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273
00272 Tears Of Elf Queen =========================================================================
동료들을 방패로 삼고, 많은 희생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도시의 마법진을 해제한 후에야 우리들은 마법사를 쓰러뜨릴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아마 처형의 공주가 재생, 치유와 관련된 마법진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그 원정은 다시 한번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중략.)
…있었지만, 결국 성과를 크게 얻은 곳은 총 두 곳으로 나눌 수 있다. 한곳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방이었고, 한곳은 마볼로의 연구실이었다. 그 중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연구실이 아니라, 아무 생각도 없이 들어간 방이었다.
그곳에 있던 장비들 중 일부는 이미 과거의 영웅들이 사용하던 것이라고 밝혀졌다. 그러나 그것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건대, 나머지 장비들은 그들을 구하러 온 고대 거주민들의 사용하던 것들이 아닐까…. 그냥 그렇게 한번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왜냐하면….
고대 마법도시 마지아(Magia) 원정 보고서 Page 17 발췌.
*
“별 것은 없네.”
첫 번째로 들어간 방은 말 그대로 별 것 없는 방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화려한 귀빈실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찬찬히 살펴보니 하나도 건질 게 없는 쭉정이였다. 한마디로 실속이 없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방은 많다. 4층에는 총 7개의 방문이 있으니 남은 6개를 살펴보면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나오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방문을 닫았다.
쾅. 쾅.
문득 귓가로 거의 동시에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슬쩍 옆을 돌아보니 안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녀석 또한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어깨를 한번 으쓱여 보였다.
‘5개 남았나.’
각각 방 하나씩을 둘러본 우리 둘은, 남은 방을 탐사하기 위해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통로를 따라 여덟 걸음 정도 직진하자 이번엔 하얗게 칠해진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쾅! 쾅!
‘미친놈.’
방 안의 엄청난 광경에 속으로 나직한 욕지거리를 내뱉고 말았다. 한숨을 내쉬고 방문을 닫는다. 불현듯 이러다가 허탕을 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을 읽어봤기 때문에 어떤 장비들이 나오는지는 대강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3번째로 살펴본 방에도 건진 것이 없자 슬슬 느껴졌던 불안감이 점점 가속화되는 것을 느꼈다. 결국 나와 안현은 마지막으로 남은 방에서 동시에 마주치고 말았다. 녀석 또한 얼굴에 실망스러운 감정이 그득한걸 보니 나와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힘들게 들어왔는데 참 힘 빠지게 만드네요.”
“아직 탐사가 끝난 건 아니잖아. 여기도 아직 안 열었고 다른 층도 남아있으니까. 일단 이곳만 둘러보고 아래로 내려가보자고.”
마지막으로 남은 방문을 톡톡 두들기며 말하자 안현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요 형. 그래도 방문은 참 좋아 보이는데요.”
확실히 안현의 말대로였다. 그래도 거주하는 곳들은 꽤나 신경을 썼는지 적어도 사람 사는 냄새는 풍기고 있었다. 특히 눈 앞에 보이는 문은 다른 문들과는 유난히 다른 점도 있었다. 문틀과 경첩 부위에 보이는 문양과 윤기가 자르르 흘러 번들번들한 빛을 띠고 있었다.
‘마볼로가 평소 사용하던 방인 것 같은데. 이거 정말 기대되는군.’
“제가 열게요. 들어가요 형.”
“음.”
안현이 앞장서서 방문을 열었다. 문은 제법 관리를 잘해놨는지 삐걱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고 부드럽게 열렸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방의 내부는 제법 넓은 평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양쪽 벽면을 모두 차지하는 책장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으로 널찍한 책상이 하나 있었는데, 커다랗게 네모진 창문을 등지는 위치였다.
그 외에도 벽에 걸린 그림과 몇 개의 가구가 보였지만 이 정도만해도 내 예상이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다. 어떻게 보면 수수하기도 했지만 곳곳에 세월이 깊게 배인 흔적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즉 한마디로 ‘마법사의 방’이라는 기분이 느껴졌다.
방 내부로 걸어 들어가며,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왼쪽 벽면의 책장에는 두터운 책들이 빼곡히 꼽혀있었고, 오른쪽 벽면에는 특이하게도 수백 개의 수정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감지를 돌렸지만 딱히 숨겨져 있는 것들은 없었다. 이윽고 책상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중앙에 놓여있는 커다란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직도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안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쪽 책장 좀 훑어보고 있어봐. 제목 보고 혹시 고대 마법이 적혀있는 책이라도 보이면 무조건 챙겨.”
