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62
01061 9. 비비앙 외전(현대) =========================================================================
다음 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 저물었다.
늦은 오후가 되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은 비비앙은 차분히 방송을 켰다.
어제부터 하나씩 검사하며 사소한 것까지 점검한 만큼 준비는 완벽하다.
남은 건 계획이 제대로 굴러가는 걸 바랄 뿐.
크게 심호흡한 비비앙은 오늘따라 유난히 힘이 들어간 손가락으로 ON 버튼을 눌렀다.
그녀의 방송에 불이 들어왔다.
‘Genius Alchemist’는 끝나는 시간은 조금씩 다르지만, 켜지는 시간은 항상 같다.
미리 대기하던 고정 시청자들은 방송국에 불이 들어오니 기다렸다는 듯이 입장했다.
이제 막 켰는데도 벌써 기백 명에 가까운 인원이 접속했다.
호호코코2(HoHoKoKo2) : 오오! 켜졌다 ㅎㅎ
요피(OpOpLove) : 캬, 방송 켜는 시간은 여전히 칼 같으시네.
마로(TwoMaro) : 안녕하세요.
나는야 섹스(Magician Hunter) : 섹스.
채팅창이 열리니 상호 안면이 있는 시청자는 서로 안부를 물었다.
비비앙은 방송 내 친목을 금지하는 성격은 아니어서 채팅창 분위기는 꽤 친근한 편이었다.
KSH♡HSY(CEO – SY Group) : 이 방송 도대체 왜 보는지 모르겠네……. 진심으로 이해 안 감;
물론 어딜 가나 어그로는 있었다.
요피(OpOpLove) : ……저 어그로는 또 누구지?
KSH♡HSY(CEO – SY Group) : ? ㅗ;
요피(OpOpLove) : 아니, 뭔 이해가 가니 안 가니야. 아직 방송 시작 전이고만.
KSH♡HSY(CEO – SY Group) : ㅗㅗㅗㅗ
요피(OpOpLove) : 병신이네.
호호코코2(HoHoKoKo2) : 어그로는 무시가 답이죠~.
마로(TwoMaro) : 맞습니다. 전 이미 개인 차단했습니다.
요피(OpOpLove) : 쩝; 저도 그럴까 봐요.
나는야 섹스(Magician Hunter) : 섹스.
호호코코2(HoHoKoKo2) : 그나저나 요피 님 오늘은 바로 오셨네요. 한 이틀 안 보이시던데 ㄷㄷ
요피(OpOpLove) : 아, 얼마 전 생일이어서요. 부어라 마셔라 하다가, 숙취 때문에 단단히 고생했습니다.
마로(TwoMaro) : 이상하네요. 시청자가 왜 갑자기 늘어나지?
그 말대로였다.
아직 오 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인원은 무려 일천 명에 육박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비비앙이 인기 방송인이라고 해도 평소보다 높은 페이스였다.
호호코코2(HoHoKoKo2) : 어라, 그러고 보니…….
나는야 섹스(Magician Hunter) : 섹스?
해답은 화면 상단에 흐르는 짧은 문구에 있었다.
『첫 합동 방송! 남자 게스트 출연!』
비비앙은 방송을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합동 방송을 진행한 적이 없다.
순위권에 드는 방송인인 만큼 같이 방송하자는 요청이 무수히 쇄도했었으나, 이제껏 모조리 거절했었다.
그랬었던 그녀가 처음으로 합동 방송을 예고했으니 철새 시청자도 호기심이 동한 것이다.
십 분이 지났을 무렵, 시청자는 기하급수로 늘어나 사천 명에 육박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오천 명이 넘어갔을 때 비로소 영상에 비비앙이 나타났다.
“여러분 안녕! 위대한 연금술사 비비앙의 방송에 온 걸 환영해!”
낭랑한 목소리로 인사한 비비앙이 해맑게 손을 흔들었다.
게스트가 누군지 격렬하게 갑론을박 중이던 시청자들은, 어서 정체를 밝히라고 채팅창을 도배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야, 벌써 시청자가 이만큼이나?”
호호코코2(HoHoKoKo2) : 비비앙 님. 오늘 게스트 누구예요?
“후후…….”
상큼한 라면(Summer97) : 누구야? 누구지?
