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284
00283 머셔너리, 자리를 잡다 =========================================================================
“웩웩!”
“억, 억지로 토하려고 하시면 안됩니다. 몸에 해로워요.”
“웩웩 웩웩!”
“아, 안솔양. 제발 그만….”
신상용이 만류했지만 안솔의 검지는 쉴 새 없이 목구멍을 넘나들고 있었다. 하지만 영약은 이미 식도를 타고 내려간 지 오래였다. 또한 이미 그녀의 허공에는 『마력(전용) 잔여 포인트가 2포인트만큼 추가되었습니다.』 라는 메시지도 떠오른 상태.
“어엉….”
수번의 헛구역질에도 영약이 도로 나오지 않자 안솔은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숙였던 허리를 올렸다. 신상용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뒷목만 긁적이다가, 자상한 목소리로 달래듯 입을 열었다.
“아, 알고 계시겠지만 혹시나 해서 말씀 드립니다. 지금 바로 포인트를 올리시는 건 정말 좋지 않은 선택입니다. 최대한 아껴놨다가, 2년이 지나고 능력치 상승이 정체될 즈음 한 번 고려해보는 게 좋으실…. 헉!”
“으앙!”
하지만 되돌아온 것은 터져 나온 안솔의 울음과 온 힘을 다한 머리 박치기였다. 불시에 일격을 맞은 신상용은 복부를 감싸며 허리를 숙였고, 그녀는 엉엉 울며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이윽고 2층에서 “오라버니!” 라는 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김수현에게 일러바치러 가는 모양이었다.
“하, 하하. 이것 참….”
비록 힘껏 들이 박히긴 했지만 별로 아프진 않았는지, 신상용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배를 쓰다듬었다.
임한나는 방금 전 일어난 일련의 과정을 모두 구경했다. 그리고 신상용을 보는 그녀의 표정은 놀라운 반 흥미로움 반이 뒤섞인 상태였다. 잠시 동은 그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임한나는 서서히 입술을 떼었다.
“괜찮으세요?”
“네, 네? 아, 네. 뭐….”
“그래도 머셔너리 로드께서 직접 내려주신 건데…. 화나셨겠다~.”
“네, 뭐. 저라도 화날 것 같습니다. 그, 그저 죄송할 뿐이죠. 그래서 잠깐 도망치려고 합니다.”
어울리지 않는 익살스런 말을 내뱉는 신상용에게선 단 한 올도 아까워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후련한 기색이 엿보이고 있었다.
“아쉽지 않나요? 솔이야 0년 차니 아직 성장 가능성이 남아있지만, 신상용씨는 아니시잖아요.”
“저도 사용자입니다. 솔직히 아쉽지 않을 리가 없지요.”
“그럼 왜….”
“저는 리더와 함께한 이후로 이미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리더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제가 지킬 차례니까요.”
“약속이요?”
임한나가 고개를 갸웃하자, 신상용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뭔가를 떠올리는 듯 눈빛이 아련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잔잔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연금술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근본이 마법사라고는 해도, 제 욕심을 이기지 못해 연금술을 배웠었죠. 하등 쓸모 없는 연금술을 말입니다.”
“…….”
“저는 원래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원래대로였다면 지금쯤 뮬의 어디 한구석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겁니다. 하지만 천운이 있었는지 머셔너리 로드에게 목숨을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리더는, 정말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사용자가 아닌 사람으로써 말이죠.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임한나는 깍지를 낀 채 검지를 톡톡 부딪쳤다. 신상용은 오랜만에 말을 길게 한 게 어색한지 목 울대를 한 번 꿀꺽 움직였다. 그러더니 짧게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리더는 아무 조건 없이 장비를 모두 돌려주었고, 스승님에게 배우고 싶다는 제 무리한 요청을 들어주셨으며 후에 레어 클래스까지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꽉 막혔던 벽을 돌파할 수 있었죠.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아, 목숨 빚을 지셨구나. 그래도 영약을 먹고 그만큼 실력을 높여서 앞으로의 계획에 기여한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을 것 같은데요. 상호승리했다고 볼 수 있잖아요.”
