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55
01054 8. 외전 에필로그(3/3). =========================================================================
오늘 후기는 꼭 읽어주세요.
*
역전(逆轉)의 세계.
내 세계 중 성스러운 여왕 유현아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리고 처음으로 만났을 때.
이렇게 총 세 곳에 간섭을 한 후 난 마침내 원래 세계로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오자마자 날 처음 맞이한 건 이마의 강렬한 통증.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머리통이 안에서부터 반으로 쪼개지는 듯한 무시무시한 고통이었다.
“큭!”
뭐, 뭐라고 해야 하나.
찰나의 순간,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기억이 한꺼번에 우수수 떠올랐다가 뇌에 강제로 쑤셔 박히는 것 같다.
뇌리로 스치듯 흐르는 장면 중에는 내가 알고 있는 기억도 있으나 중간중간 모르는 기억도 상당수다.
젠장, 미래를 바꿨을 때부터 각오는 했으나 직접 체감하니 장난이 아니잖아.
어지간한 아픔에는 면역이 됐다고 생각했었는데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
마음 같아서는 데굴데굴 구르며 있는 대로 소리 지르고 싶었다.
정말로 죽겠다.
“끄으으으…….”
이 현상은 언제 끝나는 걸까.
십 분은 지난 것 같은데 끝날 기미는 보이지도 않는다.
현대로 돌아갔을 때 주변 동료가 겪었다던 고통이 이거였나.
끊임없이 헤드뱅잉을 하면 이럴까?
혼란스러움도 도를 넘어서면 이렇게 괴롭구나…….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것 같아서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다.
하물며 눈꺼풀을 드는 것조차 힘들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약간이나마 나아져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심호흡을 천천히 반복하고 있으려니 문득 이마를 덮는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온 신경을 이마에 닿은 감촉에 집중했다.
이것마저 놓쳐 버리면 이대로 정신을 놓을 것 같았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난 손길을 동아줄 삼아 버티고 또 버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쯧쯧.”
갑자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누가 멋대로 미래를 바꾸래? 그것도 두 번이나.”
귀를 찌르는 듯한 특유의 새침한 음성은 틀림없이 화정이다.
헉하는 동시에 부스스 눈을 떴다.
아른아른한 시야로 익숙한 로비의 천장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로 붉은빛을 띤 긴 생머리를 한 여인이 날 내려다보고 있다.
열댓 번 눈을 감았다가 뜨니 역시 화정의 얼굴이 어슴푸레하게나마 보였다.
그녀는 약간 화난 듯한 표정이었다.
떼어지지 않으려는 입을 간신히 열었다.
“어, 어떻게…….”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그럼 난 구천급 신인데 당연하지. 세계의 법칙에 거스르지는 못해도, 어떤 변화가 발생했는지는 알 수 있다고. 아마 게헨나, 메르세데스, 수나도 알고 있을 걸?”
“……어?”
“나 참.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기나 해? 애초 네가 뭔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는 하는 거야?”
하긴.
제로 코드도 알고 있으니 그 네 명이 알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어쨌든 인간은 감히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까마득한 곳에 존재하는 신이니까.
“어휴. 시간을 한 번 되돌리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아예 간섭까지…….”
잔소리를 듣고 있으니 조금이지만 통증이 가라앉은 것 같다.
난 화정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상반신을 일으켰다.
주변 풍경은 다중 우주 세계로 가기 전의 애틀랜타, 그리고 성 내부의 풍경 그대로였다.
뭐가 변한 건지는 아직 딱히 알 수 없다.
“어떻게 됐어……?”
힘없는 목소리로 묻자, 화정은 이리저리 고개 돌리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 내가 말해주기보다는 네가 직접 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확실히.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가장 낫기는 하지.
머릿속은 여전히 내가 모르는 헤아릴 수 없는 기억으로 폭풍이 휘몰아치는 중이었지만, 난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하여간 인간 남자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이미 아내도 열 명이 넘으면서 또 한 명 추가하겠다고…….”
“?”
“아니. 나 같은 예쁜 정실이 있는데도 저러는 게 말이나 돼? 이 색마, 종마…….”
“…….”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으나 일단 앞으로 무작정 걸었다.
그러나 겨우 스무 걸음 남짓 걸었는데도 벌써 힘에 겹기 시작했다.
지쳐 쓰러지기 전에 다행스럽게도 로비 탁자에서 티 타임을 즐기고 있는 임한나가 눈에 들어왔다.
“하, 한나야.”
“응?”
막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임한나는 날 보더니 놀란 빛을 비췄다.
그녀를 보니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있었다.
“나현이는?”
“나현이?”
“설마.”
“방금 젖 먹이고 재웠어. 지금 수면실에서 코 자고 있을……. 너 왜 그래?”
그랬구나.
