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299
00298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
세찬 바람이 불었다. 대지에서 일어난 흙먼지가 얼굴을 두드려,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이윽고 바람이 멎었음에도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은 더욱 예민해지고 있었다. 죽음의 공포에 요동치는 심장도, 덜덜 떨리고 있는 입술도,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마족의 손길도. 그리고 대지를 밟고 있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어둠의 기운들도.
쿵쿵. 쿵쿵. 쿵쿵. 쿵쿵.
그때, 무릎을 꿇고 있는 대지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땅을 울릴 정도로 거친 발걸음이었다. 진동은 점점 강해지다가 이내 지척에 다다른 순간 거짓말처럼 뚝 끊기고 말았다. 그대신 쇠를 긁는듯한 불쾌한 목소리가 귓구멍을 강하게 찔렀다.
“벨페고르님. 보고 드릴게 있습니다. 정찰부대에서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뇌제의 출현을 확인했습니다.”
“큭!”
일순 머리칼이 뽑혀져 나갈 것 같은 아픔이 정수리로부터 밀려들었다. 하지만 고통은 금방 사그라졌다. 방금 전 들은 믿지 못할 소식에 고통보다는 놀라움이 물밀 듯 밀려들었다.
“그래?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는데, 진짜로 왔군. 킬킬! 그런데 설마 뇌제 혼자 온 것은 아니겠지?”
“출현 확인 후 바로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다만 마지막에 일천 명은 족히 넘는 인원이 보였다고….”
“일천 명이라…. 그럼 해밀 놈들이 모조리 왔을 수도 있겠군. 아무튼 알겠다. 비록 수는 우리가 훨씬 많지만, 절대로 방심하지 마라. 놈들은 한 명 한 명이 얕볼 수 없는 놈들이야.”
“예. 명심하겠습니다.”
쿵쿵. 쿵쿵. 쿵쿵. 쿵쿵.
발소리는 다시금 멀어져 갔다. 그리고 난 놀라움을 다스리려 노력하며 작게 숨을 토해내었다.
형이 온다. 형과, 동료들이 나를 구하러 왔다. 그 말을 듣자마자 공포감으로 젖어있던 심장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아직도 내 정수리에 손을 얹고 있는 벨페고르에게서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이, 김수현. 눈을 뜨라고. 네 형이랑 동료들이 널 구하러 왔단 말이야.”
“…….”
“그러고 보니 참 신기해. 너 같은 덜 떨어진 놈 하나 구하겠다고 그 엄청난 놈들이 우르르 밀려오다니 말이야. 솔직히, 뇌제 정도면 이게 함정이란 걸 눈치 못 챌 리가 없잖아. 안 그래?”
나는 벨페고르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심경이 너무도 복잡했기 때문이다. 분함, 수치심, 안도감, 불안감 등 여러 종류의 감정의 내 안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무엇보다 할 말이 없었다. 모두가 말렸던 일이었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행동했다. 함정에 빠진 것은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온전한 내 탓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갑작스레 무력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감고 있는 눈에 더욱 힘을 주고, 피가 나올 정도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 뿐이었다. 문득,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놈 앞에서 약한 모습은 보이기 싫었다. 어떻게든 참으려고 했지만 결국 울걱울걱 올라오는 감정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오른 순간이었다.
꽈르릉! 꽈르릉!
“응?”
앞쪽 멀리서 요란한 천둥이 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귀를 의심해보았지만, 벨페고르의 의문성도 같이 들린 것으로 보아 잘못 듣지는 않은 모양이다.
“뭐야. 벌써 온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분명 앞쪽에 전위부대가….”
주위는 점점 어수선해지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쥐 죽은 것 같은 고요함을 유지하던 마족들이 뇌제의 출현 이후 기척만 느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심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우웅!
짜릿짜릿한, 낯익은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공간을 웅웅 떨어 울릴 정도로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었다. 이윽고 물결치던 파동이 잦아들 즈음, 사방을 울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지금껏 꾹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고 말았다.
(벨페고르.)
“호! 이 목소리는…. 뇌제로구나! 꽤 거리가 있는 것 같은데 통신을 걸다니. 역시 대단해~. 킬킬!”
(경고하지. 지금 당장 수현이에게서 손 떼라.)
“뭐? 오늘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왔는데, 이제 와서 손을 떼라고? 크하하하! 지금 보니 농담도 제법 수준급이야, 뇌제?”
(그 뜻이 아니라….)
우웅! 우우웅!
