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290
00289 비비앙의 각성 %26 그것을 바라고 오지 마세요 =========================================================================
내가 세라프와 오랫동안 대화한 것에 비해 김한별은 금방 볼일을 마치고 나온 모양이었다. 클랜 하우스로 돌아가는 도중 슬쩍슬쩍 엉덩이를 주무르는 것을 보니 제법 긴 시간 동안 앉아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옆에서 조심조심 걷는 김한별을 보며, 나는 잠시 동안 상념에 잠겼다.
처음 모니카에 왔을 때는 정말 깡말랐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였는데, 요즘 들어 잘 먹여서 그런지 그때보다 약간이나마 살이 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발그레한 혈색이 감도는 보기 좋은 뺨을 보고 있자, 한 순간 김한별과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는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시선을 피했다.
잠시 동안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지만, 나는 먼저 말문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기다리지 말고 돌아가지 그랬어. 오래 기다렸을 텐데.”
“아, 아니에요. 그렇게 많이 안 기다렸어요. 그냥….”
우물쭈물한 태도. 그것을 보는 순간 문득 생각이 들어, 얼른 제 3의 눈을 활성화했다.
1. 이름(Name) : 김한별(0년 차)
2. 신장 · 체중 : 170.5cm · 47.7kg
3. 성향 : 노력 · 상처(Effort · Scar)
(변경 전) [근력 50] [내구 58] [민첩 70] [체력 52] [마력 88] [행운 68] (변경 후) [근력 51] [내구 59] [민첩 70] [체력 53] [마력 88] [행운 68] (능력치 포인트가 4 포인트 남은 상태 입니다.)
능력치는 예전보다 많이 오르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모니카로 데려온 이후 곧바로 탐험에 나서 수련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력이라. 이건 너무 광범위한 성향인데.’
어떤 것을 노력하는지는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아직 내면의 상처는 아물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래도 하나가 바뀌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어찌됐든 김한별이 더욱 좋은 방향으로 바뀌기를 바라며 나는 허공에 떠있던 사용자 정보창을 해제했다.
“요즘 어때?”
“네?”
“클랜 생활이라던가…. 아니면 이번 원정 얘기도 좋고. 할만하니?”
“아…. 네. 행복해요.”
행복. 행복이란 단어를 말하는 김한별의 목소리는 한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 밝은 톤이었다. 그것을 듣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마 황금 사자에서 생활했던 때와 비하면 지금은 정말 행복할 수도 있다. 그녀가 진정으로 그렇게 느낀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그러고 보니 너 이번에 장비 분배도 받지 못했네?”
“괜찮아요 오빠. 보석을 사용하는 것만해도 죄송한걸요.”
“죄송할 것까지야. 물론 보석 마법도 좋지만, 정통 마법도 등한시하면 안 돼. 알고 있지?”
“네 오빠. 열심히 수련할게요.”
꼬박꼬박 대답하는 것을 듣자 마치 온순한 양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또 말없이 걷다가, 나는 왼손에 장착한 TOPG를 해제했다. 그리고 약지에 낀 반지를 빼 그녀에게 내밀었다.
“오빠…?”
“받아. 안티 매직(Anti Magic) 주문이 걸려있는 반지야. 횟수는 3회, 충전은 하루. 이번 원정 장비보다는 조금 못해도, 꽤 쓸만할 거다.”
“아, 아니에요 오빠. 생각해서 주시는 거라면 정말 괜찮아요. 저는….”
“그냥 받아. 어차피 난 이거 쓸 데도 별로 없어. 내 마력 저항력 봤잖아?”
얼른 가져가라는 의미로 반지를 흔들었지만 김한별은 쉽사리 손을 내밀지 않았다. 몇 번 가볍게 다그치고 나서도 손을 꼼지락거리기만 하자, 그녀의 손에 직접 쥐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손을 쫙 피며 의미 없는 반항을 해 결국 약지에 손수 끼워주고 말았다.
