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300
00299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
돌연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알고는 있다. 형이 지금 기억하고 있는 김수현이라면, 홀 플레인에서 10년 동안 굴러먹은 김수현이 아닌 현대의 김수현일 테니까. 스스로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
“수현아?”
걱정이 듬뿍 묻은 목소리에 고개를 올리자, 노심초사 나를 바라보는 형을 볼 수 있었다. 내 얼굴을 읽었는지 혹여 말실수를 했나 무진 속을 태우는 모양이었다. 나는 재빨리 표정을 가다듬고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군 전역 날에 왔으면…. 그럼 정확히 언제 홀 플레인에 들어온 거야?”
“아직 1년도 안됐어. 사용자 정보로 말하면 0년 차. 형은?”
“2년 조금 넘었지. 아무튼 0년 차라…. 그럼 네가 나보다 2년 가량 늦게 들어왔다는 말이네. 그때 난….”
“있었어. 확실히 봤어. 그때는 내가 아직 군대에 있을 때잖아? 편지도 보냈고, 부모님이랑 함께 면회도 왔었어. 그뿐만이 아니야. 전역하기 전날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마중 나오지 못할 것 같다 전화까지 해주었지.”
“…그렇군. 아버지, 어머니는 잘 계시지?”
나는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형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다소 씁쓸한 기색은 보였지만 의외로 큰 충격은 받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형도 2년 동안 활동해온 만큼 한 번 정도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후유,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구나.”
“어쩔 수 없지. 천사들에게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똑같잖아. 알려줄 수 없다. 걱정하지 마라.”
후드득! 후드득!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어찌나 세차게 내리는지, 흡사 폭포를 눈앞에 두고 있는 기분이었다. 형은 아직도 내 머리에 손을 얹은 상태였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정수리에서 조심스레 움직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나도 그래.”
“이곳에 소환되고 나서도 네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군대는 잘 전역했을까, 밥은 잘 먹고 다닐까, 학교는 잘 나가고 있을까, 좋은 친구들이랑 잘 사귀고 있을까….”
“형도 참. 내가 어린애야?”
나는 괜히 쑥스러운 마음에 머리에 얹혀있는 형의 손을 걷어내었다. 일부러 밝게 말해보았지만, 형의 얼굴에 어린 근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끔 힘들 때 널 몇 번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 하지만 막상 이렇게 보게 되니 괜스레 죄책감이 드는구나. 어쩌면 내가 그런 생각을 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게 어딨어? 괜한 궁상은 그만둬.”
형과 나는 동시에 미소 지었다. 그리고 형은 다시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아 적당히 쓰다듬으라고 좀.
“후…. 아무튼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형이 미안해할 필요는 없고, 뭐가 고마워?”
“그냥 전부다. 나를 도와주러 온 것도,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그리고 지금껏 살아있어 준 것도.”
“아 자꾸 왜 그래. 하지마. 이상하단 말이야.”
저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까닭 없이 몸이 배배 꼬이고, 내면에서 부끄러운 감정이 가득 차오른다. 아까부터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는 손을 떼어내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비틀려는 순간, 형의 말이 한마디 더 이어졌다.
“지금까지 많이 힘들었지?”
그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방금 전 형의 말은 통과의례 또는 홀 플레인이라는 세상에서 살아왔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힘들었다고 생각하는 시절과 형이 말한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이것은 터놓고 말할 수 없는….
‘아니, 그냥 말을 해버릴까…?’
문득 고민이 들었다. 내가 지금 2회차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었다. 하지만 형은 다르다. 형이라면 분명 내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줄 것이다. 같이 고민해주고 공감해줄 것이다. 그리고 계획에 힘을 보태어줄 가능성이 농후했다. 아니, 분명히 그래 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수현아, 네가 홀 플레인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해주지 않을래? 너 어릴 때는 마음 약해서 벌레 한 마리도 제대로 죽이지 못했잖아. 하하. 갑자기 궁금하다.”
나는 차분히 고개를 들어 형과 시선을 맞추었다. 형의 눈동자에는 따뜻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타인을 대할 때는 싸늘해 마지않은 눈이지만 나를 향할 때는 항상 온기를 품고 있었다.
잠시 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그 눈동자에 이끌려 서서히 입을 열었다.
“형. 잘 들어. 지금부터 모든 것을 얘기해줄게.”
“그래. 귀 기울여 들을게.”
“실은….”
“두분 여기 계셨네요~.”
딸랑!
그때였다. 테라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발랄한 목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말을 멈추고 시선을 돌리자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진하 누나를 볼 수 있었다.
