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11
00111 어두운 과거 =========================================================================
탐험 출발 후 가는데 사흘. 폐허의 연구소를 탐험하는데 이틀. 뮬로 다시 돌아오는데 사흘. 통합 여드레만에 우리들은 귀환을 완료할 수 있었다. 마침 도착 시간대는 막 오후를 넘어서고 있었다. 비슷하게, 도사 주변의 탐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다른 사용자들은 우리들을 힐끗힐끗 보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마 일행들 모두 거지꼴을 면치 못하고 있어 어디를 다녀왔는지 궁금해 하는것 같았다.
그러나 다들 행색은 남루해도 얼굴들만은 밝았다. 이번 탐험에서 얻은게 많았기 때문인지 생생한 표정들로, 마치 개선 장군이 돌아오는듯한 분위기를 풍기고들 있었다. 이윽고 전방으로 여전히 초라해 보이는 북문이 보이자 유정은 신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으으…드디어 돌아왔다. 얼른 들어가서 따뜻한 음식 먹고 씻고 푹 누워서 자고 싶어.”
“헤에. 저두요오….”
안솔이 빙긋 웃으며 화답하자 그들의 대화를 듣던 안현은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목을 뻣뻣하게 세운게 내심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것 같았다. 나는 살짝 장난을 걸기로 했다.
“안현. 넌 돌아가서 뭐부터 할거니?”
현의 옆으로 가서 슬쩍 말을 건네자 그는 진중한 얼굴로 대답했다.
“당연히 수련부터 할 생각 입니다. 갓 탐험에서 돌아왔다고 먹고 놀고 잘 생각은 잘못된 생각 입니다.”
“아주 바람직한 태도군. 역시 레어 클래스 다운걸.”
“후후. 이정도면 보통 아니겠습니까.”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여는 안현. 그리고 옆편으로 유정과 안솔은 그를 한껏 노려보고 있었다. 이윽고, 한동안 씨근대다가 안현의 거드름을 피우는 표정을 참지 못한 유정은 결국 거친 한마디를 뱉고 말았다.
“놀고 있네. 니가 잘도 수련 하겠다. 돼지 같이 처먹기만 하겠지.”
유정의 강도 높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안현의 얼굴은 태연함 그 자체였다.
“흐음. 어디서 일반 사용자의 냄새가 나는군요. 그것도 질투가 섞인 아주 추악한 냄새 같네요. 아무래도 형과 비비앙 사이로 자리를 옮기는게 나을것 같습니다.”
안현이 아주 고상한 어조로 대꾸하자 순간 유정의 눈동자에서 불똥을 튀는걸 볼 수 있었다.
“미친놈. 병신 같은 놈.”
“어디서 질투에 미친 동물이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형. 그나저나 오늘따라 날이 아주 맑습니다. 하하하.”
“그래그래. 너희 둘다 그만해라.”
내 말에 안현은 여유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유정은 입술을 짓씹으며 이를 북북 가는 모습을 보였다. 어차피 살짝만 건드릴 생각이라 나는 둘 사이를 막으며 팔을 저었다. 신상용과 비비앙은 그런 애들의 모습을 보며 작게 웃었다.
나는 잠시 시선을 정하연 에게로 돌렸다. 그녀는 폐허의 연구소를 나온 이후 줄곧 멍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일행들은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그녀 또한 먼저 입을 여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토록 친하게 지내던 유정도 정하연을 이제 있는듯 없는듯 대하고 있었다.
솔직히 좋은 분위기로 볼 수는 없었다. 미우나 고우나 어쨌든 앞으로 나와 함께할 클랜원으로 낙점한 상태. 당분간 가족처럼 지내는건 무리라도 최소한 처음 뮬에서 만난 후 탐험을 출발할때 분위기는 나와야 한다. 더구나 이번 탐험 이후로 클랜 창설을 신청할 생각이므로 따지고보면 그녀 또한 클랜의 원년 멤버가 된다.
