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268
00267 미치광이 마법사와 망가져 버린 이들 =========================================================================
꽉 쥐면 부서질세라, 백한결은 빛나는 구체를 조심스럽게 건네주었다. 이윽고 구체를 받아들인 후, 손바닥 위로 올려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것은 말 그대로 그냥 빛이 나는 동그란 구체에 불과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대강이나마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마볼로가 나를 상대로 꺼내 들었던 지팡이. 나중에는 발로 차버린 오르도. 그것이 손에서 지팡이처럼 길쭉하게 늘어난 것을 봤기 때문에 분명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 터였다.
‘이게 1회차에 등장했었던가? 가물가물하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는 곧장 제 3의 눈을 활성화했다.
『질서의 오르도(Ordo Of Order)』
(일반 설명 : 질서의 오르도. 고대 홀 플레인 의 대마법사 마볼로 드 아일라이트가 사용하던 마법 도시 마지아의 열쇠이며 수장의 증거입니다. 과거 고대의 마법적 지식이 총체적으로 집약돼있는 하나의 정수나 다름없는 구체입니다. 오르도의 주인으로 인정받으면 마지아에 대한 모든 권한을 위임 받을 수 있습니다.)
(상세 설명 : 1. 마법사, 연금술사, 사제 클래스 전용 장비입니다. 2. 주인 의식을 치르는 과정이 있습니다. 의식에 성공할 경우, 질서의 오르도는 해당 사용자에게 귀속됩니다.(단, 사용자 사망 시 귀속은 자동 해제됩니다.) 3. 사용자의 모든 마법적 속성에 대해서 150%의 출력을 낼 수 있습니다.(신성 계열 주문도 포함합니다.) 4. 사용자의 마력 회복률이 30% 상승합니다. 5. 사용자의 마력을 100%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단 이것은 주인의 자격을 얻은 이에만 해당되는 능력이며, 7일을 기점으로 다시 재충전됩니다. 6. 하루에 3번 디스펠(Dispel) 주문을 사용할 수 있으며, 사용자의 마력과 행운 능력치에 기반합니다. 하루를 기점으로 다시 재충전됩니다. 7. 기본적인 마법 저항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8. 잠재되어있는 무(無) 영창 능력을 익힐 수 있습니다.)
“…….”
‘헐.’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세 명의 집중되는 시선에 퍼뜩 정신 줄을 붙잡았다. 겉으로는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가슴은 마치 방망이질이라도 하는 듯 두근두근 요동치고 있었다.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가고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가를 억지로 당기며, 나는 오르도의 구체를 백한결에게 되돌려주었다.
“한별아. 이거 어디서 주웠어?”
“그게, 어디서 왔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까 오빠를 데려올 때 마법사가 쓰러진 장소 위로 저절로 날아오더니, 그 위를 동동 떠다니더라고요. 그래서 얼른….”
“잘 챙겼네. 일단 넣어두고 나중에 도시로 돌아가면 한번 분석해보자꾸나.”
“네.”
정말 객관적으로 봐도 이번 원정은, 오르도 하나를 건짐으로써 차고 넘치는 보상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분명 마볼로의 본거지 안에는 내가 기억하는 물품들이 잠들어있을 터. 그것까지 모두 가져갈 생각을 하자 자꾸만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지려고 발버둥쳤다.
나는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으며 고연주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오르도를 확인하고 10분 정도 흘렀을까. 저기 멀리서, 바닥으로 쓰러진 시체들을 건너 저벅저벅 걸어오는 인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네들이 누군지는 딱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드디어 고연주, 안현, 이유정이 주변 탐사를 끝내고 다시 돌아온 것이다.
고연주는 비교적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안현과 이유정의 볼은 빵빵 부풀려져 있었다. 도시는 아까와 같은 웅장함이 많이 퇴색된 상태였다. 이곳으로 오면서 지나쳤던, 수정으로 만들어진 창문이 지금쯤 너덜너덜한 누더기로 변한 것을 보고 적잖이 실망했으리라.
“수현. 일어나셨군요.”
“형! 깜짝 놀랐어요 정말.”
“오빠~. 몸 상태는 괜찮아? 아프지 않아?”
