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8
00108 같은 질문, 다른 결과 =========================================================================
그녀의 처연한 음성이 들린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겉으로는 마음을 정리하는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어디까지나 보여주는 연기. 잠시 숨을 고른 나는 비장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소중한 이들을 잃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이 말을 할까 말까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하기로 결정 했다. 이 말을 듣고 그녀가 사용자 정지연을 떠올릴 가능성은 적다. 지금은 내가 그녀의 물음에 답을 줄 시간 이었고, 손 아래로 느껴지는 의 흐름으로 보아 곧 지속 시간이 끝날것 같았다.
“그때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절망스럽습니다. 그 경험 이후, 그리고 이 빌어먹을 홀 플레인으로 들어온 이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죽을 힘을 다해 힘을 키우고 적응을 위해 노력 했습니다.”
“…….”
“힘을 키우고 싶었던건, 목숨을 해칠 수 있는 힘을 알면서도 받아 들인건…말 그대로 살고 싶었기 때문 입니다. 제 목표는 궁극적으로 두가지 입니다. 생존과 귀환. 이 홀 플레인 세상에서 생존하고 다시 지구로 귀환한다는 희망을 저는 아직 놓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혼자서 돌아가는건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애들을 바라 보았다. 안현의 얼굴이, 안솔의 얼굴이, 이유정의 얼굴이 보인다. 애들은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내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내 마음속의 진정한 소중한 이는 애들이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말과 진심에 불과한 일종의 애매한 장난. 나는 다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 그들을 죽게 놔두고 싶지 않습니다. 단 한번의 죽음도 없이 살아서 함께 지구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비록 제가 희생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소중한 이들을 살릴 수 있다면 저는 그 희생을 담담히 받아 들일 수 있을겁니다.”
“형….”
“오빠….”
“오라버니….”
의 불빛은 연했다. 여전히 연한 빛깔을 유지하며 피어오른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나는 속으로 친형인 김유현과 한소영을 떠올리며 말했으니까. 그리고 은 그런 내 진심을 담은 말을 진실로 판단 했다.
속마음은 이렇지만 어쨌든 지금 내 주변을 둘러싼 일행들은 그 소중한 사람들을 애들로 착각하고 있었다. 특히 나와 시선을 교환한 애들은 다들 탄성과 몽롱함이 뒤섞인 표정들 이었다. 미안하다 애들아. 그래도 너희들이 나를 따르는걸 결코 후회하지 않도록 해줄게.
정하연, 신상용, 비비앙도 매우 감탄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은 내 말이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는걸 증명 했다. 이로서 하고 싶은 말은 다 끝났다. 하지만 아직 수정구는 유지 되고 있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끝난 말에 나는 입맛을 다시고 다시 머리를 회전하려는 찰나였다.
그때 지금껏 조용히 듣고만 있던 신상용이 입을 열었다.
“하연씨. 이제 그만 합시다.”
“네, 네…?”
“지금껏 하신 질문들로 충분 하잖아요. 그러니 이제 그만 하자구요. 그리고 리더.”
신상용은 갑자기 말을 중단한 후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내가 말릴틈도 없이 그대로 몸을 엎드리며 머리를 바닥으로 박았다. 나름대로 세게 박았는지 “탁.” 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리더. 미안합니다. 잠깐이지만 당신을 의심 했습니다. 그래서 하연씨가 당신에게 을 꺼낼때 말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리더의 진심을 듣고난 후…얼마나 제가 어리석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오해가 풀려 다행 입니다.”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고, 제 부탁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마음 한켠에 생겼던 의심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오늘 이 말을 한 대가는 뮬로 돌아간 후 톡톡히 받을 생각 입니다. 그리고 그만 일어나세요. 지금 그런 모습 보이시는거 영 보기가 거슬리네요.”
내가 우울한 음성으로 입을 열자 신상용은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얼굴에는 후회라는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다시 시선을 돌리니 그런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정하연이 보인다. 신상용을 시작으로 그녀는 나를 비롯한 일행들 얼굴 전부를 훓어보다가, 비비앙 한테서 시선이 잠깐 멈췄다. 그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반짝이는 빛 하나가 스치고 지나간걸 볼 수 있었다.
“수…!”
“애들아.”
나는 재빨리 몸을 조금 돌린 후 애들을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막 내게 말을 걸려던 정하연은 흠칫한 얼굴로 침을 꼴깍 삼켰다. 그녀는 방금전 질문을 마지막이라고 했고, 여기서 더 나를 몰아 붙일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사람 좋은 신상용도 그만하라고 화를 내면서 말했다. 아마 한번 더 입을 연다면 그때는 정말로 일행들 모두의 분노를 살게 분명 했다.
애들은 모두 우물쭈물한 얼굴로 입만 오물거리고 있었다. 나는 정하연한테는 보여주지 않았던 차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평소에 궁금한거 있었으면 지금 물어봐.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잖니.”
내 물음에 안현과 유정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너희들이 질문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남는다고. 그런 내 마음속의 부르짖음을 들을리는 없고, 둘은 수줍은 어조로 내게 말했다.