마력의 흐름은 이어지고 있었다. 목이 돌아가는 한에서 사방을 둘러봤음에도 어떠한 조짐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문득 대지에 서서히 어둑한 빛이 드리워진걸 확인한 순간 난 퍼뜩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식은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찰싹 달라붙어있었지만 한두 번 고개를 털자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는, 언제 몰려왔는지 먹구름들이 잔뜩 밀려드는 중이었다.
그제야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벨페고르는 나와 똑같이 고개를 올려 들었다. 그리고 먹구름 사이서 눈에 보일 정도로 파직거리는 황금빛 전류를 본 듯 정수리에 얹은 손이 움찔 경직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꽈르릉! 꽈르릉!
그 순간, 다시 한 번 천둥이 치는 소리가 천지를 울리고,
(수현이 머리에서 그 더러운 손 떼라고.)
잠시 끊어졌던 형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그와 동시에,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수많은 빛줄기가 노란빛을 내뿜으며 지상에 내리꽂혔다.
*
방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자마자 심장이 한 번 크게 고동쳤다.
곧 구해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던 진하 누나.
차라리 자기를 좋아하라고 했던 새침데기 가희.
이곳은 내가 막을 테니 걱정 말고 가라고 했던 태원이 아저씨.
흠씬 두들겨 패버리기 전에 멀리멀리 도망가라고 했던 준성이 형.
나중에 보자고 밝게 손을 흔들어주었던, 이곳까지 우리를 안내해준 혜린이 누나.
그리고 나보고 끝까지 살아남으라고 했던, 친형 김유현.
다들 익숙한 얼굴들이었고, 다들 알게 모르게 나를 아껴주었던 사람들이었다. 그 동안 미친 듯이 보고 싶었고, 다시 만나게 되면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하지만 입이 꽁꽁 얼어붙은 듯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다들 오랜만이에요. 아니야. 이건 안 돼.
정말 죄송했어요. 아니, 이건 더 이상해.
형. 보고 싶었어. 이것도 아니야.
안녕하세요. 머셔너리 클랜 로드 김수현….
“반시의 저주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까?”
“…………네.”
머릿속을 어지럽게 부유하던 수많은 생각들은 “네.” 라는 하나의 대답으로 일축되고 말았다. 식당에서부터, 아니 형을 다시 만날 날을 꿈꿨을 때부터 생각해왔던 말들은 지금 모두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엘릭서는 가지고 있지 않으시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어떤 치료 방법을 사용하실 것인지, 그리고 지금 바로 치료가 가능한지 알 수 있을까요?”
형의 목소리는 차갑고 건조했다. 그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눈그늘이 내려와있었고 얼굴도 수척해 보였다. 하지만, 예전의 싸늘한 눈동자는 그대로였다.
“지금 듣고 계신 겁니까?”
“수현…! 갑자기 왜 그래요?”
쿡, 내 등을 찌르는 기척과 함께 고연주가 소곤거렸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생각해보면 처음 한소영을 만났을 때도 이랬었다. 마음이 안정이 안되고,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추한 꼴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자꾸만 가슴속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솟아오른다. 두꺼운 로브로 가리고는 있었지만 입술이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이윽고 모든 숨을 내쉬었을 즈음. 잠시 호흡을 멈추었다가 이내 다시 크게 들이마시며 나는 한 발짝 한 발짝 방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불현듯 어쩌면 내가 재회에 뭔가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멋있는 재회를 바랬던 것은 아니었다. 이들을 그리워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낭만적인 상황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애당초 그런 상황을 바라는 것이란 불가능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내가 2회차로 돌아온 목표에 초점을 맞추면 될 일이었다. 그래. 그러면 될 것이다.
형과의 걸음을 몇 발자국 남기고,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한두 번 목을 가다듬은 후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사용할 치료방법은 정화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완전한 치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사용자의 몸에 걸려있는 반시의 저주 자체를 해주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치료에 들어가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저주로 생긴 후유증은 조금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겁니다.”
“반시의 저주를 해제하면 일단 목숨은 구할 수 있어요. 현재로서는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그럼 지금 바로 치료가 가능한가요? 아니면 시일이 조금 걸리나요?”
대답한 사람은 진하 누나였다. 나는 연하게 웃어 보이려고 하다가 이내 아직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곤 바로 입을 열었다.
“해주는 지금 바로 가능합니다.”
“정말인가요? 그럼 어서…!”
“잠시만요. 치료에 들어가기 전,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급해요!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상황이에요. 보상이라면 충분히….”
나는 차분히 손을 들어 진하 누나의 말을 막았다. 그리도 다시 형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치료에 들어갈 테니, 해밀 로드님을 제외하고는 이곳에 계신 분들께서 잠시 자리를 비켜주셨으면 합니다.”
