한 폭죽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공중에서 거대하게 출렁거린 아스모데우스의 몸이 하릴없이 땅으로 추락했다.
무려 십 미터가 넘는 덩치다 보니 대지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들썩거렸다.
하지만 진정으로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머리통이 박살 난 아스모데우스의 시체가 서서히 가루로 변해 흩어지기 시작했다.
말인즉 방금 일격으로 두 개의 생명이 깡그리 날아가 버린 것이다.
“말도 안 돼…. 어, 어?”
도저히 믿기 어려운 광경 속에서 한 여인이 눈이 찢어지라 커졌다.
겹겹이 둘러싼 헤아릴 수 없는 마족들이 갑자기 힘을 잃은 듯 털썩털썩 쓰러졌다.
이어서 아스모데우스처럼 가루로 화하며 물보라처럼 흩어진다.
조물주가 소멸했으니 피조물도 사라지는 건 당연한 이치.
남은 건 아스모데우스 휘하의 악마 십사 군주뿐.
뒤늦게 땅에 착지한 김수현은 차분히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작게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
그날의 전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스모데우스와 휘하 군주의 사망, 그리고 따르던 군세의 소멸 소식은 빠르게 전역으로 퍼졌다.
애틀랜타가 위험하다는 연락을 받은 세 클랜이 신속하게 회군했을 때, 성을 치던 마족은 이미 꽁무니를 보이며 내빼는 중이었다.
위태롭기 그지없던 전황이 한 남자의 주먹질 두 번으로 급변한 것이다.
상황은 여전히 불리했지만, 어쨌든 한숨 돌릴 여유는 생겼다.
무사 귀환을 축하한 사용자들은 이스탄텔 로우와 해밀 클랜의 지휘 아래 성벽 보수 등의 전장 정리 작업을 시작했다.
한편, 피해가 막심한 머셔너리 클랜은 내 도시로 이동해 휴식에 들어갔다.
물론 김수현도 그곳에 부름을 받았다.
거동이 수상한 자에서 단숨에 정체 모를 구원자로 위치가 격상됐으니.
드디어 이 세계의 머셔너리 클랜원과 마주하게 된 김수현은 속으로 쓰게 웃었다.
회의실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공간에는 약 서른 남짓한 인원이 앉아 김수현을 뚫어지라 보고 있었다.
고마워하는 시선 중간중간에 가끔 강하게 의심하는 눈초리가 번뜩였다.
‘이래서 배타적이라고 하는구나.’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한 명 한 명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 김수현의 눈이 반짝거렸다.
서른 명의 인원 중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나 아예 보이지 않는 이도 적지 않다.
한편으로는 모르는 얼굴도 있었고.
가령 안 씨 남매는 원 세계 그대였지만, 고연주나 제갈 해솔 등은 없었다.
또 안경을 쓴 옅은 잿빛 머리칼의 미인은 처음 보는 사용자였다.
눈이 마주치자 콧잔등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는 것이 상당한 부끄럼쟁이처럼 보였다.
“당신은 누구죠?”
잠깐의 침묵 후, 의자에서 일어선 정하연이 곧바로 직구를 날렸다.
구출된 처지에 약간 무례한 언사였지만,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는 김수현은 기분 좋게 받아넘기려고 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말문만 막히지 않았다면.
“어…. 머셔너리 로드입니다.”
“네?”
장고 끝에 한 대답을 들은 정하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럴 리가…. 동명 클랜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어요. 애초 허용하지도 않고요.”
그때였다.
상석에 등을 보이고 있던 의자 앞에서 작고 흰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까딱까딱 손짓하자, 정하연은 입을 닫고 의자에 도로 앉았다.
김수현은 흥미로운 기분으로 돌려진 의자를 바라봤다.
도대체 누구길래 자기를 봐도 놀라지 않는지 자못 궁금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사용자라면 당최 이 세계의 김수현은 어디에 있는 걸까?
제로 코드가 탐탁지 않아 하던 이유는 또 뭐고?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동안, 의자 밖으로 뻗어진 손가락 틈에는 어느새 불붙은 연초가 끼워져 있었다.
왼손의 검지로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는 소리도 울렸다.
한동안 정적이 흐르고 나서 끼익 의자가 마찰하는 소음이 흘렀다.
느긋이 회전하던 의자는 김수현을 마주 보는 방향에서 뚝 멈췄다.
그 순간 김수현의 미간이 심히 좁혀졌다.
“뭐…? 너, 넌 누구지?”
“…내가 누구냐고?”
김수현의 물음에 약간 낮은 음성이 돌아왔다.
살짝 도도하면서도 가히 듣기 나쁘지 않은 부드러운 미성이었다.
“그건….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가늘고 고운 손가락이 정갈히 흘러내린 긴 생머리를 꽉 쥐었다.
한 손에 움켜쥔 칠흑빛 머릿결 끝으로 시뻘건 선혈이 방울져 맺히더니 뚝, 뚝 떨어진다.
“아무튼-. 구해준 것도 있으니. 좋아. 먼저 소개하겠어.”
끈적한 핏물이 묻은 손바닥이 입에 물었던 연초를 뺐다.
붉은 입술에서 희멀건 한 연기가 뿜어졌다.
요요히 올라오는 연기에 여인의 이목구비가 순간 흐릿해졌다.
잠시 후, 약간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어여쁜 검정 눈동자가 김수현을 지그시 쳐다봤다.
왼손등으로 턱을 살며시 괸 여성은 느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칠 년 차 사용자 김수연. 내가 머셔너리 클랜 로드야.”
============================ 작품 후기 ============================
어제 넣지 못했던 용량을 벌충하는 겸 오늘은 좀 더 많이 넣었습니다.
그리고 3월 13일(일요일)은 하루 휴재하겠습니다.
주말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서요.
독자분들의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자, 그럼 저는 이만 도망가겠습니다.
김수연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