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226
00225 오해는 오해를 낳고 =========================================================================
“거짓말이 아니에요. 제발 제 말을 믿어주세요.”
“한결아 잠시만.”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말투에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안심시켰다. 촉촉히 젖은 눈망울을 보자 남자가 맞나 의심이 들었지만, 제 3의 눈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아무튼 지금부터는 중요한 물밑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나는 머릿속을 채우는 실없는 생각들을 깨끗이 지운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나는 네 말을 믿는다.”
“정말이요?”
“그래. 정말로. 그런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네 말대로 박환희가 발을 걸었고, 너희들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어. 좋아. 박환희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표리부동한 사용자야. 그렇다고 쳐. 그래서?”
“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다는 거야?”
내 질문은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한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예전에 박환희와 백한결의 대담에서 들을 수 있었으니까.
백한결은 서글픈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내 말의 의도를 깨달았는지 이내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런 일을 당했지만, 복수도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겠지.”
“…….”
“네 심정은 이해해. 하지만 그걸 지금 와서 문제 삼기에는 너무 늦었어. 이곳은 홀 플레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현재 박환희의 평판이 어떤지는 알고 있잖아.”
한 명은 교관들에게 평판이 좋고 신규 인원들의 중심에 서 있다. 다른 한 명은 실제 잠재성은 가장 좋지만, 스스로 은둔함으로써 그저 그런 사용자로 평가 받고 있다. 물론 개인적인 복수심은 가져도 좋다. 하지만 현재 상태로는 박환희에게 복수는커녕 끌려가지만 않아도 다행인 상태였다. 어떻게 보면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지금 와서 뒤집기에는 둘 사이에 엄청난 격차가 벌어져있었다.
일단 현실을 다시 자각하게 해주었으니, 이제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물어볼 차례였다.
“네가 지금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뭐야? 네 억울함을 진정으로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야?”
백한결은 내 말을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윽고 그는 커다란 한숨을 내쉬며 쏟아내듯 입을 열었다.
“하아. 아니요. 모르겠어요.”
“네가 맨 처음 했던 질문을 떠올려봐.”
“여자친구…. 유나….”
내 말에 백한결은 아릿한 눈길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입을 열어, 비로소 마음속 깊숙이 감추어두었던 속내를 하나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내가 짐작하고 있는 대로였다. 처음에는 박환희를 죽일 듯 미워했던 차유나였지만, 어느 날을 기점으로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거듭된 사과와 진심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종래에는 자기의 곁에 있기 보다 그의 곁을 떠도는 경우가 잦아졌다고.
“아무리 봐도 헤어진 것 같은데.”
“크게 다투기는 했지만 헤어진 건 아니에요. 다만 계속해서 저한테 박환희와 다시 친하게 지낼 것을 요구하고, 그의 힘이 되어주기를 원하고 있어요.”
“힘이라고?”
“그냥…. 그 놈 주변에 신규 인원들이 많잖아요. 저보고 거기에 들어오라는 소리에요.”
백한결은 말을 하는 도중 계속해서 김한별을 의식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첫 대면부터 단단히 미운 털이 박힌 것 같았다. 실제로 내가봐도 한별이 조금 주제넘게 나섰던 감이 없잖아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는 곧 죽어도 그 놈이랑 다시 관계를 쌓기 싫다 이 소리고.”
“네. 하지만 유나 누나의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려요. 최근에는 서로 말도 안하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그랬거든요. 너는 그럼 나도 믿을 수 없는 거냐고…. 지금껏 몇 년 동안 함께 했고, 같은 일을 당했잖아요. 오죽하면 누나가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박환희는 믿을 수 없지만, 차유나는 믿을 수 있다.”
“네.”
백한결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시 동안 조용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조용히 컵만 쥐었다 폈다 하던 그는 이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도 유나 누나가 저를 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요. 지금은 화가 나서 서로 말도 안하고 있지만 조금 미안하기도 해요. 누나 말대로 제가 너무 의심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중증이군.’
역시나 백한결의 차유나에 대한 의존도는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우선은 이 의존도를 약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잠시 동안 고민하다가 이내 한가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한결아.”
“네.”
“형이 한가지 얘기를 해봐도 될까?”
“네! 좋아요. 꼭 듣고 싶어요.”
“혹시 인연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알고 있니?”