“저희가 치료과정을 볼 수는 없는 건가요?”
“치료가 끝나고 해밀 로드님과 잠시 나눌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만.”
모두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오를 무렵, 준성이 형이 내 말을 가로막았다.
“남부 도시 모니카. 머셔너리 클랜에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름과 얼굴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하여간, 의심 많은 성격은 여전하네.’
겉으로 보면 쌀쌀맞고 냉담한 태도를 보이지만, 실상은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 바로 준성이 형이었다.
“머셔너리 클랜의 클랜 로드를 맡고 있는 김수현입니다.”
“아. 클랜 로드가 직접…. 네?”
“머셔너리 클랜 로드. 김수현입니다.”
“김…. 수현?”
준성이 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현이 형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후드를 벗으려 손을 올리려는 찰나였다. 지금껏 싸늘한 표정을 유지하던 유현이 형의 얼굴에 처음으로 변화가 생겼다. 형은 단순히 이름이 비슷하다고 해서 흔들릴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저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김수현’이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뭔가 뜻 모를 위화감을 느꼈을 것이다.
형은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보이다가 이내 차분히 고개를 흔들며 “그럴 리 없어.”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시선은 내게로 고정한 상태였다.
이제는, 밝힐 때였다.
“형.”
“……네?”
“혹시나 했는데, 형이 맞았구나.”
“어…. 어…. 너…. 어…?”
겨우 진정되어가던 표정이 삽시간에 경악에 물들었다. 앞뒤 사방으로 엄청난 시선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형이 나를 보고 있는 만큼 나도 형만 보는 중이었다.
형이라 불렀음에도 반신반의하는 것을 보며, 나는 후드를 쥐고 있던 손을 천천히 아래로 잡아 끌었다. 이윽고 탁 트인 공기가 답답했던 얼굴을 시원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형의 눈과 입이 크게 벌어졌다.
“마, 말도 안 돼….”
“나야. 형의 친동생 김수현이라고.”
“수현이? 수현아…?”
형은 한참 동안 입만 뻐끔거리고 있다가, 이내 뭔가에 홀린 듯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이윽고 형의 양손이 내 어깨에 닿았다. 어깨에 있던 손은 볼을, 입술을, 코를, 눈을, 이마를 거쳐 머리까지 닿았다. 그제야 반신반의했던 형의 얼굴이, 확신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형의 손길을 받으며,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형.”
“너, 너….”
“해밀 클랜 로드의 이름이 김유현이라고 들었을 때 혹시나 했어. 그런데 마침 기회가 닿아서 찾아오게 됐는데…. 설마 진짜 형일 줄은 몰랐지.”
평소 형답지 않은 반응이었지만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담담히 말하고 있는 내가 더 이상한 걸지도 모른다. 형은 말 그대로 나를 홀 플레인이라는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것일 테니까.
형의 손은 곧 주르륵 미끄러지듯 내려가, 다시 내 어깨에 안착했다. 형의 표정은 실로 미묘했다. 지금 내가 느끼는 ‘반가움’이라는 감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친동생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난 후, 형의 눈동자엔 슬픔, 안쓰러움, 괴로움, 번민, 애틋함, 초조, 안타까움 등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걱정’이라는 하나의 감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수현아….”
“…….”
“네가, 네가 왜….”
“…….”
목이 메여 말이 나오지 않는 듯 형의 목 울대가 살짝 움직였다. 그리고 내 어깨를 부서져라 꽉 쥐더니, 이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목젖이 보일 정도로 크게 외쳤다.
“네가 왜 여기 있어어어어어어어!”
방이 떠나가라 울리는 형의 목소리는, 마치 절규를 연상케 할 정도의 비통함을 품고 있었다.
*
1. 이름(Name) : 이효을(8년 차)
2. 클래스(Class)
① 북 대륙의 수호자(Guardian of the Northern Continent) : 활성화
② 일반 마법사(Normal, Mage, Master) : 비활성화
3. 소속 국가(Nation) : 바바라
4. 소속 단체(Clan) : 해밀(Clan Rank : 실적 평가 중에 있습니다.)
5. 진명 · 국적 : 빛을 인도하는 자 · 대한민국
6. 성별(Sex) : 여성(27)
7. 신장 · 체중 : 168.7cm · 49.3kg
8. 성향 : 중립 · 중용(True · Neutral)
(반시의 저주를 해주 했습니다. 티끌도 남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정화해, 하락했던 능력치들이 절반에 가깝게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후유증은 아직 남은 상태이며, 오랫동안 저주에 시달려 내구(-3), 체력(-5)의 일부 능력치를 영구적으로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관리만 잘하면 하락상태에 있는 능력치는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치료자체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세라프의 말대로 ‘격’의 차이가 너무나 커서 그런지, 반시의 저주는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화정 앞에 말끔히 연소되고 말았다.
