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20
00020 잠시, 헤어지다. =========================================================================
이것 참 고마워. 목도 칼칼했는데 이렇게 맥주도 사주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 이름이 어떻게…. 엥? 김수현? 설마 소도시 뮬의? 들어봤지! 절규의 동굴에서 일어난 일화는 유명하다고…. 헤헤. 이런 유명인사를 만나고 맥주도 대접 받았으니 나도 가만히 있기는 그런데. 옳지. 내가 얘기 하나 들려줄게. 한 번 들어보겠어?
응? 필요 없다고? 기다려봐. 조금이라도 좋으니 일단 얘기라도 들어줘. 너도 분명 흥미가 동할걸? 지금 대도시 한창 맹위를 떨치는 소울 커맨더도 통과 의례에서 얻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그래. 그 영혼 명령가. 어차피 홀 플레인에 있는 사람들 다 통과 의례는 겪고 들어온 거잖아. 자자. 앉아봐. 천사들이 이곳 저곳에 수작을 많이 부린 곳 중 한곳이 바로 통과의례라고.
거기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상당한 편이거든. 생각해봐. 그때는 다들 살기에 급급한데 누가 7일 동안 괴물들이 있는 곳을 싸돌아 다니겠어? 그런데 그런 미친놈들이 있더라. 아주 7일 동안 신나서 맵 전부를 샅샅이 뒤지고 돌아 다녔더라고. 그러면 필연적으로 통과 의례의 보스 몬스터를 만날 확률도 높아지게 돼. 응? 무슨 소리냐고? 너 만난 적 없어? 이거 김수현이는 꽤나 성실하게 했나 보네. 무슨 뜻이냐 하면 말이지…. 그전에 맥주 한잔만 더 주면 안될까. 헤헤…. 고마워!
기억해 봐. 너도 분명 노란색 지붕과 파란색 지붕은 기억나지? 그래. 노란색은 레스트 룸, 파란색은 세이브 포인트. 안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경고문이잖아? 레스트 룸은 하루를 초과해서 머물면 안되고 세이브 포인트는 이틀을 초과하면 안 돼. 더 머물렀다간 보스 몬스터가 100% 확률로 출현해 버리거든. 아으~. 지금도 소름이 오싹하다. 에일리언 같이 생겨 먹어서는 사람을 맛있다는 듯 우적우적 씹어 먹는데….
응. 난 만난 적 있어. 어쩌긴. 죽어라 도망쳤지. 웃긴 건 단순히 포인트로 따지면 스타팅, 레스트, 세이브 말고도 또 하나가 있거든. 처음 듣는다고? 그럴 수 밖에. 어디 있냐고?
맵의 외곽지역에 있는 숲을 가로지르는 방향으로 빠져 나오면 큰 대로가 하나 나와. 아직도 기억나. 그 울퉁불퉁한 길. 그런데 그게 아래로는 갈 수가 없어. 레이스들이 천지로 모여 있거든. 그럼 결국 위로 올라가면 도시가 하나 나와. 그런데 솔직히 누가 거기까지 가겠어? 숲을 들어가기도 싫어하는데. 그리고 설령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살아 나온 사람은 드물어. 그곳을 바로 트랩 포인트라고 부르지. 말 그대로 함정 포인트야.
트랩 포인트 도시는 모든 시설이 현대적이고 먹을 것도 풍부해. 지구에서의 향수를 생각나게 하는 곳이지. 정말 떠나기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지.
경고문? 있어. 있기는 있는데 다른 포인트에 있는 경고문 하고는 달라. 별거 아니다 싶게 생각할 정도로 그냥 간단하게 써 있어. 아무튼 그 도시는 사람의 심리를 굉장히 교묘하게 이용하거든. 떠나기 싫게 만들어 버린단 말이야. 결국 그곳을 발견한 사용자들은 눌러 앉아 버리는 경우가 많아. 그러니 그곳을 발견한 사용자들은 안주해버리고 말아. 여기서 충분히 7일을 버틸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안주해 버리는 순간, 끝나는 거야.
결국 2일이 지나고 난 후 3일째에는…. 어떻게 되는 줄 알겠지? 후후. 응? 난 이걸 어떻게 아냐고? 하하…. 글쎄. 그냥 술이나 더 먹으련다.
*
오후가 되자 날이 점점 어두워지는걸 볼 수 있었다. 초저녁 시간대라고 부르기는 조금 애매한 시간대였다. 숲에서 평소보다 어둡다고 여겼는데 구름도 어두운 빛깔을 뿜어내는 게 이러다 비라도 쏟아지면 어떡하나 생각이 들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걸으며 나는 이제나저제나 마을이 보이기나 조바심이 일었다. 아무래도 걷는 속도를 조금 높일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두 다리로 간단히 마력을 돌리자 속도가 한층 빨라진다. 나는 빠르게 발을 놀리며 제 3의 눈으로 과거 현상을 고찰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것은 정말 짧은, 단 1초에 불과했지만 내가 본 장면으로 일행한테 일어난 일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본 장면은 이러했다. 안현은 장검과 방패는 버린 채 안솔을 업은 상태로 뛰고 있었다. 뭐가 그리 다급한지 매우 급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뒤편에 보이는 이유정은 상당히 애매한 얼굴 이었다. 걱정하는지 아니면 화가난건 지 애매한 얼굴을 하고선 안현의 뒤를 쫓고 있었다. 오직 김한별만이 차분한 얼굴로 맨 뒤에서 안현이 버린 칼과 방패를 챙겨 들고 그들의 뒤를 쫓고 있었다.
