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279
00278 조금 쉬세요, 제발 =========================================================================
러브 하우스로 가는 도중, 나는 문득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장소는 모니카의 중앙 광장이었다. 그런데 평소보다 유난히 사용자들이 많다. 게시판에 특별한 공지가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도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말 그대로 순수하게 사용자들이 늘어나 있었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래도 러브 하우스로 가는 걸음을 늦추지는 않았다.
“수현. 갑자기 왜 그래요?”
“네?”
“광장에 들어오고부터 계속 고개를 두리번거리던데요? 누구 찾기라도 해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흐~응.”
고연주는 내 옆으로 불쑥 걸어 나오더니 살짝 눈을 흘기며 콧소리를 흘렸다. 입가에 연한 미소가 지어진걸 보니 또 뭔가 못된 장난을 꾸미는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그녀가 장난을 거는 빈도가 잦아졌다. 정확히 말하면 정하연에게 2연패를 당한 이후로 더욱 심해졌다고 할까.
‘억울해.’
내가 그렇게 하라고 한 적도 없거니와 솔직히 가위 바위 보로 동침을 정하는 것도 상당히 웃긴 일이었다. 그러한 뜻을 담아 억울하다는 표정을 보였지만 고연주의 뜻 모를 장난은 멈추지 않았다.
“흐~~응.”
“…….”
문득 고연주가 뭘 원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갑자기 처음 모니카를 나섰을 때 성문에 있던 사용자들이 나누던 대화가 떠오른다. 일단 휴식이 최우선이기는 해도, 앞으로 몸이 버티려면 정말로 정력을 높여주는 물약을 구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나는 광장에서 왼쪽으로 트인 대로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애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등 뒤를 가득히 울렸다.
“야, 백한결. 첫 원정을 다녀온 기분은 어때?”
“네? 아하하. 그, 글쎄요. 그냥 뭔가 후다닥 지나가버린 것 같아서….”
“언니, 언니이. 돌아가면 뭐부터 하실 거예요?”
“목욕, 밥, 잠. 씻지를 못했더니 죽을 것 같아.”
“아, 아가야. 거의 다 왔으니까 조금만 더 가만히 있으렴. 응?”
“뀨!”
‘많이 답답한 모양이군.’
현재 유니콘은 김한별의 로브 안으로 파묻힌 상태였다. 물론 도시로 데리고 들어온 이상 공개할 생각도 있었고, 끝까지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가뜩이나 피곤해 죽겠는데 사람들이 몰릴만한 일은 사양하고 싶었고, 예정보다 일찍 돌아온 만큼 클랜 하우스의 개축 공사는 진행 상태일터. 러브 하우스에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는 일을 벌이기는 싫었다.
유니콘의 공개 시기는 클랜 하우스로 들어간 이후로 잡고 있다. 아무튼 이제는 거의 애원 조에 가까워진 김한별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걸음 속도를 한층 높였다.
*
드디어 러브 하우스에 도착했다. 건물을 바로 눈앞에 둔 클랜원들의 눈빛은 무서웠다. 아마 내가 앞에 없었다면 당장에라도 뛰어 들어가 문을 박차고 들어갈 것만 같은 기세였다. 등을 콕콕 찌르는 무언의 압박을 느끼며, 나는 까끌까끌 한 감촉이 느껴지는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렇게, 막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선 순간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문을 열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광경은 굉장히 미묘했다. 밖은 조금씩이지만 어둑한 빛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다. 일반적인 사용자라면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도시로 돌아올 시간이지만, 밤의 꽃들은 반대로 지금부터 활동할 시간이었다. 안 그래도 막 나가려고 했던 참인 듯, 야릇한 옷을 입은 몇몇 여성들은 모두 불안한 얼굴로 1층을 에워싸고 있었다.
러브 하우스는 원래 남자가 출입할 수 없는 구역이다. 하지만 1층 카운터 앞으로 한 명의 남성이 버젓이 서있었다. 그 뒤에는 전투용 장비를 걸친 서너 명의 사용자들이 흥미로운 얼굴로 카운터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으로, 임한나가 45도로 허리를 굽히고 있는 상태였다.
이윽고 맨 앞에 있던 남성이 말했다.
“한나씨. 정말로 제 마음을 받아줄 수 없는 겁니까?”
“정말, 정말 죄송해요.”
임한나는 거듭 사과를 하고, 남성은 씁쓸한 표정을 내비친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주시했다. 이대로 그냥 무시하고 들어가기에는 아까 말했던 대로 뭔가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침묵이 흐른다. 고요하다. 남성은 태연한 표정을 보이려고 애쓰는 듯 보였지만 눈가가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피가 날세라 입술을 한 번 짓씹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유, 알겠습니다. 제가 곤란하게 해드렸군요.”
“마음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고개 드세요. 더는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 그만 가볼 테니 오늘 일은 이만 잊어주십시오. 임 마담.”
“…….”
“가자.”
남성은 차갑게 내뱉더니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뒤에서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구경하고 있던 동료 중 한 명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꼴값 떠네. 하여간 고작해야 마담 주제에 자존심만 더럽게 높아요.”