“방해했다면 미안해요. 그런데 클랜 로드, 혹시 식사 생각 없어요? 근래에 로드나 우리들이나 언니 걱정에 식사도 제대로 못했잖아요. 지금 가희 빼고 다들 모여있어요.”
“식사? 백진하. 분명 동생이랑 얘기를 나누고 있겠다고 했을 텐데.”
형은 조금 전까지 따뜻했던 태도는 어디 갔는지 순식간에 태도를 돌변했다.
“도련님도 같이 오시면 되죠? 도련님이랑 같이 오신 분들도 지금 식당에 있거든요. 식사하면서 얘기 나누시면 되잖아요.”
“수현이도? 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 내가 미처 그 생각을 못했다.”
‘뭐?’
식사에 나를 끼워 넣자마자 쌀쌀맞던 형의 태도가 180도 돌변했다.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도련님이라는, 은근슬쩍 갖다 붙인 호칭에 일순 어안이 벙벙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진하 누나의 입 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가있는 것으로 보아 노리고 말한 것이 분명했다.
“수현아 미안하다. 형이 궁금한 게 많아서 네 생각을 못했다. 배고프지? 일단 밥부터 먹고 얘기하자꾸나.”
“아, 아니. 괜찮아. 나 클랜 하우스에서 식사하고….”
“백진하. 요리사한테 말해서 고기 좀 많이 내오라 그래. 수현이가 고기를 잘 먹거든. 아, 국수 요리도.”
“네네~. 그럼 도련님이랑 천천히 오세요~.”
형은 다시 내 팔을 잡고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하 누나는 입술에 가느다란 호선을 그리더니, 이내 깡총깡총 복도를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 문득 떠올릴 수 있었다. 진하 누나는 1회차 때 형을 사모한 많은 여성 사용자들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을.
*
식당에는 진하 누나 말대로 열 명 남짓한 사용자들이 옹기종기 테이블에 모여있었다. 아까 방에서 봤던 사람들과 고연주, 김한별, 안솔이 보였다. 얼굴 표정들이 제법 안정된 것을 보니 형과 내가 형제관계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듯싶었다.
이윽고 음식이 나오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머셔너리 클랜원 세 명은 몸을 가리는 후드를 벗은 상태였다.
원래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고연주 스스로 밝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림자 여왕이 눈앞에 있음에도 해밀 클랜원들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냥 “와, 그림자 여왕이다.” 이정도? 하기야 애당초 여기 있는 개개인도 나름 실력에 자부심이 있는 이들이고 엄밀히 말해서 해밀 클랜의 현재 위치는 머셔너리 클랜보다 높다고 볼 수 있었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인사를 드리지 못했네요. 효을이 언니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 드려요. 도련님.”
“말을 들어보니 사제 클래스도 아니신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정화하신 거예요? 도련님?”
각자 마음이 맞는 상대와 이야기 꽃을 피우며 식사하던 도중, 진하 누나와 혜린이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부드러운 것을 보니 이효을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에 한결 근심을 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자꾸만 내게 뭔가 먹기를 강요하는 형에게서 이때다 싶어 고개를 돌리자, 서로를 쳐다본 채 찌릿 시선을 맞부딪치는 두 여성을 볼 수 있었다.
“수현이가 대답하기 곤란해하잖아. 이상한 거 묻지마.”
‘그래. 그러고 보니 형도 둔감 대 마왕이었지.’
곧바로 중재에 나선 형을 보며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고연주의 것으로 추정되는 한숨 소리가 들렸지만, 환청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수현아. 아직 너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 같은데?”
“응?”
“아까 하려다가 만 이야기 있잖아. 뭐 통과의례를 어떻게 통과했는지 라던가. 아, 사용자 아카데미는 수료했겠지? 그리고 그 이후의 일이나 옆에 있는 동료들은 어떻게 만났는지 등등. 형은 너한테 궁금한 게 너무 많구나.”
“아 뭐…. 그냥….”
나는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자리에서 모든 사실을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꼭 듣고야 말겠다라는 의지를 빛내는 형의 눈동자를 보자 어떻게든 이야기를 해야 할 듯싶었다. 해서, 나는 왼쪽 방향으로 쭈르륵 앉은 클랜원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자주 애용하는 전형적인 화제 돌리기(?)였다.
“고연주.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해밀 로드는 제 친형입니다. 제가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소개하는 게 어떨까요?”
“물론이에요. 오히려 원하고 있었어요.”
원하고 있었다는 말에 일말의 불안감이 느껴졌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고연주는 얌전한 태도로 수저를 놓더니 살며시 웃었다. 언제나처럼 유혹하는 미소가 아닌 여느 여염집 규수 같은 단아한 미소였다.