몸 상태는 괜찮다. 오른팔에 아주 살짝 찡한 느낌은 있었지만, 예전과 같은 부담은 느껴지지 않았다.
‘영구적으로 하락한 능력치는 어쩔 수 없지만, 엘릭서를 쓸 필요는 없겠군. 그나저나 북 대륙의 수호자…? 빛을 인도하는 자라고…?’
“믿을 수 없어. 도대체 어떻게 치료하신 거죠? 몸을 감싸고 있던 저주의 기운이 완벽하게 정화됐어요! 마력의 흐름도, 몸 상태도 훨씬 안정됐고요!”
“정말이야? 흑….”
“후유. 한시름 놓았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용자 정보에 잠시 생각에 잠길 즈음, 이효을의 상태를 살피던 가희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기쁨과 환희가 뚝뚝 묻어 나오고 있었다. 이곳 저곳에서 들리는 탄성에 조용히 대답하려고 하자, 순간 다시 내 팔꿈치를 잡는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수현아. 수현아?”
“형? 아, 치료는 했어. 목숨은 구했지만 아직 후유증이 남아있거든? 그러니까 앞으로 회복에 특별히….”
“수현아. 일단 형이랑 얘기 좀 하자. 응?”
“어, 응.”
아까까지만 해도 이효을에게 쏠려있던 걱정은 지금 오롯이 나를 향하는 상태였다. 애절히 부탁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바라보자, 다들 어색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만큼 형은 아까부터 안절부절못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아마 항상 냉철하고 위엄 있는 모습만 보아오다가, 갑자기 이런 모습을 보니 저런 눈길을 보내는 것이리라.
“이준성. 자꾸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한데, 클랜원들좀 데리고 다시 좀 나가…. 아 수현아. 혹시 뒤에 있는 분들은 네 일행들이니?”
“응.”
고연주, 김한별, 안솔은 형과 만난 이후 입도 벙긋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들 또한 해밀 클랜의 로드가 내 친형이라는 사실에 대단히 놀란 모양이었다.
“그럼 우리가 나가서 얘기하자꾸나. 가희랑 혜린이는 여기 남아서 효을이 좀 살피고 있어. 그리고 준성이, 태원이 아저씨, 진하는 동생 일행 분들 좀 응접실에 안내해드리고.”
“알겠어요.”
진하 누나가 대답하자마자 형은 곧바로 나를 끌고 밖으로 나섰다. 나는 형에게 붙잡혀 질질 끌려나가기 전, 간신히 세 명을 향해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는 신호를 보낼 수 있었다.(셋은 아직도 로브를 벗지 않은 상태였다. 심지어 후드마저도.)
형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내가 익숙히 알고 있는, 정원이 훤히 보이는 테라스였다. 밖에는 아직도 비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후드득 튀기는 빗물을 보다가 나는 습관적으로 품에 손을 넣어 연초를 꺼내 들었다.
“응? 수현아, 너 연초 태우니?”
“어? 으, 응.”
그때였다. 형은 몸을 돌려 난간에 등을 대다가, 내가 연초를 입에 무는 것을 보고 기함하며 물었다.
“너 연초 안 태웠잖아?”
“그게…. 어쩌다 보니.”
“몸에 해로우니까 피지마. 얼른 이리 줘.”
‘아니야. 안 해로워, 형.’
형은 당연하다는 듯 내 손에서 연초를 빼앗았고, 나는 순순히 뺏겨주었다. 이 애매모호한 상황에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형은 연초를 반으로 접어 밖으로 던진 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디까지 얘기했었지?”
“내가 왜 여기 있냐고 까지 했어.”
“맞아. 그랬지. 수현아, 너 도대체….”
“잠시만. 그럼 형은 왜 여기 있어?”
내가 반대로 되물은 순간, 형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방금 전 질문으로 스스로 깨달았을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질문인지.
현재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만약 내 생각이 맞는다면 북 대륙의 전체 사용자 인구는 약 4만 명 ~ 6만 명 사이로 추산하고 있었다. 굳이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그 중에 서로 아는 사람이 엇갈려서 들어와 만나는 경우는 드물지만 있었다. 실제로 내가 알기로는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걸 그룹 멤버나 유명한 연예인이 들어와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것은 1회차 이야기였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세상에는 아무런 혼란도 없이 그저 고요했다는 것. 그 말인즉슨….
