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64
01063 9. 비비앙 외전(현대) =========================================================================
“뭐야~. 빨리 끝내자니까?”
직전까지 무덤덤하던 목소리에 조금이지만 조바심이 섞였다.
비비앙은 재차 뒤를 돌아보며 재촉하는 눈빛을 빛냈다.
“잠깐만.”
김수현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벌칙을 정한 것까지는 좋은데……. 몇 대 맞을지는 아직 안 정했잖아?”
“뭐, 뭐라고?”
비비앙은 예상치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두 눈을 깜빡거렸다.
“뭔 소리야? 한 번 죽었으니까 한 대만 맞으면 되잖아!”
“아니야, 아니지.”
김수현은 비비앙이 그랬었던 것처럼 검지를 까딱거렸다.
“별들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용자가 조종하는 영웅이 얼마나 덜 죽느냐. 어쩔 수 없이 죽었다고 해도 봐줄 수 없는데, 넌 무려 실수로 죽었잖아?”
굳이 주지 않아도 될 킬을 줬으니 훨씬 심각하다는 어조였다.
“……어쩌라는 건데?”
“그러니까.”
잠깐 턱을 매만지며 흐음, 흐음 하던 김수현은 살그머니 말을 이었다.
“일 데스 당 한 대는 너무 약하고, 한 다섯 대 정도면 적당할 것 같거든?”
다음 순간 입을 헤벌쭉 벌리려던 비비앙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그, 그건 너무 심하잖아! 안 돼!”
“그걸 정하는 건 네가 아니지. 시청자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수현이 카메라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채팅창은 ‘Yes!’ 라는 말로 도배됐다.
‘Genius Alchemist’의 시청자들은 비비앙이 울수록 기뻐하는, 청개구리 같은 성격이었다.
“……마음대로 해.”
약간 화난 듯이 말한 비비앙은 휙 고개 돌렸다.
그러나 벽을 바라보는 그녀의 속내에는 기대가 한층 고개를 드는 중이었다.
안 그래도 한 대만 맞는 상황이 아쉬웠는데, 김수현 덕분에 다섯 대나 맞을 수 있다.
‘드디어, 드디어……!’
콧김을 푹푹 뿜는 가운데, 문득 벽으로 음험한 그림자가 그늘졌다.
동시에 오른쪽 볼기를 살살 쓰다듬는 억센 손길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펄쩍 뛴 비비앙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뭐하는 거야?”
“응?”
“때, 때리랬지 누가 만지라고……!”
“걱정하지 마. 내 몸에 가려서 카메라에는 안 보일 테니까. 그나저나 감촉 한 번 좋네. 모양도 예쁘고, 살결도 탄력적이면서도 적당히 부드럽고…….”
김수현은 정말로 감탄하는 중이었다.
비비앙은 까닭 모를 수치심에 콧잔등이 붉어졌다.
“적당히 해. 이러는 거 성희롱이니까…….”
김수현은 마이크에 들리지 않도록 소곤거리는 말소리에 피식 웃었다.
“성희롱?”
그러더니 스치듯 만지던 볼기를 느닷없이 우악스럽게 쥐었다.
갑자기 엉덩잇살이 꽉 잡히자, 비비앙은 악 소리를 지를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
반사적으로 허벅지가 오므려지고, 둔부는 깡충 치켜졌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힘이 쭉 빠지며 소중한 곳이 욱신거리기까지 한다.
단순히 세게 움켜쥐어졌을 뿐인데.
비비앙은 이를 악물었다.
“때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런 반응을……. 너무 음란하잖아?”
“아니야!”
비비앙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그녀의 허리는 자꾸만 젖혀지려고 하고, 엉덩이는 서서히 달아올라 부르르 떨리는 중이었다.
그때 엉덩이를 부서지라 잡던 손아귀가 돌연히 풀어졌다.
겨우 참았던 숨을 토하며 헐떡거리던 비비앙은 귓불을 간질이는 숨결에 흠칫 몸을 떨었다.
“굉장하네. 에스피니온의 공주님이었던 고귀한 여인이 고작 엉덩이 좀 만져졌다고 흥분하다니…….”
반쯤 감겼던 비비앙의 두 눈이 화들짝 떠졌다.
멸망한 지 수백 년이 지났으나 한때 소환으로 명성을 떨쳤었던 강국, 에스피니온.
에스피니온을 대대로 지배했었던 왕족, 라 클라시더스.
그리고 지금 벽을 짚고 헐떡거리는 여성의 성명이 바로 비비앙 라 클라시더스다.
“너……! 어떻게……?”
“우연히 알게 됐지. 뮬의 작은 도서관에도 볼 건 있더라고. 아마 에스피니온의 흥망성쇠라는 기록이었지…….”
김수현은 여전히 비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왕가의 유일한 외동딸이며 차기 여왕으로 모든 국민의 지지를 받던 사랑스러운 공주는, 성인식을 치르던 날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였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과거가 들춰지니 비비앙의 낯빛에 은근한 분노가 서렸다.
