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202
00201 Attention =========================================================================
나는 항상 그를 생각했다.
그날 밤. 그의 뒤를 따라가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수료식이 끝나고 헤어진 이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내 마음속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려고 할 때마다 같이 따라오는 그날 밤의 기억. 그날 밤 그와 나눴던 대화를 하나씩 되새김질할 때마다 가슴이 아릿해지고, 절로 눈을 꼭 감게 된다.
“그럼 오빠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가요. 입을 벌려 계속 말을 이어보려고 했지만, 목구멍에 무언가가 콱 막힌 듯 더 이상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때를 회상하려고 하면 본능적으로 회피하고만 싶어진다. 한동안 후회 감에 몸부림쳤지만, 이내 입을 닫고 말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그와 함께 했던 시절을 하나씩 되짚어볼 뿐. 지금은 그것만이 나를 지탱해주는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처음 통과 의례를 시작했을 때.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남자의 분란으로 팀이 해체될 위기에 놓였을 때. 괴물들의 시선을 끌고, 그 악몽 같았던 숲 안으로 유인해 들어갈 때. 오두막 앞에서 말다툼을 했을 때. 보스 몬스터를 혼자서 맡고 우리들을 도망치게 만들었을 때. 하지만 보란 듯이 살아남아 다시금 돌아왔을 때. 그리고 홀 플레인으로 들어왔을 때.
아마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어긋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홀 플레인 이후의 기억을 더듬어보려고 했지만, 그날 밤을 제외하고는 생각나는 게 거의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겠지. 내가 의도적으로 피했으니까.
“힘들어….”
힘들다. 나도 모르게 약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상황이 너무나 혼란스럽다. 그대로 웅크리고 앉아 양 어깨를 감싸 쥐었다. 고개를 묻고 어깨를 세게 쥐어봤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때였다.
“김한별! 김한별! 너 어디 있어! 당장 방에서 안 나와?”
벌컥거리는,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팔 아래로 묻었던 고개를 들자 잔뜩 화난 얼굴로 숨을 씩씩 몰아 쉬는 한 명의 여성 사용자가 보였다. 성유빈이었다. 그녀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절로 욕설을 내뱉을 뻔 했다. 하지만, 간신히 입을 다묾으로써 불상사를 피할 수 있었다.
“어후, 담배 냄새. 너 담배 피웠니? 지금 클랜원들 다 밖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혼자서 편하게 쉬고 있어? 담배나 처 피우면서?”
“…….”
“어머. 얘 눈 똑바로 뜨고 노려보는 것 좀 봐. 사람 하나 잡아 먹겠다? 당장 눈 안 깔아?”
“…곧 나가려고 했어요.”
성유빈. 박현우의 소개로 황금 사자에 들어온 이후, 나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 사용자들 중 한 명이었다. 원정 이후 체계가 어그러져 성유빈이 임시 적으로 나를 담당하고 가르치는 간부가 되었다. 박현우가 있을 때는 그나마 잠잠했는데 그가 부상으로 이탈한 사이 내게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도 과도할 정도로.
“하여간. 애초에 버릇을 잘못 들였어. 시크릿 클래스면 뭐해? 답이 안 보인다, 답이.”
무시하자. 괜히 같이 있어봤자 속만 상하고 기분만 더러워진다. 그렇게 막 방문을 나서려는 찰나였다.
“야.”
“…네.”
“미리 말해두는데. 오늘 똑바로 해.”
“…….”
고개를 돌리자, 재수 없는 성유빈의 얼굴이 보였다. 얼굴에는 비웃음의 표정이 가득 떠오르고 있었고,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입 꼬리가 살짝 휘어 올라가 있다. 마치 이 기회를 틈타 나를 마음껏 구박할 수 있는데 큰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 얼굴을 살피는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는, 비열함을 담뿍 담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똑바로 하라고. 알아들어? 참고로 말하는데, 나한테서 박현우를 기대하지마. 나는 현우 오빠가 아니라, 성유빈이야 성유빈. 그 동안 많이 편했지? 대접도 받고 좋았지?”