곧이어 우리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다가온 후. 세 명은 내가 일어나있는 것을 보고 다행이라는 표정과 함께 안부를 건넸다. 이러나저러나 몸 상태를 먼저 걱정해주는 모습들을 보니 가슴 한 켠으로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그에 대한 답례로 한두 번 고개를 주억이고,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금 힘이 없기는 하지만 거동에 불편이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나저나 탐사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주변은 어떻던가요? 혹시 여울가녘이나 구조대의 흔적은 발견했습니까?”
인사를 받고 바로 탐사에 대해 물어보는 내 태도에 질렸는지, 고연주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요. 흔적은커녕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냥 황량한 유령 도시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냥 주변 건물 몇 개만 들어가봤지만 반응에 걸리는 것은 없더라고요.”
“음. 다리는 아직 건너가보지 않으셨고요?”
“네. 그곳까지 들어가면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서 말이죠. 일단은 수현이 깨어나기를 기다렸어요.”
“Ok. 알겠습니다.”
고연주와 대화를 나누고 바로 몸을 일으키자, 아니나다를까 곧장 머릿속을 덮쳐오는 띵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균형을 잡는데 신경 써서 그런지 다시 넘어지는 추태를 보이지는 않았다. 고연주는 내 상태를 체크했는지 재차 휴식을 권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여기서 휴식 같지도 않은 휴식을 취하기보다는 서둘러 일을 마무리 짓고 얼른 도시로 돌아가서 쉬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나는 크게 기지개를 펴고 다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번째 달성 목표라고 여겼던 다리였는데, 건너기도 전에 보스를 정리할 수 있었다. 내가 슬슬 선두에 서자 이제는 자동적으로 진형을 짜는 클랜원들이 보인다.
곧이어 방진을 구성하는걸 보며 “그럼 보상을 가지러 가봅시다.” 라고 말하려다가, 나는 잠시 생각한 후 말을 바꿨다.
“어쩌면 늦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네?”
“이곳에 먼저 들어온 사용자들 말입니다…. 일단은 출발하겠습니다. 주변에 별다른 위험은 감지되지 않으니, 빠른 속도로 가는 게 여러모로 나을 것 같습니다.”
나는 말을 마치고, 말 그대로 빠른 걸음으로 구조 및 탐사를 위한 행군을 시작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다리를 건넌 우리들은 넓게 트인 대로를 따라 앞으로 쭉 직진해 들어갔다. 확실히 다리를 건너기 전과 후는 보이는 광경이 오묘하게 다른 면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목표하는 장소는 다른 쭉정이 건물이 아니었다. 오로지, 저기 앞에 보이는 우뚝이 솟은 성 하나를 목표하고 있었다.
‘마력 영약, 무기, 클래스 등등…. 마볼로의 연구 성과들도 얻을 수 있고 말이지. 하연과 비비앙이 좋아할 거야. 이야 신난다.’
1회차에서 마볼로를 토벌했을 때. 제법 많은 클랜들이 참여하느라 각자에게 돌아간 보상은 적었다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것을 독식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이게 바로 내가 어떻게든 클랜원들을 끌고 오려고 했던 이유였다. 마지아는 하나의 보물창고나 다름없는 곳이다. 30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버티며 잠들어온 수많은 금은보화들이 잠들어있기 때문이다.
성으로 향하는 대로의 주변으로는 여러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밋밋한 건물이 아닌 마법사들의 취향이 듬뿍 들어간 건물들이 한가득이었다. 그래도, 다리 건너에 있는 건물들은 폐허로 불릴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멀리서 보이던 성이 점점 크게 다가올수록 멸망스러울 정도였던 수준이 점차 나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물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애들의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고 설렘이 감돌고 있다는 게 그 반증이었다.
아무튼 사용자들을 구한다는 명목아래 다른 건물들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걸어간 결과, 우리들은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목적지의 앞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후유. 드디어 성에 도착했네요. 그런데 이곳에 과연 사용자들이 있을까요?”
“놈이 분명 그랬습니다. 일부는 가둬놨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본거지인 성에 가둬놨을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고연주의 물음에 적당히 대꾸해주며 나는 눈 앞의 성을 올려다보았다. 말 그대로 고성(古城)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성이었다. 외관은 예전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는지, 약간이나마 남아있는 당당한 위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성벽을 책임지고 있는 벽돌은 거무죽죽한 빛을 띠고 있었고, 세게 차버리면 부서질 듯 헐거운 이음새가 곳곳에 보였다. 심지어 어떤 곳은 구멍이 뽕뽕 뚫려있는 곳도 있었다. 전체적인 외형은 잘 잡혀있었지만 죽은 성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겨져 나왔다.