“형. 모든 의문을 풀렸어요. 그리고 애초에 의심 하지도 않았구요. 오히려…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형.”
“나도나도. 거봐. 이럴줄 알았어. 우리 오빠가 속이긴 뭘 속여….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떡해….”
뒷말을 흐리며 입을 삐쭉이는 유정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 안되면 신상용과 비비앙도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안솔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방금전부터 몽롱한 눈길로 내 얼굴을 보고만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위험함(?)을 느끼고 비비앙으로 고개를 돌리려 할 찰나였다.
“저…오라버니….”
“어, 어?”
“저 오라버니한테 묻고 싶은게 있어요….”
하지마. 넌 하지마.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랬다가는 당장 울음을 터뜨릴 터. 거기다 다른 애들도 솔이의 질문을 사뭇 궁금해하는 분위기라 딱히 거절할 명분이 생각나지 않았다. 내 침묵을 멋대로 긍정으로 받아 들인 솔이는 이윽고 몸을 배배 꼬며 기어코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는…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쿨럭쿨럭!”
가만히 듣고 있던 안현이 거센 헛기침을 토했다. 나는 올것이 왔다는 생각에 입술을 질끈 깨물고 말았다. 하하. 어떻게 생각하긴. 철부지 없는 어린애에 항상 괴롭히고 울리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치게 만드는 애라고 생각해…하지만 이 속마음을 그대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
솔은 지금 엄청 용기를 낸듯 두 손을 꾹 쥔채 볼을 발갛게 물들인 상태였다. 대충 말을 뭉뚱그릴 생각으로 입을 열려고 하자 뜻하지 않은 원호가 들어왔다.
“어떻게 생각하긴. 항상 어린애 같은 행동으로 폐만 끼치고 뻑하면 울음만 터뜨리는 철부지. 넌 뭐 그런 질문으로 오빠를 곤란하게 만드니?”
“그래. 수현이 너무 곤란한 얼굴 이잖아. 그런 질문은 둘이 있는데서 하거나 아예 하지를 마. 때와 장소는 가릴줄 알아야지.”
유정과 비비앙은 나란히 솔이를 타겟으로 쏘아 붙이듯 말을 이었다. 구구절절 옳다고 내심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들의 말투는 필요 이상으로 뾰족하게 변해 있었다. 두 여성 사용자의 반박에 안솔은 아랫입술을 쑥 내밀었다.
“어, 언니들한테 물어본거 아니거든요.”
“요 꼬꼬맹이 어디서….”
“그만.”
나는 나지막한 음성으로 막 몸을 일으키는 유정이를 도로 자리에 앉혔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갈뻔 했지만 둘의 적절한 도움으로 위기를 타개할 수 있었다. 모두의 이목을 모은 상태서 나는 태연히 입을 열었다.
“솔이는 애가 참 착하고 순수해. 가끔 보면 깜짝 놀랄 만큼. 그리고…그런만큼 홀 플레인이라는 세상과는 잘 맞지 않아. 그건 사실이야.”
“헤에….”
“하지만 솔이는 사제 잖아. 나는 솔이를 짐덩이…보다는 항상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어.”
“그렇지만…저는 언니들 말대로 별 도움도 안되고…항상 떼만 부리고…울고….”
잘 알고 있군. 그러나 나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사제라는 직업과 솔이의 성격은 굉장히 궁합이 좋아. 나는 항상 솔이가 최고의 사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지금 그 마음만 유지할 수 있다면 너는 후에 분명히 최고의 사제가 될거야.”
그래. 너는 나중에 광휘의 사제(Brilliance Priest)될 몸이니까. 그때 가서는 정말 쓸모가 많을테니 지금은 내가 어르고 달래줄게. 나는 빙긋 웃으며 수정구를 잡아 위로 올렸다. 그리고 의 불꽃은 여전히 연한색으로 피어 오르고 있었다.
내 확답을 들은 안솔의 얼굴은 눈에 띄게 밝게 변했고, 안현도 신나는 얼굴로 허리를 꼿꼿하게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허공으로 들린 의 불꽃을 확인하니 서서히 사그라드는 불꽃의 모습이 보였다.
“아….”
전방에서 들리는 탄성에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는 정하연이 전전긍긍한 얼굴로 내 손에 들린 을 바라 보고 있었다. 그동안 계속해서 사그라들던 불꽃은 어느새 점이 되어 변하더니, 이윽고 의 수정구 겉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파사삭….
그 금은 순식간에 전면으로 퍼지더니 이내 한줌의 재가 되어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우수수 떨어지는 수정 가루를 정하연은 그저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모든 가루가 흩날리자, 그녀는 고개를 든 후 복잡한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기막힌 타이밍으로 고비 하나를 넘긴 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애들을 대하던 얼굴 표정을 곧바로 바꾼후 무심한 어조로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궁금증은 다 풀리셨습니까.”
“…네.”