“뭘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그래? 그럼 지금부터 알려주면 되겠네. 당장 따라 나와. 할 일이 산더미니까.”
성유빈은 말을 마치고는 성큼성큼 내 옆을 지나쳐갔다. 지나가면서 그녀의 어깨가 나를 세게 밀쳤고, 그 반동으로 한두 번 비틀거릴 수 밖에 없었다.
“어물쩍거리지 말고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하여간 느려 터져 갖고는.”
그녀는 기어코 한마디 더 내뱉고는 휑하니 방을 나가버렸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수치심을 참으며, 나는 입술을 깨물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
해가 뉘엿뉘엿 하늘을 넘어가고 있었다. 밤이 찾아오기 전 오라고 했으니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워프 게이트가 있는 만큼 도시간 떨어져 있는 거리의 의미는 크게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바바라 내에 있었다. 엄청 빨리 가지는 않더라도 늦지 않게 도착할 필요는 있었다. 각 도시를 대표하는 거물들의 모임인데 지각으로 인해 건방지다는 인상을 찍어봐야 하등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행하는 인원은 고연주 한 명으로 정했다. 애초에 워낙 큰 자리이다 보니 같이 가고 싶어하는 클랜원들도 없었다. 정하연에게 일행들을 부탁한 후, 나는 혹시 모르니 짐을 미리 챙겨 놓으라고 지시했다. 일단은 소집령이 어떻게 매듭지어 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지만, 크게 어긋나지만 않으면 기존에 세워둔 계획대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어떻게 보면 좋은 기회였다. 소집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바로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까. 나는 과연 어떤 사용자들이 올까, 어떤 대화가 오고 갈까 상상하며 거리를 걸었다. 물론 그 상상의 중심에는 한소영이 있었다.
바바라는 대도시인 만큼 정비가 굉장히 잘돼있다. 하지만 도시가 너무 크고 방대하다 보니 까닥 잘못하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들 이었다. 바바라는 내게 매우 익숙한 도시다. 1회 차 처음에는 어떻게든 캐러밴을 구하고 싶어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고, 조금 성장한 이후로는 음지를 돌아다녔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한 지리는 제법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클랜 하우스는 사용자 아카데미와 가까운 곳에 있다. 황금 사자의 클랜 하우스라면 과장 하나 안 보태고 눈 감고 찾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금새 반듯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고 익숙한 거리가 보인다. 번화가를 지나 다리를 건너고, 광장으로 들어선 나는 고연주를 대동한 채 중앙으로 이어진 길로 걸음을 옮겼다. 이 광장을 지나면 다시금 수많은 건물들이 늘어서있는 번화가로 진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우리들의 목적지가 있었다.
어느 도시이던 간에 광장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큼지막하게 세워져 있는 게시판에는 수많은 광고들이 더덕더덕 붙어 있었지만, 그 중 단연 압도적인 광고는 오늘 뿌려진 클랜 홍보 기록이었다. 그것은 크게 확대되어 붙여져 있었다. 그 주변으로 한 무리의 사용자들이 모여 있다가 이내 우리를 봤는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또 사용자들이 우글우글 모이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광장은 비교적 한산했다. 시간대가 아침에 탐험을 나갔다가 돌아올 시간이긴 했지만, 이곳이 대도시임을 감안하면 확실히 적은 편이었다.
일일 캐러밴 또는 동료를 구하는 사용자들이 주로 상주하는 곳이 광장이다. 하지만 오늘따라 보이는 사용자들이 적은 것을 보니 포탈이 열린 영향으로 황금 사자 클랜에서 통제를 한 것 같았다.