“옛날 일이야. 그리고 내 발로 외도를 선택했을 때부터 공주라는 신분 따위는 버렸어.”
칼날처럼 예리하고 단호한 말투.
비비앙으로서는 드문, 과연 차기 여왕이라고 할 만한 기개 넘치는 목소리였다.
“뭐 그렇기는 해.”
김수현도 순순히 수긍했다.
“하지만……. 그 이후는……?”
“뭐?”
“66 마수 군단의 소환자로서……. 북 대륙의 경외를 받던 위대한 연금술사는……?”
“!”
정신이 번쩍 드는 속삭임이었다.
평소라면 당연한 소리라며 콧대를 세웠을 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벽을 짚고 엉덩이를 내밀고 있는 상황과 수치스러운 말이 오고 가는 가운데, 비비앙은 돌연히 분하다는 기분을 느꼈다.
자의식이 강하며 항상 자신감 넘치는 그녀로서는 으레 느낄 법한 모욕이요, 굴욕이다.
그리고 그 심정은 자존감과 어우러져 묘한 배덕 감을 느끼게 했다.
두 감정의 충돌 속에서 뜻 모를 갈등에 시달리던 비비앙은 차분히 심호흡했다.
이내 착 가라앉은 눈동자로 김수현을 바라봤다.
“관둬. 그런 옛날 일 따위……. 네가 아무리 그런다고 해도 발끈할 생각도 없고, 흔들리지도 않아.”
그렇게 말한 비비앙은 도리어 빈정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도도하고 차가운 웃음으로 상대를 조소한다.
“방송이니까, 방송을 위해서니까. 네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 거야.”
“……그래?”
“그래. 뭐 네 마음대로 지껄여도 상관없으니까. 아니, 어디 한 번 계속 해봐. 도발.”
“과연. 그래도 에스피니온의 차기 여왕이라는 건가……. 기대되는데? 그 용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김수현이 킬킬거리며 스리슬쩍 떨어졌다.
비비앙은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흥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외쳤다.
“됐으니까 빨리 끝내기나……!”
그 순간이었다.
찰싹!
찰나의 순간, 물에 흠뻑 젖은 가죽을 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히이이익!”
동시에 악문 입술에서 추잡한 비명이 터졌다.
아니.
거의 신음에 가까운 교성이었다.
갑작스러운 기습.
불시에 찾아온 고통에 몸부림치던 비비앙은, 왼쪽 엉덩이가 화끈거리는 걸 느끼곤 입을 벌렸다.
얼얼하다.
그리고 뜨겁다.
화상이라도 입은 듯 불에 지글지글 지져지는 것 같다.
바지를 벗고 보면 볼기는 분명히 발그스름하게 부풀었을 것이다.
어쩌면 새빨간 손자국이 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렇게 아픈데.
그런데…….
짝!
미처 진정하기도 전에 또 한 번 끈적한 소음이 터졌다.
“하아아악!”
비비앙은 있는 대로 턱을 젖히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얼마나 강하게 때렸는지 토실토실한 엉덩잇살이 접시에 얹은 푸딩처럼 부르르 흔들렸다.
“아윽……. 응아…….”
시야가 하얗게 변할 정도의 아픔에 비비앙은 눈물을 찔끔거렸다.
한편으로는 뭔가 오묘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아프지만, 맞을수록 뭔가가 툭툭 터지며 해방되는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이 엄습한다.
자극이 강할수록 둔부에 알 듯 말 듯하게 넘실거리는 감각은 그야말로 이율배반적이었다.
철썩!
“흐아아앙!”
오른쪽 엉덩이만 세 번이나 맞았을 때, 비비앙은 겨우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손바닥과 살이 부딪치는 순간 통증은 짜릿한 전류처럼 변해 온몸에 짜르르 퍼졌다.
그 통증은 곧바로 피를 끓게 하는 쾌감이 더해져서 한 점으로 물 흐르듯이 집중된다.
그녀의 가장 소중한 곳으로.
“아앙……. 하앙…….”
숨을 몰아쉬는 비비앙이 드디어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랫배는 소변을 극도로 참은 것처럼 찡하게 울린다.
하복부는 저릿저릿해서 서 있기도 힘들다.
몸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자세는 완전히 흐트러져 벽에 기대고 있다.
거기다 발꿈치는 어느새 꼿꼿하게 세워져 엉덩이를 쭉 내밀고 있었다.
더, 더 세게 때리라는 것처럼.
비비앙은 처음 맛보는 신선하고도 생소한 감각에 거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상태였다.
“하.”
김수현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제 겨우 세 대인데……. 그렇게 자신하더니, 겨우 이 정도였나? 아까의 기개는 어디로 간 거지? 응?”
“아니……!”
“벌써 이러면 실망인데……. 아니면 정말로 변태처럼 엉덩이를 맞고 싶었던 건가?”