아무튼 오늘 하루는 푹 쉬고 내일이든 언제든 다음에 따로 이야기를 하는게 나을것 같았다. 탐험에서 돌아온것도 있지만 다음 탐험을 떠나기전 대부분의 일을 마치고 갈 예정이라 할 일은 엄청나게 많았다. 하지만 다들 시간만 투자하면 하나씩 차근히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고 정비로 인한 도시에 머무르는 기간도 길게 잡은 편 이었다.
피로를 호소하는 몸을 뒤틀며 나는 북문을 통과 했다. 옆에서 우렁차게 인사하는 경비병들의 경례 소리를 들으며 나는 첫 행선지를 여관으로 잡았다.
소도시 뮬에서 내가 찾는 여관은 언제나 똑같다. . 시설이 그렇게 좋은건 아니지만 쓸데없이 사용자들이 북적이지 않고(고연주에게 추근대는 사용자들은 예외로 두자.), 음식의 맛이 좋았다. 물론 그런 여관들은 얼마든지 있고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 하다. 내가 진정으로 그 여관에 가는 이유는 고연주의 영입 또는 살해였다. 그러고보니 슬슬 그녀를 처리할 시기도 다가오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그녀와 홀로 전투를 벌일수도 있다. 부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어느새 도착한 여관의 계단을 올랐다.
꾹 닫힌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침 테이블을 청소하는 고연주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꿀꺽.”
이건 안현이 침 삼키는 목소리. 그녀는 이미 인기척을 느꼈는지 시원하게 테이블을 훔치고 여유롭게 몸을 돌렸다. 곧이어 그녀는 내 얼굴을 확인한 후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어머. 오랜만 이에요.”
“오랜만 입니다.”
의 여관문을 들어선 나는 조금밖에 보이지 않는 사용자들을 보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러고보니 아마 이번달 안으로 부랑자들이 대거 숙청당할 것이다. 아직은 계획 단계에 있겠지만 이미 냄새를 맡은 사용자들은 서서히 북쪽 방면의 도시들을 떠나고 있었다.
고연주는 여전히 노출도 높은 옷을 입고 있었다. 가슴이 절반 이상 드러나는 V넥과 비슷한 상의와 무릎 위 매끈한 허벅지를 보여주는 하의 실종. 그녀는 오랜만의 손님에 사뭇 기쁘다는 얼굴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식사부터 하시겠어요…아니면 목욕? 아니면 저….”
오자마자 또 들이대는 고연주의 말을, 나는 피곤하다는 어조로 단칼에 끊었다.
“식사 후 씻는걸로 하겠습니다. 방은 이주일로 끊고, 특실로 3개 주세요. 식사는 항상 먹던걸로.”
“칫.”
그녀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것 같았지만, 그냥 넘어 가기로 했다. 옆에서 안현이 보내는 무언의 항의어린 시선을 받으며 우리들은 가까운 테이블로 자리를 잡았다. 곧이어 다들 의자가 삐걱이는 소리를 낼 정도로 크게 앉더니, 하나 같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근데 수현.”
“왜.”
“방은 왜 3개로 잡은거야? 2개면 충분 하잖아.”
“하나는 따로 할 일들이 있어서. 특실이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공간도 있거든.”
내 말에 비비앙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특실 하나는 내가 사용할 예정 이었다. 앞으로 처리할 일들도 많지만, 무엇보다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목함에 들어 있던 영약을 본 후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마 내 생각이 맞는다면, 최소한 체력 능력치를 1 포인트라도 올릴 수 있을것이다.
또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던 나는 바로 머리를 흔들었다. 오늘은 일단 쉬고 몸 회복에 전념 하기로 했으면서 또 일들을 떠올리다니. 아무래도 1회차에 항상 몸을 한계까지 몰아 붙였던 습관을 버리지 못한것 같았다.