“형. 저 고대어 읽을 줄 모르는데….”
“…그럼 그냥 책상이나 둘러보고 있어.”
“네!”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책은 굉장히 많은 내용이 있을 거라 추측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고 있었다. 겉면을 살펴봤지만 제목은 적혀있지 않았다. 금으로 감싸인 모서리를 한두 번 매만지다가, 나는 곧장 책의 첫 페이지를 펼쳤다. 그러자 한 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대어들이 보였다. 거주민들처럼 줄줄 읽을 수는 없겠지만 다행히 1회차 시절 어느 정도 익혀놓은 터라 70% 정도는 해독할 자신이 있었다.
나는 종이에 뭍은 먼지를 살며시 털어내고 첫 문단부터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오늘 드디어…. …시행했다. 비록 모든 도시의 주민들을 …로 사용했지만, 그리고 나 또한 이제 도시를 벗어날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후회는 없다. 아마 지금쯤이면 로이드와 마르가리타가 오고 있을 터. 이제는 …의 시간이 도래….」
「붙잡힌 둘의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마르가리타는 예상대로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나를…. 했다. 과연 앞으로도 이 태도가 유지될 수…. 큭큭.」
‘설마 마볼로가 기록해놓은 건가? 그렇다면….’
계속해서 쭉 아래를 읽어보자 로이드와 마르가리타를 초대하고 납치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나는 일단은 계속 읽어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바로 한 장을 더 넘겼다.
「오늘 드디어 마르가리타의 처녀를…. 처음으로 보는 그녀의 …에 더욱 흥분하고 말았다. 로이드를 앞에 두고 마르가리타를 강제로…. 드디어 그녀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방 안을 가득 메우는 울부짖는 소리에….」
「드디어 …을 눈치챈 것인가? 그라치아가…. 토벌대를 이끌고 온…. 물론 토벌대는…. 역시나 도시 안에서라면 나는 신이나 다름없다. 웬만하면 그라치아도 붙잡고 싶었는데, 주변 놈들의 워낙…. 결국 놓치고 말았다. 제법 대단한 실력이기는 했다. 특히…. 그래도….」
「나의 소중한 마르가리타. 평소에 생각이나 했을까? 고귀한 요정 여왕이 설마 괴물들에게 둘러싸여 강제로 …을 당할 줄은. 그녀의 반응을 하나씩 이끌어낼 때마다 너무나도….」
「좋은 생각이 났다. 로이드의 죽음을 확인한 이후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마르가리타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그라치아로 변신하고 구출해주는 척을….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다시 …로 변하자 멍해지는 마르가리타의 얼굴을.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크크크크.」
“…….”
그대로 덮어버릴까 하다가, 이왕 여기까지 읽은 거 조금만 더 참아보기로 했다. 대신 앞장은 아예 넘겨버리고 뒷부분을 중점으로 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해서, 페이지 한 뭉텅이를 잡고 한번에 넘겨버렸다.
「…마르가리타가 임신했다.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불러오는…. 솔직히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머릿속이 복잡하다.」
「결국 마르가리타는 …을 낳았다. 마르가리타가 보는 앞에서 부수려고 했지만 일단은 …했다. 내 아이일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괴물의 아이일 가능성도 크니까. 나와도 한적은 있지만 근 1년간은 괴물들과 더욱…. 바로 부화시키기보다는 일단은 보존해두기로 했다. 협박할 때 써먹어야지. 낄낄!」
「오늘 도시로 이상한 …들이 들어왔다. 붙잡아서 정신을 조작해본 결과 ‘사용자’라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사용자? 흥미가 돋는다.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마침 …했는데 잘됐거든.」
「오늘…. 결정했다. 마르가리타에게도 정신 조작을 …하기로. 어쩌면 여왕의 본 모습을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을 보고 싶어졌다.」
팔랑! 팔랑! 팔랑! 팔랑! 팔랑! 팔랑! 팔랑! 팔랑! 팔랑! 팔랑! 팔랑! 팔랑!