한박자 늦게 나오기는 했지만 결국은 “네.” 라는 대답을 받아냈다. 에 손을 댄 상태로는 대답하기 곤란했지만, 유지 시간이 끝난 이상 얼마든지 변명할 거리는 있었다. 그리고 마침 애들도 모두 알고 있는 좋은 변명거리 하나도 있었고.
아무튼 중요한 일 하나를 일단락 지은 기분은 대단히 후련 했다. 더불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인 벨페고르도 처리 했으니 오늘은 정말로 최고의 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기분 좋을 일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그럼 이시간부로 저는 다시 캐러밴의 대장으로 활동 하겠습니다.”
“여부가 있나요.”
신상용의 명쾌한 대답에 고개를 한번 주억이고는 나는 몸을 일으켰다.
“지금껏 생각보다 오래 휴식을 취했으니 다시 움직일 생각 입니다. 다들 일어나세요.”
내 명령에 일행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하연은 뜻모를 한숨을 내쉬고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간 후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 일은 뮬로 돌아간 이후 정산 하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알겠어요. 그리고 죄송해요.”
그녀의 확답을 들은 후 나는 바로 몸을 돌렸다. 유정은 그 어느때보다 유쾌한 미소를 가득 띄운채로 내게 달려들었다.
“오빠. 그럼 이제 뮬로 돌아가는거야? 지금 출발하면 내일 모래쯤 도착하겠네?”
“아니. 오늘을 포함하면 돌아가는데 3일 정도 걸릴걸.”
“응? 왜?”
“지금은 조금 늦기도 했고. 그리고 오늘은 연구소에서 하루밤 더 지낼지도 몰라. 그렇게 알아둬.”
내 말에 일행들은 모두 의문 가득한 얼굴로 내게 시선을 모았다. 나는 방 밖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아까 벨페고르랑 싸울때 비밀 통로 하나를 발견 했거든.”
“비밀 통로요?”
“그래. 1층에서 놈을 발견 했을때 미친듯이 땅바닥을 긁고 있더군. 바닥 어딘가 지하로 통하는 문이 있는것 같다. 지금도 충분하긴 하지만 혹시 모르잖아. 그 비밀 장소에 더 큰 보물이 있을지.”
내 말에 애들은 다들 솔깃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단 한명 안솔은 예외였다. 그녀는 내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양 손으로 옷깃을 붙잡고 꾹꾹 매달렸다.
“오라버니이…우리 그냥 뮬로 가요…. 몸이 너무 걱정 돼요…네?”
나는 그런 솔의 볼을 부드럽게 매만져 주었다. 보드랍고 아직 젖살도 빠지지 않은 말랑한 볼살이 손에 살포시 잡혔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는건 아쉽잖아. 괜찮아. 어차피 이번에 뮬로 돌아가면 조금 오래동안 쉴 생각 이었거든.”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지금은 일단 가자. 가는게 힘든건 아니잖아. 이미 공략도 끝났고. 알겠지?”
“네에.”
착하게 내 말을 듣는 솔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나는 발길을 돌렸다. 어느새 일행들은 다들 대형을 잡은 상태였다. 나는 모두의 얼굴을 확인한 후 그대로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 그리고 방문을 나서며 나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 입니다.
사람을 알게 될 즈음 이별은 찾아 옵니다.
이별을 알게 될 즈음 사람은 찾아 옵니다.
음. 그런데요. 그런데 말입니다. 독자분들.
이별은 아름답다고 하긴 하는데, 그렇게 유쾌 하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괜한 넋두리를 했네요.
『 리리플 』
1. KIN뿅 : 1등 축하 드립니다. 잘 보셨다니 다행이네요. 🙂
2. 유운처럼 :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하하. 과연 누가 처음일까요?
3. 라구아 : 당연히 나옵니다. 다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 입니다.
4. 쿤라이 : 하하. 고맙습니다. 나중에 소개글을 쓸때 참고 하도록 하겠습니다.
5. 블라미 : 독자분들의 의견도 매우 갈리고, 저도 고민이 많습니다. 하하하. 생각해둔 바는 있지만, 어떻게 할지 확정은 되지 않았네요.
6. 風月主人 : 수정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그런걸 모두 계산해서 결과가 나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7. 아르테쿠스 : 에. 에. 위험 하시군요. 험험. 그러시면 아니 됩니다. 🙁
8. 초라한 : 아마 지금 상황을 간단히 넘겼으면 분명 나중에 질문 하시는 독자분들이 생길겁니다. 하하하. 저도 지금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게 낫다는 판단 아래 꿋꿋이 전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9. 휘을 : 하하. 맞으신 부분도 있습니다. 비비앙때를 생각하시면 더욱 정답에 가까워 지실것 같습니다.
10. 너초우너 : 첫 코멘트 이시군요! 하하하. 반갑습니다. 좋게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연참의 원동력이 됩니다.(이건 진리입니다.)
코멘트는 항상 전부 반복해서 읽고 있습니다.
리리플에 없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정 궁금하신 부분은 쪽지로 주시면 답변 드릴게요!
그럼 오늘은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글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비평, 질문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