나현이는 사라지지 않았구나.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임한나는 서둘러 달려와 날 부축했다.
“괜찮아?”
“너무 어지러워서…….”
“그럼 좀 앉아 있을래? 약초 차 타올 게. 머리 진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 거야.”
“부탁해.”
의자가 보이자마자 무너지듯이 주저앉았다.
어느새 숨도 꽤 거칠어져 있다.
어쨌든 나현이는 그대로 있다니 다행이다.
한편으로는 의문도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난 다중 우주 세계로 갔었고, 모두 걱정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임한나는 내가 다른 세계로 건너간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꼭 평화로운 일상 중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난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아무 생각 없이 시선을 돌렸다.
창 밖 정원에는…….
“억.”
뭐, 뭐야?
왜 반다희가 안현 옆에 있는 건데?
차희영이랑 같이 안현을 둘러싸고 언성을 높이는 게 꼭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안현은 둘 사이에 껴서 난처하다는 듯이 어색한 얼굴만 하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뭐가?”
벌써 차를 타왔는지 임한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억지로 입을 다물며 정원을 가리켰다.
가슴을 숙여, 아니 상체를 숙여 유심히 지켜보던 임한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싱겁게 웃었다.
“난 또. 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저 삼각관계는 유명하잖아?”
맙소사.
안현을 둘러싼 삼각관계라니.
그러니까 반다희의 미래가 그렇게 됐다는 소리잖아.
“그나저나 쟤네는 질리지도 않고 싸우네~.”
많이 바뀌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저 녀석도, 참.”
“응?”
“남자답게 한 명만 고를 것이지. 저렇게 우유부단해서야…….”
“방금 뭐라고 했어?”
임한나의 음성이 묘하게 날카로워졌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흘겨본다.
난 그녀가 손수 타 온 차를 얼른 집어 들었다.
상쾌한 향을 음미하며 허겁지겁 찻잔을 기울이려는 순간이었다.
“!”
찻물이 혀를 뜨듯이 적시며 넘쳐오는 찰나, 이번에는 입구로 다정히 걸어 들어오는 두 남녀가 보였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들어오는 두 명은 바로 유현아와 차승현이었다.
……저 둘도 살아 있었나.
정말로 미래가 변했다는 건가.
찻물을 넘길 생각도 못한 채 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자 내 시선을 느꼈는지 유현아와 차승현도 차례대로 내가 있는 방향을 돌아봤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유현아는 느닷없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얼굴을 딱딱히 굳히더니 시선을 피해 버렸다.
동시에 아주 조금이지만 입술을 일그러트렸다.
눈물을 떨어트리기 일보 직전의 얼굴을 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째서?
다시 봤을 때는 분명히 웃으면서 보기로 했는데…….
“아, 저…….”
그때 유현아가 뭔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쭈뼛쭈뼛 다가왔다.
도대체 이후로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떠올리려고 하니 서서히 고통이 잦아들던 머리가 다시금 세게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겨우 얼굴을 일그러트리지 않으며 그녀를 마주했다.
그러나 유현아는 날 보고 있지 않았다.
눈도 못 마주치며 땅만 쳐다보는 채로 웅얼거렸다.
“소, 소식 들었어요.”
소식?
“축하해요. 하하……. 소, 솔이는 참 좋겠다.”
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유현아는 웃었다.
하지만 억지가 다분히 드러나는 미소였다.
“그, 그럼!”
이윽고 허리까지 굽혀 꾸벅 인사하더니 몸을 돌려 황급히 달아났다.
풍성한 양 갈래 머리를 휘날리도록 달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망연히 응시했다.
그때 탁자 맞은편으로 차승현이 약간 거칠게 앉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날 보더니 임한나를 바라봤다.
“한나 씨. 미안하지만 저도 차 한 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아, 네.”
임한나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자, 차승현은 콧김을 푹 내뿜으며 눈을 치떴다.
“돌려 말할 줄은 모르니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난 눈만 깜빡거렸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솔 양의 임신 소식은 저도 들었습니다. 예, 축하할 만한 일이죠. 안솔 양도 그동안 오랫동안 옆에서 보필해왔으니 그럴 자격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요.”
안솔이 가장 최근에 임신한 건 맞는데…….
그게 이 상황과 무슨 관련이 있지?
“그렇기는 한데요. 클랜 로드. 현아 말입니다. 이때까지 안솔 양과 같이 위로하면서 그나마 버티고 있었습니다. 서로 비슷한 처지끼리요.”
“…….”
“우리 현아. 요즘 겉으로는 웃고 다니지만, 제 앞에서는 항상 웁니다. 본인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부족한 것 같다면서 계속 울어요.”
“…….”