“말씀이 너무 심하시네요.”
“신예슬. 그만해라. 빨리 안 나와?”
여인의 독설에 임한나는 굽혔던 허리를 들며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예슬이라 불린 여성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발끈한 기색을 보였지만, 곧이어 이어진 남성의 제지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더니 아니꼬움으로 가득 찬 시선을 던지고는, 팩 소리가 날 정도로 몸을 돌렸다. 나는 그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몇 걸음 옆으로 비켜주었다.
불청객처럼 보이는 이들은 썰물처럼 모두 빠져나갔다. 클랜원들도 방금 전 상황을 봤는지 다들 어색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어머. 머셔너리 로드? 돌아오신 건가요?”
그리고 그제야 우리들을 발견했는지, 임한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목소리를 내었다. 나는 한두 번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아, 네. 방금 전에 돌아왔습니다만…. 조금 안 좋을 때 온 것 같군요.”
“호호. 아니에요. 늘 있는 일인걸요.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아무튼 다시 돌아오신 것을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그럼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얼마든지요. 자자, 너희들도 가만히 있지만 말고. 얼른 할 일들 하렴.”
“언니….”
밤의 꽃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어두운 그림자가 그늘진 상태였다. 그러나 임한나가 괜찮다고 다독이며 재촉하자, 그녀들은 쭈뼛쭈뼛 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우리들을 테이블로 안내한 임한나는 어느새 표정을 회복했는지, 예의 상냥한 표정을 내비치며 말했다.
“일단 오셨는데 식사부터…. 아, 일행들을 불러드릴까요?”
“지금 전부 있습니까?”
“하연 언니와 신상용씨는 클랜 하우스를 보러 나간다고 하셨어요. 오늘 조금 늦으실 수도 있다고 하셨고…. 비비앙씨는 지금 2층에 계실 거예요. 지금 바로 불러올게요.”
“아, 괜찮습니다. 안현. 네가 좀 다녀와라.”
“네 형.”
막 자리에 앉으려던 안현은 내 말에 쏜살같이 계단으로 튀어갔다. 계단이 부서져라 올라가는 녀석을 보다가, 나는 테이블에 엎어져있는 애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설마 이 시간에 둘이 없을 줄은 몰랐네요.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니, 그 동안 다들 식사라도 하시겠습니까?”
“네! 네! 네! 네!”
“와아! 와아!”
“찬성~.”
내 말에 일행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찬성했다. 아니, 찬성 정도가 아니었다. 애당초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날은 맛있는걸 마음껏 먹는 날로 거의 굳어져있었다. 다들 그 동안 말린 고기와 딱딱한 빵으로만 달랬던 입을 호강시키려는 듯, 본인의 취향에 맞춰 양껏 주문하기 시작했다. 임한나는 와르르 쏟아져 들어오는 주문에 깜짝 놀라더니, 쿡쿡 웃으며 차분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머셔너리 로드님은 주문하지 않으실 건가요?”
“음….”
배는 별로 고프지 않다. 그저 하연이나 신상용이 있으면 그 동안 있었던 이야기나 들으려고 했는데, 늦게 들어온다고 한다.
나는 잠시 동안 고민했다. 유적을 나오고 나서부터 몸에서 느껴지는 피로감이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기다릴까, 먼저 잘까 고민하다가, 결국 먼저 일어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늦게 들어온다면, 제대로 된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이후 몸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제 주문은 괜찮습니다. 그럼 먼저 올라가서 자고 있을 테니, 다들 적당히 먹고 오늘은 휴식을 취하도록 하세요. 그럼 내일 아침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어? 오빠, 먼저 들어가게?”
“응.”
“그럼 물품감정은….”
“어차피 지금은 구즈 어프레이즐(Goods Appraisal)도 준비되어있지 않잖니. 수현. 먼저 들어가서 주무세요. 푹 쉬세요.”
그 동안 숨긴다고는 숨겼는데 역시 고연주는 눈치채고 있던 모양이다. 나는 쓰게 웃고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임한나가 주방으로 가는 것을 확인한 후, 얼른 김한별에게서 로브 덩어리(?)를 건네 받았다. 아기 유니콘은 어느새 지쳐 잠들었는지 로브는 약간만 뒤척일 뿐, 심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뻐근한 어깨를 두드리며 계단을 오르려는 찰나, 마침 내려오는지 안현과 비비앙이 함께 내려오는걸 볼 수 있었다.
비비앙은 다급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다가 이내 나를 봤는지, 서서히 속도를 늦추었다. 그리고 한껏 무게를 잡으며 여유로운 얼굴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1층 계단에서 마주치자마자, 나를 지금 발견한 척을 하며 거만히 인사를 건넸다.
“호오. 이게 누구야. 김수현이 왔군!”
“어, 비비앙. 오랜만이다. 나 지금 피곤해서 바로 올라가니까 내일 보자.”
“어, 어?”
내가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그대로 지나치자, 비비앙은 곧바로 표정을 무너뜨리며 눈을 끔뻑거렸다.