초보 사용자 시절 이곳에 앉아 있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한 클랜의 로드로써 소집령에 초청을 받는 신분이 되었다. 비록 예상치 못했다고 하더라도 조금 미묘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는지 주변에 있던 사용자들 중 몇몇이 슬금슬금 모여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옆에서 팔짱을 끼고 걷고 있던 고연주가 한번 둘러보자 더 이상 거리를 줄이지는 않았다. 나는 다른 방향으로는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목적지를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상점가들이 일렬로 늘어져있는 거리를 지나자 왼쪽으로 하얀 대리석 건물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올리자 지붕 위로 아름다운 날개가 음각된 동상이 보였다. 바바라의 신전이었다. 뮬에 있는 신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 있는 크기와 너비를 갖추고 있었다. 문득 세라프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바로 머리를 털어냈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전을 돌아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자, 비로소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아오른 건물들이 보였다. 그 중에는 황금 사자의 클랜 하우스와 사용자 아카데미를 상징하는 문양들도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자 내 팔을 살짝 끌어당기는 기척이 느껴졌다. 옆을 돌아보니 고연주가 미약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현.”
“네.”
“긴장했어요?”
“아뇨. 왜요?”
고연주는 “아까부터 말이 없어서요.” 라고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 같이 예쁜 여자랑 걸어서 그런가 봐요.” 라고 응수해주었다. 고연주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깔깔. 내가 못살아 정말. 그래도 농담을 던지는걸 보니 긴장은 하지 않은 것 같네요. 응응.”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여쁜 여성의 웃음에 불과한 일이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주위로 웅성거리는 소음이 퍼져나갔다. 지금 내 옆에 팔짱을 끼고 걷는 사용자는 고연주. 10강이고, 그 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는 사용자가 드러난 것도 놀라운데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친근해하는 모습을 보이니 믿기 힘든 모양이다.
물론 이것 또한 보여주기의 일종이었다. 아침에 했던 행동이 클랜으로서의 위신을 보여준 거라면, 지금은 나와 고연주 개인의 관계를 보여줬다. 아무래도 10강에 이른 사용자가 0년 차 사용자 밑에 들어간 것을 믿기 힘들어하는 사용자들이 많을 테니, 그녀 나름의 세심한 배려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웃으며 거리를 걷던 우리는 곧 목적지 부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눈 앞에는 클랜 하우스 정문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세워져 있었다. 아직 닫혀 있어서 내구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리저리 부산스러운 기척이 느껴졌다. 더불어 누군가 빽빽 날카로운 고함을 지르는 소리도 벽을 타고 귀에 들어오고 있었다. 청각을 돋우면 어떤 말을 하는지 들을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들어갈까요?”
“아니, 잠시만 기다려요. 우리가 먼저 들어갈 필요는 없어요.”
고연주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이내 몸을 돌려 나를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가냘픈 손가락 하나를 들어 내 콧잔등을 살짝 훑었다. 이윽고 손가락 끝을 가볍게 부는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고개를 돌려 정문을 보니 어느새 문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열린 틈 사이로 일련의 사용자 무리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눈동자에 힘을 주자 가장 선두에 선 사용자의 인상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짙은 붉은빛의 로브를 입고 있는 걸로 보아 마법사인 것 같았는데 일전에 광장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아마 성유빈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그녀의 뒤로는….
차마 뒤를 자세히 살필 틈도 없이 그들은 우리 앞으로 오와 열을 맞춰 걸어왔다. 나는 재빨리 제 3의 눈을 활성화시켰다.
1. 이름(Name) : 성유빈(3년차)
2. 클래스(Class) : 일반 마법사(NorMal Mage Master)
3. 소속 국가(Nation) : 바바라
4. 소속 단체(Clan) : 황금 사자
5. 진명 · 국적 : 달콤한 입술, 칼을 감춘 뱃속 · 대한민국
6. 성별(Sex) : 여성(24)
7. 신장 · 체중 : 170.5cm · 48.5kg
8. 성향 : 욕망 · 음란(Ambition · Obscene)
1. 김수현 : 544 / 600~
[근력 96(+2)] [내구 92] [민첩 98] [체력 72] [마력 96] [행운 90(+2)]
(능력치 포인트가 12 포인트 남은 상태 입니다.)