「바깥은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토벌대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대신 ‘사용자’라는 놈들이 들어오는 빈도가 잦아졌다. 처음에는 그냥 죽이기만 했지만 그래도 꽤나 재밌는 …를 뱉어낼 줄도 안다. 뭐 둘이…. …했으니 …들을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다. 물론 정신 조작을 걸어서….」
「큰일이다. 설마 무한한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마르가리타가 죽는다면.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오늘부터 연구에 들어갈 생각….」
「여러 방향으로 시도해봤지만 연구에 진척이 보이지 않는다. 홧김에 부하 놈 한 명을 죽여버렸는데, 설마 여기서 길이 보일 줄은 몰랐다. 역시 그냥 죽으란 법은 없지. 인간을 제물로. 인간이 더 필요하다. 지금 있는 놈들 가지고는 부족해도 너무 …하다. 나는 도시를 나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밖에서 인간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부하들이 …하다.」
「…가 부족하다 남아있는 부하들을 모두 죽일까 고민할 즈음 싱싱한 인간 10명이 들어왔다. …이다. 하지만 곧바로 죽여서는…. 이놈들을 어떻게든 …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란 거에 …한단 말이지. 그렇다면 지금 내게 …한 건….」
「감옥을 둘러보는 중에 감히 몰래 통신을 시도하는 사용자를 발견했다. 마르가리타를 살리는 …때문에 신경을 …있지만, 설마 귀에 …를 꽂았을 줄이야. 재밌는 발상이기는 했다만 본보기로 반으로 …버렸다. 마침 마르에게 먹일 …도 떨어지고 있었으니….」
「오늘 추가로 14명…. 쳐놓은 …에 걸린 모양…. 하지만 아직도 부족….」
탁.
“후유.”
한숨을 내쉬며 책을 덮은 후, 나는 책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앞부분은 마르가리타의 조교 일지를 다룬 거지발싸개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루었지만, 뒷부분은 마법사나 연금술사의 입장에서 보면 읽을만한 것들이 있었다. 특히 비비앙의 경우는 같은 거주민이니만큼 마볼로가 적어놓은 연구 경과들을 보면 큰 도움을 얻을지도 모른다. 수준 높은 마법사가 흘리듯 써놓은 한마디라도 실력을 상승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될 수도 있으니까.
잠시 동안 고민했지만, 결국 책을 잡았던 손에 힘을 풀고 말았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가져가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후 나는 벽면으로 걸음을 옮겨 빼곡히 꽂힌 책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형. 뭐 건지신 거라도 있으세요?”
“몇 개는. 근데 확실하지는 않아. 너는?”
“개털이에요. 책상이나 서랍 같은 데는 전부 뒤져봤는데 도저히 쓸만한 게 보이지를 않네요.”
“내가 더 살펴볼게. 그럼 뒤에 있는 수정구나 뭔지 확인해봐.”
책들의 제목을 훑으며 대꾸하자 안현은 “네 형.” 이라고 대답하고 내 뒤로 걸어갔다.
약 5분정도 흘렀을까. 몇 개의 책을 뽑으며 하연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들을 차곡차곡 쌓던 도중이었다. 문득 등뒤로 야릇한 신음이 귓가로 흘러 들었다.
(마볼로 드 아일라이트. 당신이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당신이 진정으로 내 동료라면….)
“어, 어.”
“안현? 거기서 뭐해?”
“혀, 형. 이, 이거….”
안현은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뭔가 하고 봤더니, 가지런히 놓인 여러 수정구에서 영상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책장에 있던 것들은, 영상 재생 수정구였다.
“너 저거 건드렸어?”
“네, 네. 보니까 영상 재생 수정구들이길래 그냥 눈에 보이는 거 몇 개 틀어봤는데…. 갑자기 이상한 장면들이….”
(부탁이에요 마볼로! 아직 늦지 않았어요. 지금이라도 죄를 뉘우치고 저희들을 풀어준다면….)
(지금 이 비열한 행동이 즐거운 건가요? 실망이에요 마볼로 드 아일라이트. 제가 사람을 잘못 봤어요. 정말로 구제가 불가능한 쓰레기였어요. 비록 제 몸을 가졌다고는 해도, 제 마음까지는 가질 수 없을 거예요.)
(싫어, 싫어! 괴물들한테 당하기는 싫어! 로이드! 도와줘요 로이드으!)
