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34
01033 Omnibus – Sovereign Of Sword. =========================================================================
오늘 후기는 꼭 읽어주세요.
*
애틀랜타 인근에 주둔한 악마 진영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이제껏 연전연승을 해왔으니 어지간한 패배로 기세가 침체할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현재 군영 곳곳에서 술렁거리는 기류가 감지될 만큼 사기는 바닥을 치는 중이었다.
왜냐면 그럴만한 일이 일어났으니까.
현재 북 대륙의 가장 큰 약점은, 크게 세 세력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는 중이라는 것.
말인즉 악마가 전면에 드러났는데도 힘을 합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내전 상태가 유지될수록 악마 진영이 탄력을 받는다는 건 두말할 여지 없는 사실이다.
그 와중에 강철 산맥을 공략한 김수연의 판단은, 의도 자체는 어땠는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급한 상황에 쫓긴 나머지 무리했다고 해야 할까?
강철 산맥이 뚫리면 테라까지는 탄탄대로나 다름없으니 악마가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애틀랜타 침략 전쟁에 참가한 대 악마는 총 넷.
사탄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총사령관과 리리스, 바알, 아스모데우스.
이 정도만 해도 매우 무시무시한 군세이기는 하나, 나름 치밀한 계산이 깔린 전력 배치이기도 했다.
칠 대 악마의 군세가 총출동하면 적의 전력에 위협을 느낀 북 대륙이 서둘러 연합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느니 적당한 전력만 보내고, 나머지는 테라로 가는 길을 뚫는 데 활용하는 게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사실상 대 악마 넷의 군세만으로도 애틀랜타를 빼앗는 건 충분하고도 남으니.
이러한 사탄의 계획은 보란 듯이 성공했다.
애틀랜타를 발견한 이상 마음만 먹으면 워프 게이트를 활성화할 수 있다.
하지만 성을 빼앗기기 일보 직전인데도 북 대륙 지원군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게 그 방증이었다.
여기서 하나 분명한 사실은 사탄의 계획은 성공을 목전에 뒀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하루 전까지는.
“이제 어떡할 거야?”
리리스는 막사에 들어오자마자 의자에 주저앉으며 물었다.
팔짱을 끼며 주변을 둘러봤으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아스모데우스의 소멸.
칠 대 악마 중 하나가 사라져 없어졌다는 건 결코 쉬이 넘길 일이 아니었다.
아스모데우스를 모태로 태어난 피조물이 깡그리 재로 화했다는 걸 의미한다.
거기다 휘하 악마 군주까지 사망했다.
전체 전력 중 칠 분의 일이 하루도 안 돼서 공중분해 됐는데 누가 단순한 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이것뿐만이 아니다.
군영의 사기가 급격히 저하된 이유는 실은 따로 있었다.
바로 아스모데우스가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는 믿기 힘든 소문이었다.
아니, 칠 대 악마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였다.
“복수. 진군.”
굳은 얼굴을 하고 있던 바알이 짧게 두 단어를 뱉었다.
곰 인형이 짜부라질 정도로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말아 쥐면서.
“나야 대 찬성이기는 한데….”
스리슬쩍 말을 흐린 리리스는 오른쪽을 힐끔거렸다.
이번 애틀랜타 침략에 있어서 사탄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대 악마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원래 악마 자체가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기는 하나, 지성이 있는 이상 자제할 줄도 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상대 또는 상황에 따라서.
사탄이 전권을 넘겼다는 건 그만한 역량과 영향력을 지닌 대 악마라는 걸 의미한다.
그런 만큼 리리스는 조바심을 내지 않고 조심스레 입을 달싹거렸다.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뭐, 아스모데우스를 한 방에 소멸시킬 수 있을만한 전력은 우리 쪽에도 없는 건 아니잖아?”
그 말대로였다.
사탄은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해 악마 진영 최강의 전력을 비밀리에 애틀랜타 침략 전력에 포함했다.
즉 설령 소문이 사실이라고 해도 대응책이 없는 건 아니었다.
“사탄의 의중은 어때? 보고는 했어?”
묵묵부답.
리리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으나 총사령관의 침묵은 여전하다.
“시간은 금이야. 밖에 술렁술렁하는 소리 안 들려? 총사령관으로서 빨리 결정해줬으면 하는데.”
결국, 참다못한 리리스의 세 번째 채근이 이어지자, 여태껏 입을 꾹 닫고 있던 악마의 두 눈이 천천히 떠졌다.
“시간은 금….”
드러난 눈동자가 짙은 초록빛을 발하며 약간 멍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고저가 없기는 했으나 썩 듣기 나쁘지 않은 편안한 미성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아끼는 것도 좋지 않지요.”
