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48
01047 Omnibus – Sovereign Of Sword(完). =========================================================================
“갑시다.”
그러자 네 남녀는 할 말을 잃은 얼굴을 보였다.
김수연은 귀를 의심하는 표정을 지었고, 김유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대로 들어가자고?”
심지어 김유현도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들어갑시다.”
그러나 한 번 더 말한 김수현은, 가타부타 설명 없이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당당하게.
“야, 야!”
김수연은 뒤늦게 손을 뻗었지만, 그는 이미 먼빛으로 멀어지는 중이었다.
순식간에 성문까지 다다른 김수현은 잠깐 걸음을 멈췄다.
굳게 닫힌 철문을 올려다보는가 싶더니 가볍게 팔을 놀린다.
서늘한 쇳소리와 함께 이제껏 칼자루만 쥐고 있었던 손아귀가 비로소 칼을 뽑았다.
쩌어어억.
동시에 사선으로 그어진 보이지 않는 칼날은 성문을 한 칼에 쪼개 버렸다.
“뭣……!”
헐레벌떡 달려온 김수연은 거의 뒤로 넘어간 성문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철문 때문이 아니라, 그 너머의 광경 때문이었다.
마침내 드러난 성 안의 풍경은 찌를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기백에 이르는 사용자가 곳곳에 진을 짜고 서 있는 중이었다.
꼭 대기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들도 갑자기 반파된 성문을 보고 기함한 얼굴이었지만, 그뿐이었다.
사내 뒤로 나타난 김수연을 보더니 한 사용자 곧바로 지팡이를 추어올렸다.
하늘로 쏘아진 마력의 구체는 폭죽 터지는 소음을 내며 공중에서 사방팔방 흩어졌다.
얼마 후, 성문에 서 있던 인원이 서서히 물러나며 사방에서 급하게 움직이는 기척이 전해지기 시작한다.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질서 정연한 움직임을 멍하니 보던 김수연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김수현을 힐끗 바라봤다.
“알고 있었다고?”
“이렇게 빠르게 올 줄은 몰랐겠지. 하지만 올 거라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담담히 말한 김수현은 깔끔하게 잘린 성문의 단면을 뛰어넘어 안으로 안착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김수연이 반사적으로 따라 넘으며 물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김수현은 무기를 들고 경계하며 물러나는 인원을 향해 힘껏 칼을 휘두르는 중이었다.
불시에 칼등으로 가격당한 대기는, 그대로 요동치는 파동으로 변해 해일처럼 전방을 덮쳤다.
“어, 어어어어!?”
“으아아아아아!”
강렬한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듯 가지런하던 진형이 창졸간 어지러워졌다.
기백의 인원이 우르르 무너지는 걸 본 김수연은 언뜻 정신을 차리고 칼을 뽑았다.
아니, 뽑으려 했다.
“너.”
“뽑지 마.”
김수현이 김수연의 오른팔을 쥔 채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 말에 막 주문을 외우던 김유연과 김유현도 어리둥절해하며 영창을 정지했다.
“싸우러 온 거 아니다. 대화하러 왔다고 했잖아.”
뭔 헛소리냐고 외치려던 김수연은 전방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왜냐면 방금 김수현이 날려 버린 사용자들이 하나같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주춤주춤 일어서는 중이었으니까.
한 눈에 봐도 심하게 다친 사람은 없어 보였다.
한동안 바라보기만 하던 김수연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이 물었다.
“뭐 어쩌자는 건데?”
“단순하게 길만 뚫는다. 내가 할 테니 넌 따라오기만 하면 돼.”
“그럼 얘네는 왜 이러는데?”
“……글쎄.”
조금 늦게 대답한 김수현이 얼굴을 들었다.
“그건.”
두 눈은 도시 중앙에 우뚝 솟은 성을 응시했다.
“가보면 알겠지.”
어깨를 으쓱거리는 게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어쨌든 일은 이미 벌어진 뒤.
결국, 칼자루에서 손을 놓은 김수연은 어디 네 마음대로 해보라는 양 혀만 찼다.
그중, 오직 제갈 해솔만이 묘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
“와!”
의자에 앉아서 턱을 괸 채 감탄을 터뜨리는 여인은, 제갈 해솔이었다.
장소는 회의실처럼 보이는 커다란 공간이었다.
“봤어요? 방금 봤어요?”
차승현은 통신 구슬을 가리킨 채 토끼 눈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는 제갈 해솔을 보며 불편한 기색을 비쳤다.
아군이 성 밖에서 죽을 힘을 다해 적의 접근을 저지하려고 하는데, 자신은 이렇게 안에서 지켜보고만 있는 게 내심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연신 감탄만 연발하는 중이었다.
“진짜 괴물이네, 괴물.”
“제갈 해솔.”
“안 돼요.”
“……뭐?”
빠른 거절에 차승현은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냐고 물어보려 했죠? 그러니까 안 돼요. 가만히 있어요.”
제갈 해솔은 영상에 눈도 떼지 않고 말하자, 팔짱을 끼고 묵묵히 앉아 있던 공찬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서둘러 손짓으로 말리는 신호를 보낸 차승현은 침착하려 애쓰며 말을 이었다.
“설마 계속 이렇게 있자는 건 아니겠지?”
“흐~음. 이렇게 빨리, 또 저렇게 소수로 찾아온 건 꽤 놀랍네요. 즉 계획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할까요?”
그렇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상대의 전력을 확인하려는 과정이라면 아군의 희생도 유의미해지니까.
“어떻게?”
애초 제갈 해솔이 의문의 사내를 없앨 계획을 세웠었던 만큼, 차승현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바람을 무참히 배반했다.
“전면 폐지.”
라는 말로.