“저는 지금 일행들과 합류하면서 견마지로를 다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란 참 간사한 동물입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걸 권리인줄 착각하게 되죠. 저는 그때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습니다. 마력 영약을 받는 순간 초심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은혜를 불의로 갚는 금수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신상용은 단숨에 모든 말을 마쳤다. 그리고 “어?” 라고 내뱉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마도 단 한 번도 말을 더듬지 않은 자신에 스스로 놀란 모양이다. 그러다가 아차 한 얼굴로 계단을 흘끗 보고는, 어설피 웃으며 걸음을 돌렸다.
“이, 이런. 아마도 로드께서 내려오시는 모양입니다. 죄는 나중에 청하기로 하고 일단은 피해야겠군요. 근 한 시간 동안 받는다, 안받는다 다투느라 진이 다 빠져버렸거든요.”
“왼쪽으로 가세요. 오른쪽으로 가셨다고 말씀 드릴게요.”
“그래 주시면야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얼른….”
신상용은 김수현과 나눴던 대화에 질렸는지 허둥지둥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윽고 왼편으로 사라지는 그를 보며, 임한나는 깍지를 꼈던 손을 움직여 팔꿈치를 감싸 안았다. 그러자 가뜩이나 커다란 가슴이 자연스럽게 중앙으로 모이더니, 자신의 풍만함을 한껏 뽐내었다.
“흐응. 부럽네.”
임한나는 묘한 시선으로 계단을 보고는, 혀를 살짝 내밀어 입술을 적셨다.
*
“절대로, 무조건 잡아야 해요.”
이스탄텔 로우의 클랜 하우스. 찾아온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응접실 내부는 박다연의 목소리로 왕왕 울리는 중이었다. 화려하게 꾸며진 응접실 안에는 총 세 명이 앉아있는 상태였다. 윤기를 반들거리는 테이블에는 박다연과 연혜림이 서로 마주보는 방향이었고, 상석에는 한소영이 표정 없는 얼굴로 앉아있었다.
“아씨, 언제와? 어제 신전에 연락을 보냈는데 아직도 안 오는 건 어떤 경우야?”
“혜림 언니. 방금 전에 온다고 연락을 받았잖아요. 진득하니 기다려요 좀. 그리고 혹시나 머셔너리 로드 앞에서 절대로 그런 말하지 말아요.”
“괜찮아. 우리 둘은 친하거든. 아카데미에서 친분 좀 쌓아뒀지. 호호. 아니 그전에. 너 원래 걔 별로 안 좋아하지 않았어?”
“그거야 소영이 언니가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했으니까 그렇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요.”
박다연의 말에 연혜림은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슬금슬금 손을 내뻗고는, “뭐가 다른데?” 라고 물으며 박다연의 몸을 슬며시 더듬기 시작했다. 박다연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연혜림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리고 눈을 부라리며 으르렁댔다.
“상황이 좀 달라졌다고요. 머셔너리의 주가는 이미 하늘로 치솟고 있어요. 다른 데서 침 못 바르게 얼른 찜 해둬야죠.”
“그 정도야 나도 알아. 원래 그럴 예정 아니었어?”
“증명의 차이가 있죠. 솔직히 뮬에서의 기록은 워낙 홍보성이 짙어서 긴가민가했거든요. 그런데 머셔너리는 보란 듯이 환각의 협곡 원정을 성공했고, 사용자들까지 구출해서 돌아왔어요.”
“아니 그러니까 그게 전이랑 지금이랑 뭐가 다르냐고?”