“인연. 단어는 많이 들어봤는데,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솔직하게 대답하는 백한결을 보며 나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살살 타이르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너랑 똑같은 0년 차 사용자야. 6개월 전에 통과 의례를 거쳤고 지금은 한 클랜을 이끌고 있는 로드의 역할을 하고 있지. 그리고 지금 나와 함께하고 있는 클랜원들의 절반이 함께 통과 의례를 거친 애들이야.”
“아. 맞아요! 형이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황금 사자의 오퍼를 받았지만, 동생들을 위해서 오퍼를 거절했다고 들었어요!”
“그, 그건 또 어디서 들었니.”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반짝이는 그를 보자 절로 땀이 솟아나왔다. 나는 한두 번 목을 가다듬은 후 차분히 말을 이었다.
“구구절절이 말하지는 않을게. 다만 한마디 해주고 싶은 건, 그 애들은 나에게 신뢰를 주었고 나는 그 믿음에 보답하고 싶었어. 그리고 그 과정 동안 우리들의 신뢰에 금이 갈만한 일들은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단다. 그리 결과 우리들은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지. 바로 지금처럼.”
“아….”
그 순간, 옆에서 작은 비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김한별이 얼굴을 딱딱히 굳힌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시선을 돌렸다. 왜 저러는지 궁금했지만 일단 중요한 게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백한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내 말을 곱씹는 듯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너는 너 스스로 박환희랑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해?”
“하, 하지만 유나 누나가….”
“여자친구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마. 네가 판단할 수 있고, 지금도 하고 있잖아. 왜 자꾸 네 생각에 여자친구를 결부시키는 거야? 지금 여자친구의 말을 듣는다고 해서, 네가 박환희와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 같아? 그 놈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너를, 아니 너희들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장담할 수 있어? 내가 보기엔 아니오 야. 한번 배신한 이상 두 번 배신하는 건 더욱 손쉬운 일이거든.”
“그래도 누나가….”
‘그 놈의 누나누나. 미치겠네. 엄마냐?’
아직도 차유나에 대한 미련을 끊지 못하는 그를 보며, 나는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이미 네 여자친구는 너를 떠난 것처럼 보인다.”
“아, 아직 헤어지지 않았어요.”
“어떤 구실을 갖다 붙이든 이미 몸은 떠났어.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같은 일을 당했다고 하지만…. 솔직히 내가 너라면 그렇게 떠난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없을 것 같아. 냉정하게 생각해봐. 네가 직접 경험하고, 겪은 만큼 느끼는 게 있을 거 아냐. 지금 그녀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해?”
백한결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가 곧 힘없는 얼굴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더욱 힘주어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네가 고민할 것은 차유나의 말을 따를 것이냐, 아니냐가 아니라고. 솔직히 나는 그 여자가 박환희한테 넘어간 이유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렇다면 오히려 흔들리는 내면을 다잡고 그녀를 일깨워주는 게 정답 아닐까?”
“하지만 자기 말을 들을 생각 없으면 다시는 말도 붙이지 말라고 했는걸요.”
“그럼 간단하네. 헤어져. 상황만 놓고 보면 누가 봐도 박환희를 의심스럽게 볼 거야. 이대로 그녀의 말을 따라서 사이 좋게 다시 한번 이용당하느니, 아예 미련을 버리거나 어떻게든 구출하는 게 맞겠지.”
“그러니까 형 말은, 절대 흔들리지 말고 제 뜻을 지키라는 거군요.”
“그렇지. 그녀가 정말 너를 위한다면 네가 진정으로 하는 말을 무시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뭐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나는 강하게 일침을 놓듯 말을 마무리 지었다. 백한결은 더 이상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에 조금씩 결연함이 깃드는걸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도 내 말을 듣고 다시 마음을 단단히 되새긴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이 정도면 쉽게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아 적잖이 마음이 놓였다. 그 동안 8주, 아니 6주 동안 형 노릇을 해줬던 게 지금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윽고 백한결은 뭔가 결심한 듯,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형. 감사합니다.”
“하하. 감사는 뭘.”
“아니에요. 지금 생각하면 되게 뜬금없는 말이었는데, 제 말을 들어주셨고, 믿어주셨고, 그리고 진심으로 조언도 해주셨어요. 형이 아니었다면 정말….”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란다. 도움이 됐으면 다행이지. 별 말을 다하네.”
내 말에 그는 헤헤거리며 웃더니 문으로 시선을 던지며 입을 열었다.