“오, 오, 오, 오, 오빠?”
“후유. 참 반지 하나 주려고 별 짓을 다한다, 별 짓을.”
“아, 아, 아, 아. 가, 감사….”
“?”
왜인지는 모르지만 김한별은 귀를 시뻘겋게 물들이며 말을 더듬었다. 그러면서 오른손으로 반지를 낀 왼손을 감싸는 것을 보니 무척이나 기꺼운 모양이다. 이윽고 다시 고개를 푹 숙이는 그녀를 보며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그렇게 좋은가?’
*
고요한 지하 연무장. 나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주먹을 서서히 쥐어 올리며 마력을 일으켰다. 심장에 잠들어있는 기운과 함께.
‘안녕?’
누구야 넌?
‘바보. 네 안에 있는 것도 몰라?’
갑자기 말을 거니까 놀라서 그렇지.
‘멍청이! 그거야 네가 약하니까 그 동안 말을 걸지 못한 거고. 그리고 처음 네 안으로 들어올 때 분명히 말 걸었거든?’
그랬나?
그러고 보니 확실히 그런 기억이 있다. 화정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머리를 남겨두었을 때 ‘그만할까?’ 하고 은근한 속삭임이 있었다.
‘겨우 기억했나 보네. 이 바보야. 아무튼 이제야 약~간 쓸만해 졌네. 그래도 조심하라고. 아직 부족하니까. 그럼 다음에 봐~.’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내면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은 들리지 않았다. 조금 더 말을 걸어보았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잠잠한 침묵뿐.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눈을 번쩍 뜨자 맹렬히 타오르는 맑은 불꽃이 보인다.
이제 됐다. 아직 회복기에 있는 만큼 시험한답시고 터뜨릴 필요는 없다.
차분히 화정의 힘을 회수하자 불꽃이 천천히 사그라졌다. 하지만 화정이 빠졌다고 해도 남아있는 마력의 기운은 여전히 주먹에 맺혀 무시무시한 기세를 피우고 있었다.
“조심해.”
전방을 향해 나직이 뇌까린 후, 나는 오른 방향을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후려갈겼다.
꽝!
“삐아!”
뻗어나간 주먹이 허공을 강하게 치는 순간, 텅 빈 공중에서 강렬한 폭발이 일었다. 대기가 크게 꿀렁이고 그에 따른 충격파가 연무장의 벽을 타고 전체로 퍼졌다. 바닥을 디디고 있는 발바닥에서 미세한 진동이 울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조용히 숨을 골랐다.
이윽고 전방을 주시하자 입을 딱 벌린 채 나를 보고 있는 안솔이 보였다. 그녀는 깜짝 놀란 듯 계속해서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꿀꺽 목 울대를 움직였다.
“오, 오라버니. 괜찮으세요오?”
“응. 전보다 훨씬 낫네. 몸이 아주 가벼워.”
“와아. 오라버니는 정말 대단해요!”
“뭘. 어젯밤 너한테 치료를 받아서 그런가 봐.”
물론 진짜 공로자는 따로 있지만 마냥 좋은지 안솔은 몸을 배배 꼬며 살포시 미소 지었다.
천천히 손을 거두며 몸 상태를 점검하자 확실히 다른 점이 느껴졌다. 천근만근 무겁던 몸은 깃털처럼 가볍고 지지부진한 회복 속도는 급상승을 보이기 시작했다. 체력이 90임에도 이 정도의 효과를 보인다면 101이 되면 얼마나 큰 효과를 보일까?
‘체력 101도 우선순위로 넣어야겠구나.’
이것은 확실히 고려해볼 만한 문제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어느새 다가온 안솔은 내 옷깃을 꾹꾹 잡아당겼다.
“오라버니. 오라버니이. 모두 3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오.”
“소회의실? 다 모인 거야?”
“네!”
“알았어. 가자.”
힘찬 목소리로 대답하며 나는 안솔과 함께 지하 연무장을 빠져 나왔다.