“아오 진짜! 머셔너리가 왜 자리잡는 것을 미루면서까지 의뢰를 받아들였겠어요? 한마디로 자신을 뽐낸 거예요. 우린 이정도 실력을 갖고 있다! 뮬에서 이뤘던 실적들이 뻥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라고요. 거기다 이번 원정을 성공해서 더욱 강해지겠죠. 아직도 뭔 소린지 모르겠어요?”
결국 박다연이 성질을 부리며 타박하듯 말하고 나서야 연혜림은 입술 삐죽이며 나쁜 손을 원위치했다. 박다연은 연혜림을 향해 콧숨을 세게 내뿜더니, 이내 어깨춤을 추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흐흥 흐흥. 안 그래도 고려 클랜놈들이 프린시카에서 해밀 클랜 나왔다고 거들먹거리는 꼴 보기 싫었는데. 잘됐네 잘됐어. 흐흥 흐흥.”
“해밀? 해밀이 뭔데?”
“얼마 전에 김유현이 클랜 하나 만들었잖아요? 그 클랜 이름이 해밀이에요. 비가 온 뒤에 맑게 갠 하늘이라는 뜻이라고 하던데요.”
“김유현? 아, 뇌제?”
“네. 아무튼 우리도 머셔너리를….”
고작해야 세 명이 있었고, 그 중 입을 열고 있는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그러나 무에 그리 할말이 많은지 응접실을 메우는 데시벨은 점점 커져만 가는 중이었다.
어떻게 보면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워낙 치안이 좋은 모니카이다보니 도시 내부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봤자 항상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머셔너리가 이번 원정으로 몰고 온 돌풍은 심심함에 찌든 사용자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기에 차고 넘치는 사건이었다.
내부를 짜르르 울리던 소란이 잦아든 건, 머셔너리 로드가 응접실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령으로 받은 이후였다.
“모두 조용히.”
그에 가만히 앉아 찻잔만 기울이던 한소영이 입을 열자, 박다연과 연혜림을 곧장 입을 다물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는 사이, 짧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곧,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대답한 사람은 박다연이었다. 그 목소리는 아까 호들갑을 떨 때와는 너무나 다른, 은은한 어조를 품고 있었다. 연혜림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보는 사이 닫혀있던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벌어진 문 사이로 고용인의 안내를 받은, 코트형 플레이트를 걸친 한 명의 남성이 모습을 보였다.
그는 내부의 인원을 쓱 둘러보고는,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머셔너리 로드. 이쪽에 앉으세요.”
“네. 그럼.”
고용인이 문을 닫은 후 남성, 아니 김수현은 한소영이 안내해준 자리에 천천히 앉았다.
한소영은 찻잔을 만지작거리는 김수현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했다. 예전에 보았던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꼭 다물고 있는 입술과 사늘한 빛을 내뿜는 눈동자. 여전히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오늘따라 어딘지 모르게 수심이 그늘지어있었다.
“괜찮으세요?”
“네? 아, 네. 괜찮습니다. 뭐….”
입술을 한 번 열었다가 닫는다. 한소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내 한가지 추측을 떠올릴 수 있었다. 원정도 성공했고 성과도 많이 얻어왔으니 당연히 기뻐해야 할 터였다. 그런데도 근심을 보인다는 것은 클랜 내부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아마 장비 분배에 갈등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소영 또한 한 클랜을 대표하는 이인만큼 그것이 얼마나 예민한 사안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약한 한숨을 내쉬며 그를 위로했다.
“힘내세요. 그럴 때일수록 클랜 로드의 입장이 중요하니까요.”
“네?”
김수현이 눈을 끔뻑거리며 되물었다.
그 순간, 한소영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내가 잘못 짚었나, 라고. 그녀는 얼른 찻잔을 집어 한 모금 들이킨 후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이번 원정에 대한 보고는 신전을 통해 들었어요. 고생하셨어요, 머셔너리 로드.”
*
마이클은 클랜 창설 권한을 부여 받은 모니카의 거주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요즘 들어 날이 갈수록 불쾌지수가 치솟는 중이었다.
