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302
00301 부랑자의 눈물 =========================================================================
『노블 미스릴 셔츠(Noble Mithril Shirt)』
(설명 : 미스릴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그 중 노블 미스릴은 최상위로 분류되는 금속으로써, 보통 미스릴 10Kg을 채취했을 때 노블 미스릴은 10g 이하로 나올 정도로 귀한 금속입니다. 이 셔츠는 노블 미스릴만을 따로 모아, 거기서 다시 한 번 실을 뽑아내어 가공한 셔츠입니다. 효과 자체는 보통 미스릴과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효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차이를 보입니다.)
『푸른 용기사의 외투(Blue for the Dragon Knight’s Coat)』
(설명 : 고대 홀 플레인에는 용이 존재했고, 인간들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용을 경외하고 숭배했습니다. 용기사는 용과 계약을 맺은 인간을 뜻합니다. 이따금 인간들 중 용과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특출한 자들이 출현했고, 그럴 때마다 용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은 푸른 용(Blue Dragon)이 자신과 계약을 맺은 인간에게 선물로 준 외투입니다. 용의 외피로 만들어진 만큼 가죽이 굉장히 질기며 마법에도 내성이 있습니다.)
이번에 해밀 클랜에서 받은 세 개의 장비는 지금 모두 착용한 상태였다. 빅토리아의 영광은 귀걸이로 변환해 오른쪽 귀에 걸어두었고, 노블 미스릴 셔츠는 하늘의 영광 안으로 해서 입었다. 푸른 용기사의 외투는 고연주가 직접 내 어깨 위로 걸쳐 둘러주었고.
착용감은 확실히 좋다. 셔츠는 마치 깃털과 같이 가벼워 입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외투는 뭐랄까, 마치 물을 둘렀다고 해야 할까? 길이나 두께가 얇은 것이 아닌데도 전혀 걸리적거리는 게 없었다.
좋긴 좋다. 하지만 아까부터 괜히 받았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빼앗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빅토리아의 영광이야 그렇다고 쳐도, 셔츠나 외투는 원래 주인이 정해져 있던 장비들이었다. 솔직히 체력 능력치를 90포인트로 올렸으니 치료 과정에서 위험을 감수했다고 보기는 힘들었고, 내가 보유한 장비들이 미진한 편도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이미 내 손안에 들어왔고, 이제 와서 돌려준다고 해도 받을 것 같지도 않다. 추후 계획중인 원정에 해밀 클랜을 팍팍 밀어주리라 다짐하며, 나는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으로 마음을 정리했다.
“수현은 참 마음이 복잡하겠네요.”
“네…?”
장비에 대한 생각을 마무리 짓고 워프 게이트로 걷던 도중이었다. 고연주는 걸음을 바삐 놀려 나와 나란히 서고는, 장난기가 살짝 감도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예전에 해밀 클랜의 정보를 알아봐달라고 했을 때부터 약간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어요. 이름이 비슷해서 혹시나 싶었죠.”
“하하. 그렇죠. 저도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제법 담담해 보이던데요? 아주버님께서는 대단히 혼란스러워 보이시던데~.”
“일부러 참은 겁니다. 저라고 뭐….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일부러 아쉬운 표정을 짓고 목소리를 내리깔자, 고연주는 흠칫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머무르셔도 됐는데….” 라고 중얼거리더니 이내 슬며시 걸음을 늦췄다.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살며시 고개를 돌아보자 묵묵히 내 뒤를 따르는 세 명이 보였다. 그 중, 맨 뒤에서 조용히 따르고 있는 김한별이 눈에 밟혔다.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수심 가득한 얼굴이었다. 혹시 자신도 홀 플레인 어딘가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저물어 짙은 황혼 빛을 뿌리고 있었다. 우리는 이후 약 10분 가량 걸은 후에야 워프 게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할 때만해도 점심이었는데 오후가 훌쩍 지나가버린 것이다. 지금부터는 사용자들의 대부분이 도시로 돌아와 휴식을 취할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워프 게이트의 입구는 생각보다 사람이 없었다.
‘지금도 통행제한이 걸려있다면 조금 곤란한데….’
열릴 때까지 주구장창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면 일단은 모니카로 돌아가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입구 안으로 들어선 후, 우리는 워프 게이트의 이용을 맡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여성과의 거리를 줄였다. 그녀는 오늘도 홍역을 치렀는지 의자에 푹 퍼진 상태로 앉아있다가, 우리를 보며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눈가가 퀭하고 미간이 찌푸려진 게 꽤나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었다.
“워프 게이트 이용하러 오셨어요?”
“네. 지금 혹시 통행제한이 풀렸나요?”