2. 성유빈 : 352 / 600~
[근력 44] [내구 38] [민첩 56] [체력 50] [마력 94(+1)] [행운 70]
(능력치 포인트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황금 사자 클랜의 소집령을 받으신 클랜 소속 이신가요.”
“예. 머셔너리 클랜 로드 김수현입니다.”
이미 알고 있음에도 물어보는 의례적인 인사였다. 내 말을 받은 성유빈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후 말을 이었다.
“황금 사자 클랜의 소집령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옆에 있으신 분이….”
자부심으로 먹고 사는 황금 사자 클랜원이고, 더구나 이 정도의 능력치를 갖고 있으면 분명히 간부급 사용자일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는 처음부터 굽히고 들어왔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흘끗 눈길을 돌렸다. 그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성유빈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머셔너리 클랜은 막 창설된 신생 클랜이고 아직까지 다른 클랜들과 별다른 관계를 맺지 않고 있었다. 즉 외교 관계가 백지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머리가 좀 돌아가는 사용자라면 클랜 성향이나 이름을 보고 대강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곧이어, 성유빈이 말을 잇는 소리가 들렸다.
“…으로 불리는 고연주님 되시나요?”
“그래. 다 알면서 물어보기는. 그런데 너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누구니?”
그녀의 물음에 고연주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내 역할은 처음의 인사를 받아준 것으로 끝 이었다. 성유빈은 클랜 로드가 아니다. 보아하니 대충 중간 간부 정도로 보였다. 그래서 우리 쪽에서도 로드가 아닌 비슷한 직급의 휘하 클랜원이 나선 것이다. 물론 고연주가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황금 사자 클랜의 3년 차 사용자 성유빈이라고 합니다. 평소 님의 명성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습니다.”
“아아~. 현우한테 몇 번 들은 기억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오늘따라 걔가 안보이네?”
“사용자 박현우는 원정에서 돌아온 이후로 부상을 입었습니다. 큰 부상은 아니니, 소집 회의에는 몸을 드러낼 예정입니다.”
고연주는 시종일관 반말로 응수하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함부로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못하는 거겠지. 비록 나는 살짝 말을 높이기는 했지만, 딱히 그녀의 말투를 책잡을 생각은 없었다. 고연주는 그래도 되는 위치에 있었으니까. 설령 상대가 황금 사자의 간부라고 해도 말이다.
“아~그래? 난 또 강철 산맥 원정 이후로 대 간부 됐다고 벌써 머리가 굵어졌나 싶었지. 호호. 그럼 이만 안내를 해주렴. 언제까지 세워둘 생각이니?”
고연주가 흘리듯 내뱉은 말에, 성유빈의 몸이 움찔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설마 황금 사자의 내부 사정을 그렇게 상세하게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는 잠시 고연주를 올려다보았다. 무언가 허락을 구하는듯한 시선을 보내자, 고연주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성유빈은 곧바로 나와의 거리를 줄이고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내 앞으로 오고 나서야 비로소 뒤에 서 있던 낯설지 않은 사용자 한 명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찰찰 한 윤기를 내는 칠흑 빛 머리카락 속으로 연하게 감도는 블루 빛깔. 감정을 잃어버린듯한 차가운 얼굴. 그 사용자의 정체는, 바로 보석 마법사 김한별이었다.
나는 담담한 눈동자를 들어 그녀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그녀는 그저 조용히, 그리고 공손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마치 일부러 나와 시선을 마주치는 것을 피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쉰 후 성유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머셔너리 클랜 로드께서 직접 소집에 응해주신대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시죠. 제가 직접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성유빈은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어느새 처음의 정중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생글거리는 얼굴로 눈웃음을 살살 치고 있었다. 꼭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 같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마침내 김한별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는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내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성유빈의 뒤통수를 쏘아보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봤을 때는 몰랐는데 얼굴이 살짝 울긋불긋한 것을 보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방금 전 클랜 하우스 내부에서 들렸던 고함 소리가 머리를 스쳤다.