(흐아앙…. 흐아아앙….)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나는 비로소 마볼로 드 아일라이트를 그렇게 쉽게 죽여버린 것을 살짝 후회했다. 설마 기록도 모자라 영상까지 저장해뒀다니. 이건 벨페고르를 넘어서는 행동으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 광기 어린 집착에 오소소한 소름을 느끼며, 나는 곧장 수정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안현이 이곳 저곳 틀어놓은 수정구는 계속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그라치아! 구하러 와줬군요! 정말 고마…. 그라치아…? 마…볼…로?)
(로이드으으으으으!)
(헤…. 헤에….)
(흐, 으, 으, 응! 마, 볼, 로, 님! 아앙! 좋아요오! 더, 더 세게…! 하앙! 아아앙!)
“형. 이거 설마 형이 말씀해준 요정 여왕 아니에요?”
“안현. 뒤로 물러서.”
“네, 네?”
“내 뒤로 물러나라고. 다친다.”
담담히 내뱉고, 벽면의 정 중앙에 섰다. 마침 앞에서 중간 열에 틀어진 수정구에는, 마볼로를 꼭 껴안고 열심히 엉덩이를 흔들고 있는 마르가리타가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오른 다리의 무릎을 앞가슴에 닿을 정도로 구부렸다가, 마력을 한껏 일으키며 허공을 향해 다리를 강하게 차올렸다.
펑!
앞발을 강하게 내지른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한번 크게 일렁이고, 이내 강렬한 충격파가 벽면의 전체를 덮쳤다.
와장창! 쨍그랑!
이윽고 벽면에 붙어있던 책장이 여러 조각으로 쪼개지고, 충격의 여파로 놓여있던 수정구들이 모조리 박살 난다. 충격으로 튄 파편들은 허공으로 비산하더니 곧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르르…. 사르르….
이윽고 튀었던 파편들이 모두 바닥으로 가라앉을 무렵, 나는 들고 있던 책 전부를 안현에게 넘겨주었다.
“안현. 이거 전부 가방에 넣어놔.”
“아. 네 형. 그런데요….”
“?”
“방금 수정구에 나온 여자 있잖아요. 진짜 요정 여왕이에요?”
허둥지둥 가방 속으로 책을 쑤셔 넣는 안현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이었다.
다다다다!
문득 바깥쪽에서 누군가 급히 복도를 달려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가만히 방문을 쳐다보고 있자 이내 한 손에 카타나를 들고 잡아먹을 듯 쳐들어오는 이유정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굉장히 다급해 보였는데, 나와 안현이 멀뚱히 서있는걸 보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유정아 왜 그래?”
“오, 오빠. 괜찮아? 갑자기 뭔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서.”
“아아. 별일 아니야. 아무 이상 없어.”
“그렇구나….”
이유정은 바닥을 물들인 수정 파편들을 보며 어색한 표정을 내비쳤다. 그러다가, 곧 뭔가 생각난 얼굴로 번쩍 고개를 올렸다.
“아 오빠. 4층 탐사 끝났어?”
“거의. 너는?”
“나랑 연주 언니 모두 끝냈어. 그리고 연주 언니가 빨리 오빠 모셔오래.”
“그래? 뭐 발견이라도 했대?”
“응. 나 하나 발견했고, 연주 언니 하나 발견했고. 근데 2층 먼저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확신에 찬 이유정의 목소리에 일단 4층 탐사는 이쯤에서 끝내기로 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4층에 있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다른 층에 있었던 모양이다.
이유정의 독촉 어린 시선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후, 나와 안현은 그녀를 따라 방문을 나섰다.
*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 2층에 다다르자, 방 앞에서 팔짱을 끼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고연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우리들이 내려오는 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리고는 한쪽 손을 빼어 흔들었다.
“오셨네요. 4층에서는 뭐라도 좀 건지셨나요?”
“아주 없지는 않지만 조금 두고 볼 것들입니다. 고연주는요? 2층에 뭐가 있던가요?”