이윽고 3층에 올라 소회의실의 문을 밀고 들어가자, 안솔 말대로 모두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클랜원이 열 명 남짓해서 그런지, 분명 소회의실임에도 불구하고 비어있는 자리가 많이 보였다.
인사를 건네는 클랜원들의 행동을 모두 받아준 후, 나는 상석에 앉아 모두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문득 내 의자 아래서 낑낑대는 아기 유니콘의 기척이 들렸다. 얼른 안아서 허벅지 위로 올려주니 녀석은 얌전히 다리를 접곤 눈을 감았다.
그것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회의를 위한 첫마디를 열 수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 아침이라고 하기엔 조금 늦었군요…. 아무튼 오늘 전원을 호출한 이유는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네.”
“클랜 하우스에 들어온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습니다. 휴식은 충분히 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재정비에 들어갈 시기죠.”
“…….”
조용한 침묵. 아래로 슬쩍 시선을 내리자 수북한 기록은커녕 단 한 장의 기록만이 보일 뿐이었다. 기록의 제출자를 확인하자 고연주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것을 보며 두어 번 혀를 찬 다음, 다시 시선을 들어 입을 열었다.
“사용자 신상용. 이제 클랜 하우스도 생겼는데, 이제 개인용 공방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네, 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직 스승님께 배울게 많기도 하고…. 그, 그리고 제가 감히, 어떻게 개인용 공방을….”
“배우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본인 스스로 공부할 것들도 있으실 텐데요.”
“하하. 그, 그렇긴 합니다만.”
신상용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이 웃었다. 그것을 보다가, 나는 다음 타자로 시선을 돌렸다.
“사용자 정하연, 김한별.”
““네.””
“둘은 어때요? 별관에 숙소 말고 본관에 연구실도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나요?”
“여, 연구실이요? 아, 네. 뭐…. 있으면 좋죠.”
정하연은 떨떠름히 대답했고, 김한별은 조용히 눈만 깜박거렸다.
“너희들도 마찬가지. 뭐 필요한 거 없니?”
그리고 쥐 죽은 듯 듣고만 있던 나머지에게 화살을 돌리자, 애들은 불침 맞은 망아지처럼 퍼뜩 고개를 치켜 올렸다. 그러나 멀뚱히 서로를 번갈아 보는 것을 보니 오십보백보인 것 같았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답답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고연주야 그렇다 치더라도, 나머지는 정상적인 클랜 생활을 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아니면 아예 하지 않았거나. 항상 치이고만 살다가 갑작스레 맞이한 생활에 생소하기도 할 터.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그런 것들에 적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분명 저번에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고 회의 때 제출하라고 말씀을 드렸을 겁니다. 헌데 제 눈에는 아직 여러분들이 과거에 대한 기억이 조금 남아있는 것 같네요. 이곳은 머셔너리 클랜의 클랜 하우스입니다. 그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이제는 여관에서 잘 필요가 없습니다. 눈치보지 않고 수련할 공간도 생겼습니다.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빈 공간은 차고 넘칩니다.”
“…….”
“갑작스레 맞이한 넉넉한 상황에 혼란스러운 건 이해합니다만…. 그래도 개인 수련에 필요한 책, 물품, 기구, 하다못해 장비. 그게 아니라면 클랜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나,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등등. 그런 것들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물론 비비앙처럼 한 번에 모든 것을 갖출 필요는 없어요.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처럼 갈피조차 잡지 못하는 태도는 분명히 지양해야 할겁니다.”
화났다는 기색을 내비치거나,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다. 최대한 기존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곤조곤 타이르는 어조를 유지했다. 굳이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머셔너리 클랜원들이라면 충분히 알아들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에 놓인 기록을 집으며, 나는 마지막으로 클랜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클랜 하우스는 무상으로 받았고, 얼마 전 이스탄텔 로우에서 5천 골드를 받았습니다. 보유 자금은 9만 골드에 가까우며, 보석까지 합치면 못해도 20만 골드입니다. 이 돈들 묵혀둬서 뭐하겠습니까? 이자놀음이라도 할까요? 필요한 게 있으면 눈치 보지 말고 말씀을 해주시면 됩니다. 얼른 내부를 정비해야 다음 원정을 잡든, 도시를 나가든 뭐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저 그럼….”