“안녕하세요. 현재 머셔너리 클랜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용자 고연주에요. 부끄럽지만 10강이라는 과분한 칭호로 불리기도 하지요.”
“음. 그렇군요. 10강이라고 하시면…. 당신이 그림자 여왕이겠군요.”
“네, 맞아요. 아주버님.”
“푸.”
탕. 탕. 탕. 탕.
고연주의 말이 끝난 순간, 나는 마시던 물을 세차게 내뿜고 말았다. 비단 당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수저를 떨어뜨리는 소리가 식당을 조용히 울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다시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테이블 끝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준성아.”
“말하지 마요.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으니까.”
“저 형제들은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 봐.”
“아 말하지 말라고요.”
준성이 형과 태원이 아저씨는 각기 젓가락을 깨작거리며 침울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크흠흠!”
형은 근엄한 얼굴로 크게 헛기침을 하고는 앞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탁 소리가 나도록 컵을 내려놓더니, 조금은 불편하게 들릴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버님이라니, 너무 이른 호칭 같군요.”
“불쾌하셨다면 사과 드릴게요. 하지만 다른 분들이 우리 클랜 로드를 도련님이라 부르시길래.”
“그것은 제가 필히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호호.”
형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진하 누나와 혜린이 누나를 쏘아보았다. 둘은 찔끔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고연주의 소개를 간신히 넘긴 후, 김한별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해밀 클랜에서도 그녀를 알아보는 사용자들이 몇 명은 있었다. 하기야 황금 사자에 있을 시절 그렇게 보석 마법사라고 광고를 해댔으니 아주 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다. 김한별은 소개 내내 불안한 얼굴을 했지만, 왜 황금 사자에서 머셔너리로 왔냐는 질문이 나오지 않자 안도한 얼굴로 자기소개를 끝마쳤다.
그렇게 무난했던 소개가 끝나고(이때 김한별에게 무척 고마운 감정이 들었다.), 드디어 안솔의 차례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오. 저는 안솔이라고 합니다아. 오라버니와는 통과의례 때부터 함께해온 사이에요오.”
안솔의 말을 듣자 겨우 가라앉았던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니, 왜 자꾸 나한테 초점을 맞추는 걸까?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지 나와의 관계를 소개하라는 말이 아니었는데.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었다. 또 폭풍이 몰아치기 전에 대충 이 정도에서 끝내야….
“오, 통과의례 때부터 함께해왔다고요?”
“네에!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 있었어요오.”
쭉~~~~. 이라고 말할 때 눈을 꼭 감고 입술을 쭉 내민 게 자못 귀여웠는지, 꺅꺅 약한 비명을 지르는 누나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쭉 함께 해왔다니, 그건 좀 궁금하네요. 혹시 우리 동생이 그 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잠깐 들을 수 있을까요?”
“형. 잠시만. 얘한테 그걸 왜 물어봐. 그건 내가….”
“수현 오라버니는요, 정말 대단해요~.”
“하하. 역시 그렇군요. 그런데 어떻게 대단했나요? 조금 더 자세히….”
형은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보이며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안솔은 고연주를 향해 뻐기는듯한 미소를 흘리더니 이내 손을 방방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오라버니는요, 통과의례 때 우리들을 위해 막~. 괴물들도 유인해주셨고요. 사용자 아카데미에 들어가서는요. 막~~. 수석도 했어요. 아! 황금 사자에서 오퍼도 받았는데 우리들을 챙긴다고 그것도 거절하셨어요!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나오고서는요, 막~~~. 유적도 발굴하고 막~~~~. 탐험도 해서 클랜 하우스까지 세우셨어요오!”
그만해. 제발.
나는 결국 그대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전투도 하지 않았는데 뭔가 하얗게 불태운 느낌이었다.
*
폭풍 같던 식사시간이 지나간 이후, 우리들은 여유로운 티타임을 가졌다. 안솔의 활약으로(?) 분위기는 한층 유쾌해져 있었다. 물론 나한테는 전혀 아니었지만.
그 와중에도 형은 앞으로 자신이 지켜주겠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어떻게든 보호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다행히 진하 누나와 혜린이 누나가 뜯어말려 줬기에, 본연의 이야기로 돌아갈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 계속 남아 경과를 보곤 싶지만 현재 제가 맡고 있는 역할이 있어 바로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반시의 저주는 확실히 해주 했습니다. 목숨은 구했다고 볼 수 있지요.”
“수현아. 그냥 형 클랜으로 들어오면 안될까? 너도 알다시피 홀 플레인은 굉장히 무서운 세상이야. 형은 너무 걱정….”