클랜 창설이다, 실적 인정이다 등등 가뜩이나 하루가 멀다 하고 처리할 일들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설상가상으로 주변마저 시끄러워 그의 심기를 긁고 있었다. 그 이유를 대강이나마 알고 있기는 했지만, 조용한 분위기에서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로서는 전혀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미친놈들. 이걸 실적으로 인정해달라고? 양심이 있어야지, 양심이.”
한창 씨근거리며 기록을 살피던 마이클은 읽고 있던 서류를 팩 내던지며 코웃음 쳤다. 몰려오는 피로감에 콧등을 주무르고 다음 기록을 살피려는 찰나, 누군가 헐레벌떡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이보게! 마이클!”
“헨? 뭐 급한 일이라도 있나?”
“그림자 여왕이 다녀갔다고! 그림자 여왕이!”
“그림자 여왕? 아, 10강?”
마이클이 대수롭지 않은 듯 중얼거리자 헨은 급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종이를 퍼뜩 앞으로 내밀었다.
“그래. 이것 좀 보게. 그녀가 놓고 간 클랜원 갱신 신청서야.”
“염병, 10강이 10강이지.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뭔 그리 호들갑인지. 쯧. 줘보게.”
심기가 불편하기는 했지만 마이클은 잠자코 헨이 내미는 기록을 받아들였다. 자신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는 헨인만큼 분명 호들갑을 떠는 데는 이유가 있으리라 여긴 탓이다. 이윽고 그는 천천히 상단부터 살펴보았다. 기록의 위에는 헨의 말대로 ‘클랜 갱신 신청서’라 써져 있었고, 옆으로는 ‘머셔너리 클랜(Mercenary Clan)’이라는 글자가 둥글둥글한 필체로 적혀있었다.
“머셔너리? 총 열 명이라….”
“일단 넘기고. 중단쯤에 클랜원 인적사항 좀 보게나. 내 눈이 이상해졌는지, 아니면 부여 받은 권한이 오류가 생겼는지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네.”
“흠.”
마이클은 얼른 시선을 중단으로 내렸다. 그곳에는 클랜원들의 이름과 클래스가 가지런하게 적혀 있었다.
김수현 : Secret, 검술 전문가(Sword Specialist)
안현 : Rare, 기공창술사(Energy SpearMan)
안솔 : Normal, 일반 사제(Normal Priest)
이유정 : Rare, 여명의 검투사(Gladiator Of the Dawn)
비비앙 라 클라시더스 : Rare, 키메라 연금술사(Chimera Alchemist)
정하연 : Secret, 푸른 달의 마도사(Magician Of the Blue Moon)
신상용 : Rare, 키메라 연금술사(Chimera Alchemist)
고연주 : Secret, 그림자 여왕(Queen Of Silhouette)
김한별 : Secret, 보석 마법사(Jewel Mage)
백한결 : Secret, 신의 방패(Aegis)
별거 있냐는 눈길로 한창 기록을 읽던 도중이었다.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지 마이클의 눈썹이 세게 꿈틀거렸다.
“잉? 씨벌, 이거 뭐야?”
“어떤가?”
“총합이 열 명인데 시크릿 클래스가 다섯 명? 레어 클래스는 네 명?”
“일반 클래스가 한 명일세. 맞지?”
“뭐야 이거? 진짜야?”
마이클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헨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다행이다. 권한이 사라진 게 아니었어.” 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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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로유진입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후기 및 리리플은 하루 쉴 예정입니다.(리리플은 다음 회에 합쳐서 하겠습니다.) 여러모로 일도 있었고…. 음, 뭐라 말씀 드리기 애매하네요. 빨리 페이스를 찾아야 하는데, 오히려 이틀 연속 어그러지고 있네요. 쩝….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정신차려야 하는데 말이죠. 부디 독자분들의 양해를 부탁 드립니다. _(__)_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편안한 밤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