재촉은 여기까지 하고 막 기록을 읽으려는 찰나, 정하연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고개를 한 번 끄덕여주자, 그녀는 잠시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혹시 클랜 로드께서는 개인적으로 생각해두신 공간이나 물품이 있으신가요?”
“개인적으로요? 공간이야 지하 연무장을 마련했으니 일단은 됐고. 물품으로는 호출석을 장만하고 싶군요.”
호출석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몇몇 클랜원들의 얼굴에 “아.” 하는 빛이 스쳤다. 호출석이 있으면 굳이 누군가를 찾아 다니며 전하지 않아도 클랜원을 편하게 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양방향이 아닌 일방행적이라는 단점은 있지만, 그것을 감안하고서라도 클랜 로드 입장에선 꽤나 쓸만한 물품이었다.
“확실히 그렇네요. 오늘 마법 상점에 들를 생각이니, 제가 구해올 수 있을 거예요.”
“그럼 호출석은 정하연에게 부탁하겠습니다.”
“아, 혹시 수량이나 세부 조건 같은 것은 어떻게 할까요?”
“클랜원들에게 돌아갈 것들 하나씩 하면 총 아홉 개,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것까지 치면 또 아홉 개. 그러니 총 열여덟 개면 되겠는데…. 혹시 모르니까 너덧 개 추가로 구매하세요. 범위는 도시를 아우를 수 있을 정도로 해주시면 됩니다. 그 정도가 아마 최대한도일 겁니다.”
정하연은 확실히 알아들었는지 얇게 미소 지었다. 나는 다음으로 고연주가 제출한 기록을 읽어보았다. 기록에 적힌 내용이 생각보다 길긴 했지만,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녀 특유의 정보처리능력 때문인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었다.
“사용자 고연주는 클랜내 정보 길드를 만들고 싶은 것 같군요.”
“아~. 뭐 그건 너무 거창하네요. 아직 길드 수준은 아니에요. 호호.”
기록을 모두 읽고 쳐다보자, 고연주는 여유로운 얼굴로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이 기록에 관해서는 조금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은데요.”
“네. 다만 여기서는 조금 그러네요. 따로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요.”
고연주의 요청을 나는 곧장 수락했다. 그녀가 이렇게 따로 요청할 정도라면 필시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
이후 모두 읽은 기록을 테이블 위로 뒤집어엎어 놓으며, 나는 시선을 들어 모두를 시야에 담았다.
“일단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따로 저한테 볼일 있는 클랜원은 있습니까?”
“나!”
내 말이 끝나자마자 비비앙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비비앙에게 볼일이 있었기에 흔쾌히 고개를 주억였다. 다른 클랜원들은 오늘 내 지시사항을 바로 이행할 생각인지 미약이 고개를 흔드는 중이었다.
“알겠습니다. 회의는 조만간 다시 열 생각이니 그때는 지금보다 더 준비된 태도를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고연주, 비비앙은 4층 집무실에서 따로 보도록 하죠. 사용자 고연주? 미안하지만 비비앙과 먼저 얘기하겠습니다.”
“네. 저도 그게 좋아요.”
고연주는 괜찮다는 얼굴로 시원하게 웃음지었다.
그렇게 회의 종결을 선언하고, 나는 바로 몸을 일으켰다.
*
“마침 잘됐다. 나도 너한테 볼일이 있었거든.”
“응? 김수현이? 무슨 볼일?”
의자에 몸을 기대며 입을 열자, 비비앙은 문을 닫고 돌아서며 되물었다. 나는 서랍 안에 보관해둔 두툼한 책 한 권을 꺼내 책상 위로 놓았다. 이것은 일전에 비비앙이 놓고 간 마볼로의 일기였다.