“에…. 이게 성이라고? 왠지 개털 냄새가 폴폴 풍기는데?”
“야, 이유정. 우리는 사용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온 거잖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미친놈. 뭐래. 누가 안구한대? 그럼 넌 딱 그 사람들만 구하고 돌아갈 거야?”
“농담이야, 농담. 그러니까 애초에 기대하지 말자 이런 뜻이었어.”
과연 동료들이 안에 붙잡혀있었다고 해도 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까? 처음 통과의례 때의 애들을 떠올리면 슬픈 현상이기도 했지만, 딱히 둘의 대화를 저지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야말로 홀 플레인 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애들이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황량한 기운이 감도는 성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애당초 성문은 활짝 열려있어 들어가는데 아무런 부담도 없었다.
*
바깥의 풍경과는 달리 성의 내부는 비교적 잘 정돈되어있는 편이었다. 어디까지나 비교적이었지만 말이다.
입구로 들어서자 양 옆으로 지팡이를 멋들어지게 들고 있는 마법사 동상이 눈에 밟혔다. 동상의 대부분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눈과 지팡이 끝에는 뭔가 반짝이는 게 달려있었다. 보석이었다.
‘일을 마치고 나올 때 싹싹 빼가야겠군.’
어차피 성의 구석구석을 뒤지며 탈탈 털어갈 생각이었기에, 보상에 대해서는 최대한 느긋한 생각을 가지기로 했다. 그렇게 입구로 들어선 후, 우리들은 누군지도 모를 초상화가 걸린 벽면을 두리번거리며 기다란 통로를 걸었다.
이윽고 우리들은 굉장히 넓은 공간을 갖고 있는 홀로 도착했다. 천장에 달려있는 아름다운 장식물들과, 부드러운 U자를 그리며 올라가는 2층 계단. 그리고 때가 타기는 했지만 반듯하게 달려있는 네모난 창문들까지.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눈 앞 정면으로 보이는 매우 거대한 벽난로였다. 높이는 2미터, 너비는 1미터정도 되어 보이는 벽난로의 내부는 매우 어두컴컴했다.
‘이제 지하로 가야 한다.’
애들의 시선은 대부분 2층으로 꽂혀있었다. 내부 구조는 2층에서 3층으로 이어지고, 3층에서 다시 4층으로 이어졌다. 기억과는 다른 점이 있을 수도 있기에 계단을 올라가볼까 생각하다가, 문득 고연주를 돌아보았다.
“고연주. 혹시 감지를 돌려봤습니까?”
“들어오자마자 돌렸죠. 그런데 최소 1층이랑 2층은 아무런 반응도 느껴지지 않고 있어요. 뭐, 그 위로는 올라가봐야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요.”
“그럼 잡혀온 사용자들이 어디쯤에 있을까요?”
“흐~응. 뭐, 그림자 여왕으로서의 제 의견을 물어보시는 거라면….”
고연주는 잠시 말을 멈추고 위쪽으로 발을 쭉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이내 세게 내리치며 말을 이었다.
쾅!
“지금 보면 마력이 아래쪽으로 쭉 투과되고 있거든요. 예전에 뮬에서 운영하던 여관도 제가 비슷하게 지하를 만들어놨어요. 저는 이 성 어딘가에 지하로 통하는 문이 있고, 그곳에 사용자들이 있을 거라는데 제 몸을 걸겠어요.”
“그렇군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럼 지하로 통하는 문을 찾는 게 관건이겠네요.”
“호호. 제가 맞췄죠? 자, 그럼….”
“자, 그럼은 뭐가 자, 그럼입니까.”
톡 쏘아붙이듯 대꾸하자 고연주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홀의 중앙을 가로질렀다.
마력을 밀도를 가일층 높이고 부채꼴 모양으로 감지를 돌린다. 후방부터 차분히 돌리기 시작하자 등 뒤로 천천히 뒤따라오는 클랜원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실은 지하로 통하는 문이 어디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으로 들어오고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쏙쏙 찾아내면 분명 의심스러운 시선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고연주에게 살짝 운을 띄운 것이다. 조금 답답하기는 했지만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고 했으니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력 감지가 천천히 돌아 벽난로를 스쳤을 무렵 역시나 뭔가 이질적인 것이 걸림을 느낄 수 있었다.
“벽난로 안이 수상한데요.”
“확실히 크기가 조금 별나기는 하네요.”