“클랜 로드 주변에 아름다운 아내가 많은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현아, 어디 가서 빠지지 않습니다. 그뿐입니까? 뮬에서 처음 인연을 맺고, 부랑자 습격에서 구해 주셨을 때부터 쭉 함께 해오지 않았습니까? 공으로만 따져도 현아도 누구에게 못지 않습니다.”
“…….”
“그런데도 클랜 로드는……. 알면서도 이러시는 겁니까. 아니면 정말로 모르셔서 이러시는 겁니까. 솔직히 말해서 진짜로 너무하십니다.”
“…….”
아니 이 사람아.
돌려 말하지 않는 건 좋은데 뭘 알아야 공감을 하든지 말든지 하지.
난 방금 다중 우주 세계에서 돌아왔다고.
모르는데 어쩌라는 거야.
억울하게시리.
내가 계속 눈만 깜빡거리고 있자, 차승현이 갑갑해 죽을 것 같은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그래.
그러니까?
“우리 현아는 언제쯤 안아 주실 거냐 이 말입니다.”
“푸!”
미친.
하도 놀란 탓에 이때까지 입에 머금던 찻물을 뿜어 버렸다.
졸지에 찻물을 뒤집어쓴 차승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아니.”
“……반응을 보니 정말로 모르고 계셨던 것 같군요.”
“자, 잠깐만…….”
“후우우우……. 만성 영감님이 그런 눈치라고는 밥 말아 먹었다고 하셨었는데……. 이제 그 의미를…….”
사레 들린 목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다.
“콜록콜록! 사, 사용자 차승현은 성스러운 여왕의 지킴이 아니었습니까?”
“예?”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실제로 내가 기억하는 무신은 유현아의 팔불출이기도 했으니까.
“저라고 말 안 해봤겠습니까. 너보다 아름다운 부인이 많다고. 이제 와서 네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고. 이미 몇 번이나 말해봤습니다.”
차승현은 또 한 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죽을 만큼 좋아한다는데.”
유현아가 나를?
“워낙 정이 많은 아이인 만큼 정에 끌리는 아이이기도 합니다……. 하기야 클랜 로드 정도 되는 남자가 그렇게나 소중하게 아껴 주시고 위해 주시는데, 넘어가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내가 유현아를?
“아무튼, 저도 이제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선전포고하듯이 말한 차승현은 앉았을 때처럼 힘차게 의자에서 일어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질질 끌지 말고 확실하게 답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어딘가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침 차를 들고 오던 임한나는 쿡쿡 웃으며 옆을 지나쳤다.
결국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의자에 푹 퍼지고 말았다.
도대체 어느 놈이 미래를 이렇게 엿 같이 바꾼…….
“……나네.”
아, 그냥 쉬고 싶다.
이대로 눈을 감아서 잠들고 싶다.
그리고 일어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 기대는 오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무참히 깨졌다.
차승현이 떠난 방향에서 갑자기 우다다다 달려오는 기척이 느껴졌으니까.
불침 맞은 망아지처럼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여인의 정체는 유현아였다.
그새 어디서 눈물을 쏟았는지 두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머리 아프다고.
좀 쉬게 해줘.
“수, 수현 님!”
수현 님?
호칭은 또 왜 저래?
“저, 정말이에요?”
뭐가?
그런데 이제 뭔 말을 들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아.
“정말로 저랑 같이 저녁 먹고 싶다고 하셨어요?”
“예? 제가 언제요?”
“에……. 승현이 오빠가 방금 수현 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아니요. 그런 말은 전혀…….”
그러고 보니 차승현이 먼빛에서 몰래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일생일대의 승부를 지켜보듯 몹시 긴장하면서 절박한 표정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는 사실 맞습니다. 예. 그랬어요.”
본능에 따라 말을 바꾸고 말았다.
유현아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다, 단 둘이서요?”
“어. 뭐…….”
“같이 밥도 먹고, 그, 그리고…….”
“예에……?”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나.
덩달아 눈도 커졌다.
“진짜로요? 정말로요?”
마지못해 끄덕끄덕.
“와!”
유현아는 폴짝 뛰며 기뻐했다.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손뼉까지 치며 활짝 웃어 보였다.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얼굴.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녀의 해맑은 미소였다.
방방 뛰던 유현아는 문득 아차 하더니 다급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외쳤다.
“자, 잠깐만요! 한 시간! 아니 삼십 분! 아니 십오 분!”
해는 아직 중천에 걸려 있었다.
즉 저녁이 되려면 멀었다.
그 사실을 알려주려고 했을 때 유현아는 이미 계단을 빛과 같은 속도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잠시 후, 위에서 “연주 언니! 저 승부 옷 좀 빌려주세요!” 라는 외침이나 “빌려주는 건 상관없지만, 가슴 부분이 헐렁할 텐데.” 라는 담담한 말소리가 들렸다.
나 참.