“이거 주려고. 너 저번에 질서의 오르도 얻는데 성공했다고 기뻐 날뛰었잖아. 그래서 잊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두고 갔더라.”
“에헤, 미안미안. 신상용한테 전해줘도 됐는데…. 근데 이 두꺼운 책이 뭔데? 무슨 내용이야?”
“한 번 봐봐. 마지아 원정에서 가져온 건데, 마볼로의 연구가 들어간 일기 같더라고. 그놈도 연금술에 일가견이 있었던 것 같은데 너한테 약간이라도 도움되는 내용이 있을까 싶어서. 아. 너는 마볼로 알지 않아?”
비비앙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손뼉을 짝 치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나보다 훨씬 전의 사람이라서. 자세히는 모르고 이름은 대충 알아. 그나저나 이거 정말 기대되는데…. 그럼 잠시 읽어보겠어.”
비비앙은 금새 다가와 책을 집어 들더니, 이내 활짝 펼치며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팔랑, 팔랑, 팔랑, 팔랑.
한 장을 넘기고 두 장을 넘긴다. 그리고 장수를 넘길 때마다, 초롱초롱했던 비비앙의 표정이 미묘하게 물들어간다. 그런 그녀의 표정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을 열었다.
“너 고대어 해석 가능하지? 나중에 신상용도….”
“아니 잠깐만. 김수현, 이거 뭐야?”
“뭐가.”
내 반문에 비비앙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러고는 이윽고 소리 내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르가리타를 홀딱 벗겨놓고 채찍을 때렸다. 그 고운 살결에 자국이 하나 새겨질 때마다 마르가리타는 아름다운 비명을…. 뭐야 이거?”
“아, 내가 미처 말을 못했네. 마르가리타는 요정 여왕이야. 마볼로가 용사랑 요정 여왕을 납치했었잖아? 그게 사실이더라고. 쯧…. 이리 줘봐. 그 부분은 내가 따로 빼고서 줄게. 아마 뒤편에 약에 관한 내용이 나올 거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의자에 묻었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책을 향해 손을 내뻗으려는 순간이었다.
“아, 아냐! 내가 알아서 보지 뭐!”
비비앙은 순간적으로 눈을 크게 뜨더니, 신속하게 물러서며 책을 꼭 안아 들었다.
“그래? 보기 좀 불쾌한 것들이 많을 텐데.”
“불쾌는 무슨. 잘 가져왔어. 그리고 이런 건 한 줄 한 줄을 세심하게 읽어줘야 한다고. 어디에 단서가 있을지 모르거든.”
“하긴. 그럼 그렇게 해. 그런데…. 너도 볼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나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볼일에 대해 물어보자,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비비앙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아. 소원! 영약 만들면 소원 들어준다고 했잖아!”
“아, 그랬지. 아무튼 영약은 고맙다. 너 덕분에 문제를 일부 해결할 수 있었다.”
“후후. 내가 믿으라고 했지? 아무튼,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잊지 않았어. 내 선에서 해결 가능한 거면 뭐든 들어줄게. 말해봐.”
“소원은 이걸 읽고 결정하겠어.”
“뭐?”
뭔 소리를 하냐는 의미를 듬뿍 담은 시선을 보내자, 비비앙은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그러니까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거야!”
“뭐야. 그럼 왜 왔어.”
“화, 확인 차였다고! 아무튼 나는 이만 나갈 테니까!”
“야, 야! 나가는 건 좋은데, 고연주보고 들어오라고 해.”
“알았어!”
쾅. 후다닥.
비비앙은 내가 말릴 틈도 없이 발 빠르게 밖으로 뛰어나갔다. 갑자기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연금술사라는 특이성을 생각해보면 나름 이해할 수도 있다. 원체 호기심이 많은 게 연금술사들이니까.
그렇게 고연주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연초 한대를 꺼내 물었다.