“글쎄, 아마 깜짝 놀랄걸? 자자, 곧 밝힐 테니까 좀 기다려들 보쇼!”
요피(OpOpLove) : 누군데요?
“이 사람들아. 좀 기다리라니까?”
마로(TwoMaro) : 그러니까 누굽니까?
“잠깐, 그러니까.”
Liverpool(NoBigClub) : 아 빨리 좀 하지; 졸라 뜸 들이네;
“…….”
벌써 3년(Ujoara) :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이런 사람 있음. 이북 계약을 2013년에 맺었는데, 아직도 원고를 안 줌.
『로유진(WildBear) 님이 퇴장했습니다.』
“아니이이! 이제 겨우 방송 시작했는데, 뭔 벌써 정체를 밝히라고 난리야!”
참고 참던 비비앙이 와락 폭발했다.
KSH♡HSY(CEO – SY Group) : 사람 안달 나게 하는 걸 즐기나? 성격 이상한 듯;
“뭐? 누가 안 밝힌다고 했냐!? 좀 기다리라고 했잖아!”
누리꾼(zjstpqfj82) : 등의 반응을 보였다.
“……안 해! 나 안 한다! 안 밝힐 거야!! 기분 단단히 상했으니까……!”
벌컥 화를 내는 비비앙.
하지만 시청자는 이미 그녀의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
『마로(TwoMaro) 님이 금화 100개를 선물했습니다!』
“아이고~! 마로 님 금화 일백 개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데려오겠습니다!”
순식간에 이뤄진 태세 전환에 채팅이 왁자해졌다.
비비앙에게 있어서 오늘은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방송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하나씩 차분하게 진행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서두르게 됐다.
하지만 꼭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반은 장난이라손 쳐도, 시청자도 그만큼 달아올랐다는 방증이니까.
‘아직 초반이니 빠르게 진행하는 것도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한 비비앙은 곧바로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외쳤다.
“들어와!”
방문이 벌컥 열렸다.
동시에 게스트도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 순간, 시청자들은 멋쩍은 얼굴로 걸어오는 김수현을 보고 한 번 놀랐고.
“소개하겠습니다! 오늘의 게스트는, 별들의 전쟁 십 강! 바로~! 머셔너리 로드!”
비비앙의 외침이 이어졌을 때 두 번 놀랐다.
“안녕하세요. 머셔너리 로드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컴퓨터 앞까지 걸어간 김수현은 카메라를 보고 꾸벅 인사했다.
요피(OpOpLove) : 헐?
火正(EternalFire) : ?
Liverpool(NoBigClub) : 허……. 존잘이네; 남자인데도 심장이 쿵쿵!
상큼한 라면(Summer97) : 와 ㅠㅠㅠㅠ 너무 잘생겼다 ㅠㅠㅠㅠ
火正(EternalFire) : 뭐야? 쟤가 여기 왜 나와?
마로(TwoMaro) : 잠깐만요. 머셔너리 로드? 십 강이라면, 설마 치터?
채팅창이 폭발했다.
물론 십 강이라는 점 말고도 논란이 있었다.
요피(OpOpLove) : 캬……. 이쯤 되면 저분 여친도 궁금해지는 각인데.
상큼한 라면(Summer97) : 없으면 좋겠다~.
火正(EternalFire) : 있음.
상큼한 라면(Summer97) : 하긴……. 크흡. 그럼 그 언니도 여신이겠죠 ㅠㅠㅠㅠ
火正(EternalFire) : ㅇㅇ
KSH♡HSY(CEO – SY Group) : ㄴㄴ; 신 따위가 어떻게 인간이랑 사귐? ㅋㅋ
火正(EternalFire) : 뭐? 신 따위? 너 말 다 했냐?
KSH♡HSY(CEO – SY Group) : 뭐래 ㅋ
채팅창은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일 초에 거의 한 페이지씩 넘어가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격렬한 반응에 김수현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비비앙은 자못 거만한 얼굴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 이왕 이렇게 된 거 빠르게 증명할까?”
“증명?”
“네가 치터가 아니라는 거.”
“치터 아니라니까?”
김수현은 몹시 억울하다는 듯이 반박했다.
씩 웃은 비비앙은 카메라를 조정하며 컴퓨터를 가리켰다.
“네가 아무리 아니라고 외쳐도 시청자는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못 믿어. 아니, 안 믿어. 그러니까 보여줘.”