돌아오자마자 한다는 게…….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불현듯 소슬한 음성이 귓전을 울렸다.
시끄럽던 속내가 단숨에 가라앉을 정도로 고요한 음색이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화정이 곱지 않은 눈초리로 날 보고 있었다.
“왜 굳이 미래를 두 번이나 바꾼 거야?”
“응?”
“인간 암컷 하나 더 늘리고 싶은 거였으면 첫 만남 때로만 돌아갔으면 되는 거 아니었어?”
“……왜 그러냐.”
인간 암컷 하나 더 늘리기 위해서라니.
난 순수한 의도였다고.
하지만 진심을 토로해봤자 믿어줄 것 같지도 않고, 사실 할 말도 없어서 괜스레 창 너머를 바라봤다.
햇살로 가득한 정원을 보며 낮게 입을 열었다.
“그대로 덮고 넘어가기 싫었거든. 정말로 괜찮아지고 싶었으니까.”
“정말로 괜찮아지도록?”
“그래. 맞아. 아예 없던 일로 하기보다는 한 번쯤은 제대로 마주하고 싶었어. 적어도 나는 잊지 않으려고.”
“……흐응. 별일이네.”
뜻밖에도 화정의 목소리가 조금이지만 누그러졌다.
그러더니 내게 다가와 품으로 살며시 머리를 기댔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화정이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느낌이었다.
난 따뜻한 그녀의 정수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래서 어때?”
화정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말을 이었다.
“미래를 바꾼 소감은.”
“……글쎄.”
소감이라.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머릿속은 계속 새로운 기억들이 날아다니고, 혼란은 가시질 않는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눈에 보이는 사방은 예전처럼 그대로였다.
안현은 여전히 두 여인에게 둘러싸여 울상을 짓고 있다.
위층은 유현아가 뛰어 올라갔을 때부터 시끌시끌하다.
다시 돌아온 일상의 풍경은 맑으면서도 평화로웠다.
언제나처럼.
“뭐.”
문득 까닭없는 웃음이 나왔다.
아무 이유 없는 웃음이었다.
살그머니 날 올려다보는 화정을 끌어안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 부신 빛을 내리쬐는 해는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괜찮네.”
축복과도 같은 햇살을 받으며 난 조용히 미소 지었다.
외전 에필로그(完).
============================ 작품 후기 ============================
이렇게 외전 에필로그까지도 무사히 마쳤네요.
네. 끝났습니다. 끝났어요.
이렇게 끝내고 환호성을 지를 생각이었는데…….
그런데…….
OTL.
죄송합니다.
비비앙 외전.
단도직입으로 말씀드리면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가끔 코멘트에 비비앙 외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단순히 플래그 회수가 안 돼 아쉬운 마음에 올리시는 건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코멘트를 보다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고 말씀하시는 코멘트를 봤고,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리둥절했는데, 이전 후기를 넘겨보니 정말로 제가 예전에 적은 내용이 있었더군요.
비비앙 외전은 에필로그가 끝난 다음에 진행하겠다.
그리고 설정상 무리가 있겠지만, 독자님들이 괜찮으시다면 현대를 배경으로 적고 싶다.
이렇게요. ㅜ.ㅠ
비비앙 외전은 중간 고사 시험 전후로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사실 메모라이즈를 생각할 때마다, 제 마음 속에는 어서 빨리 끝내야 한다는, 일종의 쫓기는 감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왜냐면 애초 2월 안에 끝내겠다고 한 게 5월까지 이어지기도 했고, 이북 작업도 남아 있으며, 무엇보다 빨리 신작을 쓰고 싶다는 욕심에 차 있었거든요.
어느 분들 말씀대로 메모라이즈 외전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는 건 저도 원치 않았으며, 하루라도 빨리 새 작업에 착수하고 싶었습니다.
거기다 빡빡한 대학 생활까지 겹쳐 있다 보니 어느새 비비앙 외전은 제 머릿속에서 삭제돼 있었네요.
구차한 변명밖에 되지 못하지만, 잊고 있었던 점, 그리고 독자분들이 오해하게 해드린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_(__)_
그리고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심했습니다.
메모라이즈가 이 이상 길어지는 걸 원치 않으시는 독자분들이 계시는 점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 후기로 확실하게 쓰겠다고 말씀드렸던 이상, 약속을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한 번 무단 연재 중단으로 잠수를 타서 독자분들께 배신감을 안겨드렸었는데, 이 이상 거짓말쟁이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비비앙 외전까지 확실하게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비비앙 외전은 김수현 옴니버스처럼 길지도 않고, 7, 8편이면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끝내겠으니 독자님들께는 부디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
남은 비비앙 연재 계획은 차후 공지사항이나 코멘트로 알려드릴게요.
이래저래 마음이 착잡하네요.
정신머리 단단히 붙잡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