“저 지금 바로 누나한테 가볼래요. 시간이 지나면 이 결심이 흐지부지 될 것 같으니, 지금 바로 가서 이야기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조금 다른 경우긴 하지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잖아. 혹시 마음을 돌리지 않더라도 끈질기게 네 진심을 전해봐. 그녀가 정말로 너를 위한다면 네 진심을 이해해줄 거야.”
“네 형!”
백한결은 예의 바르게 인사한 후 곧바로 문을 열고 숙소를 나섰다. 이윽고 그 문이 완전히 닫히려는 찰나, 차가운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오빠.”
“응. 응?”
긴 대화를 나눠 피곤한 마음에 침대에 누우려는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오빠라는 소리를 들어 나도 모르게 당황하고 말았다. 고개를 돌리자 김한별이 여전히 의자에 앉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굉장히 어두웠는데, 전체적으로 복잡한 심경이 얽혀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나를 부른 후 잠시 주저했지만 이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아이 말. 정말로 믿으세요?”
한별의 말이 끝나는 순간, 방문이 완전히 닫혔다. 나는 흘끗 그곳을 바라보고는 평소보다 커다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결이? 응. 당연히 믿지!”
“왜요? 제가 보기에는 그 애 말 중에 이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오빠가 그걸 모르실 리도 없을 것 같고요.”
“글쎄.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해. 최소한 내가 지금껏 알아온 한결이는 거짓말할 애는 아니거든.”
‘아. 입에 침 안 발랐다.’
나는 재빨리 입에 침을 발랐다. 그리고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들이 생각나, 곧바로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근데 그건 갑자기 왜 묻는 거야? 너 오늘따라 조금 이상해.”
“그냥 조금 당황스러워서요. 제 눈에는 오빠가 신규 사용자에 불과한 애를 그렇게 잘 대해주는 게 더 이상해요. 보니까 성적도 그저 그렇고, 딱히 별다른 건 없어 보이는데요. 영입할 구석이 보이지 않잖아요.”
“성적? 한별아. 나는 한결이를 그런 생각으로 대하고 있는 게 아니야.”
“그럼요?”
“그냥. 힘들어하는걸 보니까 조금 안쓰럽기도 하고, 도와주고 싶기도 해서. 이상하게 한결이를 보니까 애들 생각이 나더라. 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랄까?”
그때였다. 내 말이 끝난 순간 한별의 표정이 더없이 차갑게 변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뜻 모를 실망감, 배신감, 서운함, 섭섭함 등을 내비치고 있었다. 한별은 떨리는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더니 이내 메마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도와주고 싶었다고요? 통과 의례도 함께 거치지 않고, 그냥 사용자 아카데미에서 처음 봤잖아요.”
“응. 그렇지. 근데 이상하게 마음이 가더라고. 애가 참 순수하고, 맑아. 어떻게 보면 솔이랑 비슷해 보이는 것 같고. 아무튼 나는 그 애가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힘이 되어주고 싶을 정도야.”
“하….”
“왠 한숨?”
“그럼 저는…. 저는…. 전 왜….”
의미 모를 말을 내뱉던 김한별은 이윽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고 말을 매듭지었다. 그리고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며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반응에 나는 어깨를 으쓱인 후, 차분히 감지를 돌려 방문 밖을 살펴보았다.
밖에선 문에 귀를 대고 있는 한 명의 사용자가 감지에 걸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김한별의 대화가 끊긴 순간 백한결이 조심스럽게 문에서 귀를 때고 복도로 걸어가는 게 느껴졌다. 조금씩 감지를 벗어나는 그를 보며,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
어둑한 땅거미가 내려앉은 산 속은 으스스한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다.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와 수풀들이 흔들리고, 사이사이로 찐득찐득한 바람이 새어 나왔다.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더웠다. 속으로 미묘하게 비릿한 내음을 품은 바람은 곧 전방으로 날카롭게 흘러나갔다.
스슥, 스스슥.
그와 동시에,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수풀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인영은 상당히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자세히 본다면 한쪽 팔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쪽으로는 섬뜩함을 풍기는 커다란 낫을 비스듬히 들고 있었는데, 둥그런 곡선을 그리는 날에서 배릿한 액체들이 간헐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냄새는, 바람에 묻어있던 냄새와 비슷했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액체를 인영은 발을 휘두르며 모두 받아내었다. 곧이어 그 인영이 완전히 수풀을 헤치고 나오자, 그 뒤로 수명의 인원이 차례대로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후.”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인영은 짧게 한숨을 내뱉으며 몸을 뒤돌아보았다. 그러나 한번 크게 몸을 기울었는데, 한쪽 팔이 없기 때문에 그런지 균형을 잡기 어려워 보이는 것 같았다.