애들은 어느새 대부분 목을 테이블에 걸치고 있었다. 그동안의 전투와 귀환할때의 강행군 때 누적된 피로들이 한번에 터진 모양이다. 도시 안에서는 어느정도 봐주고 있었기에, 딱히 아무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고연주가 음식을 들고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빠. 나 술 한잔만.”
“…조금만 마셔.”
가벼운 술 한잔도 괜찮다고 여겼기에 나는 유정의 요청을 허락 했다. 유정의 말을 듣자 일행들도 구미가 당기는지 각각 취향에 맞는 술을 추가 했다. 나 또한 건조한 목을 달래고 싶었는지라 주문에 동참한건 당연한 일 이었다.
식사는 가볍게 마칠 수 있었다. 일행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빠르게 눈 앞에 놓인 음식들을 먹었다. 다들 얼른 배를 채우고 위로 올라가 쉬고 싶은 마음이 강한것 같았다.
식사 후 여성 사용자들은 목욕을, 남자 사용자들은 바로 방으로의 직행을 선택 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고연주에게 대금을 지불한 후 간단히 씻는걸 선택 했다.
몸을 씻은 후 방 하나는 놔둔채로 안현과 신상용이 묵은 특실로 들어가자, 코를 고롱고롱 고는 둘의 모습이 보였다. 수련을 한다는 안현은 아예 침까지 질질 흘리며 이불을 걷어차는 만행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혀를 쯧쯧 차고는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고 옆에 남은 침대에 편안히 몸을 뉘였다.
*
“에휴.”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던 나는 결국 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창문을 보니 어느새 밖은 어둑해진 상태 였다. 다시 자리에 누워 어떻게든 잠을 자려고 노력 했지만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침대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오랜 세월을 통해 몸에 밴 습관은 무섭다. 고치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고 만다. 평소 한두시간만 자다가 오랜만에 푹 자볼려고 했건만 이제는 몸이 알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더욱 문제는, 내 스스로가 이걸 문제라고 여기면서 마음 한 구석은 필요한 과정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침대에 누운지 서너시간쯤 흘렀을까. 평소에 자던것보다 많이 잔편이기는 해도 시간으로 따지면 턱 없는 수면 부족. 이대로 가다가 언제 한번 크게 다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치는 만능이 아니다. 할 때는 하지만, 쉴 때는 쉬어야 중요할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옆에 세워둔 검을 잡고 말았다. 몸을 움직이거나 마음을 다스려야 이 싱숭생숭한 속을 달랠 수 있을것 같았다.
시선을 돌리자 또 이불을 걷어 차고 배를 드러낸 안현이 보인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옷을 다시 내려주고 이불은 다시 올려 준다.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부모나 다름 없다는 기분에 입안에 쓴맛이 감돌았다.
곤하게 자는 둘을 훓고 손잡이를 돌려 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문이 열리는 소리가 큰것 같았다. 다시 열었던 방문을 살짝 닫은 후 나는 곧바로 아직 아무도 없는 특실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내가 있는 층의 특실들은 일행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 이유를 말해보면 다른 사용자들이 현재 특실을 사용할 이유도 없고, 또 특실을 이용할만한 여력을 지닌 사용자들이 현재 뮬에 없다는게 정답일 것이다.
검을 휘두르는게 힘들면 명상이라도 할 생각으로 나는 하나 더 대여한 특실의 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
“어.”
“역시 오셨네요.”
“…혼자서 뭐 하시는 건가요.”
어이 없는 얼굴로 입을 열자 정하연이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업무용으로 쓰려던 특실의 방 안에는 평소처럼 말쑥한 인상의 정하연이 들어 앉아 있었다. 따로 음식을 가져왔는지 테이블 위에는 술 한병과 야채를 볶은 안주가 보였다. 내가 잠시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하자 정하연은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저는 이런거 하면 안돼나요?”
“…그게 문제가 아닌것 같습니다만. 뭐, 안될것은 없지요.”