결국 습격이든 뭐든 일행한테 어떤 식으로든 위해가 있었고, 그 와중에 안솔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그래서 일단 나도 안현 일행이 달려간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가고 있었다. 사람의 손을 탄 길인만큼 가다 보면 분명 마을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안현 일행과 재회할 가능성이 높았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에 그렇게 습격 당한 걸까. 어떤 일을 당했길래 그렇게 다급한 얼굴로 달린 걸까.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 머리를 싸매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나중에 천천히 얘기를 듣기로 하고 나는 다시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한창 걷던 도중 무언가 차가운 게 한 방울 똑 떨어지더니 이내 내 뺨을 살며시 적셨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자 내 얼굴로 달려드는 빗방울들이 보인다.
툭. 툭. 툭. 툭.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빗방울을 보며 나는 반사적으로 물이 묻은 볼을 쓱 닦았다. 장대비가 쏟아지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마을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행히 내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저기 멀리서 안력으로 확인 가능할 만큼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구간이 눈에 들어왔다.
일행은 분명 저 마을 안으로 들어갔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일부 마을에도 당연히 괴물들이 분포하기 때문에 잘 들어갔을지 걱정이 앞섰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한 번에 처리하고 오는 건데 괜히 시간을 끌었나 보다.
그러는 사이에도 길바닥에 점점이 찍히는 빗방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빗물로 질척이는 진창을 걷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속도를 줄이고 터벅터벅 걸으며 마을과의 거리를 줄이며 나는 반사적으로 마력 감지를 펼쳤다. 천천히 마을을 감지하던 나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껴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뭐, 뭐지?”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말았다. 마음을 추스르고 조금 더 정밀하게 감지를 했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놀란 마음에 얼른 마력을 일으켜 나는 마을 안으로 순식간에 진입해 들어갔다. 그리고 입구에 도착하자 보이는 현대식 건물에 나는 입을 벌리고 말았다.
‘통과 의례에 지구에서나 볼 수 있는 건물이 있다고? 그것도 한 가득히?’
일단 이 마을, 아니 마을이라고 부르기 힘든 도시에는 내 예상대로 일행이 있었다. 네 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게 다행히 전부 다 모여있는 것 같았다. 그건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 나는 두 가지 이유로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첫 번째. 도시에서 어떤 괴물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두 번째. 눈에 보이는 게 현대식 건물이 있는 도시라는 것.
홀 플레인의 도시들은 현대식 건물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중세에서나 볼 수 있는 건물 형태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내가 1회 차 통과 의례 시절에도 그런 점을 적응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건 떡 하니 지구에서 자주 보던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바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상황을 주시하기로 했다. 처음 홀 플레인에 들어가는 인간들의 과제는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지구에 비해 홀 플레인의 생활은 마냥 편리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 것들에 적응하기 위해 통과 의례에서도 일부러 홀 플레인과 똑같은 형태의 건물을 지어 사용자들이 한층 더 적응하기 쉽도록 하는데 이런 건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경우였다.
천사들이 단체로 미치지 않고서야 통과 의례에 이런 건물을 놓아둘 리는 없었다. 그러나 눈을 비비고 봐도 도시의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천사들이 뭔가 노리는 게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예전에 주점에서 한 검사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트랩 포인트 도시는 모든 시설이 현대적이고 먹을 것도 풍부해. 지구에서의 향수를 생각나게 하는 곳이지. 정말 떠나기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지.’
트랩 포인트를 떠올리자 나는 비로소 눈 앞의 도시가 설명이 되는 듯 했다. 트랩 포인트를 설명하기 전 보스 몬스터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한다. 쉽게 말해 홀 플레인에서는 보스 몬스터를 잡을 수 없다. 본 사람은 꽤 되는데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절대 잡을 수 없다고.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고.
보스 몬스터는 출현하는데 조건이 필요하다. 그건 바로 레스트 룸에 하루 이상, 세이브 포인트에 이틀 이상 체류하면 무조건 나타난다는 조건이다. 그 말인즉슨 안전한 장소를 찾았다고 안주하지 말고 계속 이동하라는 천사들의 경고나 다름 없었다.
나는 소름이 쭈뼛 돋는걸 느꼈다. 그리고 이 도시를 처음 봤을 때 왜 아무도 없고 조용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리고 처음 시작할 때 일행들의 높은 수준에도 불구하고 안솔만 빼고 전부 홀 플레인에서 볼 수 없었는지, 눈 앞의 도시와 연관해 생각한다면 한가지 가능성을 추론할 수 있었다. 이들이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도시 안으로 완전히 진입했다. 10년 만에 보는 건물에 향수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은 일행을 만나야 했다.
도시 안으로 들어가자 온통 잿빛 일색의 건물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어두운 도시에 온걸 환영한다는 듯 온통 침침한 빛을 가득 내뿜는 건물들이 영 마음에 거슬렸다.
숙련된 경험을 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짙은 죽음의 향기. 도대체 이 건물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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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타 및 문맥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