“환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안내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럼 안내해 봐.” 보다는 그냥 무난하게 들리는 말을 골랐다.
이윽고 고연주가 내 뒤로 시립하고, 성유빈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와 동시에 뒤에 정렬해있던 인원들은, 그 상태 그대로 반원을 그리며 나와 성유빈의 뒤로 가지런히 줄지어 섰다. 과연 썩어도 준치라고 한때 북 대륙을 호령한 군기가 살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 입니다.
오늘 일요일인데 연참을 하지 못했습니다. 덕분에 보다 여유롭게 자정 연재는 마감할 수 있었는데, 기다리고 계시던 독자 분들께 그저 죄송한 마음뿐 입니다. 아무래도 시험도 끝나고, 과제도 대부분 해결하다 보니 긴장이 탁 풀린 것 같습니다. 오늘 오후에 잠깐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일어나보니까 4시간이 훌쩍 지났더라 고요. ㅜ.ㅠ 저를 매우 치세요. 엉엉.
PS. 200회 기념이라서 그런지 쿠폰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메모라이즈에 쿠폰을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꾸벅. _(__)_
1. MT곰 : 하하. 제 소설이 활력소라니, 감사합니다. 기분 좋은 말이네요. 🙂 뜻 깊은 200회에 첫 코를 하셔서 그런지 더욱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1등 축하 드립니다. 앞으로도 메모라이즈에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2. 평화롭군 : 음. 김한별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함부로 말씀 드리기 곤란하지만, 빨리 내보내는 데는 많은 무리가 따릅니다. 만일 영입하게 된다면 황금 사자 클랜에서도, 머셔너리 클랜에서도 많은 진통이 따르지 않을까요? 하하하.
3. 변삳또 : 원고료 감사합니다. (__) 한결 같다는 말, 저도 참 좋아합니다. 물론 소설인 만큼 항상 절정만 있을 수 없고, 나름의 위기도 있어야겠죠. 다만 주인공이 그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도 앞으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 드립니다. 😀
4. 여옥아놀자 : 여옥아놀자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하. 200회에는 예전에 자주 뵈었던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어 참 좋네요. 안솔을 그렇게 만들어서 죄송해요. ;ㅇ; 그러나, 앞으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생각입니다. 부디, 그때가 오기를 기다려주세요. ^^
5. 야우로 : 껄껄. 그러고 보니 메모라이즈를 연재하면서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무엇보다 부모님께 걸렸을 때가(?) 가장 최고의 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좋은 방향으로 풀렸지만 말이에요. ㅜ.ㅠ
6. 레필 : 네. 제가 그때 후기에 너무 경솔하게 달았던 것 같습니다. 한소영은 1회 차 주인공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던 사용자 입니다. 간간이 외전으로 그때의 관계를 조금씩 드러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하.
7. 닉네임중복 : 아마, 이번에도 김한별을 둘러싼 많은 논란이 있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때(김수현을 떠났을 때) 거의 안솔 이상으로 호 불호가 갈리는 코멘트들이 달렸거든요. 물론 이번에는 김한별의 거취를 결정한 상태입니다. 설정 그대로 변함없이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8. archangels la : 아니, 그런 전통이 있었군요. 몰랐습니다. 허허허. 그렇다면 저는 그 전통을 깨는 첫 작가가 되겠습니다.(퍽퍽!)
9. 천성녀 : 조언 감사합니다. 확실히 사용자라는 단어의 빈도가 높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조금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침실에서 사용자 고연주라고 쓴 건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네요. 하하하.)
10. 서비스 :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미래를 알고 있다는 메리트는 최대한 활용할 생각이에요. 달라진 부분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스스로의 분석을 해야겠지만 미래에 대한 언급도 곁들여 대조, 비교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연참의 원동력이 됩니다.(이건 진리입니다.)
코멘트는 항상 전부 반복해서 읽고 있습니다.
리리플에 없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정 궁금하신 부분은 쪽지로 주시면 답변 드릴게요!
그럼 오늘은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글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평점, 비평, 질문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