“하….”
또 같은 말을 반복하는 형. 그에 질려 가만히 한숨을 내쉬자, 진하 누나와 혜린이 누나가 급히 소곤거렸다.
“클랜 로드! 오늘따라 정말 왜 이래요? 머셔너리 클랜이라잖아요, 머셔너리! 그것도 클랜 로드!”
“수현이는 내 동생이야. 그것도 친동생이라고. 너희가 지금 내 마음을….”
“현실을 보자고요 좀. 지금 1년도 안돼서 유적만 네 개 발굴했고, 시크릿 클래스 5명, 레어 클래스 4명을 보유하고 있는 클랜이에요. 거기다 그림자 여왕까지….”
“아니 그건 알고 있는데.”
“알긴 뭘 알아요! 지금 클랜 로드가 한 말은 머셔너리 클랜보고 해밀 클랜에 들어오라는 소리잖아요. 아무리 친동생이라고 해도. 다른 클랜원들도 앞에 있는데, 그게 얼마나 실례되는 말씀인지 몰라서 이러는 거예요?”
형은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바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 번 날카롭게 쳐다보자,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다물어주었다.
“미안해요. 머셔너리 로드. 우리 로드께서 도련님을 뵈니까 정말 반가우신가 봐요. 평소에는 이런 분이 아닌데 저희도 당황스럽네요.”
“괜찮습니다. 원래 현대에서도 항상 걱정을 달고 살았거든요. 이해합니다. 아무튼 이야기를 계속해보면, 치료를 하긴 했지만 후유증은 아직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그것도 굉장히 심하게요. 하지만 지속적인 간호를 해주면 필히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걱정 마세요. 우리 쪽에서도 능력 있는 사제가 많으니 후유증은 능히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
“신성 주문뿐만 아니라 약과 치료를 병행하면 치료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겁니다. 아무튼, 그 부분은 맡기겠습니다.”
“네. 그럼 이제 치료해주신 것에 대해 보상을 드려야 하는데…. 혹시 어떻게 치료하셨는지 대충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진하 누나는 말끝을 흐리며 슬쩍 형을 돌아보았다. 지금 대화는 그녀가 주도하고 있었다. 궁수 클래스이긴 하지만, 성격이 꼼꼼하고 셈이 빨라 해밀 클랜의 내정을 전반적으로 담당하고 있을 것이다.
“수현아. 너 아까 사제가 아니라 검술 전문가라는 시크릿 클래스를 가졌다고 했잖아? 그럼 효을이를 치료해준 힘은 뭐야?”
보상 문제는 애매하다. 면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최대한 쥐어짜냈을 테지만, 왠지 형 앞에서는 그러기가 싫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냥 공짜로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곳으로 오기 전 회의에서 해놓은 말이 있는 터라 그럴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냥 있는 대로 말해주고 적당히 생색을 내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냥 규격 외의 힘이라고 보면 돼. 출력을 체력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높일 경우 몸에 무리가 가지만, 단순한 치료용으로는 그렇게 부담되지 않아.”
“뭐라고?”
“아니. 치료용으로는 괜찮다고.”
“음…. 검술 전문가. 즉 근접 계열 클래스라는 말이지….”
형은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형은 검지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더니, 목 울대를 꿀꺽 움직이는 진하 누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백진하. 저번에 왕의 무덤을 발굴했을 때 얻었던 검 있지? 일단 그거 가져와봐.”
“왕의 무덤이라면…. 빅토리아의 영광이요? 그거 지금 효을이 언니가 귀걸이로 차고 있잖아요….”
“반시의 저주는 해주 했다니까 상관없잖아.”
형은 무심하게 한마디 툭 내뱉고는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수현아. 그 힘을 사용하면 체력에 부담이 간다고 했지?”
“응? 응. 아 그런데 출력을 조절하면 돼.”
“잘됐다. 형이 예전에 왕의 무덤이란 유적을 발굴했거든. 빅토리아의 영광이라고 체력을 올려주는 검이야. 검을 쓰는 클래스인 만큼 네게 딱 맞을 거다. 그 외에도 여러 옵션이 있으니 기대해도 좋아.”
‘무검, 일월신검, 칼리고 아브락사스…. 나 검만 세 자루인데….’
하지만 체력을 올려준다는 말은 제법 솔깃했다. 더구나 귀걸이로도 형태를 변하게 할 수 있다고 하니 확실히 구미가 당겼다.
“그러고 보니 너 투구는 없니?”
“응? 응. 불편하기도 하고 굳이 필요가 없어서.”
“그럼 안되지. 근접 계열들은 항상 머리를 조심해야 해.”