“뭐?”
“금이라면 넘쳐날 정도로 쌓여 있으니까요.”
“…….”
시간은 우리 편이다, 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리리스와 바알은 멍청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고 싶은데? 정 불안하면 이쯤에서 물러나던가?”
“벌써 두려워할 필요는 없죠. 리리스 님의 말씀대로, 그리고 사탄 님의 혜안 덕분에 이곳에는 그분이 계시니까요.”
리리스는 고개를 끄덕거리는 한편, “확실히 다행이기는 하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만 빼면.” 이라고 작게 덧붙였다.
“그럼, 진군이야?”
“명령. 당장.”
리리스의 질문에 바알이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번뜩였다.
“아니요.”
그러나 돌아온 답은 둘의 기대를 배반하는 것이었다.
“일단은 대화해볼 생각이에요.”
“…에.”
리리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바알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표정이었다.
“대화. 진심?”
“네.”
“설명. 요구.”
“…비틀림을 느꼈어요.”
그 순간 당장에라도 자리를 박찰 것 같던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이 세상이 순간적으로 쪼개지는 듯한 강렬한 비틀림….”
리리스와 바알을 한 번씩 번갈아 본 악마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두 분도 느끼셨군요.”
사실상 세 악마가 암암리에 소문을 사실로 인정하는 근거 중 하나였다.
이상 징후는 확실하게 느꼈었다.
이 세계에 간섭한 정체 모를 힘의 작용.
칠 대 악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상 그 정도로 거대한 기운을 못 느꼈을 리 없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악마는 단정한 몸짓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의자에 걸려 있던 길게 땋은 머리카락이 탄력적인 엉덩이선을 가리며 흘러내렸다.
“일단은 사태 파악이 우선. 아스모데우스 님을 잃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분을 내세우는 건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아요.”
얌전하면서도 단아한 목소리에 두 악마는 끄덕끄덕 고개를 주억였다.
“심정이랄 것도 없어. 지가 약해서 죽은 걸 누굴 탓해?”
리리스가 화제를 돌리며 키득거렸다.
이죽거리는 했지만, 어쨌든 상대의 의견을 따르겠다는 태도였다.
“…….”
바알도 입맛을 다시기는 했으나 딱히 반대하지는 않았다.
둘의 반응을 확인한 악마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사실 이미 사자는 보냈지요.”
갑작스러운 이실직고에 리리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코웃음을 쳤다.
“좋아. 어디 한 번 멋대로 해보라고. 루치펠.”
“루시페르라고 불러주시면 더 좋겠어요.”
“알았어. 루치펠.”
“…관두죠.”
고개를 흔든 루치펠이 곱게 눈을 흘겼다.
이윽고 품에서 검은 면사를 꺼내 얼굴을 가렸을 때였다.
갑자기 악마 군주 하나가 휘장을 젖히며 뛰어들어와 세 악마의 앞에 부복했다.
“무슨….”
“보고드립니다!”
루치펠이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급박한 보고가 쏟아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의 아미가 살그머니 좁혀졌다.
*
같은 시각.
두 여인과 함께 성벽에 도착한 김수현은 머리를 갸웃하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역겨운 피 냄새만이 풍기고 있을 뿐.
‘저건 뭐지?’
비릿한 내음을 쫓던 중, 김수현의 시선이 한 곳에 꽂혔다.
성벽의 바닥에는 전신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 피 칠갑을 한 마족 한 마리가 누워 있다.
그 위 머리통을 짓밟고 있는 발 하나.
발바닥이 꾹꾹 힘 있게 문질러질 때마다 마족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만 부르르 떤다.
마족을 짓밟고 있는 사용자는 김수현을 등진 채 양손을 허리에 얹고 있었다.
키는 약 170센티미터 이상.
그러나 긴 검정빛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풍성하게 정리해 어깨까지 늘어뜨린 걸 보니 여성인 듯싶었다.
하지만, 이상하다.
상의로 보이는 흰색 셔츠는, 작아 보이는 건 둘째치고서라도 몹시 짧았다.
불룩한 유방을 터뜨릴 듯이 옥죄는 것도 모자라 잘록한 허리가 적나라하게 노출될 정도였으니.
속옷이 아닐까 싶을 만큼 짧고 꼭 낀 반바지는 둔부의 곡선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한다.
그리고 그 아래로 보이는 건강하고 색정적인 허벅지에 덮인 철쇄의 향연.
꼭 사슬로 만든 망사 스타킹이 연상될 정도로 기괴한 차림이었다.
적어도 김수현의 기억에 저런 여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윽고 여인이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며 마족을 겨냥한다.