통행제한이라는 말을 듣자 여성의 얼굴에 역시나 하는 빛이 스쳤다. 그녀는 잠시 마법진을 살펴보고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어디로 가시게요? 그래도 다행히 뚫어서는 갈 수 있을 것 같네요.”
“뚫는다는 게 무슨 말이죠?”
“통행제한이라고 말씀하신걸 보니 중앙, 서부, 북부로 가실 것 같아서요. 일단 지금 바로 중앙으로는 갈 수 없어요. 바바라와의 워프 게이트가 활성화된 도시로 먼저 가신 다음, 그곳에서 다시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는 거죠. 예를 들면…. 지금 서부에 하나, 북부에 하나. 이렇게 열려있네요.”
“그게 무슨…. 자기들 마음대로군요.”
“제 말이요. 그나마 지금은 이렇게 일부라도 열려서 다행이지, 아침부터 점심까지는 장난 아니었어요. 빌어먹을 자식들…. 아무튼 서부는 베스, 북부는 뮬 이렇게 열려있어요.”
공교롭게도 여성의 입에서 뮬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렇다면 굳이 돌아서 갈 필요는 없다는 소리였다.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하며 뮬로 가는 게이트를 열어달라는 찰나였다. 돌연 내 옷깃을 꾹 잡아당기는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안솔이 보였다.
“안솔?”
“으응….”
“갑자기 왜 그래?”
“으으응….”
안솔은 까닭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한껏 불안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문득 오늘 회의에서 안솔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라버니. 어느 도시로 가신다고 했는지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을까요?’
나는 잠시 여성에게 양해를 구한 후 약간 허리를 굽혀 안솔과 시선을 맞추었다. 모두의 시선이 쏘아지는 가운데, 그녀는 풀이 죽은 얼굴로 입술을 살짝 깨물고 있었다.
어차피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었다. 다짜고짜 다그치기보다는 살살 달래어 의중을 물어보는 게 훨씬 낫다.
“뮬에 가기 싫어?”
“네에….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막 불안해서요오….”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자, 안솔은 끄덕끄덕 고개를 주억이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다시 허리를 피고 고연주를 응시했다. 사정을 모르는 김한별의 의아한 눈길이 느껴졌지만, 고연주는 직접 경험한적이 있어서 그런지 곰곰이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고연주. 혹시 요즘 뮬에 이상한 일이라도 있었나요?”
“아니요….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요즘은 뮬에 그다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거든요. 최근에 알아본 거라고 해봤자…. 아.”
“?”
“그러고 보니 하나 있어요. 예전 일이기는 한데, 뮬의 대표 클랜이 바뀌었어요. 정확히는 바뀐 게 아니라 합병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새로 대표 클랜으로 부임한 지상낙원 클랜이 원래의 너도 밤나무 클랜을 흡수 합병했으니까요. 솔이가 불안해하는 것은…. 아마 그때 그 일 때문이 아닐까요?”
그때 그 일이라 함은 너도 밤나무 클랜과의 충돌사건을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그때 이후 ‘성스러운 여왕’으로 자라날 유현아를 짓밟기 위해, ‘무신’ 차승현과 ‘미친년’ 반다희를 살해했다. 유현아가 아무리 본성이 착하다곤 해도 사람인 이상 앙심을 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가는 게 좋겠지.’
고연주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라면 뮬에 가는 게 구미가 당기는 선택이었다. 그때는 상황이 만들어지지가 않아서 죽일 수가 없었지만, 뒤통수가 제법 찜찜한 것은 사실이었다. 계속 그대로 놔두느니 차라리 호랑이 굴로 제발로 걸어 들어가, 영감님도 영입하고 겸사겸사 유현아도 처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먼저 시비를 걸어온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하겠지만.
‘하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다른 일이 일어날수도 있잖아. 가령….’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게 버릇이 되어버린 지라,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고 말았다. 이런저런 가능성을 생각해보고 있자 문득 옆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다.
“수현. 또 고민을 시작했군요. 외람되지만 예전부터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었어요. 조금 주제 넘을 수도 있지만, 허락해주신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네? 물론입니다.”
“수현은 클랜 로드에요. 애초에 계획하신 것들이 있잖아요? 물론 중간에 계획을 변경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오롯이 클랜 로드의 권한이라고 생각해요. 클랜원의 의견은 참고만할 뿐이지, 거기에 좌지우지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저번에 바바라의 워프 게이트 앞에서 있었던 사건을 기억해보세요. 그때도 솔이가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만 결국에는 무사히 귀환하셨잖아요?”
고연주의 말인즉슨, 내가 중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안솔의 결정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소리였다. 그녀의 말에는 날카로운 뼈가 들어있었다. 스스로는 신중하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다르게 비춰진 모양이었다.