“호호. 급하기도 하셔라. 이 방안에 있으니 직접 와서 보세요.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내 말투나 걸음에서 조급함이 느껴졌는지, 고연주는 잔잔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윽고 그녀의 앞으로 다가선 나는 곧바로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 내부는 깨끗했다. 일부러 이곳만 깔끔하게 청소하기라도 한 듯 문틀을 기준으로 내외의 바닥 색깔이 차이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미 제 3의 눈은 활성화한 상태. 이윽고 시선을 위로 올리고, 동시에 등뒤로 애들이 빼꼼 고개를 내미는 기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칼리고 아브락사스(Caligo Abraxas)』
『파라디수스 플레이트 메일(Paradisus Plate Mail)』
『오로쓰로스 롱 부츠(Orthros Long Boots)』
『찬란한 섬광 : 라우라 필리스(Laura Phylis)』
『위그드라실의 나뭇잎을 이어 만든 옷』
『리자 부츠(Rhiza Boots)』
『순결의 머리띠(Headband of Innocence)』
『찢겨진 요정 여왕의 날개(12쌍)』
『푸른 달의 마도사(Book, Magician of the Blue Moon, Secret Class)』
『여명의 검투사(Sword, Gladiator of the Dawn, Rare Class)』
『섬백(蟾魄)』
『티르빙(TyrFingr)』
방 내부를 훑자마자 온갖 정보를 담은 메시지들이 허공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얼떨떨한 마음에 그것들을 멍하니 보자, 옆에서 고연주의 나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기하죠? 딱 봐도 심상치 않은 기운들이 느껴져요. 아무래도….”
“이건….”
“축하해요, 수현.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자고 하시더니, 이번 원정도 대박을 터뜨리셨네요.”
고연주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비로소 하나를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입니다.
후유. 원래는 방 안을 들여다보는 곳에서 끊으려고 했는데 그러면 독자 분들이 저를 매우 치실 것 같아서요…. OTL 저번 회는 심심하셨겠지만, 나름대로 필요한 회였습니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단순히 쉬어가기나 완급 조절은 아니었어요. 🙂 아마 계속 읽다 보시면 “아.” 하시는 날이 오실 거예요. 하하하. 아. 그리고 연참을 못한 저를 용서하세요. 대신 오늘 분량 빵빵~하게 넣었어요. ^_ㅠ 아, 도시는 2~3회 안으로 돌아가지 싶습니다.
『 리리플 』
1. 신화의재현자 : 오잉. 미월야 님, 한방모드 님이 보이실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1등에서는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하하. 1등 축하 드려요! 🙂 이번 회도 재밌게 감상해주세요.
2. 디반 : 도시로 돌아가고 나서요. 후후.
3. 플룻 : 퇴고가 손에 붙어야 하는데, 노력 중에 있습니다. 하하. 그리고 오전이나 오후에 약속이라도 하나 잡히면 정말 힘들어요. ㅜ.ㅠ
4. 24소설 : 지금은 조금 줄였습니다. 600회 정도? 아마 많이 가도 700회 안으로 완결 나지 싶습니다. 완결을 조금 많이 앞당겼거든요.
5. 사람인생 : 정말 어쩌다 그렇게 팍 꼬이셨는지요…. 토닥토닥. 힘내세요. ㅜ.ㅠ
6. 추락한날개 : 그냥 무엇을 얻었는지 만 보여드리고, 설명은 도시로 돌아간 후 차차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하하하. 다음 회는 잘하면(?) 협곡을 나간 일행들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7. 고장난선풍기 : 다음 회에 애기 카오스 미믹 등장 예정입니다! 🙂
8. LOVE가을 : GP 100만을 모은 사용자가 없습니다. 아틀란타 공략 전까지는 굉장히 얻기 힘들어요.(그렇다고 공략하고 나서도 쉽다는 건 아니지만요.) 후후.
9. 기분임 : 쿠폰 감사합니다. _(__)_ 앞으로도 더욱 재밌는 내용으로 보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0. 유리켄느 : 헐! 대, 대단하십니다. 지인 분이 누구신지 궁금할 정도에요. 그렇다면 도영록(황금사자 털보 남성) + 박동걸(통과의례 배불뚝이 남성)은 어떠신지요! 이 조합에 고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퍽퍽!)
11. 홍쎄바 : 1. 체력은 수현의 특성화 능력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수현의 잠재성은 이미 전부 개발된 상태입니다.(1회 차 육체를 로드. 그래서 몸에 상처도 남아있는 거죠. 겉으로는 1년차지만, 이미 10년차 사용자나 다름없습니다.)
12. 센서티브 : 지금 기준으로 2년 뒤로 보시면 됩니다. 🙂 그리고 아쉽지만 ‘전체적인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업적이 될 수 없습니다. 하하.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큰 힘이 됩니다.
글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비평, 질문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