간신히 몸을 다잡은 후, 낮은 목소리가 인영에게서 흘러나왔다.
“총 몇 명이 살아남았지?”
“대장까지 합해서 일곱.”
“그럼 몇 명이 죽은 거지?”
“미개척 지역을 통과하면서 여덟 명 보냈고. 방금 전 전투에서 두 명 죽었네.”
질문하는 목소리는 거칠었고, 대답하는 목소리는 가느다랬다. 잠시 동안 침묵이 내려앉았다. 거친 목소리를 내는 사내는 힘겨운 얼굴로 뒤의 동료들을 훑어보았다.
“앞에 여덟 명은 어차피 미끼였으니 상관없고. 현준, 진경이 당했나? 이건 좀 아까운데.”
“씨발. 대장, 우리들도 좀 보소. 다들 완전 만신창이가 됐다고! 한 명한테 이게 뭐야? 쪽 팔리게.”
“그 할망구 부상 입은 거 맞아? 그 놈들이 준 정보 확실해?”
“미친 거지. 누가 그렇게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공격할 줄 알았냐? 아, 미친. 생각만 해도 소름 돋는다.”
처음 욕설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불만 어린 목소리들이 터져나 왔다. 그것은 동시다발적으로 새어 나왔고, 남녀 목소리가 혼재되어있어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잠시 동안 그 불만들을 들은 선두의 사내는, 다시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너무 얕본 것도 있고, 방심한 것도 있고. 또한 재빠르게 처리하지 않은 것도 실수라고 할 수 있지. 어쨌든 정보는 확실했어. 그래도 북 대륙의 전설 중 한 명인데 약간의 피해는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전설이라. 킬킬! 대모 그 할망구 마지막 표정 죽여주던데. 설마 배신자가 있는 줄은 생각도 못했나 봐. 켈켈켈켈!”
“그런데 대장, 갑자기 왜 이렇게 빠르게 움직인 거야? 원래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던 거 아니었어?”
처음 질문에 대답했던 여성의 물음에 대장이라 불린 사내는 피로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박현우가 냄새를 맡은 것 같더군.”
“그 놈들? 헛다리만 짚고 있었잖아. 조금 더 확실한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새로 정보가 들어왔다. 곧 그림자 여왕이 움직일 낌새가 보인다고 하더군. 머셔너리 로드와 박현우의 회동이 포착되었다고 한다.”
그 말이 끝난 순간, 뒤에 있는 인원들 주위로 심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어머나 씨발. 고연주가 온다고? 진짜 좆 될뻔했네?”
“왜? 혼자 오면 좋잖아. 와 잘됐다. 예전부터 내 소원이 그년 입구멍에 내 물건을 끼우는 거였어. 낄낄!”
“미친놈. 그림자 여왕이 잘도 혼자 오겠다.”
“안 그래도 쫌 불안하긴 했는데. 휴, 그나마 미리 처리한 게 다행이네.”
“흔적은 확실히 지웠겠지?”
뒤에 있는 인원 중 지금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인영에게서 처음으로 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순간 실컷 떠들고 있던 모든 인원은 약속처럼 입을 다물었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만 번갈아 보자, 선두에 있던 사내는 혀를 차고는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다시 되돌아간다.”
“왜!”
“그림자 여왕이니까. 남은 시체 일부도 저 멀리 던져놔야 하고, 흔적을 지우는 게 아니라 장소를 아예 통째로 날릴 필요가 있겠어. 미리 말했어야 하는데 심한 부상을 입은 지라 차마 생각을 못했다. 미안하다.”
“아오 그 씨발년 때문에. 아주 씨발 만나기만 해봐. 제발 용서해달라고 싹싹 빌 때까지 안에다 싸 갈겨 줄 테니까.”
“아서라 아서. 이미…. 그 누구였더라. 아무튼 클랜 로드랑 배 맞췄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아 그만 좀 해 미친 새끼야! 2년 전에 달려들었다가 개 털린 주제에 누가 누굴 따먹어? 그리고 걔가 너한테 따 먹힐 년이냐?”
“썅! 그럴 리 없어! 그리고 난 뭐 말도 못하냐!”