“아니 뭐 꼭….”
“보니까 갑옷도 입지 않았고. 쯧, 전체적으로 장갑이 부실하구나.”
하늘의 영광과 태양의 영광이 자아가 있었다면, 아마 발끈하지 않았을까?
형은 내 장비를 전체적으로 훑으며 혀를 쯧쯧 차고는, 훌쩍 몸을 일으켜 내게로 다가왔다.
“안되겠다. 백진하. 너는 일단 빅토리아의 영광부터 가져와. 그리고 수현이 너는 잠시 형이랑 창고 좀 가자. 전체적으로 손 좀 봐야지 안되겠어.”
“…….”
내 손을 거세게 잡아 일으키는 형을 보며, 지금 나는 떠올렸다.
형에게서 보호받던 시절을.
우리 형이 심각한 브라더 콤플렉스라는 사실을.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입니다.
드디어 김유현의 본성이 나왔습니다. 원래 성격은 차갑고 카리스마 있는 냉정한 남성이었습니다. 다만 친동생(김수현)에게는 예외지요. 중증의 브라더 콤플렉스(동생 바보) 김유현입니다. 하지만, 아무튼 다음회에는 진행을 위해 Bye Bye를 해야겠지요. 🙂 혹시나 해서 말씀 드리는데 메모라이즈는 BL이 아닙니다. 김유현이 김수현을 끔찍이 아끼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친동생으로써 아끼는 것입니다. 둘 모두 정상적인 이성관을 갖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러니 BL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독자분들이 저를 로X미라고 놀리시지 않는 이상 제가 절대 BL을 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PS. 오늘 새벽에 형을 깨울 생각입니다. 제 형이 공군을 나왔는데, 저벅가(맞나요? 그 초반에 저벅저벅 소리 나오는…. 제가 공군을 나오지 않아서….)를 틀어주며 “기상, 기상. X병장. 기상합니다.” 라고 말해줄 생각입니다. 반응은 내일 후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후후.
『 리리플 』
1. 휘을 : 1등 축하합니다! 오랜만에 뵈어요 휘을 님. 🙂 그 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하하. 이번 회도 재밌게 감상해주세요!
2. 유이버 :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유이버 님의~. 생일 축하합니다~! 와! 짝짝짝짝! 선물로는 제 뽀뽀를 -3-.(퍽퍽!)
3. Astrain : 정확하게 맞추셨습니다. 예. 김유현은 브라더 콤플렉스를 갖고 있습니다!
4. 피네이로 : 정답입니다! 김수현은 1회차 때 찌질 + 민폐 캐릭터입니다. 그것을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변화한 인물이지요. 🙂
5. J.F : 그렇지요. 김유현이 그래서 김수현을 보고 어색하다고 했고, 아직 현대의 기억에 남아 그대로 수현이를 대하는 것이지요.
6. 디럭스샌드위치 : 그 부분은 고민 중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무리라도, 언젠가는 밝힐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7. 로노에 : 코멘트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_(__)_ 그리고 늦었지만 둘째 축하합니다! 충성!
8. 고라온 : 쿠폰 감사합니다. _(__)_ 앞으로도 더욱 좋은 내용으로 보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9. 멜리스 : 매의 눈이시군요. 설마 그것을 잡아내실 줄은 몰랐습니다. 🙂
10. 도영 : 정주행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많은 코멘트를 남겨주시니 더욱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먼저, 초반 부분에는 도영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때 당시 많은 분들이 코멘트에 휘둘리지 말고 소신껏 써나가라고 하셨지요. 독자분들의 코멘트를 소중히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에 대한 온전한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고 전개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오롯한 저의 권한이니까요. 여자관계는, 글쎄요.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절대 문어발로 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예를 들면 수십 명의 여자를 거느린다는 등등.). 홀 플레인의 인구는 제가 직접 계산해보았는데, 4만 ~ 6만 사이가 적당한 듯싶습니다. 사실상 이 부분은 굉장히 복잡한 설정이 들어가있습니다. 시작의 여관을 통해 들어오는 사용자의 수는 굉장히 심하고, 불규칙한 편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적게 들어올 때는 100명대로 들어오지만, 많이 들어올 적은 2000명이 넘게 들어온 적도 있지요.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확실히 도영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전에도 그 부분을 지적해주신 분이 있었어요. 생계형 사용자들은 확실히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제가 지금 1회부터 천천히 수정하고 있는데, 그 부분은 필히 짚고 넘어갈 예정입니다.(출산은 사용자들이 선호하지 않습니다. 관계를 맺더라도 피임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충분한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__)_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큰 힘이 됩니다.
글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비평, 질문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