“후훗. 딱딱하게 하지 말고 들어와서 앉으세요. 혼자 마시는것도 참 꼴불견이다 싶었는데 마침 좋을때 오셨어요.”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 봐서는 평소의 정하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일단 나는 순순히 그녀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를 끌어내 엉덩이를 붙였다. 내가 앉는걸 확인한 이후 그녀는 들고 있던 술을 가볍게 넘겼다.
“쫓겨 났어요.”
“…….”
“…농담 이에요. 그럴 애들이 아니 잖아요. 그러니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정하연의 음성에는 조금의 취가가 섞여 있었다. 쫓겨 났다는 말에 내가 단번에 인상을 찌푸리자 그녀는 빙긋 웃으며 말을 수정 했다. 그리고 푸념 하듯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조금 불편한 분위기는 있네요. 자업자득 이라고 하시면 할 말은 없지만요.”
음. 역시 그랬던가. 알게 모르게 불편한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조만간 유정이와 얘기할 필요는 있을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건 그런것들이 아니었다.
처음에 정하연은 분명히 “역시 오셨네요.” 라는 말을 꺼냈다. 그말인즉슨 내가 이 방에 올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것. 그동안 그녀와 함께 지낸 날은 적지만 분명 한결 같은 일과를 보이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오늘 내가 이곳에 올것을 예측한건 확실히 도박성이 짙은 추측 이었다.
내가 입을 다물고만 있자 정하연은 빈 잔에 술을 가득 채우고는 내게 내밀었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술잔을 받았다. 마시기 전, 나는 담담한 음성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오늘 안오면 어떻게 하실 작정 이었나요.”
“뭐. 가능성은 확실히 있다고 생각 했어요. 뭐 안오면 혼자 자면 되니까 편하고 좋죠. 어떤 결과가 나와도 나쁘지 않아요. 그게 바로 홀 플레인 마법사들의 사고방식 이랍니다.”
평소의 청아한 목소리가 아닌 유혹적인 어조의 말들이 들렸다. 계속 잔을 들고만 있자 정하연은 어서 마시라는듯 살짝 고개를 까닥였다. 나는 제 3의 눈으로 잔에 담긴 액체의 성분을 분석한 후 한입에 털어 넣었다.
“화끈 하시네요. 그렇게 약한 술은 아닌데….”
또 말을 빙빙 돌리는걸 보며 나는 나지막한 음성으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참고로 말씀 드리면. 말 돌리는거 별로 안좋아 합니다.”
“…술을 마시니 조금 감상적으로 변한것 같네요. 취해서 이러는거니 이해 해요.”
그녀는 매몰찬 내 말에도 아름다운 미소를 흘릴 뿐 이었다. 그러나 정하연을 응시하는 내 눈빛은 그저 무심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스스로 술에 취했다고는 말하지만, 거짓말이다. 저 얼굴은 절대로 술에 취한 얼굴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모종의 이유로 연기를 하고 있다는 소리 였다.
먼저 말문을 연건 내가 아닌 그녀였다.
“…김수현씨.”
“말씀 하세요.”
“오늘 밤 시간 있어요…?”
정하연은 나를 한번 부르고는 한쪽 턱을 괴었다. 이윽고 졸린듯한 눈길로 내게 말을 걸었다. 어두운 밤. 둘만 있는 방. 나와 그녀 사이에 있는 탁자 하나. 그녀의 색색이는 숨소리가 들리고, 가끔씩 뿜어내는 달콤한 한숨 소리도 들린다.
한참동안 내 눈동자를 응시하던 그녀는 천천히 고운 입술을 열었다.
“시간이 있으면…오늘 밤은 내 얘기를 좀 들어 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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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로유진 입니다.
제가 어떤 말씀을 드려야 될까요.
좋은 말씀 해주신 분.
격려의 응원을 해주신 분.
기다려 주겠다고 해주신 분.
그저 감사하다는 말 밖에 드리지 못하겠네요.
이번에 두마리 토끼를 잡기로 결심한 만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__)
PS. 리리플은 다음회부터 이어 집니다.
PS2. 노블 수위좀 알려주실분. 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