나는 차분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몰아쳤다. 일반적으로는 고연주의 말이 맞지만 안솔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두 의견에서 중간지점을 잡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몰라.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발생하기는 한다는 것.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아니면 없을지는 결국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을 매듭지을 수 있었던 것은, 옆에서 여성의 하품소리가 들렸을 때였다. 워프 게이트 앞에서 몸을 돌리자 지루한 기색 하나도 없이 내 대답을 기다리는 클랜원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녀들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뮬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
계획을 변경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고연주와 김한별의 얼굴은 한결 밝아졌다. 하지만 안솔은 바닥 쪽으로 눈을 내리깔며, 기죽은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안솔.”
“네에….”
“뮬에서 볼일은 최대한 빨리 처리할게.”
“아, 아니에요오…. 제가 괜한 말로 심려를….”
안솔은 양손을 설레설레 저으며 도리질을 쳤다. 말은 저렇게 하고 있었지만, 표정에는 여전히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녀에게로 한 발짝 다가가,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괜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예전에 내가 했던 말들 기억하지? 네가 해주는 말은 항상 염두에 두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혹여나 무슨 일이 발생해도 너무 걱정하지마. 내가 항상 옆에 있을 테니까. 알겠지?”
그제야 조금 기분이 나아졌는지, 안솔의 볼에 발그레한 홍조가 피어올랐다. 이내 미약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확인한 후, 나는 지금껏 기다려준 여성 사용자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원래 기분이 좋아지면 안면에 홍조가 피어오르던가?
“뮬은 열려있다고 하셨죠?”
“잠시만요. 음…. 네. 다행히 열려있네요.”
“그럼 뮬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워프 게이트를 가동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총 네 명이니 8골드 주시면 되겠습니다~.”
드디어 우리를 보낸다는 사실이 자못 기쁜지, 여성은 사근사근한 어조로 요금통을 내밀었다. 그곳에 정확히 금화 여덟 개를 떨어뜨린 후, 나는 활성화된 포탈로 향해 바로 몸을 묻었다. 그러자, 언제나처럼 청량한 느낌이 내 몸을 휘감아 들었다.
*
눈을 한 번 감았다 뜨자, 익숙하면서도 낯선 도시가 눈에 들어섰다. 뮬에 도착한 것이다.
뮬은 빈말로도 좋다고 해주지 못할 만큼 여전히 후줄근한 풍경을 갖고 있었다. 물론 전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워낙 모니카에 오랫동안 있다 보니 미진한 부분이 상대적으로 더욱 부각되는 게 사실이었다.
이윽고 등 뒤로 나를 따라 차례로 들어오는 클랜원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나는 한껏 긴장을 끌어올렸다. 최대한 넓게 마력 감지를 퍼뜨리고, 언제든지 검을 출수할 수 있도록 자연스레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 상태를 유지한 채, 워프 게이트의 입구로 나가 번화가 주변을 전체적으로 둘러보았다. 마침 번화가에는 오른 방향에서 여러 명의 사용자들이 걸어오는 중이었다.
“으읔, 아파죽겠어….”
“킥킥. 그러니까 누가 멋대로 뛰어들어가래? 아무튼 빨리 신전이나 가자. 그렇게 깊지도 않고 물약도 뿌려놨으니 완치할 수 있을 거야.”
뮬의 거리는 한산했다. 전방 번화가를 지나치는 사람들 중에서, 이곳 저곳에 피가 묻거나 장비가 일부 파손된 사용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시간대를 따져보면 막 사냥에서 돌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자, 오늘 사냥은 대박이라는 둥 맨날 이랬으면 좋겠다는 둥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호호. 별로 이상한 일은 없는 것 같은데요?”
“…….”
어느새 뒤로 다가왔는지 고연주는 나른한 말투로 말을 걸었다. 그녀 말대로 이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평범한 홀 플레인 내 도시의 풍경이었다. 나는 허리에 얹었던 손을 내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긴장은 풀지 마세요. 아무튼 지금 바로 목표지점으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앗. 잠시 조신한 숙녀에 들르면 안될까요?”
“그건 나중으로 미룹시다. 상황을 좀 보고요.”
“힝~.”
고연주는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리고 나는, 영감님 보석상이 있을 상점가를 향해 곧장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입니다.
아, 독자분들. 죄송하지만 오늘 하루만 후기 및 리리플을 쉬겠습니다. 오늘 머리도 조금 무겁고, 몸이 많이 피곤해서요. 독자분들의 하해와 같은 양해 부탁합니다. _(__)_ (리리플은 다음 회에 합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