“형. 저녁 안 드셔도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 몸이 조금 피곤해서 그래. 나중에 정하연씨랑 신상용씨 오면 대충 상황 좀 설명해주고.”
“아, 네 형. 그럼 주무세요.”
“그래.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말고.”
“자, 잠시만…! 이게 아닌데!”
아래서 뭔가 울먹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나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
“그럼 그렇게 된 거야…?”
“네…. 그래도 항상 한나씨, 한나씨 꼬박꼬박 불러주다가 갑자기 임 마담이라니. 너무 속보이잖아요.”
“호호.”
어느새 테이블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그릇과 술병들. 아무렇게나 업어져 자고 있는 사용자들. 일찍이 자제한 안솔, 김한별, 백한결, 비비앙은 진작에 숙소로 올라갔지만 나머지 둘은 코까지 골며 한창 꿈나라를 헤매는 중이었다. 오직 고연주와 임한나 둘만이 멀쩡한 정신으로 남아, 여유롭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렇게 한잔을 모두 비웠을 즈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 여성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에서는 찬바람을 맞은 듯 얼굴이 살짝 발개져있는 정하연과 신상용이 들어서고 있었다. 고연주는 그들을 보며 미미한 웃음과 함께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어서 와요. 오랜만이죠?”
“어머!”
“사, 사용자 고연주?”
정하연과 신상용은 한걸음 들어서자마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고연주를 보며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고연주는 자고 있는 안현과 이유정을 가리킨 후, “쉿.” 하며 검지를 입술에 세웠다. 두 명은 잠시 헛웃음을 흘리다가, 조심스럽게 테이블로 다가와 앉았다.
“언제 오신 거예요?”
“오늘 오후요. 두 분은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클랜 하우스를 보러 갔다가, 이스탄텔 로우에 갔었거든요.”
“이스탄텔 로우에요?”
“네. 머셔너리의 귀환이 너무 늦는 것 같아 걱정이 되셨나 봐요. 바로 구조대를 파견하신다고 해서 상황 설명 좀 해드리고 왔어요.”
“그렇군요.”
고연주는 납득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이더니 다시 술잔을 잡았다. 임한나가 얼른 술병을 집으려고 하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업어져 있는 둘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괜찮아. 한나 너는 저기 애들 좀 데리고 가줄래? 침대에 눕혀줘.”
“네 언니.”
“저,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임한나가 벌떡 일어서자, 신상용도 곧바로 따라 일어섰다. 이윽고 임한나는 이유정을, 신상용은 안현을 부축하고 사이 좋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후~. 너무 많이 마셨나~.”
“…….”
두 시간 전만해도 떠들썩했던 테이블은 어느새 다시 고요해졌다. 정하연은 질렸다는 얼굴로 난장판이 된 테이블을 보다가, 또 술잔을 채우는 고연주를 보며 말했다.
“일은 어떻게 되셨어요?”
“아직 소문이 안 퍼졌나? 아예 뽕을 뽑았죠. 사용자들도 구하고, 유적도 발굴하고. 이번에도 완전 대박 쳤어요.”
“아. 그렇군요. 잘됐네요…. 그러고 보니 수현은요?”
“하연씨가 늦는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올라갔어요. 많이 피곤한 모양이에요.”
그때, 정하연의 얼굴에 한 순간이지만 어두운 그림자가 스쳤다. 그리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걱정이 담뿍 묻은 어조로 물었다.
“혹시…. 이번 원정에서 그 힘을 사용했나요?”
“네. 그런데 상대가 만만치 않았어요. 오는 내내 내색하지는 않았는데, 조금 많이 힘든 모양이에요. 저도 겨우 눈치챘어요. 솔직히 수현 성격에 웬만해서는 기다렸을 텐데, 이번엔 먼저 쉬어야겠다고 말을 꺼내더라고요. 정말 힘들긴 한 것 같아요.”
“어떡해….”
“일단은 기다려봐요. 쉰다고 올라갔으니까, 내일 반응을 살펴야죠.”
고연주 역시 폭 한숨을 내쉬며,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가득 차 있던 술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그에 비례해 그녀의 목 울대도 사정없이 움직인다. 정하연은 한쪽 턱을 괸 채 손가락으로 볼을 톡톡 두드리다가, 잔을 내려놓는 고연주를 보며 말했다.
“안 피곤하세요?”
“저는 별로.”
“그럼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겠군요.”
“호호.”
정하연이 자세를 고쳐 잡으며 말하자 고연주는 나직하게 웃었다. 그리고 의자 뒤로 몸을 묻으며 오른다리가 위로 가도록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연초 한대를 꺼내 입에 물고는 나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깜짝 놀랄 준비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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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로유진입니다.
떡밥 2개 투척! 아, 독자님들. 오늘 후기, 리리플 하루만 쉴게요.(리리플은 다음 회 합쳐서 할게요~.) 오늘 병원에서 준 약을 먹었거든요. 의사 선생님이 독하다고 말씀은 해주셨는데, 역시나 머리가 많이 어지럽네요. 🙂 독자분들의 양해를 부탁 드리며, 이번 회도 재밌게 감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