‘내가 홀 플레인에 들어오기 전, 확실히 형은 현대에 있었다.’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지금 형은 2년 차 사용자일 테고, 그렇다면 내 머리에서 잊혀졌거나 실종이 됐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확실히 형은 가족으로써 존재했다.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편지도 자주 보냈고, 면회도 여러 번 왔었다. 그래, 그것은 조금의 의심할 여지도 없는 내 형이었다.
“그래도 듣고 싶어.”
너무 오랫동안 생각에 빠져있었을까. 상념에서 깨어나자,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형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어차피 지금으로서는 그러한 비상식적인 상황에 대해 정의할 수 없고, 어차피 형과 얘기하게 되면 또 나올 이야기였다.
대강 생각을 정리한 후, 나는 최대한 태연한 목소리를 내려 애쓰며 입을 열었다.
“별거 없어. 전역신고를 하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깜빡 잠이 들었거든. 그런데 깨어나보니까 소환의 방이었지. 뭐, 나도 형이 왜 이곳에 있는지 궁금하긴 하다.”
“뭐? 전역하고 돌아오는데 소환됐다고? 이 천사들을 그냥….”
“됐어. 그렇게 따지면 여기서 억울하지 않은 사용자가 어디 있겠어. 지금 와서 따지는 건 크게 의미 없잖아.”
픽 웃으며 고개를 흔들자 형은 꽉 쥐었던 주먹을 천천히 풀었다. 곧이어 얼굴에서, 형이 내 이곳 저곳을 유심히 살피는 시선이 느껴졌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여전히 비는 시원하게 내리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형의 시선을 피해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법한 잠잠함이 이어질 즈음, 부드러운 목소리가 고요를 깨뜨렸다.
“수현이 너, 많이 변했구나.”
“…그런가.”
“하하.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솔직히 내 동생이 아닌 것 같아. 다 컸네 우리 수현이.”
“…….”
형은 고개를 끄덕끄덕 주억이며 다가와, 가벼운 웃음과 함께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방금 형의 말은, 왠지 모르게 내 가슴에 깊숙이 찔러 들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입니다.
음, 독자분들께 한가지 말씀 드릴게 있지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굳이 원정이나 탐험에서만 장비를 얻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지 말입니다. 하하. 뭐, 단서는 이번 회에 꼭꼭 숨겨두었습니다. 아무리 매의 눈이라고 하셔도 이것은 눈치채지 못하실 겁니다! 다음 회를 기대해주세요! 아마 다음 회는 왠지 모르게 김유현 찬양이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 -_-a
『 리리플 』
1. 카네사다 : 1등 축하합니다. 전회도 1등 하셨는데 이번에도 1등을 하셨군요.(혹시 새로운 강자의 출현?!) 하하. 이번 회도 재밌게 감상해주세요. 🙂
2. 유이버 : 아무래도 그런 감이 있습니다. 곧 다가올 전쟁에 아마 몇몇 장비는 진가를 보실 수 있으실 거예요!
3. 플룻 : 하하, 빛을 인도하는 자에 대한 떡밥이 궁금하시죠? 이 부분은 약간 꼬아놨습니다. 조금 복잡해요. 한가지 말씀 드리면, 천사들도 바보는 아닙니다. 후후.
4. 지카프 : 죄, 죄송합니다. 제발 그것만큼은 거두어주세요. 흑흑. ㅜ.ㅠ
5. 정연 : 쾅쾅쾅쾅쾅쾅쾅쾅!
6. 와우우우우~~ : 정주행 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쿠폰 감사합니다! _(__)_
7. LOVE가을 : 하하, 화정의 정확한 힘은 음. 저번에 세라프를 만날 때 적으려고 하다가 내용이 너무 길어지고 굳이 그때 넣을 필요가 없어 잘랐습니다. 🙂 2회차에는 사용자들 중 101을 초과하는 사용자는 나오지 않을 예정입니다. 주인공 빼고요.(생각 중에 있습니다.)
8. 멜리스 : 수정 완료했습니다. 제가 D Minus 랭크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_(__)_
9. Lea : 하하, 그때는 능력은 있었지만 태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다만 이번엔 갑자기 태도까지 변하니 다들 놀란 것이죠. 101의 힘입니다!(응?)
10. 감자띱 : 허허허. 코멘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하실 때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 마지아에서 권소라가 나올 때의 내용이 떠오르더라고요. 🙂 핫!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큰 힘이 됩니다.
글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비평, 질문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