두 목소리가 동시에 힐난하자, 비난의 대상이 된 남성은 억울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잠시 동안 왁자한 웃음 소리가 그들 사이를 휩쓸었다. 그들을 따라 미미하게 웃던 대장이라 불린 사내는 이내 순식간에 표정을 회복하고 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 현구의 그림자 여왕 사랑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다들 정렬하자고.”
“““““““네.”””””””
사내가 정색하고 입을 열자 조금 전의 풀렸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우그러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며 재빠르게 열을 정렬시켰다. 그들 사이를 휘적휘적 가로지른 사내는 이내 칠흑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흔적 정리가 끝나고 곧바로 이곳을 이탈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럼 그곳으로 돌아가는 겁니까?”
“아니. 일단은 다른 데서 대기. 남은 건 그 놈들이 잘해주기만을 바래야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말을 마친 사내는 곧 처음 나왔던 수풀 안으로 조용히 몸을 들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남은 인원도 발소리를 죽인 채 그 뒤를 따라 들어가더니 이윽고 동시에 자취를 감췄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비릿한 혈 향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간간히 스쳐가는 바람에,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 입니다.
덥습니다. 매우 더운 날입니다. ㅇ<-< 선풍기를 트는데도 더운 바람만 나오네요. 그래도 한숨 자고 나니까 조금 나은 것 같습니다. 저녁으로 시원한 냉면이나 먹었으면 좋겠어요. 😀
PS. 조아라가 왜 이렇게 느린지 모르겠네요. 저만 이런 건가요?
『 리리플(223회) 』
1. 미월야 : 1등 축하 드립니다. 224회, 225회를 제가 이상하게 올려서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절대 고의가 아닙니다. ㅜ.ㅠ)
2. 오피투럽19 : 오피투럽19님.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남자고 오피투럽19님도 남자입니다. 저는 동성 연애를 선호하지 않는다고요!
3. 현오 : 감사합니다. 현오님 덕분에 좋은 동영상 볼 수 있었습니다. 보는 내내 설렜습니다. 왠지 제 첫사랑이 떠오르더라고요. T^T
4. 소식가 : 왠지 모르게 짧지만, 강렬했습니다. 저랑 같이 태우시죠. T^T
5. 겜마스터 : 하아. 고생하십니다. 훈련소라니, 세상에 훈련소라니! 우웨에에에에에엑! 죄, 죄송합니다. 순간 구토가 나와서요. 날씨도 더운데 쉬엄쉬엄 하세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군대는 몸 건강히 전역하시는 게 최고입니다. 🙂
『 리리플(224회) 』
1. 한방모드 : 1등 축하 드립니다. 🙂 1등 코멘트에서는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 하하. 왠지 닉네임을 보는 순간 시즈 모드를 생각해버렸네요.(?)
2. 타락한비둘기 : 오호라. 조금 더 세세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대략적으로는 정답입니다.
3. lovejin : 감사합니다. lovejin님의 코멘트 덕분에 정말 많은 힘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페이스 조절에 대해서도 다음부터는 신경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음 그리고 요즘 들어 제가 코멘트에 너무 휘둘린다는 코멘트들이 종종 보이고 있네요. 최근에는 오히려 너무 고집을 부린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는데, 참 미묘합니다. 🙂
4. ekar : 코멘트에 휘둘린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네요. 나름 소신껏 밀고 나가는 부분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ㅜ.ㅠ 설령 악플이라도(인신모독 등등은 제외합니다.) 모든 독자 분들이 남겨주시는 코멘트는 버릴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제가 소신을 과도하게 세우는 부분도 있고, 또 너무 휘둘린다고 보이시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 모든 건 메모라이즈라는 작품이 망가지지 않고, 발전하는데 1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소중한 조언 감사합니다. (__)
5. 아이유설리소희지영태연수지 : ㅋㅋㅋㅋㅋㅋㅋㅋ. 닉네임이 정말로 예쁜(?) 닉네임이세요! 하아하아.(?) 아, 저도 아이유설리소희지영태연수지님의 코멘트 읽고 번뜩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아이 창피해라~.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연참의 원동력이 됩니다.(이건 진리입니다.)
코멘트는 항상 전부 반복해서 읽고 있습니다.
리리플에 없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정 궁금하신 부분은 쪽지로 주시면 답변 드릴게요!
그럼 오늘은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글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비평, 질문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