*
하지만 그때는 아직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때 비비앙에게 책을 그대로 건네준 것이, 후에 내가 아니게 되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줄은, 나는 조금도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입니다.
오늘 날씨가 정말 습하네요. 비는 내리고, 날은 덥고, 습도는 높고. 더구나 월요일인 점이 직장인 및 학생 독자분들을 더욱 괴롭힐 것 같네요. 그렇다고 저처럼 찬 음식 많이 먹다 탈이 나시면 안됩니다. ㅜ.ㅠ
독자분들의 코멘트는 하나하나 읽어보았습니다. 문득 든 생각이, 글을 쓰는 데는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저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고, 또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모든 분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것은 많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
물론 알고 있습니다. 저야 이미 후에 어떤 상황에 처할지, 어떻게 능력치를 올리게 될지 모두 알고 있지만 독자분들은 모르시는 상태니 답답하게 느끼실 겁니다. 더구나 일일 연재에 전개 속도도 느리니 그저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속 시원히 미리 알려 드리고픈 마음도 있지만, 제가 지금 무척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예전 수현과 유정의 After를 적었을 때입니다. 제가 무슨 생각으로 미리 스포일러를 해버렸나 싶었죠. ㅜ.ㅠ
남은 6포인트는 분명히 후에 요긴하게 쓰이는 상황이 올 겁니다. 물론 1부는 아니고 2부에서요. 🙂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써나가되, 독자분들의 코멘트도 필히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코멘트는 제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밑거름이 됩니다. 😀
항상 메모라이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과 비평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_(__)_
『 리리플 』
1. days0314 : 오. 1등 축하합니다! 세상에, 미월야 님이 1등을 못하신 것은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하긴 그분은 워낙 ㅎㄷㄷ한 분이시라. ㅜ.ㅠ 정말 1등 맞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2. 간지남이돌아왔다 : 우와, 하와이! 부럽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부터 하와이에 대해 환상이 있었거든요. ㅜ.ㅠ 저, 정말 그런가요?(응?!)
3. 으악이 : 물론 으악이 님 말씀도 맞습니다. 다만, 김수현이 화정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히 있습니다. 앞으로 나올 더욱 강한 적들도 있거니와, 화정으로밖에 대적하지 못하는 적도 나오지 않을까요? 권능과 화정은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까요. 🙂
4. Grabity : 육체 붕괴 리바운드에 대해서는 확실히 제 묘사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북 교정 때 추가할 내용이 더 늘었네요. 감사합니다!
5. 상흔 : 하하. 상흔 님이 많이 답답하셨나 보네요. 96으로 체력을 올렸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습니다. 다만, 90보다 상황은 낫겠지요. 저번 회는 수현의 체력에 대한 능력치의 생각 순위를 바꾸는 회로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6. 천겁혈신천무존 : 에, 저, 천겁혈신천무존 님? 한결…. 이가 들어가있는 것 같은데요? ?ㅇ?
7. 보리볕 : 죄송해요. 곧 1부를 마무리 지을 에피소드가 나와서, 그전에 이것저것 정리해야 될 것 같아서요. ㅜ.ㅠ 확답은 못 드리지만, 늦어도 7월 말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
8. 자유도령 : 자, 자유도령 님…. 주륵…. ;ㅇ;
9. 레필 : 정말 오랜만에 레필 님의 날카로운 코멘트에 감탄했습니다. 아마 다음에 천사를 만나게 되면, 다른 천사도 또 등장시킬 계획도 있습니다. 지금 수현은 주목 받고 있으니까요!
10. 플룻 : 하하. 능력은 진화가 가능합니다. 유정이는 아직 레어 클래스지만, 가능성이 남아있는 아이입니다. 차후 성장을 지켜봐 주세요! 고유 능력은 선천적으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크릿 클래스(혹은 레어 클래스) 를 얻는다고 해도 모두 똑같이 고유 능력을 얻지는 않아요! 🙂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큰 힘이 됩니다.
글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비평, 질문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