주변에서 어이없다는 탄식이 터지자, 그제야 눈을 뗀 제갈 해솔은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느냐는 듯이 아랫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마요. 저도 인간이라고요, 인간. 일개 인간이 작정하고 들어오는 신을 어떻게 이겨요?”
“신이라고?”
“그럼 저 신위가 인간이 낼 수 있는 무력으로 보여요? 제가 직접 짠 방진을 안방처럼 드나들면서,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오는데?”
“…….”
확실히 그렇기는 했다.
선두에 서서 거침없이 전진하는 남자의 무력은 무신 차승현도 인정, 아니 경외하는 바였다.
특히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살을 칼 하나로 모조리 쳐내거나, 한 번의 손놀림으로 수백의 아군을 강제로 주저앉게 하는 광경은 단연코 압권.
솔직히 말하면-.
‘이길 수 없다.’ 가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악마 진영을 단숨에 쓸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인간을 벗어난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초월 마법은 저도 조금이지만 알고 있어요. 그래서 승산이 있다고,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직접 보기 전까지는.”
빠르게 말한 제갈 해솔은 다시 통신 구슬을 바라봤다.
그러나 잠깐 눈을 뗀 사이 김수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까…….”
피식피식 싱겁게 웃더니 문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없어요. 무책임한 말이라는 건 알지만, 상대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요.”
사실상의 포기 선언이었다.
깔끔한 패배 인정에 모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제갈 해솔은 확률이 일 퍼센트라도 있으면 작전을 실행하는 능력이 있는 사용자다.
그런 그녀가 없다고 말했다는 건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한다는 소리였다.
물론 이렇게 될 수도 있다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생각만 하는 것과 직접 체감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이제 남은 건…….
영상이 공허한 풍경을 비춘 지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밖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바깥 상황은 어떤가요?”
이제껏 조용히 침묵하던 유현아가 입을 열었다.
무기력한 음성이었다.
“십칠 초 전을 기준으로 전원 통신 차단. 정확히 사 분 이십일 초 만에 전부 돌파당했네요.”
반대로 제갈 해솔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아예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진짜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문밖으로 빠르게 가까워지는 기척이 느껴졌으니.
이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유현아는 살짝 고개를 떨궜다.
그 와중에도 서넛의 기척은 시시각각 다가와 문 너머에서 거짓말처럼 멈췄다.
“젠장!”
반다희는 무기를 쥐며 분한 기색으로 일어서려 했으나 이번에도 차승현이 제지했다.
상대의 행동을 보니 저항할 의지는 손톱만큼도 생기지 않는다.
도망치는 방법도 있지만, 유현아는 동료를 버리면서까지 제 목숨을 챙기는 군주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제갈 해솔에게 맡겨볼 참이었다.
유현아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전쟁이 아닌, 대화하자는 남부 연합의 연락은 일전에 받았다.
실제로 그들은 여기까지 오면서 한 명도 살해하지 않았다.
불시에 강제로 침입하기는 했으나 일련의 행동이 뜻하는 바를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사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였지마는.
그때였다.
똑똑.
무거운 분위기가 형성되는 가운데, 불현듯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유현아는 순간적으로 황당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제갈 해솔이 킬킬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들어오세요~!”
안에서 적을 기다리고, 맞이한다.
전쟁터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다.
그러나 상대는 상식을 뛰어넘는 존재였다.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을 강요하는 게 가능할 정도로.
끼이이익.
이윽고 서서히 열리는 문틈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사용자는.
“실례합니다.”
다름 아닌, 김수현이었다.
“어서 오세요.”
제갈 해솔은 생글생글 웃으며 부드러이 말을 받았다.
“반갑네요. 다른 세계의 사용자 씨.”
막 안으로 들어가던 김수현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쳤다.
“알고 있었습니까?”
“네. 그럼요.”
“좋네요. 설명할 수고를 덜어서.”
“글쎄요. 아무튼, 당신이 누군지는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뭐, 일단 앉으세요. 부디.”
제갈 해솔이 건너편의 탁자를 가리켰다.
천천히 들어가는 김수현의 기분은, 감회가 새롭다고 할까?
자신을 뚫어지라 쳐다보는 ‘무신’ 차승현과 죽일 듯 노려보는 ‘미친년’ 반다희.
실로 오랜만에 보는 사용자들이었다.
백한결과 제갈 해솔은 그렇다 치고, 공찬호가 이 자리에 있는 건 좀 의외였다.
그리고…….
상석에는, 새하얀 경장 갑옷을 입은 아름답고 청초한 여성이 앉아 있었다.
양손은 의자 팔걸이를 꽉 쥔 채로.
“후~우.”
잠시 후, 크게 숨을 들이켠 여인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곧 약간 서글퍼 보이는 큼지막한 연갈 빛 눈망울과 마주했을 때.
“…….”
김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오 년 만의 재회.
비록 서로 세계가 다르다 할지라도-.
“너도밤나무 로드. 유현아입니다.”
“……머셔너리 로드. 김수현입니다.”
‘검의 군주’가 된 김수현과 ‘성스러운 여왕’이 된 유현아가 다시 만나는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독자님들이 양해해주신 덕분에 중간 시험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습니다.
잘 봤는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 것 같아요.
거의 매일 밤을 샜는데, 예전에 오랫동안 새벽에 집필했던 경험이 이렇게 도움될 지는 몰랐네요. 🙂
그동안 시험에 집중한 탓에, 오랜만에 워드를 켜니 마냥 어색해요.
최대한 빠르게 감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기다려주셔서 감사드리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외전 완결까지 열심히 달리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님들 모두 편안한 밤 보내세요!
PS. 제가 쪽지를 확인하지 못한지 오래됐는데, 내일 안으로 전부 답신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