잠시 동안 벽난로를 쳐다보다가, 나는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 워낙 크기가 컸기 때문에 아무런 부담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단지 오래된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러 들었지만, 그럭저럭 참을만한 수준이었다.
“───. ───. ───. 라이트(Light).”
눈치 빠른 김한별은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라이트 주문을 외웠다. 곧 그녀가 발현한 주먹만한 빛의 구체가 두둥실 안으로 들어간다.
“…….”
예상대로 벽난로의 내부는 필요 이상으로 깊었다. 라이트는 약 5미터정도 둥실둥실 들어가더니, 어느 지점에서 멈추며 사방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그리고….
“어? 저거 뭐야. 안에 뭐가 있는데?”
“문 같은데? 와…. 벽난로 안에 문이 있네.”
우리들은 벽난로 내부에서 굳게 잠겨있는 하나의 육중한 철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벽난로 안의 철문이라. 냄새가 폴폴 나는군요.”
“서두릅시다. 일단은 구조가 우선입니다.”
클랜원들을 재촉하며 나는 얼른 문 앞으로 섰다. 그리고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자, 문이 잠겨있지 않음을 알아챘다. 안현은 내 옆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 이게 지하로 통하는 문일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오, 그럼 이곳에….”
“일단 열고 들어가보자.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다들 진형 잡고 무기 꺼내고. 그리고 한별이는 라이트 마법 유지해줄 수 있지?”
나는 잠시 동안 클랜원들이 나름의 준비를 하는 것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네들이 모든 준비를 끝마친 것을 확인하고, 동그란 문고리를 향해 곧장 손을 뻗었다.
끼이익!
철로 만들어진 이음새가 끄르는 불쾌한 소음이 들린다. 하지만 꾹 닫혀있던 철문은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완전히 문의 손잡이를 끌어당긴 순간, 눈 앞으로 아래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암청색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빙고.’
라이트 마법이 먼저 들어가며 계단을 비춰주었다. 살짝 밝아진 내부를 보자 생각보다 계단의 길이가 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뒤에서 탄성을 흘리는 클랜원들에게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해준 후, 나는 천천히 계단을 밟아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
묘한 향내가 계단을 가득 메우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쾌한 공기는 대기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고 약 20분 정도 흘렀을까. 하나씩 조심조심 내려왔다고는 해도, 지하 계단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계단이 곧 끝날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왜냐하면 점점 콧속으로 흘러 드는 향내가 점차 강렬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것은 더 이상 향내가 아니었다. 피비린내, 밤꽃 냄새, 체취, 액 냄새 등 여러 냄새가 복합적으로 뒤섞인 악취였다. 점점 강해지는 냄새에, 결국 나는 후각을 돋우던 마력을 멈추고 말았다.
그때였다. 한창 아래로 내려가던 빛의 구체는 뭔가 막힌 듯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가장 선두에서 앞서가다가, 그 광경을 확인하고 내려가던 걸음을 우뚝 멈췄다. 그리고 라이트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자, 그 앞으로 흑색으로 칠해진 커다란 나무문을 볼 수 있었다.
“…….”
사위는 고요했다. 전투는 끝났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긴장감이 주변을 감돌기 시작한다. 나는 일월신검을 언제든지 출수할 수 있도록 마음을 먹고, 나무문과의 거리를 줄였다. 이윽고 문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자, 딱 내 눈높이 정도에 하나의 글귀가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대어로 적혀있었지만 그 분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지식이 있었다. 가만히 그 글자를 해석하고 있자 뒤에서 어깨를 톡 건드리는 기척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니, 고연주가 손가락을 조용히 입에 대고는 안쪽을 서너 번 찔러 보였다. 내부에서 반응이 느껴진다는 일종의 신호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일월신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막 문을 열고 들어가기 직전에, 나는 다시 한번 문에 적힌 글귀를 읽어보았다.
‘그날을 기억하자. 감정을 버리고, 한 마리 짐승이 되자.’
============================ 작품 후기 ============================
둥글게 둥글게~. 둥글게 둥글게~.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며~. 랄라랄라 즐겁게 글쓰자~! 절단절단 절단 절단절단절 단절단절 단절 단절단절단~!
PS. 리리플은 다음 회에 합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오전 9시에 나가야 해서 빨리 자러 가야 해요. ㅜ.ㅠ
PS2. 독자 분들. 절단마공은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손에 든 돌멩이는 잠시 내려놓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