그때 김유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기다려요.”
짧은 콧노래가 들리는 것도 잠깐.
부르는 목소리에 여인은 살짝 고개를 돌려 옆을 쳐다보더니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입을 벌린 그대로 아래에 깔린 마족을 겨눈 검지를 튕기듯 올렸다.
“Bang.”
퍽, 소리와 함께 마족의 머리통에 굵은 쇠 창이 틀어박혔다.
펄쩍 뛴 거뭇한 신체는 곧 썩은 나무통처럼 재로 변해 바람에 흩날렸다.
“하~이….”
음색은 처음에는 약간 높았으나 끝에 가서 급격하게 낮아졌다.
발랄한 인사에 반해 굉장히 공허하게 느껴지는 영혼 없는 목소리였다.
여인이 키득거리며 몸을 돌리는 순간 김수현은 비로소 그녀의 차림을 이해할 수 있었다.
보란 듯이 드러낸 가슴골에 끼워진 장식물이 눈에 밟혔다.
검푸른 빛을 띤 장미 모양의 목걸이는 허벅지의 사슬과 마력이 연결돼 있다.
‘마력에 반응하는 물건인가.’
그렇게 생각한 김수현은 천천히 여인을 관찰했다.
동시에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흑 수정처럼 아름답게 빛나지만, 심연보다 어두운 듯한 끈적한 두 눈동자.
진하디진한 눈매는 방금 자신이 저지른 일이 마음에 드는지 즐겁게 휘어져 있었다.
여인은 목걸이 장식을 톡톡 치며 휘적휘적 걸어왔다.
김수현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쳐다보지도 않으며 두 자매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췄다.
빙글빙글 웃는 꼬락서니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김유연이 쏘아붙이려는 찰나였다.
“악마 쪽에서 전령을 보냈다고 들었어.”
김수연이 재빨리 손을 저으며 한 걸음 나섰다.
“그런가….”
그러거나 말거나, 여인은 과도하게 고개를 기울여 입을 아 벌리더니 혀를 살짝 내밀었다.
언뜻 허무해 보이는 낯빛에 그러니 이율배반이라 할 만했지만, 한편으로는 까닭 모르게 어울려 보이기도 했다.
“왜 죽인 거야? 뭐라고 했길래?”
“응…. 그냥.”
여인은 싱긋 웃어 보였다.
“죽이고 싶어서? 별로 좋은 의도는 안 느껴졌거든….”
그게 말이 되느냐고 외치려던 김유연은 다시금 김수연에게 제지당했다.
“말해줘. 무슨 말을 들었는데.”
“별로….”
“제발.”
“글쎄, 잘 기억이 안 나서….”
문득 여인의 입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다.
왼쪽 머리 갈래를 배배 꼬더니 남은 손을 앞으로 척 세웠다.
내밀어 진 손에는 빛바랜 빗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뭔가를 기대하는 듯 볼이 살짝 붉어진 채로.
“누가 머리를 빗겨주면 생각날지도?”
망연히 보고 있던 김수현이 눈을 두어 번 감았다가 떴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빗이다 싶었는데.
옛날에 사용자 아카데미에서 자신이 한소영에게 선물한 것과 똑같은 빗이었다.
“저 빗, 치가 또….” 라고 중얼거린 김유연은 한숨을 내쉬며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적당히 좀 하세요.”
그러나 여인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어서 머리를 빗겨 주기를 강요했다.
“정말, 이스탄텔 로우 로드!”
결국, 보다 못한 김유연이 언성을 높인 순간이었다.
김수현은 푸 숨을 터뜨렸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오늘 후기는 당분간 연재 주기 일정에 변화가 줘야 할 것 같아서 적게 되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이틀마다 한 편씩 업데이트할까 생각 중이에요.
이유는 현재 학교 생활과 집필 병행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애초 학점을 꽉 채운 만큼 빡빡하리라 각오는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힘에 부치는 상황입니다.
졸업 학년이라 그런지 학교에서 요구하는 게 많고, 과제도 굉장히 많습니다.
어제 겨우 20 Page에 달하는 레포트 하나 끝냈더니, 오늘 과제 두 개가 추가로 더 나오더군요.
무엇보다 강의를 따라가기가 힘이 듭니다.
교수님들이 어느 정도 수준을 상정하고 강의를 하시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솔직히 반도 알아듣기 힘들더군요.
집필 활동을 계속 하는데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기로 부모님과 약속한 만큼, 학업에 소홀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여 어느 정도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2일 1연재로 바꿀까 합니다.
외전을 재밌게 즐겨주시는 독자분들께 한없이 죄송한 부탁이지만, 부디 너른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감사하고, 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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