등장한 이후, 방송은 확실히 필요 이상으로 과열돼 있었다.
이 분위기를 식히려면 먼저 정말로 십 강의 칠 등인 머셔너리 로드가 맞는다는 점.
그리고 핵을 쓰지 않는다는, 치터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오자마자 게임이냐.”
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김수현은 기꺼이 자리에 앉았다.
별들의 전쟁에 접속해 머셔너리 로드가 맞는다는 걸 보여주고, 곧바로 게임을 돌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첫 번째 게임이 끝났을 때, 채팅창 분위기는 조금이지만 가라앉아 있었다.
결과는 승리.
일방적인 경기였다.
거미 영웅 비비안을 선택하더니 삼십팔 킬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으로 게임을 끝냈다.
“어……. 더 돌려볼까요?”
하지만 김수현은 멈추지 않고 자청해서 계속 게임을 돌렸다.
한 판 정도로는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을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판에는 수라 무사 공찬.
세 번째 판에는 붉은 암사자 류정.
네 번째 판에는 찌찌 궁수, 아니 포레스트 헌터 한나.
다섯 번째 판에는 빛의 예언자 솔.
총 다섯 게임을 돌린 김수현은, 무시무시한 실력을 뽐내며 모든 경기에서 이겼다.
특히 마지막 판에서는 현직 프로게이머인 십 강이 등장했는데, 보조 영웅인 솔로 압도적으로 이겨 버려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경기 내내 비비앙이 화면은 물론, 김수현의 전신이 나오도록 카메라 방향을 돌렸던 터라 더 의심하려야 할 수도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김수현은 빙긋 웃으며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중간중간 시청자 반응을 확인하던 비비앙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채팅창은 여전히 흥분의 도가니였다.
거기다 방송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두 시간이 지났건만, 시청자는 벌써 육만 명을 넘었다.
김수현이 등장한 후 입장 인원이 수직에 가까운 곡선을 그린 것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흥행이요, 유례없는 성적이다.
그러나 싱글벙글 웃던 비비앙은 문득 고개를 휘휘 흔들었다.
‘정신 차리자!’
방송이 잘 되는 건 부수적인 이득에 불과하다.
정작 성공해야 할 건 따로 있었다.
비비앙은 심호흡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팔짱을 끼며 김수현의 옆에 앉는다.
“실력 증명은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분명히 치터 논란은 쑥 들어갔다.
단지 김수현을 찬양하는 채팅이나, 저 남자가 내 남편이니 내 남자 친구니 등등 격렬하게 싸우는 채팅으로 창이 주야장천 어지러울 뿐.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오늘 합동 방송을 계획한 이유는 간단해. 내가 근래 실력 상승 코너를 진행……. 아이 씨, 얘네 뭐야? 뭔 김칫국을 사발로 들이켜네.”
『火正(EternalFire) 님이 강제 퇴장당했습니다.』
『KSH♡HSY(CEO – SY Group) 님이 강제 퇴장당했습니다.』
약간 짜증 난 얼굴을 한 비비앙은, 마우스를 잡고 가장 심하게 어그로를 끄는 시청자 두 명을 쫓아냈다.
그러자 쾅, 어디서 갑자기 벽을 세게 치는 소음이 울렸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랬는데. 실은 요즘 실력이 크게 늘지 않는 것 같아서. 벽에 막혔다고나 할까? 결국, 가르쳐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여기 머셔너리 로드한테 부탁하게 된 거야.”
완벽한 각본.
“물론 이게 끝은 아니야. 너희가 게임만 하는 건 지루하다고 했잖아? 사실 난 잘 모르겠지만, 너희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뭐. 어쨌든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벌칙이라는 요소를 섞으려고 해.”
완벽한 연기.
“정리하자면 머셔너리 로드는 선생님, 난 학생인 거지. 가르침을 받고, 만족할만한 성적이 안 나오면 벌을 받는 거야.”
물 흐르는 듯한 진행.
그리고 이제 남은 건…….
“그래서…….”
비비앙은 화면에 집중하는 김수현의 얼굴을 곁눈질로 힐끗거렸다.
“그 벌칙이라는 거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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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묻혀
내 타자 소리는 아직 노래가 아니오.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좁은 원룸 안에서
숨막힐 듯 두드리는 키보드.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