“그, 그렇지 않아……!”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비비앙을 매도하던 김수현은, 문득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비비앙. 지금 몇 명이나 보고 있는 줄 알아?”
“으, 응?”
“십일만 명.”
“십, 십일만 명!?”
상상을 뛰어넘는 수치에 비비앙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오만 명 언저리였는데, 오늘 방송으로 두 배가 넘는 최고 시청자 수를 찍었다.
“상상해봐. 넌 현재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는 거라고…….”
꿈결에 들리는 것처럼 은근한 음성이 귓전에 흘렀다.
비비앙은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눈을 감았다.
“십일만 명 전원이 널 보고 있어…….”
안 그러려고 하는데, 자꾸만 상상이 된다.
거대한 공간에서 무려 십만 명이 넘는 인원이 에워싸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모두의 눈초리 속에서 엉덩이를 맞으며 헐떡거리는…….
“아, 아니야아아아!”
다음 순간 비비앙은 있는 힘껏 소리 질렀다.
굴욕과 수치라는 감정이 가일층 증폭되자, 아직 희미하게 남은 긍지가 반발한 것이다.
아직 기세등등한 모습이 김수현은 탄성을 질렀다.
“오?”
“큭……! 닥쳐! 그 입 닥쳐! 더 말하지 말란 말이야!”
“아깐 마음대로 말하라며?”
“시끄러워! 지지 않아! 난 이런 것 따위에……!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테니까-!”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발악하듯이 고함친다.
그 의기는 확실히 장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쫙!
“캬아아앙!”
앞선 세 번보다 곱절은 강렬한 타격에 신념은 물보라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신음 한 번 특이하네. 발정 난 암고양이 같아.”
김수현은 낄낄거리며 이죽거렸다.
그러나 비비앙은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넋을 놓고 있었다.
엉덩이에서 샘솟는 통증.
통증은 아프면서도 찌릿찌릿한 기분 좋은 쾌락으로 변해서 둔부에 용암처럼 넘쳤다.
덕분에 일그러진 얼굴에는 계속 바보 같은 표정이 지어지고, 혀는 자꾸만 입 밖으로 새어나오려고 한다.
하물며 침은 이미 줄줄이 흐르고 있었다.
‘아……. 안 돼……. 나……. 정말로 이상해져…….’
몸 상태를 느낀 비비앙은 울상을 지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러고 보니 왼쪽 엉덩이만 때렸는데……. 이제 한 대 남았잖아?”
그러고 보니 그랬다.
김수현은 이제껏 계속 왼쪽 볼기만 때렸다.
한 쪽만 맞으니 균형이 맞지 않는 기분이 들어서 약간 불만족스러웠었다.
안 그래도 욱신욱신한 성기가 어딘가 모르게 갑갑했었다.
어째서 오른쪽은 때리지 않는 걸까.
“오른쪽도……. 때릴까?”
공교롭게도 김수현이 말을 흐리며 오른쪽 궁둥이에 닿을 듯 말 듯 검지를 움직였다.
선을 따라 움직이는 손가락의 감각에 비비앙은 본능에 따라 허벅지를 꼬았다.
오른쪽도 왼쪽처럼 뜨겁고 얼얼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몇 배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맞는 순간, 음부를 괴롭히는 꽉 막힌 듯한 감각이 뻥 폭발해 터질 것 같다.
그때 느끼는 해방감은 얼마나 짜릿하고 황홀할까?
입은 아니라고 외치지만, 몸은 정직했다.
실룩샐룩 움직이는 엉덩이를 보며 김수현은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어서 때리라고 시위하는 거냐?”
비비앙은 뺨을 붉히며 붉은 입술을 꼭 물었다.
숫제 시선을 돌려 버렸다.
여기서 아니라고 부정하면 김수현은 정말로 때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고도 남을 성격이었다.
그러나 김수현은 역시 녹록하지 않았다.
“말을 해, 말을.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 왼쪽? 오른쪽?”
기어코 대답을 듣겠다는 듯 강요하고 압박한다.
“대답 안 해? 아니면……. 여기서 멈출까?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아!”
둔부를 자극하던 촉감이 사라지니 비비앙은 반사적으로 눈을 도로 떴다.
애원하는, 애타는 눈동자로 김수현을 돌아본 순간이었다.
“?”
이상하다.
뭔가 이상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심취했던 김수현의 낯에 망연한 기색이 그늘져 있다.
휘둥그레진 두 눈은 멍하니 한 곳만 응시한다.
천천히 보는 방향을 따라가던 비비앙은, 컴퓨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내 화면을 확인한 순간, 그녀는 뜨겁게 달궈졌던 몸이 순간적으로 식는 걸 느꼈다.
컴퓨터 화면에는 어느새 방송이 꺼져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영상 대신, 한 문구가 떠올라 있었다.
『방송 정지(사유 : 음란물 공연).』
잠시 후.
“흑……!”
비비앙은 울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